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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領袖) 시진핑, 마오쩌둥을 넘어 중화민족 서사의 영웅을 꿈꾸는 남자

함명식 소속/직책 : 길림대학 공공외교학원 교수 2022-11-30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이하 당대회)가 막을 내렸다. 1921년 7월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에서 천두슈, 마오쩌둥을 포함한 13명의 대표가 제1차 당대회를 개최하며 창당한 중국공산당의 역사가 100년을 넘어섰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이 통치하는 국가(黨國體制)다. 민주주의 또는 여타 권위주의 국가와 달리 집권당의 정책 집행 결과나 의사 결정 과정과 관련해 대중적, 공개적 논의와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일당 지배 국가에서 당대회가 지니는 의미는 막대하다. 더구나 현재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력과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맞서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향후 5년간 정치, 외교, 경제, 사회 전반의 정책 방향을 가름할 수 있는 당대회가 개최된 베이징으로 세계의 눈과 귀가 집중됐다.

지난 당대회가 특별히 주목받은 이유는 급격히 요동치는 국제정세와 관련 있다.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 중인 미·중 패권 경쟁의 첨예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인한 수정주의 국가 위협의 현실화,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과 반복적인 미사일 도발에 따른 한반도의 긴장 고조, 일본 보수화와 재무장의 가속화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 상황에서 당대회를 통해 새롭게 구성될 중국 지도부와 이들이 내세울 정책이 향후 아시아 태평양 지역 및 세계 평화와 안정에 미칠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집단지도체제의 유명무실화와 1인 지배체제의 확립

지난 당대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시진핑 주석의 3연임 여부와 새로 구성될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면면이었다. 결론적으로 시진핑 주석은 3회 연속 중국공산당 총서기직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공산당 통치의 핵심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을 최측근과 충성파로 충원하며 차기 당대회에서 종신집권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구축했다. 시진핑의 권력을 공고히 떠받칠 정치국 상무위원에 임명된 리창, 자오러지, 왕후닝, 차이치, 딩쉐샹, 리시 6인은 넓은 의미에서 모두 시진핑계인 시자쥔(習家軍)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인물이다. 또한, 중앙정치국 위원 24명 중 다수가 시진핑 계열로 채워졌을 뿐만 아니라 제19차 당대회와 마찬가지로 시진핑의 지위를 계승할만한 정치적 후계자가 지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5년 후 시진핑이 3연임에 만족하며 자리를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 당대회 결과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시진핑의 꿈’은 무엇이며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은 어떤 대내외 정책을 추진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시진핑은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 권력을 강화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몽을 내세우는 것인가? 주체할 수 없는 시진핑 개인의 마키아벨리적 욕망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지난 당대회를 통해 현대 중국 역사에서 2인자로 불리던 덩샤오핑을 대체한 시진핑은 과연 마오쩌둥 후예의 자리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마오쩌둥마저 제치고 당대 중국 역사에서 최고의 자리에 등극하려 할 것인가? 

이 글은 시진핑 집권 이후 변화해온 중국 정치 상황에 대한 회고와 고찰을 통해 시진핑이 지닌 최종 목표가 무엇일지를 추상해보고 멈출 수 없는 개인적 야망의 추구가 초래할 동아시아 안보 상황은 어떠할지를 전망하는 데에 있다. 

‘중국 예외주의’의 종말과 마키아벨리즘의 출현

지난 당대회 결과는 중국식 예외주의(Chinese exceptionalism)의 종말로 축약할 수 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자신의 길이 고유함을 강조하기 위해 수많은 ‘중국 특색’을 창안해 왔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 중국 특색의 경제 발전,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 중국 특색의 세계화, 중국 특색의 국제정치이론, 중국 특색의 소프트파워,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중 개혁개방 초기 사회주의 국가의 정체성 유지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발전 노선이 공존할 수 있음을 표방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제외한 나머지 다양한 특색은 기존 서구 강대국이 걸어갔던 과정과 중국의 경로를 차별화하고 중국 부상의 당위성을 설파하기 위해 고안된 측면이 크다. 주지하다시피 자유주의에 기반한 국제정치학자나 비교정치 연구자들은 권위주의 국가에서의 경제 발전은 이에 상응하는 정치 개혁을 수반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이런 예측과 달리 사회주의 사상을 고수하고 정치체제의 체계적 변화를 거부하며 진행된 중국의 고도성장은 궁극적으로 현존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같은 서구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동시에 중국은 기존 역사 발전 경로와 다른 독특한 발전 전략을 추구하면서도 국제질서에 위협이 되지 않는 예외적인 국가임을 강변할 필요에 따라 중국 관방학계는 중국 특색이라는 자기방어 논리를 끊임없이 개발해왔다.

중국 정치체제의 권위주의적 성격에 근본적인 변화가 수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학자들은 중국 정치가 부분적, 점진적, 비공식적 차원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고 이는 중국학 분야에서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연구됐다. 문화혁명 시기 절대 권력자에 의해 야기된 극심한 폐해를 경험한 덩샤오핑은 1인 지배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했고 이는 덩샤오핑 사후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집권 2기에 이르기까지 중국 정치에서 하나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더해 격대지정(隔代指定), 10년 주기 권력 교체, 파벌 간 견제와 균형, 칠상팔하(七上八下) 등이 국내 정치의 규범으로 정착하면서 이전 중국 정치에 내재하고 있던 폭력과 불안정이 크게 사라졌다. 중국 정치에서 예측 가능성의 향상과 안정적인 권력 교체는 점차 관행의 차원을 넘어 권위주의 체제에서 존립할 수 있는 제도화와 경로 의존의 사례로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제20차 당대회 결과 새로 구성된 정치지도부의 면면은 중국이 주창해왔던 중국식 정치 발전의 모습이 종언을 고하고 마키아벨리식 전제정치가 복귀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 위원 자리는 시진핑 1인 지배를 가능하게 할 시자쥔과 시진핑 연고의 인물로 채워졌다. 중국 정치의 중요한 파벌 중 하나로 기능해온 중국 공산주의청년단을 대표하는 리커창 국무원 총리의 퇴진과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했던 후춘화의 강등, 그리고, 우연한 사건인지 의도된 연출인지 알 수 없지만, 당대회 중 공청단 출신 후진타오 전 주석의 석연찮은 퇴장은 향후 시진핑 집권 기간에 정치적 파벌로서 공청단의 기능이 완전히 몰락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제19차 당대회와 마찬가지로 시진핑 이후 차기 지도자를 지정하지 않은 점, 69세라는 시진핑의 나이, 72세인 장여우샤와 69세인 왕이 외교부장이 각각 중앙군사위 부주석과 정치국 위원에 유임되거나 새로 선임된 것은 격대지정, 10년 주기 권력 교체, 칠상팔하와 같은 중국식 민주주의의 경로와 관행이 송두리째 증발했음을 의미한다.

경로 의존의 궤도 이탈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시진핑이 주석으로 집권한 이후 꾸준히 전개된 사전 정지 작업이 축적된 결과로 파악해야 한다. 시진핑 1인 천하를 열기 위한 과정에서 가장 주목됐던 변곡점으로 시진핑 체제 2기 출범식인 제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이 당의 헌법 격인 당장에 삽입되고 차기 지도자를 임명하지 않은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연이어 이듬해 3월에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 3연임을 제한하는 헌법 조항을 폐기함과 동시에 시진핑 사상을 당장에 이어 국가 헌법 전문에도 삽입한 행위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시진핑 체제의 핵심 기치인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인류운명공동체를 헌법 전문에 명기한 사항에 기반해 시진핑이 관행으로 정착된 10년 주기 권력 교체를 이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집권 2기의 시작과 동시에 다발적으로 나타난 1인 집권체제 욕망의 표출이 사실상 집권 1기 이후 당, 군부,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수많은 경쟁자를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가능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덩샤오핑 사후 기능했던 중국 정치체제의 특성들은, 비록 완전한 형태의 제도로 뿌리내리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일종의 경로 의존으로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로 의존이란 비교정치의 영역에서 정치·사회 제도가 담당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일컫는 이론이다. 경로 의존은 이미 수립된 정치제도를 통해 이익을 확보하는 정치행위자들의 현상 변경 거부로 인해 한번 설립된 정치제도를 변화시키는 비용이 막대함에 주목한다. 이에 따르면 제도 개혁과 혁신에 수반되는 비용의 증가로 인해 기존 제도를 근본적으로 혁파하는 장애물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이로 인해 설사 제도의 비효율성이 누적되더라도 제도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작업에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지난 당대회는 경로 의존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관행, 명분, 비공식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중국 특색을 유지하고, 중국 정치체제에서 합의된 규칙과 규범을 지속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만을 보여줬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정치체제가 강력한 권력을 보유한 지도자의 등장을 억제하거나 견제하는 데에 얼마나 취약한지도 공표했다. 그 결과 기존 경로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경로 창출의 긍정적 효과를 자아내는 작업에 실패하고, 기존 경로에서조차 이탈함으로 인해 예측 가능성의 저하와 불안정성의 증가라는 부정적 결과를 유발했다.

경로 이탈이 초래할 위험성

제20차 당대회에서 나타난 경로 이탈에 근간해 특정할 수 있는 향후 중국 정치의 위험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 공산당 역사에서 이론이 아닌 사상의 개념으로 특정 인물의 이름과 아이디어를 당장에 명시하고 ‘실질적인’ 영수의 호칭을 도입한 인물로 마오쩌둥이 유일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5년 뒤 열리는 차기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퇴임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며, 설사 퇴임한다 해도 사실상 상왕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막후 실세로 군림할 것이다. 이는 합의와 규칙에 근거한 정치 원칙을 위반한 권력자가 대부분 독재로 치달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확인된다. 

둘째, 지난 10년 동안 발생했던 일련의 과정을 복기할 때 권력 독점은 시진핑 사상과 노선에 반대하는 정적들의 숙청을 통해 지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권력 분점에서 소외된 정치 세력은 기존의 이익을 되찾기 위해 저항하거나 순응하는 것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려 할 것이다. 전자는 억압에 직면할 것이고 후자는 권력 강화의 새로운 기반으로 작동할 것이다. 지난 10년간 중국 정치의 경험은 소외된 정치 세력이 주류 세력에 흡수되거나 제휴하는 방법을 통해 생존을 모색할 것임을 예상케 한다.

셋째, 시진핑은 개혁 개방 이후 유지된 정치 관행과 규칙을 위반하면서 경쟁 세력을 평정했다는 비판을 피하고 장기 집권의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해 공세적 외교를 한층 강화할 것이다. 대관식을 통해 이미 황제로 등장한 시진핑은 스스로 최고 권력에서 물러설 의지와 여지 모두 상실했다. 이와 관련한 중요 쟁점은 전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후자가 안정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중국 내외부를 둘러싼 환경은 처음으로 당총서기, 국가주석으로 등극하던 시점과 확연히 달라졌다. 10년 전 시진핑은 이전 지도자들이 선택했던 길을 걷는 것만으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진핑 개인의 마키아벨리적 욕망과 미·중 패권 경쟁의 격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급변한 국제정세의 파고는 갓 출범한 시진핑 집권 3기 정부에 적지 않은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넷째, 권력 내부에서 시진핑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브레이크 장치의 부재는 권위주의 독재 정부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집단사고의 폐해가 중국에서도 언제든지 현실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하는 러시아를 언급할 수 있다. 침략 이전까지 푸틴은 조기 승전에 대한 확신에 차 있었을 것이다. 푸틴의 확신은 그를 둘러싼 정치 세력이 냉정한 사고와 정보에 기반한 분석 결과를 제공하지 않고 푸틴의 욕망에 부합하는 그릇되고 편향된 정보를 제공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같은 논리로 당대 중국에서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집권자의 뜻과 의지에 반하는 위험을 감수하며 집단사고의 리스크를 억제할 인물의 등장을 기대하는 것은 난망해 보인다.

마오쩌둥을 넘어설 유일한 방법: 대만 통일과 중화민족 부흥 과업의 완결

2012년, 시진핑은 집권 비전으로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과 중국몽을 내걸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으로 ‘두 개의 백 년’을, 그 결과로 인류운명공동체의 도래를 제시했다. 첫 번째 백 년은 공산당 창당 백 주년인 2021년까지 중국 인민을 빈곤에서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두 번째 백 년은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2049년까지 중국이 세계를 이끄는 일류국가의 단계에 진입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시진핑은 후자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중요한 준거점으로 2035년을 언급하면서, 당대회 이후 5년을 최종 목표 성취를 위한 ‘관건적 시기’로 규정했다. 이 부분에서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중화민족 부흥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퍼즐로 대만과의 통일 및 미국과의 경쟁에서의 궁극적인 승리를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이잉원 총통 집권 이후 대만은 중국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사실상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부인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상대적으로 원활히 유지되던 홍콩의 자율성이 지난 몇 년간 철저히 부정되는 모습을 목격한 대만인은 중국과의 통일보다 현 상황의 유지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대만해협을 기점으로 높아지는 긴장은 아태지역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를 강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정치 개혁의 동력 상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가치 사슬로부터의 이완으로 경제 발전의 핵심축에서 점차 소외되는 상황은 덩샤오핑 이후 중국 지도자들과 시진핑 3기를 구분하는 결정적 지표가 되었다. 더불어 시진핑은 경제 영역에서 국유기업 역할 증대와 공동부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회주의 색채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경제성장을 위해 선부론에 힘을 실었던 덩샤오핑의 유산에서 탈피하며 자신만이 마오쩌둥의 적자임을 각인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차후 시진핑의 목표는 마오쩌둥의 유일한 후계자라는 이미지를 뛰어넘어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유일한 방법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이루지 못한 대만과의 통일을 자신의 통치 기간에 달성하는 것이다.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지상목표를 위해 모든 중국 예외주의를 종식한 시진핑이 집권하는 향후 5년이 대만해협 및 동아시아 안보의 관건적 시기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편적·포괄적 맥락에서의 중국 연구 필요성

패권 경쟁의 또 다른 축인 미국도 중국의 공세적 외교에 맞서 물러설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미국 행정부는 각각의 외교·안보 전략의 개요와 대강을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을 통해 발표한다. 이전 트럼프와 현 바이든 행정부에서 발간한 국가안보전략 모두 중국을 최대 도전자로 규정하면서 중국과의 경쟁을 회피하지 않고 싸워 승리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시진핑이 당대회 보고문건을 통해 사회주의 현대화 달성의 목표와 이를 위한 관건적 시기를 규정하기 4일 전인 10월 12일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에서 향후 10년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결정적 시기’임을 강조하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사건은 없다. 예외적인 상황은 더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중국의 대내외 정치를 연구하는 방법 역시 보편적, 포괄적, 비교적, 글로벌, 통시적 차원에서 진행될 필요성을 보여준다. 그동안 한국의 중국 연구는 중국적 예외성, 특수성, 내재적 성격을 강조하거나 양자적, 지경학적 접근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정치의 파노라마에서 구할 수 있는 지혜와 영감은 중국 정치체제가 최소한의 관행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취약한 구조에 휘둘린다는 것과 제도화의 과정으로 당연시됐던 절차와 협의에 대한 낙관이 모래성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이는 낡은 권위에 기대 중국적 특수성과 내재성의 측면에서 중국 정치를 탐구해온 한국 학계의 관행에 적지 않은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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