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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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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정치·외교,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주요 이슈에 대한 동향을 정리하여 제공합니다.

<중국 인물 분석 시리즈> ① 習近平의 人事 哲學과 인맥 구성

강준영 소속/직책 :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2015-07-17

2012년 중국공산당 18차 당대표 대회와 2013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명실상부한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 등극한 시진핑은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인물을 주변에 포진시킴으로서 자신의 정치 이념을 실현하고 안정적인 정국 유지를 위한 기틀 확보에 부심하고 있다. 본고는 ‘시진핑 시대 - 중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①시진핑의 人事 哲學과 인맥 구성 ②시진핑의 막료들 ③시진핑 세력의 면면 ④시진핑 시대의 떠오르는 인물들 ⑤19차 당대표대회를 위한 인사 배치 등을 주제로 총 5회에 걸쳐 시진핑 인맥을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  시진핑 사단의 형성과 중국의 비공식 정치시스템

 

  ㅇ 중국은 정치문화 전통상 법치적 요소보다는 인치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이는 수천 년 간 전제정치 전통에서 형성된 - 법은 구비되어 있으나 제도적으로는 기능하기 어려운 법제(rule by law) 전통이 법치(rule of law) 전통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공산당 정부에도 투영되어 정치권력의 행사가 공식적 영역보다는 비공식적 영역을 통한 합의와 조정을 통해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는 현상을 보인다.  

  ㅇ 중국의 비공식 정치 영역은 다양한 형태로 잠복해있으며 표면적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 당 총서기 비서실에 해당하는 중앙판공청(中央辦公廳), 당 총서기 판공실, 국가주석 판공실 그리고 중앙정책연구실 및 중앙 편역국 등의 기구도 중요한 비공식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기구와 그 책임자들은 공산당의 집정 계획을 입안해 국가통치의 기본 책략을 제공해 그 정치적 역량이 전 중국의 정치권력 행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구조로 기능한다. 당연히 이들 기구는 최고 지도자의 싱크탱크가 되며 최고지도자의 최 측근들이 포진하게 된다. 가히 중국의 관(官) 문화 전통에 나타나는 왕의 책사, 즉 제왕사(帝王師)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다. 장쩌민(江澤民)시대의 쩡칭홍(曾慶紅), 왕후닝(王滬寧)이나 후진타오 시대의 천스쥐(陳世炬), 링지화(令計劃)가 그들이며 현 시진핑 시대의 8대 막료로 불리는 사람들이 바로 이 최고지도자의 책사 역할을 하고 있다. 

 

  ㅇ 특히 시진핑은 소위 고위 관료의 자제로 구성된 태자당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나 대부분의 관료 생활을 지방에서 보내 계파를 형성하기 어려웠고, 총서기 옹립 과정도 당시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하는 공청단 계파(團派)와 장저민의 영향력 하에 있는 상해 세력(上海幇)간의 타협의 산물이었기 때문에 향후 10년 집권을 위한 자파 세력 구축은 필수불가결한 일이 되었다. 당연히 자신이 근무한 복건성, 절강성 및 상해 지역의 지방 관원들의 발탁이 이루어졌고 과거의 계파와는 약간은 다르지만 자연스럽게 시진핑 사단(習家軍/習近平團隊)가 형성되었다.

 

■  시진핑의 人事 哲學

 

  ㅇ 집권 2년, 시진핑 체제의 인사 등용은 기본적으로 반부패 운동을 기존 세력에 대한 정리 작업으로 운용하는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다. 당연히 반부패 운동은 중국 사회의 부정부패 척결 운동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기존 상해방 및 공청단 세력 그리고 군부에 대한 정풍 작업도 함께 진행되는 권력 투쟁적 성격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언급한대로 ‘저우융캉(周永康), 쉬차이허우(徐才厚), 링지화(令計劃), 쑤룽(蘇榮) 등의 엄중한 기율·법률 위반 사건을 결연하게 처리한 것은 중국 공산당이 잘못의 과감한 교정, 엄정한 당 관리, 당 기율 수호, 스스로 정화·혁신 등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명한 것’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상해방 세력과 공청단 세력 걷어내기의 일환이다. 선전 부문과 언론 통제를 책임지고 있는 류윈산(劉雲山)에 대한 견제도 강화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ㅇ 시진핑은 기존의 당·정·군 최고 수장 직 이외에 7개 영도소조(領導小組)와 위원회의 조장 및 주석을 겸직함으로써 무려 10개의 핵심 정책결정기구를 직접 관장하는 지휘체계를 확립했다. 특히 정권 승계 이후 신설된 중국판 NSC격인 국가안전위원회, 향후 개혁의 방향을 총괄할 개혁 심화 영도소조 및 중앙군사위원회 국방 및 군대 개혁 심화 영도소조, 그리고 인터넷 안전 및 정보화 영도소조를 통해 시진핑은 중국의 개혁, 정보 및 안보 시스템, 군사, 외교와 인터넷 관리에 이르기까지 독보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이는 중국정치가 기구별 책임자가 해당 업무를 책임지는 분관 정치라는 기존의 틀을 깨기가 매우 어려운 특이한 정치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진핑은 소조 신설을 통해 최고지도자의 정책 결정권을 확립해 일사 분란한 중앙의 정책집행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ㅇ 결국 시진핑은 반부패 운동을 매개로 실권을 확고히 하고 정적에 대한 숙청을 통해 자신의 반대 세력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진핑은 새로운 계파 형성의 색채를 최소화하면서 자신의 의도를 파악하고 관철할 수 있는 측근 세력을 요소요소에 배치하는 것이 관건이 되었다. 때문에 시진핑은 철저하게 스스로 격어 본 사람을 중심으로 인사 배치와 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2년간의 인사 조정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실용주의의 강조가 눈에 띤다. 특히 반부패 운동 전개 과정에서 대량의 숙청이 이루어지고 후임자 인선이 여의치 않자 과거보다는 혈연, 지연, 민족, 성별 등의 제한이 과거보다 많이 약화되었다. 따라서 능력 중심의 실용주의 차원에서 측근의 발탁도 큰 구속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측근의 등용이 보다 현실적인 선택이 되고 있다. 또 선발 과정에서 인사 검증을 상당히 철저히 진행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반부패를 당면 과제로 내세우는 상황에서 새로운 인사가 당의 기율이나 법을 어기면 통치 합법성에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여기에 개인의 종합적인 소양 역시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 시진핑 이전 소위 ‘GDP 우선 성장론’을 강조하는 리춘성(李春生), 지지엔예(季建業), 완칭량(萬慶良) 등 스타 관리들이 줄줄이 낙마한 것은 바로 단순한 성장 강조보다는 환경보호, 민생, 개 군중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시진핑의 인사 철학이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  시진핑 사단의 구성

 ㅇ 8대 막료 :  시진핑을 막후에서 보좌하는 핵심 사단이다. 이들은 8대 막료 중 지위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복건성 시절의 동료로 국가주석 비서실장 격인 중앙판공청 주임 리잔수(栗戰書), 장저민, 후진타오 전임 총서기에 이어 시진핑을 보좌하는 ‘일대일로’ 계획의 입안자로 외교 책사인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왕후닝(王滬寧), 당 총서기 판공실 주임 띵쉐샹(丁薛祥), 복건성 선전부부장 리수레이(李書磊), 반부패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중앙당교 상무부교장 허이팅(何毅亭), ‘신창타이(新常態)’라는 용어의 창시자로 시진핑의 중학교 동창인 국가발전위원회 당조 부서기 리우허(劉鶴), 중앙군사위원회판공실 주임 중자오쥔(鐘紹軍), ‘시진핑 주석의 비서’로 소개되는 외교 책사 주궈펑(朱國鋒)이 그들이다. 

 ㅇ 즈장신쥔(之江新軍), 민장지우부(閩江舊部), 신 상해그룹: 시진핑이 절강성, 복건성, 그리고 상해 시절의 책임자로 있을때 인연을 맺었던 지방 관료들로 이 그룹 들은 최고위 급 보다는 성급 책임자 및 지방 조직부 계통에 집중 등용되고 있다. 특히 후진타오 시절 공청단파가 득세했던 지방 조직이 시진핑 인맥으로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저장성 당서기를 맡고 있는 샤바오룽(夏寶龍), 저장성 성장  리창(李强), 구이저우 (귀주)성 성장 천민얼(陳敏爾), 산시(山西)성 부서기 러우양(樓陽) 등과 티엔진 서기 황싱궈(黃興國), 중앙국가안전위원회 판공실 부주임 차이치(蔡奇), 중앙선전부 부부장 황쿤밍(黃坤明). 상해 기율검사위 위원으로 시진핑 당시 상해 당 서기를 보좌했던 중앙기율검사위 부서기 양샤오보어(양소파), 그리고 왕샤오훙(王小洪)이 베이징 부시장 겸 공안국 국장이 여기에 속한다.  조직부 계통으로는 상해 조직부장 쉬저저우(徐澤洲), 장수(江蘇)의 왕종(王炯), 안후이(安徽)의 떵샹양(鄧向陽), 헤이룽지앙(黑龍江)의 양루이(楊汭)와 산시(山西)의 성마오린(盛茂林)과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주임 왕치산(王岐山)의 최 측근인 허자티에(賀家鐵)도 후베이(湖北)성 당 위원회 상무위원 겸 조직부장 그리고 허우카이(候凱) 상해 시당위원회 상무위원 겸 기율위 서기도 이 그룹에 속한다. 여기에는 공업신식부 차관 출신의 우주전문가 마싱루이(馬興瑞)를 개혁개방 1번지이며 중국 당내 민주의 정치 실험지인 선쩐(深圳)시 당 서기도 포함된다.

ㅇ 신 칭화계(新淸華係) 그룹 : 사실 칭화(淸華)대학 출신의 관료를 지칭하는 칭화방 그룹은 이미 지난 10여년 간 중국 정치에 있어 중요한 축을 형성해 왔다. 다른 계파의 결속도와 비교해 긴밀도는 상당히 많이 떨어지지만 후진타오를 비롯 후진타오 시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었던 우방궈(吳邦國), 국무원 총리 주룽지(朱鎔基),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였던 우관정(吳官正)이 모두 칭화대 출신이었다. 시진핑 역시 칭화대 화공과 출신이다. 그러나 이들은 원래 학자에서 전문 관료로 등용되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칭화 세력과 구분된다. 신 청화계의 대표 주자는 칭화대 서기 출신으로 2013년 저장성 상무위원 겸 조직부 부장에 등용된 후허핑(호화평)과 시진핑의 칭화 화공과 동창으로 중앙조직부 상무 부부장을 맡고 있는 천시(진희), 그리고 칭화대 총장 출신으로 중국 환경보호부 당조 서기로 등용된 천지닝(陳吉寧)을 들 수 있다. 후허핑과 천지닝 역시 칭화 부총장을 역임해 이들 셋은 한 곳에서 업무 경험을 공유한 특이한 이력과 업무 중심적 인사 배치라는 점에서 단순 동문 관계에 따른 등용을 벗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ㅇ 시지아쥔(習家軍)의 형성과 소수민족계의 약진 : 마오저뚱의 군부 장악 핵심이 홍군 제1 방면군과 홍군 1군단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떵샤오핑은 129사단 및 제2 야전군을 기반으로 했다면 시진핑은 자신이 근무했던 푸지엔, 저장, 상하이 시기의 군인을 집중 등용하고 있다. 이 지역은 기본적으로 남경군구를 기반으로 하며 이곳 출신으로 무장경찰 사령관이 된 왕닝(王寧), 북경군구 사령관 쑹푸시엔(宋普選), 해군 정치위원 미아오화(苗華)와 부참모총장 치지엔궈(戚建國), 심양군구 사령관 왕쟈오청(王敎成),정치위원 추이민(褚益民) 그리고 광주군구 정치위원 웨이량(魏亮)이 시진핑의 새로운 군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소수민족계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중국의 소수민족 지역은 테러리즘과 극단주의, 종교적 원리주의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곳이 많다. 따라서 소수 민족 간부 등용의 확대를 통해 종교, 민족, 문화 요소를 효율적으로 극복하려는 정책이 강화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표적으로 몽고족인 바인차오루(巴音朝魯) 지린(吉林)성 당서기,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장관급 부주임 겸 국가에너지국 국장인 위그루 족 누얼 바이리커(努爾 ․ 白利克) 그리고 시진핑의 부친과 막역한 사이였던 위그루족 압둘라 자크로푸(阿不都拉 ․ 扎克洛夫)의 아들로 전국인민대표대회 민족위원회 부주임 출신인 슈크라티 자커얼(雪克來提 ․ 扎克爾)의 약진도 예상된다. 
 

■ 간단한 평가

 

ㅇ 시진핑은 계파 형성과 분파주의 조장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지면서 안정적인 통치 정국 확보를 위한 자기 중심력 인사 조정과 등용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실용주의적 차원에서의 교차 업무 부여 및 지방 조직 장악을 위한 낙하산 인사를 적절히 결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통치 합법성을 담보하기 위한 반부패 투쟁의 철저한 전개 및 완성 그리고 이를 통한 안정적 권력 유지를 위한 작업으로 19차 당 대회의 인사 배치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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