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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주의적 한중 교류·협력에 대한 성찰과 전망

표나리 소속/직책 : 국립외교원 조교수 2023-12-19

I. 국제정세와 한중관계 현황 


미중경쟁 심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추동한 국제질서의 재편 조짐 등으로 한국을 둘러싼 외교지형이 험난해지고 있다. 중국의 급격한 성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는 미중 경쟁의 심화 속에서 중국에 대한 반감으로 발전했다. 특히 심각한 인명피해와 장기적인 일상의 제약을 초래한 코로나19의 확산 배경에 중국의 초기 대응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며 반중정서가 확산됐다. 


중국과의 관계가 사활적 이익이 아닌 서구 국가들과는 달리 한국은 중국과 국경을 마주한 인접국이다. 한중수교 당시에는 경제협력이나 북한문제 관리 등 이익을 기대하는 동시에 지역문화의 유사성을 토대로 양국 간에 우호적 관계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했다. 실익의 측면에서 한중 교류가 많은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한국의 반중정서가 증가한다면, 관계 증진의 세 번째 유인으로 거론되었던 문화적 유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간 연구자들과 행정가들은 문화적 추진해왔다. 그 결과, 한중 관계가 경색되면 양측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문화교류가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증가하는 반중정서와 혐한정서와 같은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정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II. 수교이후 한중관계와 갈등의 점증 


1992년 8월 24일 외교관계를 수립한 중국에 대해 한국인들은 주로 경제와 안보 두 가지 측면에서 기대를 가졌다. 경제적으로는 한국의 주요한 수출시장이자 투자처인 중국의 경제성장이 한국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안보적 차원에서는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매개자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다. 또한 유교 철학과 한자에 대한 이해 등 한중 간의 문화적 유사성도 양국 간 우호를 촉진할 수 있는 요소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21세기 이후 거시경제 영역에서 중국이 한국을 크게 추월하면서 중국의 성장에 대한 기대는 경계심으로 바뀌었다. 특히 사드 배치 등 마찰 상황에서 중국이 경제력을 대응 수단으로 삼는 사례가 반복되며 중국의 성장이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 타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었다. 


또한 중국의 북한문제 해결에 대한 안보 차원의 기대도 충족되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의 해군력·공군력 확대가 역내 패권 확보의 의도로 인식되면서, 한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거리감이 증가했다. 한국의 시각에서 북한과 「조․중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에 따라 동맹에 준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위협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또한 서해와 이어도 등을 둘러싼 한중 간 무력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사드 사태를 통해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견해가 우리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확인한 이후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증가했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의 책임소재 논란이 중국과 국제사회 간의 정치적 대립으로 확산되며, 전 세계적인 ‘중국 책임론’과 반중정서가 강화되는 배경이 되었다. 한국도 코로나19의 피해를 겪었던 만큼 중국에 대한 비판은 여론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중 간 우호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문화 요인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III. 한중관계에서 문화 요인의 영향력 


수교 이후 한중 간 교류는 초기에는 주로 정부와 기업에 의해 정치․경제 분야에 집중되었다가 시간이 갈수록 교류의 주체․분야․내용이 점차 다양화되며 사회·문화 분야로까지 확대되었다. 1) 특히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상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사회의 개별 구성원들 간의 직접 교류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급격히 증가한 민간 차원의 교류와 접촉은 기능주의가 시사하는 정치적 문제 해결과 사회 통합의 동력으로 기능하지 못했다. 오히려 2003년 제기된 소위 동북공정 논란 이후, 한중 간에는 문화를 매개로 갈등과 논란이 점증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동북공정 논란 이후 발생한 분쟁들 가운데 다수는 역사 및 문화와 관련된 것이며, 한국의 반중 정서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2)


중국에서도 반한정서가 증가했으며, 마찬가지로 역사·문화 요소가 갈등을 촉진하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기능하고 있다. 2009년 한국 중앙일보와 중국 환구시보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인 가운데 83%가 ‘한국은 중국의 경쟁자’라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3) 개혁개방 초기 중국에서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 선전으로 점철된 중국 영화나 드라마보다 외부 세계의 대중문화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서구의 대중문화보다는 유교적 가치관들이 반영된 한국의 드라마가 자국인들의 단결력 고취에 더 적합하다는 중국정부의 선호에 따라 공영매체를 통해 의도적으로 확산된 것이 초기 한류였다. 그러나 한국의 콘텐츠를 접한 중국인들이 문화대혁명 이후 금기시되었던 ‘전통’의 가치와 의미에 주목하게 되었고, 과거 중화제국의 영광에 대한 열망과 민족주의가 되살아나면서부터 한류에 대한 저항이 나타났다. 이에 발맞추어 전통문화와 자국 내 문화산업 보호를 주장하는 관영 언론들의 보도와 사설을 중심으로 한국 대중문화의 부작용에 대한 비판이 급증했다. 이후 문화 종주권 논쟁이 시작되며 중국에서 반한 정서가 점차 확산되었다. 이 시기부터는 ‘반한’이라는 표현이 “한류를 싫어한다”는 의미에서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에 반감을 갖는다”는 정치적인 의미로 확장되었다. 


한국의 문화수출을 상징하는 한류가 인기를 얻은 20여 개국 가운데 중국과 같이 정치적 의미로까지 확대된 반감을 장기간 표출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4) 한국과 중국의 문화 논쟁 가운데 파급력이 큰 사안들은 대부분 역사와 관련된 것들로, 특히 해당 역사의 귀속에 관한 문제가 최종적으로는 영토주권이나 첨예한 정치적인 사안으로 연계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혐오와 반감 문제를 비정치적 사안으로 간주하고, 교류 확대를 통해 관계가 개선되기를 기대하는 한중 양국 정부의 기능주의적 접근 방식에 오류가 있음을 시사한다. 


인접국가인 한국과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오랜 기간 공존하며 하나의 문명권을 형성했고, 양국의 구성원들은 관습을 공유하며 생활과 교류의 편의를 도모했다. 그러나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각기 상이한 민족심리와 관습을 보유하고, 자국의 상식과 선호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양립의 배경에는 근대5)시기 아시아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이 자리한다. 19세기 말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민족주의 사조의 출현 속에 근대 국민국가를 수립했고, 국가의 통치이념 가운데에도 민족주의적 가치가 반영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화의 교차지점 또한 자국의 정체성에 포함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각국은 독립 추구 과정에서 개인과 민족의 자립을 강조했으며, 그 수단으로서 문화의 보편성보다는 특수성을 부각시켰다. 조선은 근대 보편문명의 권위가 해체되고 국가와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을 강조하는 당시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 역사와 문화를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조선의 가치’라는 외연을 확장했다.6) 중국도 중화민족 정체성과 중원의 지배자라는 역사적 경험을 강조하며 자국의 문화를 확립해 나갔다.  


수교 이후 한국인과 중국인들은 서로를 아시아나 중화문명권의 구성원보다는 다른 국민국가의 국민 즉 ‘타자’로 인식하고 있다. 수교 이후의 접촉 과정에서 역사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는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되었다. 한국의 경우 고조선․고구려․부여․발해 등 고대국가들이 역사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는 만큼, 주로 고대사 혹은 전통문화에 대한 중국의 자의적 해석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 중국의 경우에는 주로 현대사와 중국 공산당의 권위에 대한 한국 측의 태도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개혁개방 이후 외부 환경의 변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공산당의 지배 정당성을 확립하고 당적 영도를 견지하기 위해서는 내부 결속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양국 간 역사갈등 사례와 유형은 표 1 참조).


갈등의 소재가 되는 것은 역사적 사건 자체보다도 그 해석에 대한 각자의 인식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타자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관계보다 차이가 부각될 때 대립의 가능성은 증가한다. 연구에 따르면, 상이한 문화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인식의 중점은 자신의 문화적 속성 혹은 타자의 문화적 속성에 둘 수도, 또는 양자 간의 관계 자체에 집중할 수도 있다(표2 참조)7)


이러한 분류에 따르면, 한중 사례는 하나의 현상이나 사건, 물질을 두고 각자의 심리·관습·상식·선호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하며, 이를 자신만의 것으로 정의하고 상대는 공존할 수 없는 ‘타자’로 치부하는 배타주의, 즉 외부적 귀속이 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영토·주권에 대한 강조와 맞물린 공간적 배타주의의 형태로 표출되어 주변국들의 반감과 충돌의 가능성도 증가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 역시 관계 중심의 간문화적 사고보다는 차이와 층위를 강조하는 방식이 만연하고, 갈등과 충돌의 토대가 되었다.  


IV. 향후 전망 및 시사점 


냉전 종식 이후 이데올로기가 확고하게 점거하던 자리를 각국의 정체성과 문화·이익 인식에 근거한 민족주의가 대체하면서 과거 같은 진영 내에 속했던 국가들 간에도 갈등과 분쟁이 빈번해졌다. 그 결과 국가 간 정체성과 인식에 의한 갈등의 정도가 군사나 정치와 같은 전통적인 요인에 의한 분쟁의 가능성보다 높아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년간 점차 그 수위를 높여온 한중 간의 혐오 정서는 문화가 갈등을 촉발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중 전략경쟁  의 심화에 대응해 중국이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강화되는 한편 한국문화의 국제적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어, 양국 간의 사회․문화적 충돌은 일정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더해통신매체의 발달과 양국민간 교류 증가로 인해 정제되지 않은 국내 여론이 외부로 전파되는 속도가 증가하여 민족주의적 논쟁을 야기하고, 혐오정서가 고착될 우려가 있다. 


한중 간에는 분명 인접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이웃하며 형성된 문화적 유사성이 존재하지만, 서구 열강으로서 근대를 경험한 유럽 및 앵글로 색슨 문화권 국가들 간의 문화적 유사성이나, 피(被)식민의 역사를 경험했음에도 문화적으로 이미 서구와 원주민 문화 간의 혼혈 양태가 각국의 민족적 양태보다 두드러지는 특성을 보이는 중남미 지역 국가들 간의 문화적 유사성 8) 과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특수성을 간과하고 한중을 동일한 동아시아 유교 문화 지역으로 상정해 지속적인 교류를 통한 인식 개선을 모색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방식이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양국 간 정서 악화와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는 여러 교류·협력 사업들의 효용에 대한 현실적인 고려와 함께 협력 분야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 한중 양국은 국경을 마주한 인접국이며,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기 위한 서로의 중요성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만큼 양국 간의 갈등 관리는 시급한 현안이다. 이를 위해 상호이익이 되는 관계와 상호존중 하는 태도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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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성흥. 「한국과 중국의 사회문화 분야 교류: 현황, 평가, 제언」. 『신아세아』, 제17권 2호 (2010).

2)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문제(2004),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의 장춘 동계아시안게임 퍼포먼스 논란(백두산은 우리 땅, 2007), 한글 자판 국제표준화 시도(중국의 ‘한글공정’, 2010), 아리랑의 중국문화유산 등재(2011), 중국 포털 바이두, 시인 윤동주 중국인으로 기재(2016), BTS 밴플리트 상 수상 시 한국전쟁 관련 소감 논란(2020), 김치 종주국 논란(2021), 베이징 동계올림픽 한복 착용논란(2022) 등 산재한 마찰 가운데 일부는 양국 간 외교 문제로까지 확산됨.

3) 전성흥. (2010).

4) “글로벌 한류동향(1-87).”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15년 6월). https://kofice.or.kr/g200_online/g200_online_00A_view.asp?seq=11248 (검색일: 2023.10.27).

5) 동아시아의 경우 19세기 말~20세기 초를 지칭하며, 본문에서는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문명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개화, 문명, 문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1920-30년대에 주목함.

6) 근대의 사상가인 권진규는 조선의 정체성은 조선과 무관한 외래문명의 모방이 아니라 실제 사회를 반영한 조선 사람의 사상, 감정, 그리고 조상들의 유적과 민중의 실생활 속에서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함. (권진규. 『朝鲜 생각을 차즐대』. (서울: 개벽, 1924) 참조)

7) Kraemer, M. “Identitaetsund Differenzkonzepte deutscher und japanischer Expatriates. Empirische Ergebnisse und theoretische Grundlegungen.” in A. Moosmueller(eds). Konzepte kultureller Differenz. (Muenster: Waxmann, 2009).

8) 송영복,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원류로서의 원주민문화」, 『중남미연구』, 제26권 1호(2007) 참조.


[참고문헌]

권진규. 『朝鲜 생각을 차즐대』. 서울: 개벽, 1924.

송영복.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원류로서의 원주민문화」. 『중남미연구』제26권 1호(2007).

전성흥. 중국의 사회문화 분야 교류: 현황, 평가, 제언」. 『신아세아』 제17권 2호 (2010). 

표나리.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과 한중 관계의 현안(2):문화 논쟁과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 분석」.『주요국제문제분석 시리즈 2022-07』서울: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2022.

“글로벌 한류동향(1-87).”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15년 6월. https://kofice.or.kr/g200_online/g200_online_00A_view.asp?seq=11248 (검색일: 2023.10.27.).

Kraemer, M. 2009. “Identitaetsund Differenzkonzepte deutscher und japanischer Expatriates. Empirische Ergebnisse und theoretische Grundlegungen.” in A. Moosmueller(eds). Konzepte kultureller Differenz. Muenster: Waxmann,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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