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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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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이슈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 및 제언이 담긴 칼럼을 제공합니다.

아시아의 새로운 개발은행들과 제반 이슈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전략

최필수 소속/직책 : 세종대학교 교수 2015-05-22

조만간 AIIB​1)의 운영 방침이 발표되고 연내에 공식적으로 운영에 돌입한다. 이와 더불어 NDB​2)와 설립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ADB의 자본금이 1600억 달러였는데 1000억 달러의 AIIB와 NDB가 동시에 등장한다는 것은 ADB의 독점체제가 사실상 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래 표에서 보듯 ADB는 1966년에 설립된 이래 아시아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렸왔다. 어떻게 보면, 꼭 다자간개발은행이 지역에 몇 개씩 있어야 하는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지만 다른 대륙을 보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아시아를 제외한 다른 대륙에는 하위지역(Sub-Region)에까지 현지의 실정에 맞는 다자간개발은행들이 있어서 각 지역에 니즈에 부응하고 있었다.

 

세계 다자간개발은행 체제를 나타낸 표임 이미지 

 

그동안 아시아 지역에 ADB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다른 지역에서는 영미계 자본을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계, 무슬림계, 석유자본계 등의 은행이 설립됐지만 아시아 지역에는 그럴만한 독자적 자본 세력이 부재했다. 아프리카와 미주의 몇몇 개발은행들은 프랑스의 지원을 중심으로 설립됐고 공식언어도 프랑스어를 쓰는 곳이 많다. 이슬람권과 OPEC를 중심으로 한 자본 세력도 자체적인 개발 이슈를 자체적 힘으로 다루기 원했기 때문에 스스로 개발은행을 세웠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미국이 일본의 손을 빌려 ADB를 설립한 후 이와 독립된 독자적 자본 세력이 등장하지 못했다.

 

둘째, 중국이 막강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그러한 대안 세력이 될 수 있었으나 여태까지는 조용히 돈을 쓰면서 기다리는 전략을 취해왔다. ‘조용히 돈을 쓴다’는 것은 ‘은행’을 설립하지 않고 ‘펀드’나 ‘원조’와 같은 형태로 돈을 썼다는 말이다. 2007년 50억 달러로 조성된 중국-아프리카 개발 펀드나 최근 500억 달러로 조성된 실크로드 펀드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여기에 중국수출입은행과(China Eximbank) 중국개발은행(CDB)이 매년 수십억 달러씩 자국 기업을 통해 개도국들에게 제공하는 양허성 차관도 있다. 이러한 펀드나 원조는 자본금을 레버리지화 할 수 없고, 단기적이고 특수한 운용에 그친다는 점에서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직접 은행을 설립하기로 생각을 바꿨다. 같은 돈을 쓰더라도 펀드나 원조보다 은행을 설립하는 것이 훨씬 파괴력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금융 분야에서 막대한 수업료를 지불해가며 개혁개방을 실시해 오다가 드디어 직접 해볼 자신감을 얻은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세계은행과 IMF 체제에서 쥐꼬리만한 지분에 짜증이 난 나머지 기존 체제에 도전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위안화를 하루 바삐 경화(硬貨)로 격상시키기 위해 제도적 운용의 폭을 넓히고자 했을 수도 있다. 혹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좀 더 멋있게 추진해보고 싶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이유가 다 작용했을 수도 있다. 

 

한편 미국과 일본은 설마 중국이 ADB의 판을 깨뜨릴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까? 그동안 서구권에서는 한 목소리로 중국의 펀드나 원조가 국제 기준에 부합하니 아니니 하는 훈수만 두려고 했지 중국이 직접 은행을 설립에 나설 것이라고까지는 생각치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교만하고 어리석었다. 

 

그렇다면 중국이 중심이 되어 설립되는 AIIB와 NDB는 무사히 안착할 수 있을까? 일단 긍정적인 전망을 하게 된다. 첫째, 아시아에 인프라 투자 수요가 무궁무진하다. ADB(2009)의 추산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아시아에 총 8조 달러의 인프라 투자 수요가 존재한다. 그런데 OECD의 추산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총 2,360억 달러만이 아시아 인프라 개발을 위해 지원됐다. (KIEP 2015) 이 중 ADB는 인프라 투자를 위해서 연간 약 120억 달러를 지원해 왔다. 물론 외부 지원이 아닌 각국의 정부와 기업이 투자하는 것도 셈을 해야 정확한 인프라 개발 자금 투입 총액을 알 수 있지만, ADB가 10년간 8조 달러라는 거대한 수요 충족에 극히 제한적인 역할만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으며 은근한 갈등 관계인 인도가 초기 설립 멤버에 들어오고, 영국과 호주가 미국을 무시하고 들어오고,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중국을 견제하는 러시아마저 들어왔던 것은 그만큼 AIIB의 설립에 명분과 실리가 갖춰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一帶一路라는 든든한 전략과 함께 한다. 一帶一路는 중국과 인접국의 이해가 자연스레 부합하는 35년짜리 그랜드 디자인이다. 최근 건설 중인 관련 인프라 건설 규모만 1.04조 위안으로 2015년 한해에만 4000억 위안 가까운 투자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개발은행들이 ADB 복사판이 아니고 중국이 자기의 색깔을 담으려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이슈가 발생한다. 신용등급과 거버넌스 문제이다. 먼저 AIIB의 경우 ADB와 같은 AAA의 신용등급을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ADB를 비롯한 기존 개발은행들이 우수한 신용등급을 보유한 이유는 자본금을 납입한 회원국들이 우수한 신용등급을 가지고 있고, 운용의 노하우를 공인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AIIB는 인도(BB-), 러시아(BB+), 한국(A+) 등 지분율 상위권으로 점쳐지는 나라들의 신용등급이 초우량 선진국들보다 떨어진다. 호주(AAA)가 도움이 될 수 있고, 중국(AA-)이 30% 이상의 높은 지분을 가진다는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결국 ADB 수준의 신용등급을 갖추긴 어려울 것이다. 또한 기존 개발은행들은 자금 회수가 불가능한 최빈곤국이나 이른바 불량국가를 대상으로는 사업 추진을 자제해 왔지만 AIIB가 인프라 투자를 함에 있어 이 원칙을 어떻게 다룰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지적해온 AIIB 거버넌스의 불투명성이다. 중국이 이사회를 설립하지 않고 독점적 지분으로, 베이징에 세워진 사무국 중심으로 AIIB를 운용한다면 그것의 투명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AIIB의 자금이 북한이나 러시아 등 미국이 견제하고 싶은 나라로 흘러가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중국은 거부권 포기라는 카드를 내밀며 미국의 뒤통수를 쳤다. 사실상 미국이 IMF에서 유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상기시킨 것이다. 즉, 미국이 운영하는 국제금융질서는 뭐가 그리 투명하냐고 되물은 셈이다. 

 

이와 함께 중국은 미국이 문제시하는 거버넌스 갈등을 일으킬만한 회원국은 AIIB에서 최대한 배제시킨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기술적인 이유로 AIIB 가입에 실패했다거나, 폐쇄적 독재국가인 투르크메니스탄이 중앙아시아 5개국 중 유일하게 빠졌다거나, 아프카니스탄이 중요한 지리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빠져 있다는 것들이 정황 증거로 읽힌다. 이라크, 시리아, 예멘이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AIIB에 가입한 우리나라는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우선 최대한 많은 지분을 확보해서 관련 프로젝트를 최대한 많이 수주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아시아권에서 인프라 토목건설 능력으로 따지면 중국 다음 한국이다. 중국이 회원국들의 인심을 잃어가며 프로젝트를 독점하는 바보짓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는 상당한 수주 실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아시아 국가들 입장에서도 중국에만 올인하는 것보다 한국이라는 대안을 가지고 싶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건설 업계에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은 자명하다. 애초에 우리나라 정부가 AIIB 가입을 놓고 뭘 고민했었나 싶을 정도이다. 

 

둘째, 동북아로 AIIB의 자원을 끌어와야 한다. 아래 표에서 보이듯 ADB 체제에서 동북아는 상대적으로 홀대받아 왔고, 그것이 우리나라가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추진했던 이유이다. 동북아 지역은 ‘북중러’, ‘남북중’, ‘남북러’ 등 다양한 단위의 다자간 협력이 시도되고 있는데 만약 국제 금융기구의 적절한 지원이 있다면 이러한 시도들은 훨씬 더 활성화 되고, 이 지역의 개방과 번영을 초래할 수 있다. 즉, 북한을 직접 지원하지 않더라도 인프라 건설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AIIB가 1000억 달러 중 동북아 지역 인프라 구축에 일정 지분 - 가령 10% - 이상의 자원을 할당한다면 독립된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의 필요성은 사실상 해소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발표된 중국의 ‘一帶一路 비젼 및 행동’에 東北三省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사실 서쪽으로 간다는 실크로드 판에서 東北 지역이 끼어들기는 좀 멋적지만, 東北三省 지방정부는 중앙에 어필하여 일부 지분을 얻어냈다. 향후 우리나라가 一帶一路와 동북아를 엮을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셋째, 미국이 주장하는 투명성 제고보다 우리의 실익을 앞세워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투명하다는 ADB, IDB 등에 가입해서 과연 어떤 실익을 얻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AIIB에서 얻을 실익과 비교하여 어떤지 따져봐야 한다. 가령 AIIB 자금으로 제2압록강 철교를 건설한다거나 훈춘-핫산 철로를 연결한다고 할 때, 우리나라가 투명성을 이유로 그것을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AIIB에서 명시적 지분보다 많은 프로젝트 수주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면, 그와 관련한 투명성을 따지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요컨데, AIIB를 서구적 의미에서 투명하게 만드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상태가 우리의 실익에 더 부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ADB의 Subregional Program(2010~2013) 현황표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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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 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주2) 신개발은행, New Development Bank 혹은 BRICS 개발은행이라고도 불림

 

참고문헌

- Asian Development Bank and Asian Development Bank Institute. (2009). Infrastructure for a Seamless Asia. Tokyo: Asian Development Bank institute.
- Li, G. (2011). The Establishment of the NEADB and the Countermeasure of Local Government: From Conception to Promotion, Financing for Regional Economic Integration for Northeast Asia III, KIEP Conference Proceedings 11-05.
- Kawai, M. (2013). Financing Development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ADBI Working Paper Series No. 407, February 2013.
- KIEP (2015) 오늘의세계경제, AIIB 추진 현황과 한국의 대응방향, 임호열 외
- 이정미. (2014). 브릭스(BRICS) 개발은행 설립과 인도의 입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아시아태평양실ㆍ구미유라시아실 공동 동향세미나 자료 제12호 (2014.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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