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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넝그룹 CEO, 리허쥔(1)

김동하 소속/직책 : 부산외국어대학교중국학부/교수 2015-07-17

1. 성장 배경

■ 한넝그룹 회장 리허쥔(李河君. 46세)은 2015년 후룬 부호 명단에서 알리바바의 마윈을 제치고 중국 1위의 부호로 올라선 인물이다


- 리 회장은 1600억 위안(약 28조원)의 재산으로 중국 부자 1위에 올랐다. 이에 따라 포브스의 세계 부자 순위에서도 108위에서 28위로 도약했다. 포브스는 그의 자산을 294억 달러로 추정 했다.
ㅇ 후룬 부호명단에서 2위는 왕젠린(王健林·61) 완다(萬達)그룹 회장이 차지했다. 부동산 재벌인 그는 1550억 위안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됐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1500억 위안의 재산으로 3위로 밀려났다.
ㅇ 그가 부호 리스트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2013년(포브스 중국)인데, 665억 위안 자산으로 중국 내 4위를 차지했으며, 신에너지(태양광) 사업으로 리스트에 진입한 첫 번째 인물이 되었다.

■ 리허쥔은 1968년 8월, 광동성 하원시에서 출생했으며, 광동상인과 복건상인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객가인(客家人) 출신이다.


- 객가인은 ‘타향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한족의 지계이며, 세계 전역에 8천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타이완 인구 15%가 객가인이고, 동남아에 거주하는 화교 대부분도 객가인이다. 객가인의 조상은 본래 중원지역의 한족이었다. 당나라 말엽과 송나라시대에 가뭄과 전쟁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타지로 이주를 하게 되었는데, 이 때 객가인들도 강서성, 복건성과 광동성이 교차하는 지역에 처음으로 거주지를 마련하게 된다.
- 객가인은 교육을 중시하여 문풍(文風)이 흥성했다. 이들의 선조는 중원의 사인 집단으로 높은 문화적 소양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객가상인은 돈을 벌면 반드시 사원을 세워 후학을 양성했다. 객가인은 근면하고 어려움을 잘 견디며 스스로 노력하고 게으름을 피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객가인들이 광동상인, 복건상인으로 탄생한 것은 놀랍지 않다.
ㅇ 현재는 광동, 복건 등 중국남부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등 80여 개 국가와 지역에 산다. 언어는 고유어인 객가어를 사용한다. 태평천국의 창시자인 홍수전을 비롯해 쑨원·덩샤오핑, 타이완 前총통 리덩후이, 필리핀 정치가 아키노, 싱가포르 前총리 리콴유 등도 객가인이다. 이미 해외로 많이 진출해서 각 지역 내에서 일정한 경제권을 형성한 이들은 매년 세계객가대회(世界客属恳親大会)를 열어 전통을 계승하고, 그들만의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한넝그룹 CEO 리허쥔

자료원: 한넝그룹 홈 페이지 (2015.5)

■ 리 회장의 부모는 농민이었으며, 넉넉하지 않은 환경을 극복한 리 회장은 북방교통대(지금 북경교통대) 기계공정과를 졸업했다.

 
- 리 회장은 7명의 형제 자매 중 4째로 태어났다. 자식중 말수는 적었으나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었다. 리 회장의 비즈니스 기질은 부친에서 왔다. 그의 부친은 중국 최초의 사영사업가인 거티후(個體戶)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1978년부터 개인사업을 시작한 리 회장의 부친은 한 때 십여명의 직원을 보유한 소규모 기업을 운영하기도 했다. 당시는 개혁개방 정책이 아직 시작하기도 전이라 사영기업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하지만 리 회장의 부친은 곧 세상이 바뀔 것을 자신했고, 당시 10세의 리 회장은 부친의 이러한 혜안이‘대세’를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줬다고 회고한다. 80세가 넘은 리 회장의 부친은 아직도 향후 20년간의 사업계획을 가지고 자신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리허쥔은 당시 장사 보다는 정치인이 되어서 입신양명하기로 결심한 바 있다. 그러나 결국 정무(政務)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한 리허쥔은 5만 위안이라는 자본금으로 창업의 길로 나서게 된다.

■ 1988년, 리허쥔은 대학 교수들의 보증으로 빌린 5만 위안으로 베이징 중관촌에서 전자제품 도매업으로 창업을 하게 된다. 


- 중국판 실리콘 벨리로 성장한 베이중 중관촌은 우리의 용산전자상가와 같은 IT제품의 집산지였다. 리허쥔은 이곳에서 전자제품 및 부품 도매상으로 장사를 시작하였으며, 이후 완구, 생수 등으로 경영 항목을 확장했다. 약 6년간의 중관촌 사업 결과, 1994년에는 17명의 사업 파트너를 보유한 사업체를 보유할 수 있었고, 자본금은 8천만 위안까지 늘어났다. 

2. 에너지 사업의 시작

■ 1994년에 한넝(漢能)을 설립하여 에너지 부문으로 사업 영역을 전환하기에 이른다. 


- 적지 않은 규모의 자본금을 축적한 26세의 청년 사업가 리허쥔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당시 그의 고교 동창은 중국에서 막 시작된 주식시장을 염두에 두고 곧 상장을 앞두고 있는 중국기업에 투자하여 이익을 노려볼 것을 제안했다. 실제 그는 수력발전과 관계있는 기업을 투자대상으로 눈여겨 두고 전국 각지의 수력발전소를 탐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수력발전이라는 사업이 중국과 같은 발전도상국가에서는 꽤 성장가능성이 큰 사업인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그는 곧 기업투자 계획을 포기하고, 수력발전업에 직접 뛰어들어 회사를 세우기로 결정하게 된다. 리허쥔은 1천만 위안의 자금을 동원하여 그의 고향인 하원시 동강(東江) 상류에 있는 한 수력발전소(발전 용량 1500㎾)를 매입하게 된다. 이것이 한넝그룹(당시 회사명:华睿集团·화루이그룹)의 시작이었다.   

■ 이후 리 회장은 2009년까지 자신만의 방법으로 국유기업이 독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전력업 분야에서 M&A를 통해 한넝의 사업영역을 점차 확대해왔다.


- 중국 내에서 전력사업은 자본, 기술집약 산업이며, 또한 국유기업이 독점 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는 광동성, 청해성, 절강성, 광서자치구 등지에 산재한 소규모 수력발전소를 매입하거나 신설하기 시작했다.  

■ 당시 화루이 그룹(한넝의 前身)은 2003년에 민영기업 최초로 중국 내 최대 규모의 수력발전소를 매입한 것을 계기로 국내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 리회장은 2000년 8월 28일, 광동성 동강무징(木京) 수력발전소를 착공했으며, 2002년 4월에는 동 발전소에 처음으로 송전망을 설치했다. 그 결과, 2003년 기준으로 3만㎾ 규모의 광동 무징 수력발전소와 1500㎾ 규모의 하원 동장 수력발전소를 보유하게 된다.
- 2003년 7월, 리 회장은 12억 위안의 자금을 동원하여 황하 상류에 있는 칭하이니나 수력발전소를 매입하였는데, 이는 중국 역사상 민영기업이 가장 큰 규모의 수력발전소 매입 건으로 중국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 지금의 한넝 그룹이 있게 된 계기는 중국정부의 광차이(光彩) 사업에 참여하면서 대규모 수력발전 프로젝트에 뛰어 들면서 부터이다. 


- 공산당 중앙통일전선공작부는 전국공상연합회와 손잡고 2002년부터 전국적으로 빈민농가 지원사업인 광차이사업을 실시했다. 농업용수와 전기의 원활한 공급이 사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WTO 가입직후였던 당시 중국은 전력생산이 경제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제한송전을 실시했다. 광차이 사업에 수력 발전용 댐이 포함됐다. 그중 가장 큰 구상이 물살이 빠른 운남성 진사강 유역에 8개의 100만㎾급 수력발전소를 만드는 것이었다.
- 2002년 4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동 프로젝트를 확정했고, 운남성 정부는 민간 자본을 유치하기로 결정한다. 리허쥔은 모은 재산 전부를 이 건설사업에 투입했다. 총 8개의 100만㎾급 수력발전 프로젝트 중 6개가 리허쥔이 이끄는 당시 화루이 그룹에게 낙찰되었으며, 발전용량 1400만㎾, 총 투자액 750억 위안에 달하는 거대 프로젝트였다.

■ 리 회장은 민영기업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데 분투해야 했으며, 수주한 6개 프로젝트 중 유일하게 남은 진안치아오(金安橋)가 마지막 희망이었다.


- 당시 운남성 주요 프로젝트 대부분을 알려지지도 않은 화루이 라는 민영기업이 수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앙정부는 크게 당황했고 주무부처인 발전계획위원회는 법원의 힘을 빌려 운남성의 결정을 무효화 하려 했다.
ㅇ 당시 중국정부는 화넝, 화띠엔, 다탕과 같은 국유 에너지(전력, 석탄, 석유)기업을 설립하여, 주요 수력발전 프로젝트를 운영하게 하였다.
- 결국 우여곡절 끝에 낙찰받은 5개의 수력발전 프로젝트는 반납하게 되었고, 운남성 리강에 위치한 진안치아오만 남게 되었다.

   

■ 진안치아오 수력 발전소는 146억 위안이 투자되어 착공(2005.9)한지 7년만에 240만㎾ 용량으로 2011년 3월에 완공되었다. 


- 댐 길이 640m, 높이 160m 수준이며, 저수용량은 9.13억㎥로 연간 발전량은 114.17억㎾/h 수준이다.
- 진안치아오 발전소의 성공은 중국정부가 민간기업도 대규모 인프라 및 SOC 건설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특히 중국의 장기 지역개발정책인 서부대개발 정책 중 중요사업인 서전동송(西電東送·서쪽에 만든 전기를 동부로 전송) 프로젝트에서 민간기업 참여 대표사례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 운남성 리강 진안치아오 수력발전소


자료: 한넝그룹 홈 페이지 (2015.5)

 

※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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