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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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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이슈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 및 제언이 담긴 칼럼을 제공합니다.

한중 상호 간 투자에서의 접근 태도의 변화에 대한 시사점

최정식 소속/직책 :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변호사 2024-03-25

2024년 3월 양회; 모호함과 불확실성

지난 2024년 3월 3일 전국정치협상회의의 언론 브리핑으로 시작한 중국의 양회는 3월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제3차 전체회의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세간의 이목을 모았던 중국 총리의 폐막식 직후의 기자회견은 뚜렷한 배경 설명 없이 이번에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시진핑 주석의 1인 체제의 강화를 상징한다고 평가하는 듯하다. 특히 시진핑 주석의 권력 집중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분석이 있다. 3월 5일 리창 중국 총리가 진행한 정부업무보고에서 중국은 2024년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5% 내외로 발표하였다. 그런데 글로벌 주요기관의 전망은 4.4%에서 4.6%로 중국 정부의 목표치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1). 중국 정부의 경제계획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매년 3월 초에 개최된 양회는 적어도 중국전문가에게는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데 금년에는 그러한 주목을 받지 못하는 듯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서 필자의 문제의식이 시작하였다. 필자는 한국 변호사로서 지난 20여년 간 한국과 중국 사이의 상호 투자, 분쟁에 대한 법률자문 업무에 종사하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20년이니 두 번이나 강산이 변했다. 지난 2000년 초에서 현재까지는 거칠게 세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성장기로,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난 2000년 초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이다. 한국이나 중국 모두 좋은 시절을 보냈고 서로에 대해 정치경제적으로 호의적 태도를 보였다. 제2기는 성숙기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국면 이전까지이다. 중국은 고도성장기를 지나 중성장의 연착륙 과제에 직면하였고, 한국은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 내외로 선진국에 진입하였다고 평가받았다. 제3기는 퇴조기로, 사드 국면 이후부터 현재까지이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3연임을 하며 1인 지배체제를 공고히 했고, 미국과는 패권경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한중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고 양국의 청년 사이에는 반감의 골이 깊어만 갔다. 즉, 정치적으로 냉각기이며 경제적으로 퇴조기이다. 필자는 지난 20여 년의 세 시기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통해 한중 상호 간 투자에서의 접근 태도의 변화 추세와 현재 해결하여야 할 과제와 그 해결의 단초를 집어보고자 한다. 

성장기(제1기);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난 2000년 초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2000년대 초는 한국의 제조기업이 활발하게 중국에 투자하여 진출을 확대한 시기이다. 자동차, 화학, 전기전자, 조선 등 한국의 전략 산업은 중국에 투자하며 중국을 생산기지로 삼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내수 진출도 도모하였다. 한국 경제가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주요한 외부환경으로 중국의 부상이 큰 요인이 되었다. 중국의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한국자본과 기술을 유치하기 위해 매우 적극적이었고 그만큼 한국 기업은 환대를 받았다. 이 시기에 한국 유학생은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 수학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지방의 일선 도시나 이선 도시에까지 곳곳에 유학하였다. 한국 기업의 주재원 수는 증가했고, 현지에 정착하여 자영업을 영위하거나 중소 규모의 기업을 설립하여 경영하는 한국 상공인들이 빠르게 늘었다. 바야흐로 ‘차이나 드림’의 시기였다. 한편, 이 시기에 중국 기업의 한국 진출은 미미했다. 2000년대 초기, 한국 서해안 새만금에 한중산업단지를 조성하여 중국기업의 한국 투자 유치를 지자체에서 적극 추진하였으나 그 결실을 맺지 못했고 현재까지 진행중인 과제이다. 

성숙기(제2기);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2016년 사드 국면 이전까지

돌이켜보면, 이 시기 동안 한국과 중국 양측은 모두 정점을 지났다. 한국의 중국 투자는 제조업에서 유통업, 서비스업, 금융업까지 전방위적으로 진출하였다. 2008년 금융위기라는 경제적 환경에서 출발한 당시 이명박 정부는 또다시 외환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중국을 비롯한 해외자본의 한국 유치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중국이 후진타오 제2기 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해외진출  전략(소위 ‘저우추취’)을 추진한 것도 한국에는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중국의 해외진출 목적지로는 내수 시장규모가 작고 또한 선진적 기술 확보 기회 부족으로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나마 중국의 상하이자동차가 투자하여 경영한 쌍용자동차는 한국, 중국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남겼고 아직까지 해소되지 않았다. 일부 중국 기업이 한국 자본시장에 상장하였지만 상장 후 회계 부실이 드러나 상장폐지가 되는 사례가 속출하여 소위 ‘차이나 리스크’가 드러냈다. 한편, 한국기업의 중국 투자 실적은 기대만큼 효과적이지 못했다. 유통업(대형마트), 서비스업(영화, 요식업)은 투자에 비하여 실적이 미미했고, 금융업 분야는 중국 기업에 맞설 만큼 규모를 확장하지 못하여 중국 현지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을 주된 고객으로 두는데 그쳐야 했다. 다만, 2013년 이후 시진핑 정부 제1기 초기에 형성된 박근혜 정부 사이의 우호 관계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새로운 기회 창출을 기대하게 했다. 특히 당시 크게 흥행한 ‘별에서 온 그대’라는 한국 드라마는 중국에 제2의 한류를 크게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말기에 돌발한 ‘사드 이슈’는 공들여 쌓은 양국의 우호 관계를 한순간에 긴장관계로 바꾸었다. 2016년 당시에는 이 ‘사드 이슈’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오래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퇴조기(제3기); 사드 국면 이후부터 현재까지 

사드 국면 이후에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여러 부정적인 악재가 산적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대중국 패권경쟁은 한국에게 탈 중국 압박 요인이 되었다. 이는 정치적으로도 부정적일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투자 심리 위축으로 크게 작용했다. 특히 중국 정부의 팬데믹(코로나) 봉쇄 기간에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경영환경은 크게 위축되었고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에서 철수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중국에 거주하는 교민의 숫자가 크게 감소하였다. 세계로 뻗어나가고 성장하는 중국기업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한국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한 투자가 적극적으로 확대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본사의 시각은 차갑기만 하였다. 중국 전문가 역량의 감원과 구조조정이 잇달았다. 어려운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조짐이 없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쉽지 않다. 더욱더 장기적인 전망과 지구전의 태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당면한 과제와 해결의 단초; 개인, 조직(기업), 공공부문의 역량 보전

지난 20여 년 간의 한중관계의 발전과 성장, 성숙과 고조가 퇴조 국면으로 전환한 데는 양국의 기업 역량의 격차 해소, 우호적이었던 정치 관계의 악화, 미중 패권경쟁의 격화라는 중첩적이고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어느 한 요인의 변화나 개선만으로는 현재의 퇴조 국면에 반전의 계기가 확보될 수 있다고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퇴조가 있다면 반드시 회복과 재도약이 언젠가는 도래한다는 것이 당연한 추세이며 이치이다. 그럼에도 지난 세월 축적된 중국 전문가 역량이 소진되고 소멸되고 재생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중국 전문가 역량을 담을 조직(기업) 부문이 크게 위축된 상황이 주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이 상황을 타개하는 데 장기적 과제에 상대적으로 적합한 공공부문(정부, 지자체, 공공기관)의 역할이 강조되지 않을 수 없다. 공공부문이 이미 소진되고 소멸해가는 중국 전문가 역량에게 과제를 부여하고 일할 기회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언젠가는 다시 열릴 중국 시장(기회)에 능동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중국 전문가 역할을 확보하고 양성하는 데 빛을 발하리라는 것은 명확하고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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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무역협회, “20024년 양회를 통해 본 중국의 경제산업 정책방향과 시사점”(2024년 9호) 1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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