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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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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과 우리의 대응방향

박병광 소속/직책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 2015-10-06

최근 워싱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두 나라 미국과 중국의 두 정상이 만나 회담을 가졌다.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면서 기본적으로 해양세력이다. 중국은 유라시아의 중심부에 위치한 대륙세력이면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가장 강력하게 도전하는 신흥강대국이다. 미국은 자국의 패권을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오바마 정부에 들어서 세계전략의 축을 아․태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재균형(rebalancing)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시진핑 시기에 들어서 이른바 ‘중국의 꿈’을 부르짖으며 미국의 견제와 봉쇄에 대응하기 위해 ‘반접근 지역거부(A2/AD)전략’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동아시아는 여전히 미국 지배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중국의 급부상과 더불어 ‘대전환기’에 접어들었을 뿐 아니라 시진핑 지도부가 자국 주도의 새로운 동아시아질서을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외교는 두 가지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는데 하나는 그들이 주장하는 ‘핵심이익’과 ‘평화발전’의 모순 및 대립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가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미국의 강화되는 아태지역에 대한 개입정책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는가 하는 점이다. 이처럼 대립과 긴장 속에서도 표면적으로는 전략적 협력을 추구하는 미국과 중국의 만남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을 추구하는 ‘21세기형 제국의 만남’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9월 22일부터 25일까지 이루어진 시진핑(習近平) 방미의 주요 목적은 왕이(王穀) 중국외교부장이 설명한 바와 같이 ‘신뢰증진과 의문해소(增信釋疑)’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불신을 갖고 있으며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국제적 영향력을 키워가는 중국의 의도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중국의 대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대미관계라고 보는 중국에게 있어서 이처럼 미중간에 존재하는 전략적 불신과 국제사회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셈이다. 그러나 어쩌면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불신을 최대한 해소하는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자국의 힘을 키우기 위한 시간벌기의 의도가 숨어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편 중국 언론에 따르면 시진핑은 미국 방문을 통해서 굴기하고 있는 대국지도자로서의 책임감과 자신감을 정교하게 보여주고 갈등사안에서는 미묘하게 맞서는(精妙展示 微妙對抗) 방미전략을 보여주었다. 시진핑은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거론하면서 미국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애정을 표현하고 미국 조야에 확산되는 중국 때리기를 희석시키고자 했다. 동시에 시진핑은 “세 사람이 모이면 호랑이도 거짓으로 만들 수 있다(三人成虎)”는 중국 고사성어를 인용하면서 미국이 중국을 의심하고 오판하여 갈등을 자초해서는 곤란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자 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시진핑이 2013년 국가주석에 취임한 이후 오바마 대통령과 가진 세 번째 회담이었다. 그러나 양국이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리는 의제는 매번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은 신형대국관계 수립을 비롯한 전략적 협력에 대한 합의를 중시하는 반면 미국은 경제문제, 남중국해분쟁, 사이버해킹, 인권문제 등 구체적 현안에 집중했다. 중국은 기후변화 등 미국이 압박하는 몇몇 현안에 대해 일부는 미국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다른 일부는 모호한 봉합으로 마무리했다. 전반적으로는 이번 회담 역시 지난 수년간의 미중관계가 그랬듯이 양국은 적절한 타협을 통해서 세력전이의 불안정한 상황이 제로섬(Zero-Sum)의 갈등관계로 악화되지 않도록 갈등의 확산보다는 협력을 강조하는 기조가 뚜렷했다.

 

그러나 이번 시진핑의 방미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존재하는 ‘전략적 불신’과 ‘구조적 경쟁’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은 “해와 달은 빛이 다르다(日月不同光)”는 중국속담을 인용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새 출발점에 서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반면 오바마는 “양국사이에 놓여있는 입장 차이에 솔직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하면서 남중국해 영유권과 사이버 해킹을 두고서 주변국들을 위협하거나 국제적 규범에 어긋나는 행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국익과 전략적 필요에 따라 중국과 대화는 하지만 양보할 의사는 없음을 표명한 것이다. 이에 시진핑은 고비마다 “나라마다 역사적 과정과 현실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미국의 압박에 맞섰다. 두 정상은 회담 하루 전 세 시간 동안 함께 산책하며 친밀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패권국가와 신흥 강국 간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제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다행스러운 것은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가 주요 이슈의 하나로 다루어졌고 ‘북핵 불용’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한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에 대해 전략적 이해의 일치를 보았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양국 정상은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전후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예상되는 북한의 도발행위에 대해서도 일치된 반대와 경고의 메시지를 표명하였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략적 불신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협력의 한 부분으로 북핵문제에 대한 공동인식을 도출 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우면서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북한 핵문제가 그만큼 국제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사안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양국 정상이 기자회견 등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해 일치된 경고를 발하였지만 한반도 긴장완화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합의와 구체적 행동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북한문제와 관련하여 언론보도 이상의 구체적 합의사항이나 대응방향이 공동합의문에 반영되지는 못했다. 이는 2011년 1월 거행된 후진타오와 오바마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관련 사안이 핵심 문제로 거론되고 공동합의문에도 하나의 독립된 절(節)로 명기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만남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양국 정상은 남중국해문제와 인권문제 등 핵심 사안에서 이견을 좁히지는 못했지만 공동합의문 내용 및 전체적인 정상회담 전개과정을 볼 때 ‘21세기형 제국’들의 합의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양국관계는 여전히 정치, 경제, 군사 등 주요 핵심 분야에서 ‘경쟁적 협력관계’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는 점을 읽을 수 있다. 일례로 중국은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성과의 하나로 신형대국관계 수립의 진전을 꼽고 있지만 정작 미국과 오바마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이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우리에게는 또 다른 숙제를 남기고 있다. 미중 양국 정상이 한 목소리로 북한의 추가도발에 반대의사를 밝히고 박근혜 대통령도 유엔 70주년 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북한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다면 오는 10월 16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모처럼 조성된 남북간 대화분위기는 다시 찬 서리를 맞게 될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길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요컨대 우리 정부는 현재의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운전석에 앉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난국 타개에 나서는 ‘주도적 외교’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이를 위해 첫째, 단기적으로는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전후하여 북한의 위협과 도발을 방지하기 위해 대화와 설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예방외교’에 주력해야만 한다. 둘째, 북한의 도발 여하를 떠나 10월 16일 대통령 방미에서 북핵을 포함하여 북한문제로 인한 난국타개를 위해 보다 적극적 플랜과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미국의 ‘적극관여’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셋째, 대통령방미, 한중일 3국 정상회담, 11월 APEC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비핵화 유인책과 압박책을 결합한 포괄적 해결책을 미국, 중국, 일본 등에 제시하고 국제사회의 공감과 협력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넷째, 이를 통해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고 북핵문제 해결의 가시적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한, 미, 중, 일, 러 5개국 협력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는 통일외교의 중요성 못지않게 북한 문제에 대한 적극대응과 안정적 관리능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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