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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가 낳은 역설: 중국 AI 생태계의 ‘가두리 혁신’
최성진 소속/직책 :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 교수 202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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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같은 첨단 기술은 개방과 협업, 그리고 자유로운 데이터 흐름 속에서 꽃핀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서구의 AI 우위는 그러한 개방적 생태계의 결실로 이해된다. 중국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구글·페이스북·유튜브 등이 차단된 이른바 인터넷 만리장성 내부에서 자국 중심의 AI 생태계를 구축했고, 그 안에서 세계 선두권 기술을 다듬어 왔다. 통제와 위계가 지배하는 환경에서 첨단 기술이 비약하는 현상은 일견 모순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개방과 토론의 아테네가 아닌, 폐쇄적이고 규율화된 스파르타가 전쟁에서 우세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역사적 역설이다.
중국은 일종의 가두리 안에서 AI를 기른다. 외부와의 연결이 제약된 환경은 성장의 장애처럼 보이지만, 그 울타리 안에서 절실함·집중·자원 동원이 결합했다. 최근 지표는 변화의 속도를 보여준다. 스탠퍼드의 AI 인덱스 2025에 따르면 2023년 말까지 미국 최상위 모델과의 격차가 컸으나 2024년 말에는 여러 대표 벤치마크에서 격차가 빠르게 축소됐다. MMLU는 17.5%포인트에서 0.3%포인트, MMMU는 13.5%포인트에서 8.1%포인트, MATH는 24.3%포인트에서 1.6%포인트, HumanEval은 31.6%포인트에서 3.7%포인트로 줄었다는 기록이 제시된다. 같은 보고서는 공개·비공개 모델 간 성능 차이도 2024년 1월 대비 2025년 2월에 1.70% 수준까지 좁혀졌다고 평가한다.1) 이러한 수치는 중국이 개방형 생태계와 다른 경로를 통해 학습 효율을 끌어올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림 1. 미·중 AI상위 모델 성능이 좁혀지고 있는 추이(LMSYS Chatbot Arena, 2024.01–2025.02)
출처: LMSYS Chatbot Arena; Stanford HAI, 2025 AI Index Report 에서 공개된 도표를 바탕으로 재작성한 그래프임
중국 AI의 핵심 무기는 방대한 데이터다. 14억 인구가 만들어내는 생활 데이터는 그 자체로 거대한 학습 재원이다. 도시 전역에 촘촘히 배치된 CCTV 인프라와 초대형 플랫폼에서 생성되는 행태 데이터가 모델을 끊임없이 교정한다. 서구에서는 윤리와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얼굴·음성·위치 정보 활용에 강한 제약이 걸리지만, 중국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제와 정부 주도의 데이터 통합 정책 아래 관련 데이터가 폭넓게 축적되고 비교적 신속히 응용으로 연결된다.
인재와 교육 측면에서도 내재화가 진행됐다. 칭화대·베이징대·저장대 등 공학 거점이 AI 인력을 대량 배출하고, 딥시크와 같은 신생 기업들은 순수 국내 교육 기반의 개발진으로 세계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다. 인재 파이프라인이 해외 유학과 역유입에만 의존하지 않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거대한 내수는 또 하나의 촉매였다. 얼굴 인식 결제, 음성 명령, 무인 매장 등 신기술이 수억 명 사용자에게 곧바로 적용되면서 실제 환경에서의 피드백 루프가 강해졌다. 2024년 글로벌 조사에서는 중국 응답자의 83%가 “우리 조직이 생성형 AI를 사용 중”이라고 답해 미국의 65%를 앞섰다.2)3) 채택 속도가 빠를수록 데이터 축적과 모델 개선의 선순환이 강화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격차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정부의 역할은 생태계의 설계자이자 조정자에 가깝다. 중국 정부는 산업정책의 기획과 집행을 통해 기업 간 데이터 공유를 유도하고, 음성·얼굴 인식, 자율주행 등에서 표준화를 신속히 추진한다. 경쟁과 다양성을 일정 부분 희생한다는 비판이 뒤따르지만, 반대로 중복투자를 줄이고 통합 속도를 높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선택과 집중도 뚜렷하다. 다수 기업에 소액을 배분하기보다 선도 기업에 클라우드 인프라·데이터 접근·규제 유예를 집중해 규모의 경제를 앞당긴다. 이 과정에서 바이두·텐센트·알리바바 등은 사실상의 국가 AI 챔피언으로 기능한다. 인재 시장에서도 보이는 손이 작동한다. 고임금이 보장되는 의학·금융으로의 쏠림을 억제하고,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보상과 위상을 제고하는 방식으로 공학계로의 유입을 견인한다. 기초과학과 공학 연구에 대한 대규모 재정 투입은 중국 대학의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미국의 기술 봉쇄는 중국 AI의 경로를 다시 바꾸었다. 고성능 GPU 수출 통제와 장비 규제로 인해 중국은 자립화로 밀려났지만, 그 압력이 오히려 독자 기술 개발을 촉진했다. 베이징 이좡 경제개발구의 국산 칩 기반 AI 클러스터 구축, RISC‑V와 같은 오픈소스 아키텍처의 확산, 화웨이의 7나노급 칩 자체 설계·양산 시도는 하드웨어부터 모델·응용까지 전 주기를 내재화하려는 흐름을 보여준다. 외부 제약이 자력갱생형 혁신으로 전환되는 국면이다.
그림 2. GAIA(실제 업무 환경에서 AI 시스템의 실용성을 측정하는 벤치마크) 테스트에서 중국 스타트업이 만든 마누스가 오픈AI를 뛰어 넘었다.
출처: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economy/weeklybiz/2025/07/24/CNF44UEWCVHW5PAUBMI4V2U5UY/?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지식재산 지표도 이러한 추세를 뒷받침한다. 유엔 세계지식재산기구의 생성형 AI 특허 지도에 따르면 2014~2023년 중국(발명가 주소 기준) 특허군은 38,210건, 미국은 6,276건으로 중국이 6배 이상 앞섰다.4)5) 응용과 제품 지향 혁신에서 중국의 활동성이 얼마나 공격적인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응용 성과에서도 중국은 얼굴 인식·음성 인식·스마트시티·금융 AI 등에서 국제 평가와 대규모 현장 도입을 통해 경쟁력을 입증해 왔다. 생성형 AI에서도 중국과 미국의 경쟁은 가파르다. 범용 인공지능과 에이전트와 같은 직접 실행형 응용 분야에서 중국 스타트업의 기술력이 선두권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평가가 늘고 있다. 일부 기업의 성과를 과장 없이 검증 가능하게 평가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적어도 경쟁 구도가 양강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중국의 사례는 개방만이 기술 발전의 유일한 경로가 아님을 보여준다. 절실함과 추진력, 전략적 자원 통합이 결합하면 통제된 환경에서도 혁신은 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과거 한국이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과 민간의 실행력이 결합해 압축 성장을 이뤘던 경험을 떠올리면, 중국이 선택한 방식의 효율성을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한계와 위험도 분명하다. 학문 교류의 제약, 표현의 자유와 데이터 윤리 문제, 검열로 인한 연구의 방향성 왜곡은 장기적으로 혁신 역동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글로벌 협력의 긴장도 상존한다. 이러한 그늘까지 함께 보아야 균형 잡힌 판단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AI라는 영역에서 중국은 자신만의 질서로 지형을 흔들고 있다. 세계 AI 주도권 경쟁에서 중국은 변방의 추격자가 아니라 주류의 경쟁자로 자리 잡았다. 중국의 가두리형 AI 생태계는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경계와 주목의 대상이다. 앞으로의 관건은 통제의 효율과 개방의 장점을 어떻게 조합하느냐다. 중국이 내부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글로벌 표준과의 접점을 넓혀 갈 수 있다면, 기술 경쟁의 판도는 또 한 번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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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Stanford HAI, “The 2025 AI Index Report – Technical Performance” (https://hai.stanford.edu/ai-index/2025-ai-index-report/technical-performance)
2. Reuters, “China leads the world in adoption of generative AI, survey shows” (https://www.reuters.com/technology/artificial-intelligence/china-leads-world-adoption-generative-ai-survey-shows-2024-07-09/)
3. SAS × Coleman Parkes, “Global Market Research China leads world in GenAI usage while US leads in full implementation” (https://www.sas.com/pt_pt/news/press-releases/2024/july/genai-research-study-global.html?utm_source=chatgpt.com)
4. WIPO 보도자료, “China-Based Inventors Filing Most GenAI Patents, WIPO Data Shows” (https://www.wipo.int/pressroom/en/articles/2024/article_0009.html)
5. Reuters, “China leading generative AI patents race, UN report says” (https://www.reuters.com/technology/artificial-intelligence/china-leading-generative-ai-patents-race-un-report-says-2024-07-03/?utm_source=chatgp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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