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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방중 성과와 의의

질문자: 전가림 교수/답변자: 전락희 명예교수 소속/직책 : 호서대학교 교수/단국대학교 명예교수 2013-08-01

2013년 2월 25일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 인사상의 혼선과 정부조직법을 위시해서 화급한 각종 법안들이 국회에서 공전을 거듭하면서 국정공백 상태를 빚기도 했다. 그 결과 절대과반 득표로 당선된 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최저 지지율을 기록하는 상황을 맞았는가하면, 지난 연말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금년 초 3차 핵실험과 때를 같이한 대남 협박과 공갈로 안보 상황은 극도로 악화되어 세계는 한반도를 위기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상과 같은 국내외의 상황 속에서도 박 대통령은 강력한 대북응징메시지를 보냄으로써 일관된 대북기조를 유지하였다. 물론 가공스런 파괴력을 지닌 미국의 무력시위가 북한으로 하여금 섣부른 도발을 억제하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5월 초 박 대통령의 성공적인 방미에 이은 방중(6월 27-30일)은 여러 면에서 예상 밖의 성과와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이런 평가에 대하여 7월 27일 서울 강동구에 있는 전가림 교수의 〔중국연구실〕에서 중국 전문가인 단국대학교 전락희 명예교수를 모시고, 질의응답 형식의 대담을 가진 바 있다.
 
전 가 림: 오늘이 마침 정전협정 60주년이 되는 날이라 감회가 다른 듯합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간 계속된 전쟁에서 우리는 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었습니다. 특히 14만 명에 이르는 참전용사의 희생이 있었고, 우리나라를 위해 참전한 유엔 21개국의 193만 참전용사 중, 희생자만도 5만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6ㆍ25를 경험한 교수님께서는 감회가 남다르시겠습니다.
 
전 락 희: 네, 그렇습니다. 당시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태평양전쟁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기 전에 맞은 6ㆍ25의 참상은 지금도 또렷합니다. 그런데 자랑스러운 것은 대한민국이 지난 반세기만에 전쟁의 폐허에서 국내총생산(GDP) 세계 15위, 무역규모 8위의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섰음은 물론,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국가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국가보훈처는 유엔을 포함한 27개국 정부 대표와 외국의 고령 참전용사를 초청해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감사행사를 가진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원조를 받던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부자 나라로 발전한 데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느낍니다.

 
전 가 림: 저는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지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와 방중에서 느꼈습니다. 실무 방문과 국빈 방문을 통해 이른바 ‘주요 2개국(G2)’ 정상들과 품위 있는 행보에 세련된 정상 외교를 펼치고 있는 박 대통령의 의연한 모습에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방중을 전후해서 시진핑 주석은 기회 있을 때마다 박 대통령을 ’오랜 친구(老朋友)’라고 했고, 심지어 중국 외교부는 대변인을 통해 박 대통령을 중국인민의 ‘라오펑유(老朋友)’라고도 했습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전 락 희: 저는 ‘라오펑유’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백호동』이란 중국고서에 ‘같은 문을 드나들었을 때 붕(同門曰朋)’이라 하고, ‘뜻을 같이했을 때 우(同志曰友)’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친구(朋友)는 평등관계라는 점에서 지금의 한ㆍ중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의 동반자=친구라는 등식에 관심을 가지고 봤습니다. 그러므로 한반도를 위시해서 동북아 그리고 국제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함에 있어 친구와 같은 평등관계에서 출발했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이 같은 중국인들의 인식은 과거의 한ㆍ중관계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변화입니다. 유쾌하지 않은 기록입니다만,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1419년 8월 17일 상왕 태종(이방원)과 주상 세종은 경복궁 근정전에서 무릎을 꿇고 명나라 황제인 영락제가 세종의 왕위 승계를 허락한다는 칙서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과거의 한ㆍ중관계가 보여준 모습이었습니다.

 
전 가 림: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첫 해외 특사로 지난 1월(22-24일) 특사단을 중국에 파견했을 때, 관심을 둔 것은 바로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의 내실화였습니다. 이는 중국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박 대통령의 인식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국빈 방중을 통해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얼마나 내실화하였다고 보십니까?
 
전 락 희: 박 대통령은 3박4일간의 국빈 방문을 통해 종전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내실화 내지 구체화시키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방중 첫날 정상회담 후, 발표된 ‘미래비전 공동성명’ 및 부속서에 정부 간 협정 1건과 기관 간 약정 7건 등 총 8건과 관련된 경제ㆍ통상 협력, 인적ㆍ문화 교류, 영사 분야 협력,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 것을 성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외에도 성과는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한 중국의 지지와 협력을 약속 받았다는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사실상 박 대통령이 서둘러 ‘주요 2개국(G2)’ 정상들과 회담을 추진한 까닭은 북핵 문제를 포함해서 남북관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는 중ㆍ미 두 나라로부터 공조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절실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의 정상회담을 통해 이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전 가 림: 박 대통령의 국빈 방문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빈손 외교’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장은 한 강연에서 “정상회담에서 전임자에 비해 품격을 갖고 의연했지만 미국과 중국의 입장 속에 공약수를 찾지 못한 것 아니냐. 본인만의 구상이 있어야 하는데 어쨌든 북한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유도할지 아직은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보리밭에 가서 숭늉을 찾는 조급함이 있고, 완벽주의자들은 일괄 처리하는 성과를 기대하지만, 외교는 상대가 있다는 점을 간과하기도 합니다. 평가는 언제나 엇갈리게 마련이지만,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교수님은 이 같은 긍정적인 평가의 배경을 어떻게 보십니까?
 
전 락 희: 저는 역사와 고전에 조예가 깊은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온고창신형(溫故創新型) 리더십’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을 보면, 이런 리더십에 따라 치밀하고 끈질기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는 회담이 길어져도 개의치 않고 “조목조목 얘기하고 상대방 대답에 귀 기울였다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다 싶으면 ‘제 얘기는요’라 하면서 다시 한 번 또렷이 요구사항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그랬고, 리커창 총리와 장더장 상무위원과의 회담에서도 ‘조목조목 근혜씨’ 스타일은 그대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특히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리적 이성적으로 접근하면서도 정서적 감성적 효과를 잊지 않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만합니다. 이 같은 용의주도한 접근과 호소가 그의 국빈 방문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봅니다.

 
전 가 림: 먼저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온고창신형 리더십’으로 보신데 대해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그런데 제가 박 대통령의 방중 외교에서 관심을 가지고 본 점은 정서적 감성적 접근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이번 방중에서 중국인들의 관심을 끈 것은 문(文)ㆍ언(言)ㆍ연(緣)ㆍ의(衣)로 요약되는 이른바 문화코드 접근이었습니다. 문화코드는 사람들이 모종의 대상에 부여한 무의식적인 의미란 점에서 중국인들의 행동과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열쇠이자 의도하는 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주는 단초이기도 합니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코드에 따른 활용으로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중국인들이 꽌시(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을 고려 기존의 인간관계(緣)를 부각시켰고, 때와 곳에 따른 의상(衣)으로는 자신의 철학과 취향은 물론 배려와 개성을 유감없이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중국인들을 사로잡은 것은 고전(文) 인용과 중국어(言) 구사라 하겠습니다. 중국인들은 중국문자를 해득하면 동문(同文)=동족(同族)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박 대통령은 많은 중국인들에게 신뢰할 만한 ‘라오펑유’라는 인식을 깊이 심어줬습니다.
 
전 락 희: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칭화대학에서의 연설이 아닌가 합니다. 그의 중국어 연설은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진지한 태도가 돋보였고, 틀린 발음에 대한 수정 발음에서는 중국인들로 하여금 그의 인간적인 성실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지금도 13억 중국인들은 이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진핑 주석은 〈범해(泛海)〉라는 최치원의 시 “돛 달아 푸른 바다에 배 띄우니 긴 바람이 만 리을 통하네”라는 인용과 박 대통령의 『논어』 공야장에 있는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의 행동을 믿었으나, 지금은 말을 들으면 그의 행동을 살핀다”라고 한 말의 인용은 듣는 이로 하여금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라 하겠습니다. 시 〈범해〉 뒷부분 종결구나, 『논어』 인용문 앞부분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전 가 림: 이번 국빈 방문에서 한ㆍ중 두 정상이 때와 곳에 따른 고전이나 성어를 적절히 인용하는 것을 보면서 조선조 후기 실학자 홍대용과 청나라 엄성 간의 교류와 우정을, 그리고 추사 김정희와 청나라 옹정방 사이의 망년지교와 신의를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상대가 학자든 정상이든 간에 어문(語文)을 통한 접근과 교류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경우 그렇습니다. 이 같은 일련의 방중 성과에 대한 의의를 우리는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전 락 희: 저는 먼저 균형 외교라는 데서 의의를 찾고 싶습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친미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공전시켰고, 노무현 정부는 친중적인 경향을 노골화함으로써 미국의 협조와 신뢰를 크게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해외 특사를 중국에 이어 미국에 파견하였고, 정상외교에 있어서는 미국에 이은 중국 방문이라는 수순을 밟았습니다. 많은 중국인들은 미국에 앞선 중국 특사 파견을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두 차례에 걸친 정상 외교를 통해 중ㆍ미 두 나라로부터 공조와 협력을 이끌어냄으로써 북핵 불용을 확약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시진핑 주석을 비롯해서 리커창 총리와 장더장 상무위원 등 권력 순위 3인과의 연쇄 회담을 통해 정부 간 신뢰를 다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칭화대학 연설시 서두와 종결 부분을 중국어로 함으로써 중국의 언론, 네티즌, SNS 등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과 지지를 이끌어낸 것은 금후의 한ㆍ중관계를 밝게 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는 자못 크다 하겠습니다.

 
전 가 림: 교수님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교수님은 약간 다른 시각에서 박 대통령의 방중 성과 의의를 짚어주셨습니다. 특히 교수님은 고전에 밝으시기 때문에 두 정상들이 인용한 고전과 성어에 담긴 정치적 함의와 메시지 같은 것을 여쭈어보고 싶었습니다만, 지면 관계로 말씀드리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은 첨부파일을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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