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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저항의 소비문화, 쉥(Sheng)"

케냐 장용규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소장 2012/10/18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만국어가 사용되는 국제도시이다. 케냐의 양대 공식어인 스와힐리어와 영어는 물론, 지방에서 올라 와 정착한 다양한 민족어, 오랜 이주역사를 가지고 있는 인도인들의 힌디와 구자리티, 유럽정착민의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등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케냐를 공략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만다린어까지, 나이로비는 가히 세계 언어의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다양한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는 나이로비에서 젊은 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언어는 쉥(Sheng)이라고 부르는 '외계어'이다.


쉥은 케냐의 양대 공용어인 스와힐리어(SwaHili)와 영어(ENGlish)합성어로 스와힐리어를 모태로 영어의 다양한 어휘변화가 특징은 '쉥'(Sheng)과 영어를 모태로 다양한 차용어의 어휘변화를 적용시킨 '엥쉬'(Engsh)로 구분된다. 쉥은 주로 스와힐리어에 익숙한 나이로비 하층민이나 중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사용하며, 엥쉬는 영어를 편하게 사용하는 젊은 지식인 계층이 선호한다. 지역적으로 보면 쉥은 하층민과 이주민이 집중적으로 살고 있는 이스트랜즈(Eastlands)를 중심으로 사용되며 엥쉬는 중산층이상이 살고 있는 웨스트랜즈(Westlands)가 본 고향이다.


쉥의 기원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케냐의 독립과 산업화는 케냐의 농촌인구를 대거 나이로비로 끌어 들이는 흡입력을 보였다. 일자리를 찾아 나이로비로 이주해 온 농촌인구는 각기 다른 민족배경과 언어차이로 인해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환경에서 도시이주민들이 나이로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스와힐리어와 영어를 섞어 사용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이것이 쉥의 기원이다.


쉥은 농촌이주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이스트랜즈를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특히 나이로비 중심에서 동쪽으로 살짝 벗어난 곳에 있는 이슬리(Eastleigh)는 쉥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쉥은 아프리카인들이 이슬리에서 도심으로 출퇴근을 하는데 사용되는 승합버스 마타투(Matatu)를 통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마타투 차장은 쉥을 사용해 손님들을 불러 모았고, 쉥의 독특한 언어현상은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마타투는 버스와는 달리 나이로비 구석구석을 운행했기 때문에 이슬리를 벗어나 나이로비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단순히 의사소통의 기능을 갖고 있던 쉥은 1980년대 이후에 나이로비의 젊은 세대가 새로운 문화코드로 쉥을 사용하면서 새로운 발전기로 접어든다. 독립과 함께 잠깐 번성기를 누렸던 케냐 경제는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케냐의 젊은 세대는 그 문제를 기성세대의 부정부패와 리더십 부족으로 보았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G-pange(젊은세대운동)이 일어났으며, 이들은 기성세대와 차별화된 문화세계를 구축하기를 원했다. 쉥은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문화적 수단이었다.


쉥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어휘변화에 있다. 쉥은 사전을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어휘의 생성과 소멸이 빠르다. 쉥 어휘는 짧으면 며칠, 길어도 몇 달을 유지하지 못한다. 이렇게 빠른 어휘 전환을 기성세대는 따라잡지 못하며 젊은 세대가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문화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쉥의 문화적 기능은 음악과 문학을 통해 전개되었다. 1980년대 말. 케냐의 젊은 작가들이 케냐의 사회부조리와 기성세대의 리더십 부재 등을 비판하는 소설과 시 등을 써 내기 시작한다. 비슷한 시기에 이슬리의 캘리포니아(California)라는 슬럼가에서는 미국에서 들어 온 힙합문화가 쉥과 만났다. 젊은 세대는 열광했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 활동은 'Kwani?'라는 진보문학저널의 탄생을 가져왔고 힙합문화는 쉥과 만나 '겡게'(Genge)라고 하는 새로운 장르의 케냐식 '힙합'문화가 만들어졌다.


쉥문학과 음악은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쉥 문화를 주도하는 젊은 예술인들의 모임인 'WAPI?'(Word And PIcture)가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 지부를 설치하면서 쉥을 통한 사회에 대한 '저항문화'를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저항문화 쉥이 자본주의와 조우를 했다는 점이다. 거대 자본의 입장에서 케냐의 젊은 세대를 뒤흔들고 있는 쉥 문화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문화상품이었다. 겡게 가수들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고 쉥 예술인들이 거리의 광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요 일간지와 방송에서도 쉥을 사용하는 칼럼이나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젊은 신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교회에서도 쉥를 사용한 설교를 하는 교회가 늘고 있으며 심지어는 찬송가도 쉥으로 불려진다. 쉥을 천박한 언어현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쉥이 가지고 있는 정치-사회적 기능을 무시하지는 못한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젊은이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쉥을 사용해 선거 운동을 하기도 한다.


케냐마케팅협회(Marketing Society of Kenya)에 의하면 케냐의 젊은 세대(15~35세)는 케냐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한다. 이들 중 대부분이 쉥를 사용한다고 볼 때, 쉥의 사회적 파급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 이 단체는 특히 젊은 세대의 구매력이 연간 90억 실링에 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의 문화코드를 놓치는 것은 커다란 시장 구매 세력을 놓치는 결과를 가져 온다고 보고 있다. 젊은이들의 여가활동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음악 감상이며 독서와 T.V.시청이 뒤를 잇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 케냐의 대표적인 이동통신회사인 오렌지 모바일(Orange Mobile)은 겡게(Genge) 뮤지션 쥬아 칼리(Jua Cali)와 천 만 케냐실링(Ksh)의 광고계약을 맺고 ‘헬로우 튠즈’(Hellow Tunes)라는 음원 서비스를 시작했다. 쉥 옹호자들은 이 일을 쉥이 마케팅 차원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쥬아 칼리는 2007년에도 모토롤라(Motorola)와 연 백만 케냐실링의 계약을 맺고 광고를 해 오고 있다. 케냐의 마케팅 분야에서 쉥을 눈 여겨 보는 이유는 케냐 전체인구의 60% 가량을 차지하는 젊은 세대의 주 사용언어가 쉥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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