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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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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협상스타일과 비즈니스

강재식 소속/직책 :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중국경영학과 주임교수 2013-04-23

한국인 중에 중국에 주재하거나 중국인과 왕래가 빈번한 사람일수록 자주 늘어놓는 푸념이 있다. “중국인은 겉과 속이 다르다.” “중국인은 화가 날수록 웃는다.” “중국인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 글쎄... 겉과 속이 다르고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어디 중국인뿐이랴. 한국인 중에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개개인의 차이가 국민성의 차이보다 크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중국인’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국민성이 있고, 이 국민성이 협상 테이블에서 여지없이 ‘중국 스타일’로 나타나곤 한다. 내노라하는 협상의 달인들 조자도 헷갈리게 하는 중국인의 협상 스타일, 같은 동양문화권인 우리나라 사람들도 당혹스러울 때가 많은데 서구문화권에서 바라보면 더할 것이다.

 

때는 1971년, 중국이 죽(竹)의 장막에 싸여 냉전체제가 한참일 때에 닉슨 대통령은 미중수교를 추진하기 위해 헨리 키신저를 파견했다. 당시 대통령 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었던 키신저는 닉슨 특사의 자격으로 파키스탄을 통해서 비밀리에 중국에 입국했다. 제일 처음 키신저를 맞이한 이는 중국의 총리였던 저우언라이였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런데 통역을 통해 인사가 오고 가기 무섭게 저우언라이가 가래침을 뱉기 시작했다. 타악! 타악! 물론 테이블 옆에 타구가 마련되어 있었고, 저우언라이는 타구에 침을 뱉은 것이었다. 그러나 키신저로서는 아연실색할 노릇이었다. 불결하기도 하려니와 저런 실례를 저지르는 속셈이 무엇인가. 죽의 장막을 걷고 비밀리에 들어온 첫 미국인으로서 가뜩이나 긴장했던 키신저는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저우언라이가 왜 그랬을까? 프랑스에서 4년이나 유학을 한 엘리트로서 서양 매너를 몰랐을 리가 없었다. 저우언라이는 고의였다. 스트레스 상황을 조성하여 상대방의 신경을 분산시키는 중국식 협상 전략을 쓴 것이었다.

 

미국 CIA 연구보고서(1967-1984)에 의하면 당시 키신저와 마오쩌둥, 저우언라이가 함께 만난 자리에서 이런 대화도 오고갔다. 

키신저; “많은 방문객들이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땅을 방문했는데...”

저우언라이; “(말문을 가로막으며) 아니, 그렇게 신비로울 것도 없어요. 익숙해지면 하나도 신비롭지 않을 겁니다.”

마오쩌둥; “미중 양국 간의 무역이 현재는 한심할 정도로 적습니다. 중국은 몹시 가난한 나라에요. 가진 것이 없어요. 하지만 여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답니다.” “원하신다면 당신에게 몇 사람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니 몇 만 명이라도 좋아요.”

저우언라이; “물론 자발적인 베이스입니다.”

키신저; “그럼 수입 할당제나 관세 따위는 없습니다.” (웃음)

마오쩌둥; “중국은 미국에 타격을 줄 전략이 있습니다. 천 만 명의 여성을 미국에 보내서 인구 과잉상태를 만들어 국력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키신저; “주석은 그 안건에 무척 고심하신 것 같은데, 내가 다음 기자회견에서 발표할까요?”(웃음)

 

처음 만나 서로의 의중을 떠보는 초긴장 상태에서 무례한 상황을 거듭 연출하는 배포나 그것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노련함이 과연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거물들답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는 중국에서 협상의 교과서라고 부를 만큼 대단한 협상가이자 전략가로 칭송받는 인물들이다. 

 

마오쩌둥이 즐겨 사용하는 협상전략이 유적심입(誘敵深入), 즉 ‘적을 유혹하여 인민의 바다에 빠트려라’였다. 적을 유혹하여 헷갈리게 하는 데는 키신저의 사례처럼 적을 긴장시키고 스트레스를 주는 방법도 있지만, 반대로 상대를 높이 치켜 올리고 후하게 대접하여 상대방의 경계심을 허물어뜨리는 방법도 있다. 이것이 중국의 비사후례(卑辭厚禮) 전략이다.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칭송하고 선물을 후하게 하여 환심을 사는 전략이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인과의 협상에서 특히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알려져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공식석상에서 가끔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당신은 나의 친구이니 이제 13억 중국인의 친구입니다.” 혹은 G2의 반열에 오른 오늘날도 이렇게 말한다. “중국은 아직도 개발도상국가입니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매우 가난합니다.” 이는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의 허영심을 은근슬쩍 올려준 다음, 협상 테이블에서 자기의 안건이 13억 인민의 바램이거나 가난한 개발도상국가의 상황이라는 식으로 베이스를 까는 것이다. 비사후례의 한 예이다. 특수성을 보편화하여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현대 중국인의 협상 스타일은 기본적으로는 중국 고대의 협상술이나 처세술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바꿔 말하면 중국인의 협상스타일은 오랜 역사동안 중국인의 몸에 배어 습관처럼 되어버린 중국인의 전형적인 스타일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중국인과 협상하려면 중국 협상 스타일을 ‘공부’해야 한다. 막연하게 같은 유교문화권이니 라오펑여우(오래된 친구)이니 하는 생각으로 교제했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중국인의 협상스타일은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우선은 현대 중국의 협상문화를 형성한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위에서 강조한대로 ‘중국의 고유문화와 역사적 경험’이다. 중국은 고대문화가 현대문화의 방향을 제시해준다고 말할 정도로 그 영향이 심대하다. 이는 중국인의 시간의 지평이 매우 긴데서 오는 문화적 특성이기도 하고, 한족의 문화적 자부심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정치가들이 중국역사서를 탐독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둘째, 사회주의 러시아로부터 받은 영향이다. 소련 등 국제공산주의 운동 차원에서 맑스레닌주의의 경험을 통한 협상방식이다. 중국 고위 관료들이 소련의 외교스타일에 영향을 받아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한마디로 ‘적대적 협상술’의 태도를 견지하는 방식이다. 협상대표는 기계적이고, 냉랭하며, 협상분위기를 긴장감이 흐르게 하고, 끊임없이 상대를 의심하며, 때론 지나칠 정도의 압박전술을 사용하기도 하고, 상대를 보아 적절히 매스컴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런 협상방식은 중국 조공제도에 바탕을 둔 고도의 의식화된 협상 프로세스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데, 협상 파트너에게 융숭한 대접과 선물공세 → 외국사절의 물리적 이동금지 → 신변안전을 빙자한 상시감시 체제를 가동하기도 한다.

  

셋째, 서양식 협상방식의 도입이다. 1980년대 개혁개방화와 국제화 과정에서 가져온 서양식 협상방식의 자연스런 학습이다. 자유로운 해외여행과 외국관광객 또는 투자자들과의 긴밀한 접촉과 유대관계는 그동안 축적된 전통적, 사회주의식 협상방식으로만이 아닌 좀 더 오픈된 형태의 협상스타일과 국제적 매너를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문화대혁명’의 상흔이 남아있어 여전히 중국적 특수성을 형성한다는 점은 현대 중국인의 협상문화 학습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일상생활 속에서 ‘협상’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특정한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닌 보통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생활용어로 가까이 오게 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북핵 해결을 위한 베이징 6자 협상은 물론 한미 간, 한EU 간 FTA 협상이 발효되었고, 향후 한국경제성장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한중 FTA 협상이 2012년 이미 시작되었으며, 금년 3월에는 서울에서 한중일 FTA 협상도 개막되어 이를 알리는 신문기사들이 우리의 눈을 ‘협상’의 단어에 익숙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을 가장 많이 방문하는 외국인이 바로 중국인이요, 한국인이 가장 빈번하게 드나드는 방문국도 중국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한국인들의 뇌리 속에 중국은 매우 친근한 국가로 다가왔다. 그래서 종종 친근함으로 인해 그들의 사유방식을 잘 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호감과 기대를 가지고 한국을 빠져나간 수많은 기업들이 가장 많이 진출하면서 역시 가장 많은 실패를 맞이하게 되는 곳이 중국인 것은 중국인과의 협상을 너무 쉽고 간단하게 치부해버린 대가인 경우가 많다. 

 

이제 우리는 ‘중국인의 심리를 모른다’는 겸허한 자세로 중국인의 마음을 읽고자 노력해야 한다. 또 중국의 대 한국 협상전략도 검토해서 역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체계적인 중국전문 협상학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간절하게 손에 땀을 쥐며 박빙을 걷는 태도로 신중하게 중국인을 설득해야 하는 협상전문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원문은 첨부파일을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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