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중국 인물 분석 시리즈> ②-2 習近平의 幕僚들

강준영 소속/직책 :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학대학원 교수 2015-08-27

- “新常態 經濟”의 제창자, 경제책사 리우허(劉鶴)

 

리우허 이미지

 

ㅇ 현 직 : 중앙재경영도소조(조장:習近平) 판공실(中財辦) 주임

              국가발전개혁위원회(發改委) 부주임 

 

ㅇ 시진핑과의 인연 : 1952년 北京 출생. 고급간부들의 자제 학교로 유명한 베이징 101중학 출신으로 재학 시절부터 같은 학교에 다녔던 시진핑과 알고 지냈다고 한다. 중국인민대학 석사, 미국 하버드 케네디 스쿨 공공관리 석사(MPA)로 2003년부터 중앙재경영도소조(당시 조장:溫家寶총리) 판공실 부주임에 오른 후 계속 같은 곳에서 근무중이다. 시진핑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진입하면서 그의 전문성을 높이 샀으며. 특히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이 중속 성장 시기에 진입했음을 기조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뉴노멀(新常態) 경제를 주창하여 시진핑의 경제 책사로 등극했다. 시진핑응 2013년 5월 미국 국가안보고문인 탐 도닐론(Tom Donilon)의 중국 방문 시 리우허를 소개하면서 “나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통해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시진핑 집권 기간 중 중국 경제발전의 미래와 진행방향 설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ㅇ 정책 성향과 장점: 일찍부터 국가계획위원회 및 중국 국가발전 5개년 계획 기초 작업에 꾸준히 참여해 온 경제 전문가. 중국 경제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경제 원고를 기초했다. 온 경제 전문가로 꼽히며 8차5개년 계획부터 12차 5개년 규획 수립 까지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17차 당대회 문건 및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문건 등을 기초하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잇는 전형적인 학자형 관료로 꼽힌다. 특히 시진핑이 강조하고 있는 ‘당의 경제 정책에 대한 지도성 확립과 강화’ 분야를 오래 연구했고 경제정책에 있어 당과 정부가 용인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설정하고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는 “마지노선 사유(底線思惟)”를 강조한다. 13차 5개년 규획 수립에도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시진핑이 좋아하는 나서지 않고 조용히 이론적 작업을 진행하는 스타일이며 중국 경제 전반에 대해 해박한 경제지식과 이론을 겸비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 반부패운동의 이론 책사, 당교 부교장 허이팅(何毅亭)

 

허이팅 이미지 

ㅇ 현 직 : 중공중앙당교 상부부교장

              全國黨建硏究會 부회장

              18대 중앙위원 

 

ㅇ 시진핑과의 인연 : 1952년 산시(陝西) 한중(漢中) 출생으로 시진핑과 동향. 문혁기에 하방된 지식청년과 노동자 경력을 갖고 있다. 북경사범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85년 역사학 석사 학위 취득 후 86년 중앙판공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89년 중앙정책연구실에서 주로 공산당원의 교육과 선진성 확보에 대한 정책을 수립해 왔다. 중앙정책연구실 상무부주임을 거쳐 2013년 9월 중앙당교 부교장으로 발탁되었다. 17차 당대회 대표로 선출되면서 당의 일상업무를 관장하는 당무 서기였던 시진핑의 현지 조사 및 연구 분석을 진행하면서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특히 시진핑이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후에는 시진핑을 자주 수행하면서 공무원의 청렴을 규정한 “8항 규정”(習8條)과 반부패 운동을 정풍운동으로 연결시키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 당의 공공이미지 수립 및 공부원의 청렴 등에 대해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해 반부패 운동을 국가 정책으로 진행하려는 시진핑의 신뢰가 두텁다. 

 

ㅇ 정책 성향과 장점 : 허이팅은 그 경력에서도 나타나듯이 중앙정치국의 정치 이론과 정책을 연구하고 중공 수뇌부의 문서를 기초한다는 면에서 왕후닝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철학 이론의 운용에 장점을 갖고 있는 왕후닝과 달리 당 조직의 건설과 공무원의 이미지 수립에 독특한 견해를 피력하는 등 이론보다는 당과 군중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장쩌민 시대에는 “3개 대표”이론과 “집권당으로서의 공산당”의 역할을 강조하였고, 후진타오 시대에는 “학습형 정부”론의 제창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진핑이 당교 교장으로 재직 시 ‘당의 건설’ 의제에 당원의 순결성을 강조하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특히 부정부패의 척결이 중국의 장기 안정에 가장 핵심적인 사항임을 설파하고 있다. 부패에 대한 발본색원 그리고 반부패의 제도화 및 당내 민주 등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지속적인 교육 활동을 통해 당원 및 공무원의 의식을 개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 막후 최측근 수석 비서, 중사오쥔(鐘紹軍​)

 

ㅇ 현 직 : 중앙군사위원회판공청 부주임

              현역 대교(大校:우리의 대령과 준장의 중간에 해당)

 

ㅇ 시진핑과의 인연 : 시진핑은 일찍이 푸지엔성에서 저장성으로 가면서 비서를 데려가지 않고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저장성 성위원회 조직부 부부장 종사오쥔을 개인 비서로 등용하고 상하이 서기로 근무할 때 상하이로 데리고 가 상하이시 당위원회 판공실 부주임을 맡겼고,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했을 때도 베이징까지 끌어올려 개인 사무실 격인 ‘시진핑 판공실’에 근무시키면서 중앙판공청 조사연구실 정치조 조장의 직무를 맡겼다. 2013년 6월부터는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청 주임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사무실 주임이라는 중책을 맡으면서 민간인이었던 중사오쥔은 대령과 준장의 중간 계급인 대교 계급의 현역 군인이 되었다. 시진핑을 최측근에서 밀착 보좌한지 10여년이 넘는 대비서, 왕비서로 불린다.   

 

ㅇ 정책 성향과 장점 :중사오쥔은 자료상 알려진 게 많지 않다. 1968년생으로 저장성 취저우(衢州)사람으로 소수민족인 서(畲)족이라는 설도 있으나 확실치 않다. 저장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칭화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중사오쥔이 맡고 있는 중공중앙군사위판공청은 중국의 군사 통수권자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보좌하는 사무실로 중국군의 중추기구라 할 수 있다. 중국은 시진핑의 명령에 따라 2014년 11월부터 중국군 예산 업무를 총괄하던 총후근부(군수사령부)의 기능을 중앙군사위원회로 이관하고 당정 업무 및 행정 관리는 군사위원회 판공청이 관할하도록 조정하였다. 이에 따라 중사오쥔은 군사위원회 판공청에 진입 한 후 쉬차이허우(徐才厚) 같은 장쩌민 계열의 군 장성들에 대한 부패 관련 자료를 집중 수집해 군 부패 문제를 집중 처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시주석의 군대계통 메신저를 맡고 잇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주임인 친성상(秦生祥)도 시진핑의 최측근이다. 시진핑 주변의 비서진 중 가장 밀착형 수행비서로 볼 수 있다. 

 

 

- 막후 외교 비서, “시진핑 주석 비서”, 주궈펑(朱國鋒)

 

주거펑 이미지 

 

ㅇ 현  직 : 시진핑 주석 비서 (Secretary of President Xijinping)

  

ㅇ 시진핑과의 인연: 시진핑 비서 그룹 중 알려진 것이 가장 없는 인물이다. 주궈펑은 2013년 보아오 포럼 기간 중 시진핑 국가주석과 핀란드 대통령 및 호주 총리 등과의 정상회담에 배석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회담장에서 왕후닝, 리잔수, 외교담당 국무위원인 양지에츠(楊潔篪) 같은 국가지도자 및 외교부장 왕이 등 장관급 인물과 같은 열에 착석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당시 시진핑 주석 비서 (Secretary of President Xijinping)라는 명패를 썼다. 시진핑이 권력을 승계한 18차 당 대회 이전부터 시주석을 보좌했으며 ‘시주석 비서’가 뜻하는 바가 중앙판공청인지 군사위 주석 사무실인지 불분명하지만 중국 관영매체인 CCTV가 화면을 잡아 보도한 것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지위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ㅇ 정책 성향과 장점 : 시진핑의 그림자 부대 중 최연소인 주궈펑은 40대 중반으로 70년대에 출생해 인민대학 법대를 졸업한 수재로 알려져 있는 정도다. 띵쉐샹이나 허이팅이 비교적 공개적으로 시진핑을 보좌하는 것에 비해 군 문제를 보좌하는 중사오쥔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막후 비서의 역할을 맡으면서 외교 분야를 보좌하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만큼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학자풍 관료로 최근에는 시진핑 집권 초기 보다 출현 빈도가 낮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으나 조용하게 일을 처리하는 자세와 업무 능력에 있어 시진핑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으며 19차 당 대회를 통해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게시글 이동
이전글 이전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다음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