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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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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정치·외교,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주요 이슈에 대한 동향을 정리하여 제공합니다.

정치변화의 딜레마에 빠진 대만의 경제통합전략

공유식 소속/직책 : 한국외국어대학교 책임연구원 2015-07-01

■ 한미FTA의 발효에 이어 얼마 전 한중FTA도 발효되었다. 국제시장에서 한국의 경쟁자를 자처하는 대만에게 이는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 

 

  - 대만은 한국에 대하여 상당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음. 항상 아시아 네 마리 용중 최고라고 자부하면서 한국과 모든 것을 비교. 매번 “한국은 하는데 대만은 왜 못하지(韓國能,我們爲什麽不能)?” 이라며 경쟁심을 자극. 

 

  - 하지만 2010년 중국과 ECFA를 체결하면서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하여 경제적 돌파구를 찾으려 하였던 대만은 곧 이은 한미FTA의 발효와 최근의 한중FTA의 체결에 커다란 압박을 느끼고 있음. 

 

  - 하지만 ECFA의 후속 협정중의 하나인 서비스무역협정이 작년부터 제동이 걸린 이후 대만의 대외경제정책은 전반적으로 교착상태에 빠짐. 

 

  - 현재 대만이 체결한 FTA는 파나마, 니카라과, 과테말라, 살바도르, 온두라스 등이고 싱가포르와는 경제동반자협정, 뉴질랜드와는 경제협력협정, 중국과는 경제협력기본협정을 맺었고 있다.

 

  - 내수시장이 크지 않은 대만은 그동안 수출지향적 경제정책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어 왔고, 앞으로도 대외지향적인 경제정책만이 대만의 살길이라는 것에는 모두 동의함. 하지만 현재 전개되고 있는 대만의 정세는 대만에 그리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음. 

 

■ 대만은 한국보다 1인당GDP에서 줄곧 앞서왔으나 2004년 이후로 우리에게 추월당함. 특히 21세기 들어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기 시작함. 특히 한국과의 경쟁에서 뒤지기 시작하며 심리적인 타격이 더 심함.

 

  - 대만은 20세기까지는 한국과 더불어 후발 발전국가의 모델이 될 정도로 상당히 모범적인 자본주의 발전국가였음. 1990년대 후반의 아시아 금융위기도 대만은 큰 타격 없이 넘어갈 정도로 안정적인 경제를 자랑.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대만은 저성장과 경기 침체가 지속되기 시작함.

 

  - 대만의 이러한 경기 침체는 세계적인 불황과도 관련이 있지만 대만 내 정치적 변화에 따른 중국과의 관계(이하 양안관계)와도 관련이 깊음.

    ㅇ 1980년대까지 양안관계는 충돌 및 대치관계였음. 중국이 개혁개방을 실시한 80년대 초반에 대만은 오히려 3불정책(불담판,불접촉,불타협)을 견지함. 하지만 87년부터 대만 내부적으로 민주화가 진행되어 언론의 해금, 정당의 해금등이 진행됨과 동시에 이산가족의 중국방문을 시작으로 중국과 교류가 시작됨. 중국과의 교류가 허용되자마자 대만의 기업들은 대규모 중국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고 대만 내에서는 중국에 대한 일종의 열풍이 불었음(大陸熱).

    ㅇ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대만 내부의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대만의 정체성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였고 탈중국화(de-Chinization) 혹은 대만화(Taiwanization)에 대한 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함. 이를 대만독립노선이라고도 함. 이는 96년 대만의 총통 리떵후이가 직선제 첫 총통으로 당선되면서 중국에 대한 정책에 변화가 생김

   ㅇ 리떵후이 정책은 계급용인(戒急用忍)이라는 말로 정의함. 이는 중국에 대한 투자를 너무 급하게 하지 말고 참으라는 뜻으로 그동안 중국에 대한 투자로 인한 대만경제의 공동화와 중국경제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에 대한 우려로 인하여 나온 정책. 이로 인하여 대만의 대표재벌인 포모사그룹의 대규모 중국투자 계획등이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는 등 대 중국투자가 벽에 막힘. 

   ㅇ 2000년 대만현대정치사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루어 집권한 천수이비엔 정권은 대만 경제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중국 투자정책을 적극개방 유효관리(積極開放,有效管理)로 바꿈. 하지만 집권당인 민진당의 대만독립노선에 반대하는 중국의 냉대와 지나친 대만독립적인 여러 가지 정책으로 인하여 대만은 적극적인 대중국투자의 기회를 놓침.  

   ㅇ 반면 한국은 아시아금융위기를 빠르게 극복하면서 대중국에 대한 투자 형태가 중소기업위주에서 대기업 위주로 바뀌고 중국을 세계화전략의 전진기지 역할로 발빠르게 이용함. 이에 반에 대만은 정치적인 이유로 대기업의 대중국투자가 저조해짐. 이로 인하여 세계화된 시장에서 강점이 되는 규모의 경제를 이뤄내지 못하고 경지침체에 빠지게 됨.

  

■ 2008년 정권을 다시 찾아온 국민당의 마잉지우는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하여 경제회복을 꾀함. 이를 위하여 양안공동시장(兩岸共同市場)을 제시하고 ECFA를 추진, 체결하였고, TPP, RCEP, AIIB등에 대하여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힘.

 

   - 경제회복과 대만경제의 주변화에 대한 탈출방법으로 국민당의 마잉지우는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우선과제로 삼고 이를 위하여 먼저 92합의를 강조함, 92합의(92共識)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것에 중국과 대만은 서로 동의하고 또 서로의 해석도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으로 1992년 중국과 대만의 정치회담의 결과물임,

 

  - 이것이 해결된 이후 중국과 대만은 FTA와 유사한 ECFA(경제협력기본협정)을 추진하여 2010년6월 협정을 체결하고 9월 발효됨.

 

  - 대만이 ECFA를 추진한 이유는 이를 통한 국내경기의 회복, 그리고 중국과의 경제협력에서 모델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경제통합 추세에 맞추어 가려는 안간힘이라고 할 수 있음, 

 

  - ECFA의 효과로 대만은 2010년에 경제성장률 10%가 넘었으나 이듬해 다시 3%대 저성장을 가져오면서 가시적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음.

 

  - ECFA 이외에도 대만은 TPP와 RCEP에 적극적인 가입의사를 밝힘. 

    ㅇ 대만정부는 2014년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TPP 가입을 위하여 기존 회원국12개국의 동의를 얻어야 하므로 국내 경제정책의 수정을 통하여 이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고 밝힘.

    ㅇ 이와 더불어, 2013년 대만-뉴질랜드 경제협정, 대만-싱가포르 경제협력협정 등을 통하여 양자간 경제협력관계를  수립하여 TPP 가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중임.    

  -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과 더불어 AIIB 설립을 주창하자 대만은 곧장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힘으로서 세계 경제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대만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에 반하여 대만 내부의 이러한 노력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들이 증가하고 있음.  

 

  - ECFA체결 이후 대만은 그 이후 부동산 가격의 급증, 빈부차이의 확대, 실업률의 증가, 특히 청년실업의 증가 등으로 중국과 경제협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됨. 거기에 90년대 이후 민주화에 따른 대만의식의 확대는 중국과의 관계중 대만의 주권의식을 더 강조하게 됨. 중국이 꾸준히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에 대한 반감도 커짐.

 

  - ECFA의 절차 중 하나인 서비스무역협정에서 야당인 민진당을 중심으로 하는 반대세력들은 서비스 무역협정이 궁극적으로 대만의 취업기회를 감소시키고 출판업의 개방은 결과적으로 중국에 의한 언론통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면서 서비스 무역협정에 대한 반대여론을 조성하였음.

 

  - 2014년 3월18일 집권당인 국민당이 서비스무역협정을 국회에서 단독으로 통과시키자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집단으로 국회와 행정원 건물(정부청사)에 진입하여 단체 농성을 시작하여 4월10일에야 농성을 푼 사건이 발생함.(일명 318 학생운동 혹은 태양화 운동)

    ㅇ 이 운동의 원인은 첫째, ECFA 이후 기대했던 경제성장과는 반대로 경제성장이 더욱 둔화되었고, 유럽의 경제위기 이후 해외로 나갔던 대만 및 화교자본이 국내로 회귀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증함. 이는 청년실업은 증가하면서도 부동산은 급증하여 22K세대(월급2만2천원-한화약88만원-세대라는 뜻. 우리나라 80만원세대와 비슷함)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청년들의 불만이 급격히 증가함. 사실 20여 년간 임금이 오르지 않음.

    ㅇ 둘 째, 서비스 무역협정에 대한 반감이 직접적인 원인임. 신세대들은 중국과의 교류증가로 인하여 기업들이 대부분 중국으로 빠져나가 대만역내투자가 줄어들고 그로 인하여 취업기회가 감소하고 있다고 믿음. 거기에, 상술한 서비스무역협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더해져 국민당의 단독통과에 대하여 반발함.

    ㅇ 셋째, 서비스 무역협정 단독통과의 쟁점은 그 내용보다는 단독통과의 적법성 여부임. 만약 양안관계가 국가대 국가의 관계라면 국회의 조항별 심사가 필수라 이는 불법임. 하지만 양안은 국가대 국가의 관계가 아니라서 이에 대한 조항별 심사가 필요하지 않고 그냥 통과시킬 수 있음. 그러므로 합법임. 결국은 양안관계가 국가대 국가의 관계냐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쟁점이고 반대파들은 대만은 독립된 국가로서 중국과 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이에 반대하고 주도한 학생들도 이를 지지함.

 

  - 이 학생운동은 이후 대만의 정치구도를 변하시켜 2014년 하반기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기존의 국민당이 차지했던 타이베이시, 타오위엔 시의 패배를 비롯한 국민당이 참패하여 2016년 에 있을 총통선거에서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음. 현재 추세로 간다면 총통선거는 민진당 후보자가 당선될 확률이 높음. 민진당은 기존의 92합의를 부정 혹은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의 충돌은 필연적임. 이는 2000-2008년까지 민진당 정권에서 이미 경험하였음. 

  

■ ‘하나의 중국’이라는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치와 경제의 엇박자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대만의 경제통합에의 참여 노력은 성과를 거두기 힘듦. 

 

  - 대만이 경제통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도는 확실함. 하지만 이를 위하여 먼저 해결해야할 문제는 ‘하나의 중국’문제, 즉, 중국의 의향이 가장 중요함. 현재 어떠한 경제통합에서도 중국이 중요한 구성원이 되는데, 대만의 참여모델에 대하여 중국이 동의를 하지 않는다면 대만의 참여는 요원함.  

    ㅇ WTO체제 가입모델(TAX AREA)이나 IOC 가입시의 Chinese Taipei 모델을 참조하여 가입하면 중국과 협상이 가능함. 

    ㅇ AIIB 창립회원국으로 가입의향을 밝혔으나 중국이 이를 거부한 것은 바로 이러한 모델의 제한으로 인하여 초기 회원국가로서는 인정받을 수 없었기 때문임. 

 

  - 대만 내부에서 이에 대한 반감이 커가는 것은 향후 양안관계와 대만의 경제통합참여에 부정적이 영향을 미칠 수 있음.

    ㅇ 2016년1월 선거에서 민진당의 집권가능성이 국민당의 집권 가능성보다 훨씬 더 커진 지금, 하나의 중국에 대한 거부감은 더욱 커지고 있음. 서비스 무역협정에서 불거진 국가 대 국가 문제도 결국 양안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임.

    ㅇ 경제통합에의 참여에서도 대만 내부에서 참가의 격식에 대한 의견이 많아지면서 국격을 낮추면서 까지는 참여하지 말자는 의견이 점차 대두됨. 결국 이는 대만의 국제적인 활동공간을 줄일 가능성이 있음.

 

  - 대만은 국내적 갈등이 국제적 활동공간의 제약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하여야 하며 이는 향후 집권하게 될 정당의 지도자가 꼭 해결해나가야 할 숙제. 그렇지 않으면 동아시아 경제통합, 나아가서는 세계경제통합의 과정에서 대만의 위상은 더욱 낮아질 것이며 이는 오히려 양안관계에서 대만의 위치를 더욱 불리하게 될 것임.

 

<참고자료>

http://www.mjib.gov.tw/d3/10405/1-2.pdf

http://www.mjib.gov.tw/d3/10401/1-3.pdf

http://www.bbc.com/zhongwen/trad/china/2015/03/150319_twanletter_sunflower

http://www.mjib.gov.tw/d3/10312/1-6.pdf

http://www.mjib.gov.tw/d3/10305/1-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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