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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유기업 개혁, 파인튜닝(Fine-Tuning)으로 충분한가?

최필수 소속/직책 : 세종대학교 교수 2015-10-15

시진핑(習進平) 지도부에 들어 국유기업 개혁에 관한 공식적인 방침이 천명된 것은 세 차례였다. 2013년 11월 제18기 삼중전회(이하 <삼중전회>), 2014년 7월 개혁시범 국유기업 지정(이하 <지정>) 그리고 최근 2015년 9월 국유기업개혁 심화에 관한 지도의견(이하 <의견>)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건에 나타난 국유기업 개혁의 방침을 살펴보면 시진핑 지도부는 현재 체제에 대한 변화를 최소한으로 가져올 파인튜닝(fine-tuning)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삼중전회>에 드러난 커다란 방향이 공유제를 근간으로 하는 혼합소유제를 실천하겠다는 것이어서 본격적인 민영화에 대한 기대를 일축했다. 시진핑 지도부가 말하는 혼합소유제라는 것은 국유 지분을 민간에게 개방한다는 장쩌민(江澤民) 지도부 시절의 의미가 아니라, 국유와 비국유의 상호 지분 보유를 허용하겠다는 의미이다. 즉 민간자본이 일부 국유부문에 진입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국유자본도 자기 고유 영역을 넘어서 민간영역에 진입할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러한 혼합소유제는 공평한가? 그렇지 않다. 국유자본은 알짜 민간영역에 진입하여 다각화된 이윤을 누릴 수 있는 반면, 민간자본은 국유부문 진출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지정>에서 자본운영 시범기업으로 지정된 중량(中糧, COFCO)과 국투집단(國投集團, SDIC)은 원래 다각화된 재벌식 국유기업이었는데 앞으로 더욱 노골적으로 업종을 가리지 않는 자본운영 창출에 나설 것이다. 이들은 말하자면 한국과 일본의 종합상사 같은 존재이고, 유통과 부동산 등 고수익 업종을 주로 영위하고 있다. 만약 이들 ‘시범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보편적인 국유기업의 운영 모델이 된다면 중국에서는 국유자본의 대활극이 펼쳐질 것이다. 고유 업종이라는 우리에서 풀려난 맹수와도 같다고 할까? 우리나라의 포스코도 국영 철강회사로 설립됐다가 민영화되면서 온갖 분야로 업종을 다각화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우리나라는 민간부문이 성숙했기 때문에 별로 충격을 겪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국유부문의 고삐가 풀리면 엄청난 파급을 일으킬 수 있다. 

 

한편 민간자본이 국유부문으로 진출할 여지는 별로 없다. 국유기업의 수익률이 원래 높지 않거나, <의견>에서 재확인한 바와 같이 국가가 주요 국유기업에 대한 컨트롤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의견>은 국유기업의 영역을 일반상업형, 핵심상업형, 공익형의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일반상업형이란 일반적인 시장경쟁 업종에 있는 국유기업인데 이들에 대해서는 지분을 민간에게 상당 부분 개방하고 오로지 수익률과 경쟁력을 중심으로 평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지정>에서 중국의약집단(中國醫藥集團)과 중국건재(中國建材)가 이에 해당하는 시범기업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들은 지분을 완전히 공개하면서 민영화에 가까운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한편 핵심상업형이란 국가안전과 국민경제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정분야의 국유기업을 말한다. 국가는 이들에 대해 대주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정경분리와 같은 경영 합리화 조치들을 취할 것이다. 이들에 대한 평가 기준은 수익률과 함께 국가전략과 국민경제 발전에 대한 기여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익형은 민생과 기초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유기업들인데 앞으로도 국유 독자(獨資)를 기본으로 하여 매우 제한적인 지분 개방만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수익률보다 품질과 경영효율과 같은 정성적 평가를 받게 된다. 

 

이상을 놓고 보면 민간자본은 상업형 국유기업의 분야에 진출하는 것이 가능하고 특히 일반상업형 국유기업에 대해서는 인수ㆍ합병 수준의 지분 매집도 가능하다. 그러나 핵심상업형 국유기업에 대해서는 일부 지분 참여에 만족해야 한다. <의견>이나 <지정>에 명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핵심상업형 국유기업 개혁의 샘플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CNPC(中國石油)와 SINOPEC(中國石化)이라는 양대 석유기업이다. 원유 탐사ㆍ개발부터 석유화학 제품 제조, 주유소에 이르는 방대한 밸류체인을 지닌 이들은 다운스트림 분야인 주유소와 석유제품 부문에 대해 민간자본을 30%까지 수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상으로 <삼중전회>, <지정>, <의견>에 나타난 국유기업 개혁 방안을 개괄했다. 이를 요약하면, 국유영역에서 지킬 것은 지키고 나머지는 개방할 것이며, 국유자본의 민간으로의 진출도 막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진핑 지도부가 이러한 정책을 매우 소극적으로 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먼저, 민간자본의 국유부문 진출에 대해 현재까지 알려진 대상은 <지정>에 등장한 두 개의 시범기업과 저우용캉(周永康)의 비리로 얼룩진 석유기업들이다. 앞으로 더 많은 상업형 국유기업들이 민간에게 지분을 개방할 수도 있지만 이미 2005년부터 2010년에 걸쳐 상당한 정도로 비유통주 개방이 있었는데 무슨 개방을 추가로 할지는 미지수이다. 2004년까지 70%가 넘었던 비유통주의 비중은 현재 20% 정도로 크게 낮아졌다. 즉 민간이 국유기업의 지분을 매집하는데 이미 제도적 제약은 별로 없다는 뜻이다. 즉 현재 국유기업의 지분은 몇몇 중요기업을 제외하고는,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수익이 시원치 않아서 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유자본의 민간부문 진출은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현재 국유기업은 자산과 자본은 풍부한데 수익을 낼 프로젝트가 부족하다. 민간은 그 반대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유자본의 고삐를 그냥 풀어주면 국유자본의 수익률은 올라가겠지만 민간의 경제활동을 위축될 수 있다. 특히 국유부문이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의 혜택을 보고 있으므로, 일종의 불공정 경쟁이 벌어질 개연성이 크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당국은 국유자본의 자유화를 매우 제한적으로 운용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국유기업의 부동산 진출을 제한한 조치와 최근 CNPC의 호텔업을 몰수한 조치들을 보아도 당국이 국유기업의 초영역 이윤추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극적인 파인튜닝 개혁이 과연 충분한가? 

 

현재 중국 국유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수익률이 낮다는 것이다. 2014년 전체 국유기업의 1/3이 적자를 냈다. 중국 500대 기업이라는 리스트에서는 43개 기업이 적자를 냈는데 그 중 42개가 국유기업이었다. 적자기업은 주로 석탄(17개), 철강(7개), 비철금속(7개) 등에 분포돼 있다. 국유기업의 수익률 저하는 곧 전체 제조업의 부가가치 저하로 이어졌다. 2014년 중국 제조업 부가가치 증가율은 4.9%로 2010년 13.7%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그 중 국유기업은 2015년 상반기에 불과 1.9%를 기록했다. 부가가치 증가율의 감소는 경제성장 둔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경제성장률을 아슬아슬하게 방어하고 있는 시진핑 지도부로서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개하려면 국유부문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우대를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 즉 우호적인 금리로 연명하는 기업들을 퇴출시켜야 한다. 특히 당국이 일반상업형 국유기업이라고 부르는 분야부터 과감한 기업 정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의견>에서 일반상업형 국유기업이라고 규정한 업종은 독과점이 아닌 과다경쟁 상태이다.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했다면 진작 사라졌어야 할 기업들이 좀비처럼 살아남아서 업계에 파괴적인 경쟁을 가져오는 것이다. 즉 국유기업에 대한 과보호가 낮은 산업집중도를 야기하고 있는 셈인데, 이는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이다. 일례로 2007년 미국 4대 철강기업의 시장점유율은 69%, 일본은 74%, 한국은 89%이나 중국은 35%에 불과했다. 이 문제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해결하기 힘들고, 금리 현실화와 기업 지배권 시장 활성화라는 근본적인 개혁이 있어야 한다.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부실 국유기업의 파산을 허용해야 한다. 

 

아마도 시진핑 지도부가 국유기업 부문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파인튜닝 개혁만을 가지고 나온 이유는 근본적인 개혁이 단기적으로 경기위축을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안정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중국 공산당의 전통적인 경제운영 방침은 충격을 싫어한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퇴출돼야 할 국유기업들이 공산당의 지역 기반에 상당히 기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지역 단위에서 세금을 내고 고용을 창출하고 상납금을 납부하는 기업은 미우나 고우나 국유기업이라는 것이다. 제 발 밑을 허무는 개혁을 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의견>은 국유기업 개혁의 귀결로 2020년까지 국유기업 재정 상납금의 비율을 30%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현재 재정 상납금의 비율이 업종별로 최소 5%에서 최대 20%라는 것을 고려하면 마치 상당한 개혁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국유기업의 재정 상납금이란 것은 법인세처럼 일단 이윤이 발생한 다음에 성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이윤이 발생하면 거기서 5%를 내건 30%를 내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윤이 내는 기업을 많이 늘리겠다고 했다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나, 이윤의 상납금 비율을 높인다는 것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궁색한 목표를 가지고 2020년까지라는 구체적인 시점을 제시했다는 것이 시진핑 지도부의 국유기업 개혁안의 빈곤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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