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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세미나]동북상인의 동향회

임민경 소속/직책 : KIEP 중국 권역별 성별 연구팀 전문연구원 2010-12-01

2010년 한 해도 어느 덧 저물어 갑니다. 연말이면 으레 동향회, 동창회, 동우회 등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각종 회식자리를 빼 놓을 수 없겠죠. 고향친구, 학교친구에서 그치지 않고 요즘에는 소셜 네트워크의 무궁한 발전으로 한국인 친목도모의 장은 끝없이 확장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각 종 모임으로 바쁜 나라는 비단 한국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혈연, 학연, 지연으로 얽기 설긴 관계의 실타리를 풀며 서로의 연(緣)을 찾아가고 확장해 나가는 능력으로 치면 중국인도 과히 한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특히 중국은 남한 면적의 약 98배에 달하는 대국(大國)이라는 점에서, 어느 중국인이건 타지에서 고향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는 친밀감은 한국인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물리적 환경은 중국인이 어디에 정착하든 끊임없이 고향 출신을 찾고 상부상조하는 동향문화(同鄕文化)를 형성하는데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되었을 겁니다.


중국에서 소위 동향회(同鄕會)는 타지에 거주하는 동일 고향 출신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조직한 민간기구로 분류가 됩니다. 동향회의 원조는 회관(會館)입니다. 명나라 시기 상품경제와 인구이동의 중심지였던 수도 베이징에서 중국의 각 성(省)출신들이 함께 모여 살던 회관을 설립한 것이 그 시초로 보입니다. 회관은 청나라 때 이르러 더욱 활발히 발전했는데 기록에 따르면 당시 베이징에만 무려 341개에 달하는 회관이 있었습니다.1) 같은 지역사람들이 회관에 투숙하며 함께 신년 하례를 지내고 고향의 음식을 나누면서 타향살이의 고달픔을 희석시키던 문화는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동향회라는 특유의 집단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렇게 동향회는 지연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 의미의 사교모임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중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특히, 투표에 의한 회장선발과정이나 입회비 지정과 같은 현대적 시스템을 갖추고 형편이 어려운 동향인을 위한 기금모음에서부터 때론 시대적 상황에 의한 정치활동의 근거지 제공에 이르기까지, 동향회는 중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상하이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먼저 개방이 시작된 곳이며 지금도 많은 타지인이 거주하고 있는 대도시입니다. 물론 이들이 고향을 떠나 상하이에 온 이유는 대부분 경제적인 원인과 맞닿아 있지요. 졸업 후 일자리를 찾는 파릇한 청년부터 좀 더 큰물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오는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외지인들에게 상하이는 여전히 기회의 도시입니다. 따라서 중국 경제성장의 중심지인 상하이에 좀 더 조직적인 동향회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쉽게 해 볼 수 있겠지요. 상하이에서 사업을 하는 비(非)상하이인이 모여 만든 동향회가 있다면 그건 물론 경제적인 활동을 중심으로 한 조직이라는 점 또한 떠올릴 수 있겠고요. ‘그렇다면 동북지역 출신들이 중국의 대도시에서 모여 만든 동향회는 어떤 모습일까?’ 이 물음에서 시작해 저는 ‘주(駐)상하이 전국 각 성·시·자치구상회센터’를 찾게 되었습니다.


본 센터는 상하이 푸동지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상하이 지하철 4호선 란춘루(藍村路)역에서 남쪽으로 걸어 내려가다 환룽루(環龍路)라는 이름의 가로수길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중국 각 성(省)을 대표하는
상회가 빼곡한 가운데, 낯익은 성명(省名)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중국 동북 3성 중 경제가 가장 발달한 랴오닝상회(遼寧省商會)입니다. 비록 리스트 상에는 지린성(吉林省)도 있으나 아직 입주한 상태는 아니기에 현재로선 랴오닝상회가 상하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동북상회입니다.




현재 상하이시 랴오닝상회에 등록된 회사는 칠 팔십 개 정도이며 기업의 대표는 모두 랴오닝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업종도 다양한데, 주로 철강과 요식업, 금융 분야가 두각을 보이며 이 외에 변호사도 상당수라고 합니다. 비록 명칭은 랴오닝상회로 표기되어 있으나 실제적으로 랴오닝 출신 기업인 간 동향회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서 말씀드린 대로 동향회가 지닌 다양한 역할 중 상하이의 각 성(省)별 동향회는 역시 동 지역 상인들 간의 친목과 비즈니스 정보교환이 함께 어우러진 기능을 하는 셈입니다. 또한 비영리기구인 관계로 이윤 창출과 관련된 활동은 하지 않고 회원비로 운영이 됩니다. 일단 회원으로 가입하면 정기적으로 만나 회의를 하고 타지에서의 투자와 관련된 자문을 서로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평소 친목이 두터운 동향인의 회사가 자금난을 겪을 때 서로 투자하는 방향으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활동은 모두 자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살던 고향을 벗어나 타지로 가면 이질감과 그리움을 느끼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동북 출신들이 상하이에서 겪는 고충은 더 큰 것 같습니다. 과거 계획경제 시기 중국의 경제 중점지였던 동북3성은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외치며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함에 따라 한때는 노후공업기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뒷방 노인네 취급을 받는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동북 출신의 기업인은 중국 역사상 이름을 남긴 거상(巨商)이 대부분 남방출신이라는 사회적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실제로 동북에는 아직도 상(商)보다 관(官)을 중시하는 동북 특유의 관문화(官文化)가 강하게 남아 있기도 하고요. 따라서 자유로운 자본의 냄새가 폴폴 풍기는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동북 출신의 기업인들이 서로 더 끈끈해 질 수 밖에 없었던 건 일종의 필연인지도 모릅니다. 남방 특유의 기업문화에 적응하고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서로 뭉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 만큼 상하이가 초기 동북인이 활동하기에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이질감이 큰 도시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상하이에서 자리를 잡은 동북 출신의 기업인들이 많아지면서 진출 초기 대책 없이 맞닥뜨렸던 이 거대자본도시에 대한 생경감을 이제는 좀 더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 진출자들의 단합이 후발 진출자들의 심리적 초조를 흡수하면서 지금도 랴오닝상회를 찾는 사람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짧은 답사를 마치고 나오며 저는 우리 사회에서도 낯익은 언어인 ‘지연(地 +緣)’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이 어휘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남용되는 사례가 많아 부정적인 어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타향살이의 낯설음을 극복하기 위해 지연을 찾아 의존하는 인간의 마음은 무시할 수 없는 본능인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도 대범하고 거침없는 기질로 유명한 동북의 상인들이 남방의 좁은 도시에서 지연을 찾아 답답함을 위로했듯이 말입니다. 고향을 향한 향수(鄕愁)는 삭막한 도시화의 과정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던 인간의 감성에 흐르는 향수(故鄕之水)와도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1) [淸]汪啓淑(1998).「회관(會館)」.『수조청가록-제 10권(水曹淸暇錄-第 10卷)』. 北京: 古籍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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