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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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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이슈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 및 제언이 담긴 칼럼을 제공합니다.

미·중의 에너지 수송 루트 경쟁

장회식 소속/직책 : 경희대 경영대학원 중국경영학과 객원교수 2013-11-07

소련이 붕괴된 직후인 1994년 미국 후버연구소의 피터 슈웨이저는 『승리』라는 저서에서 레이건 행정부가 소련에 대해 비밀리에 추진한 경제전쟁을 분석한 적이 있다. 그는 미국이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협조 아래 소련의 주 수입원인 석유의 시장가격을 의도적으로 낮게 책정하여 경제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소련의 몰락을 재촉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최대 라이벌이자 핵무기 보유국이었던 두 나라가 무력전쟁을 벌일 경우 양쪽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미국이 경제전쟁을 통해 소련을 붕괴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라이벌 국가를 약화시키려는 미국의 전략은 지금 중국을 향하고 있다. 최근 10년 간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미국의 중국 에너지 수송 루트 견제와 이를 회피하려는 중국의 전략은 과거 할리우드 만화영화에 나온 ‘톰과 제리’의 쫓고 쫓기는 관계를 연상케 한다.

  

큰 틀에서 볼 때 냉전 이후 미국의 라이벌 국가 견제 전략은 그 이전과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에 대적할만한 경쟁국 또는 지역패권국 부상을 견제하는 전략은 2000년도에 발간된 보고서인「미국의 국방재건」에도 명시되어 있었는데 이 보고서는 그 해 당선된 아들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의 청사진이 되었다. 2003년 이라크전쟁을 비롯하여 아들 부시 행정부의 중동지역에 대한 적극적 개입정책은 중국 지도자들로 하여금 미국이 글로벌 에너지 공급의 흐름을 통제하려고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만들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도 이전 행정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중국 전략가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으로서는 막대한 에너지 확보가 필요하고 따라서 안전한 수송 루트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사다리 걷어차기’, 즉 에너지 수송 루트 견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중국의 ‘미국통’으로 유명한 베이징대학교의 왕지시 교수는 2007년에 이미 미국이 중국의 국력 성장을 제어하고 약점을 악용하는 “사악한 계획들”을 가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약점 중에 하나가 소위 ‘말라카 딜레마’이다. 현재 중국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수입하는 에너지의 수송선은 거의 대부분이 대만해협과 말라카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이 해협들이 전쟁 또는 분쟁으로 특정국가에 의해 차단되거나 지연될 경우 중국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중국이 미국의 군사력이 미치지 않거나 영향력이 미미한 곳에 에너지 수송 루트를 건설하기 전까지는 자국의 에너지 수송 루트는 미 해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게 된다. 따라서 중국정부는 ‘말라카 딜레마’를 인식하고 국명이 ‘-스탄’으로 끝나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을 포함하여 러시아, 미얀마 등지에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 내륙으로 운송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최근 중국이 ‘말라카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파키스탄의 과다르항 건설이다. 이 항구의 건설은 과거 10여 년 동안 중국과 파키스탄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만 입구인 호르무즈해협에 가까이 위치한 과다르항은 무역, 군사, 에너지 등 전천후 기능을 할 수 있는 다목적 항구로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 버금가는 세계적 항구를 지향하고 있다. 중국이 볼 때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주의 남쪽에 위치하며 이란에서 가까운 전략적 요충지인 과다르항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아래 그림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중국이 파키스탄의 과다르(Gwadar)항에서 카라치(Karachi)를 경유하여 중국 서부 신장지역의 카쉬가르(Kashigar)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따라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수입하는 에너지를 중국 내륙으로 수송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중국의 과다르항 건설 움직임을 예의주시해 왔다. 만약 중국이 인도양의 요충지인 과다르항과 같은 곳에 군사기지를 설치한다면, 이는 곧 중국이 에너지 수송에 필요한 바닷길을 통제 아래에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과다르항을 기점으로 하는 에너지 파이프라인 건설 문제뿐만 아니라, 이 항구를 중심으로 인도양 지역에서 확대될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개입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미국에서 과다르항이 위치한 발루치스탄주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옹호해 온 파키스탄 전문가들 중 한 명이 바로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의 아시아 프로그램 좌장인 셀리그 해리슨이다. 해리슨은 파키스탄이 과다르항 기지를 중국에 제공했다는 사실을 경고하면서 앞으로 독립될 ‘자유발루치스탄’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해리슨이 말하는 ‘전략적 이익’이란 그가 2009년도에 작성한 국제정책센터의 특별보고서에 보다 명확히 나타나 있다. 그는 발루치스탄주의 전략적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에너지 수송 루트인 아라비아해,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 근처에 위치한 점을 예로 들었다.

 

최근 발루치스탄 독립에 대한 미국 정치권 일각의 움직임이 적극성을 띠고 있다. 일부 의원들과 재미 발루치스탄인들은 발루치스탄의 독립을 위해 국제사회의 개입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2012년 2월 8일에는 하원의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발루치스탄 독립 문제를 논의하는 청문회를 개최했다. 하원 외교위원회 감독조사분과소위원회 위원장이자 청문회 개최를 주도한 다나 로라바커 의원은 발루치스탄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청문회에는 예비역 중령 출신으로 작가이자 전략가인 랄프 피터스도 참석했는데, 그는 2006년 6월 <육군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파키스탄, 이란, 아프가니스탄 내에 있는 발루치스탄인 거주 영토를 분리시켜 ‘자유발루치스탄’ 건국을 주장하여 타국의 주권침해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는 인물이다. 피터스의 ‘자유발루치스탄’ 구상은 앞에서 언급한 해리슨의 주장한 것과 유사하다. 피터스의 주장대로 ‘자유발루치스탄’이 분리·독립될 경우 중국은 매우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자유발루치스탄’이 건국된다면 현재 중국과 파키스탄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국경이 단절되어 중동과 아프리카의 에너지를 파키스탄-중국간 고속도로를 통해 중국에 공급할 수 있는 길이 완전히 차단되기 때문이다.

 

‘중국견제용’이라는 비판을 의식하고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 미국정부가 공개적으로 발루치스탄 독립을 옹호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의회와 전문가들의 주장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미국정부는 만약 ‘자유발루치스탄’이 건국되고 ‘친미정권’이 들어선다면 파키스탄에서 중국으로 가는 다른 에너지 루트 건설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발루치스탄을 독립시켜 파키스탄을 새롭고 작은 나라로 분리하는 방법은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등 미국의 전략가들이 평소 주장해 온 유라시아의 ‘실패한 국가’를 분리시키는 ‘마이크로 국가’ 또는 ‘미니 국가’ 이론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이 이론을 옹호하는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글로벌 정보회사인 스트레포의 최고경영자인 조지 프리드먼은 최근 발간한 저서에서 미국에 대적할만한 라이벌이 출현하는 것을 제지하기 위해 강국이 부상할 만한 지역의 불안정을 바란다고 주장한다. 프리드먼의 주장대로라면 유라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가스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통로인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는 안정을 꾀하면서도, 파이프라인의 종착지로 예상되는 발루치스탄의 불안정을 바라는 것은 다소 역설적이다. 하지만 발루치스탄을 독립시켜 ‘마이크로 국가’ 또는 ‘미니 국가’로 만든 후 ‘친미’ 또는 ‘친서방’ 정권을 수립하면 가스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 또한 중국이 과다르항을 기점으로 신장자치구로 연결하는 에너지 루트까지도 제지할 수 있다. 결국 인도양에 접한 전략적 요충지 발루치스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중 사이의 헤게모니 경쟁은 ‘제로섬 게임’인 것이다. 

 

발루치스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중 사이의 헤게모니 경쟁의 중심에 서 있는 과다르항이 전략적 관점에서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지라도 에너지 수송 루트가 통과할 예정인 파키스탄의 지리도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파키스탄의 과다르항과 중국의 신장 지역을 연결하려는 에너지 루트는 험준한 카라코람 산맥과 파키스탄과 숙적인 인도와 분쟁을 벌이고 있는 카시미르 인근을 통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앞으로 중국의 과다르항 프로젝트가 성공할 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그리고 특히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 증가로 인해 중동 지역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중동정책보다는 ‘아시아 회귀’ 정책에 더욱 힘이 실리고 그 결과 과다르항을 포함한 중국의 에너지 수송 루트에 대한 견제도 더욱 거세질 가능성도 있다.

 

 

※원문은 첨부파일을 참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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