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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역사성과 역동성의 맥락에서 본 가나의 추장제

아프리카ㆍ 중동 일반 / 가나 설병수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2012/12/10

아프리카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특히 인류학자, 역사학자, 정치학자―는 오랫동안 추장 사회, 전통적 정치 체제, 분절 사회(segmentary society), 중앙집권화된 정치 체계, 왕국, 원시 국가, 초기 국가 등을 연구해 왔다. 일부의 학자들은 중앙집권화된 체계를 분절 체계나 무두(acephalous) 체계와 비교 연구하기도 했다. 정치인류학자들은 에반스 프리차드(E. E. Evans-Pritchard), 포르테스(M. Fortes), 미들톤(J. Middleton) 등의 저명한 학자들의 아프리카 자료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왔다. 아프리카의 토착 정치에 대한 연구는 식민지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기 동안 아프리카의 정치 제도는 식민지 체제에 길들여지고 편입되었다.

추장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회문화적 현상 중의 하나이다. 이 제도가 식민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을 비롯한 모든 식민지 통치자들에게는 토착 추장들을 통해 새로운 신민(subjects)을 지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식민지 시대 이후 아프리카의 몇몇 지역에서는 추장제가 소멸했다. 그러나 21세기 현재에도 동부․서부․중부․남부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는 추장제가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추장제는 사회마다 상이한 특징과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아프리카 대륙 내의 지역적 차이가 매우 크고, 추장제가 경험해 온 식민지 및 탈식민지 역사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추장들은 사회문화적 변동에 적응하고, 지역․국가․세계적 수준에서의 사회․경제․문화적 변화에서 중추적 역할 수행을 가능케 해 주는, 탁월한 탄력성(resilience)을 지니고 있다.

식민지 시대 이전 가나의 여러 지역에서는 추장이 통치하는 중앙집권화된 정부가 없었다. 이러한 지역의 사람들은 “무두적 조직 방식”(acephalous way of organization)으로 기술되어 온 정치 체계 속에서 살았다. 이에 반해, 가나의 북부 지역, 아샨티(Ashanti) 지역, 동부 지역, 서부 지역 및 브롱-아하포(Brong-Ahafo) 지역에서는 추장제가 상당히 발달했다. 추장은 종교․정치․경제․군사적 지도력을 행사했던 전통적 정치 체제의 우두머리였다. 추장은 자신의 사람들과 영적 존재(spiritual beings) 간에 가교 역할을 하며, 그들의 본질적 가치를 수호하는 자들이었다. 정치적 우두머리로서 그는 자신의 땅에서 질서를 유지할 책임이 있고, 정의 구현에서는 최종 조정자였다. 그는 공물(tributes), 벌금, 시장 사용료 및 다른 세입과 같은 경제적 문제를 처리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식민지 시대 이전의 추장은 상당한 자치권을 행사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추장은 자신의 거주지에 있는 협의회의 조언을 받아 지역을 통치했다. 이러한 제도적 견제와 퀸마더(queenmother)는 그의 전횡을 방지했다.

식민지 시기 동안 추장제는 합작, 훼손, 상호 선택 등 다양한 형태의 조작을 겪었다. 19세기 후반 경 영국은 가나에서 식민지 경영과 관련된 비용과 물류 문제에 직면했다. 그 당시 영국은 간접 통치에 크게 의존했다. 왜냐하면 그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대로 충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전통적 지도자들이 정치․경제적 자원의 중추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래서 영국 식민지 당국은 전통적 지도자들을 통해 원주민을 통제하는 것이 값싸고 실용적인 정책이라고 판단했다. 식민지 행정부의 설립과 더불어 추장들과 그들의 협의회는 지역 행정부를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 자율권은 식민지 이전의 지위와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 체제에 봉사하고 전통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데 있었다. 또한 그들의 권력은 자의성과 부패의 원천이 되었다. 이러한 부패와 자의성은 이후에 영국 식민지 당국이 몇몇 추장을 퇴위시키고 해임하거나 처벌하기 위한 변명으로 이용되었다. 추장들은 토지 할당과 지역의 세금에 대한 법률적 권력과 권위를 통해 상당한 정도의 자율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식민지 시대의 추장들이 자신들의 지위에 대해 불쾌감과 성가심을 느낀 것은 필연적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식민지 정부와 지역 정부 간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됨에 따라, 식민지 체제와 그들의 관계는 점차 애매모호해졌다. 게다가 그들의 불충분한 급료는 세금 징수자로서의 역할에 따른 비인기성(unpopularity)을 보상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봉급 관리라는 지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식민지 정부는 분할 지배 정책을 사용함으로써, 추장들과 새로 부상하고 있는 지식인/민족주의자를 양극화하는 데 성공했다. 다양한 문제로 인해 상당수의 추장은 식민지 정부의 퇴위 대상이 되고, 협력자가 되었다.

추장들의 권력이라는 맥락에서 보았을 때, 1944년에 제정된 원주민 자치령(Native Authorities Ordinance)은 그들의 자율권을 상당히 침해했다. 이 법령을 통해 식민지 정부는 추장들의 역할을 의례와 전통 영역에만 국한시켜, 그들의 독립성을 감소시키려고 했다. 1948년에 제출된 왓슨위원회(Watson Commission)의 보고서는 추장제의 소멸을 알리는 전조였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추장들은 가나 사람들의 정치적 열망, 즉 독립 운동에 장애물이었다. 게다가 추장들이 식민지 시대 이전에 누렸던 독립적 권위는 거의 사라졌다. 이것은 추장들이 지속적으로 주변화(marginalization)와 지배권의 침식을 경험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독립의 여명까지도 개선되지 않았다. 추장들에 대한 회의인민당(Convention People’s Party, CPP)의 분노도 대단했다. 회의인민당의 기관지인 이브닝뉴스(Evening News)는 정기적으로 추장들에게 “제국주의자의 협력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실제로 회의인민당은 추장제를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했다. 추장의 권력이 점점 침식되고 있기는 했으나, 많은 추장들은 상당수의 추종자와 후원자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보다 강력한 추장들―예컨대 아산테 왕(Asantehene)과 아킴 아부아콰의 옥옌 왕(Okyenhene of Akyem Abuakwa)―이 저항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이들의 광범한 지지 덕택이었다. 그래서 식민지 체제는 그들의 영향력을 억제하려고 했다.

독립 이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도 중앙 정부는 추장들의 권력과 권위를 약화시키려고 했다. 즉, 1957년의 가나 독립 헌법, 1979년의 제3공화국 헌법, 1985년의 추장제 개정법 등을 통해 중앙 정부는 추장들의 정치․경제적 자율권을 더욱더 침식시키고자 했다. 추장들에 대한 중앙 정부의 태도가 우호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다. 1987년 임시국가방위평의회(Provisional National Defence Council, PNDC) 정부의 추장제 개정 기구 설립은 브롱-아하포 주(Brong-Ahafo Region)의 몇몇 추장이 대추장(paramount chief)으로 승진하는 것에 대한 인정을 의미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가나 사람들은 추장의 지위를 제고하거나 공식화해 왔다. 이러한 사실은 1992년 가나공화국 헌법에서도 확인된다. 이후 지난 수십 년 동안 가나의 중앙 정부는 ‘추장제문제사무국’(Secretariat for Chieftaincy Affairs)을 설치하여 운영했다. 수많은 논쟁 끝에 2005년 그 사무국의 기능은 ‘문화․추장제문제부’(Ministry for Culture and Chieftaincy Affairs)로 이첩(移牒)되었다. 그러나 그 중앙 부처는 국가적 정치 체계 내에서 추장제를 둘러싼 애매모호함을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이러한 여러 정황에도 불구하고 독립 이래 변동적이고 불안정한 탈식민지 가나에서, 추장제는 정치 지형에서 깊이 각인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가나인의 사회․정치적 과정의 실제적 표현으로 열렬히 환영을 받아 왔다. 비록 추장들이 권력과 권위를 지속적으로 상실해 왔을지라도, 그들은 국가의 사회․정치 영역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현상은 추장제의 운명이 근대 민족 국가의 효과적인 지역 정부의 설립에 의해 끝날 것이라는 예측을 상당히 비켜난 것이다. 달리 말해 추장들은 여전히 상징적․실제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탄력성을 지닌  존재이다. 의례가 거행될 때 추장들―특히 대추장―이 입는 의복은 황금으로 장식되는데, 이것은 문화적․전통적 상징의 기능을 한다. 많은 추장들은 공동 토지에 대한 지배권 및 관리권을 가진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관할 지역에서 발생하는 분쟁의 대다수를 해결한다. 그래서 극소수의 소송만이 정부 법원에서 처리된다. 게다가 추장들은 지역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중앙 정부와 그들 간의 중개자 역할을 수행한다.

오늘날 가나의 추장들은 전통적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국가와 그들 자신의 공동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전통적 추장들과 달리 지금의 추장들은 근대화되고 있으며, 지역민들의 경제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각종 개발 사업에도 참여한다. 그래서 추장들은 상이한 세계들을 이어주는 매개자 혹은 중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속성은 모순, 애매함, 혼종성, 역동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그들은 정부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역민들과 갈등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여러 측면에서 볼 때 하나의 제도로서 추장제는 지속적인 재창조 과정을 통해, 가나인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가나의 추장제는 역사성과 역동성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각각의 추장제는 나름의 역사적 궤적과 특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본질은 역사에 의해 결정된다. 역동성은 추장들이 상이한 현상이나 세계들에 대한 적응력을 강화하는 데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역동성은 오늘날 가나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여타 국가들에서 발견되는 추장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속성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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