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이란의 선택 하산 로우하니, 핵(核)이냐 경제냐?

이란 홍성민 중동경제연구소 소장 2013/07/30

잘 가시오! 아흐메디(Bye bye! Ahmedi)


로우하니의 당선이 확실해지지자 군중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잘 가시오! 아흐메디"를 외쳤다. 경제난에 시달린 이란 민중의 함성이었다. 국민들의 고달픈 삶은 만성적인 실업과 30%를 웃도는 살인적인 물가이며, 그것은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정권 탓이라 생각한 것이다.

중도파 온건노선의 로우하니가 예상을 뒤엎고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지지하는 잘랄리 후보를 누르고 이란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개혁파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50.71%의 과반 득표율을 얻은 반면, 잘랄리는 3위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이란의 민심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이란의 새 대통령 로우하니의 향후 정책방향은 그의 선거홍보물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는 동영상 선거홍보물에서 "원심분리기를 작동시키는 것도 좋지만, 산업의 바퀴를 돌리는 것과 국가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핵 개발도 좋지만 경제개발과 국가안정이 우선순위라는 것이다.

당선직후 그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국가경제를 잘못 운영했으며, 공식적으로 32%로 알려진 물가상승률도 실제로는 42%에 달한다며, “현 정부는 다음 정부에 많은 숙제를 남겼다”고 비난했다. 국내 경제문제 해결에 큰 어려움이 있음을 공식적으로 알린 것이다.

핵 문제에 관해서도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우려하지만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평화적 목적’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로우하니는 이란경제의 최대 걸림돌인 경제제재를 풀고 핵 문제를 타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외교와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점도 밝히고 있다.

로우하니의 당선과정에서 나타난 이란의 현안문제는 대외적인 핵 문제, 국내 정치안정과 경제회복, 즉 세 마리 토끼를 잡는 어렵고도 복잡한 과정으로 요약된다.

이란은 한국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다. 한국은 원유의 약10% 정도를 이란에서 수입하며, 대이란 수출도 62억 6천만 달러(2012년 기준)나 된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로 한국기업(1,168개 중소기업의 누적 수출규모 약7억7천만 달러, 2013년 4월 기준), 특히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그렇기에 이란의 새 대통령의 대외정책에 거는 기대는 크며, 핵 문제해결 또한 한국뿐만 아니라 이란에 있어서도 커다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실용주의자 하산 로우하니(Hassan Rouhani)


이란의 변화는 이란 국민 자체는 물론 전 세계의 관심거리다. 로우하니는 당선이후 첫 번째 연설에서 “많은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으며 종교지도자들과 정부가 즉각 대화에 들어갈 것이다.”라 했다. 그는 의회 인사들과의 면담에서도 "잘못된 국내정책과 부당한 외세의 압력으로 이란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있다"고 전제한 뒤, 대통령 취임이후 의회의 지원과 협조를 요청했다.

로우하니는 7월 3일 제11대 이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한다. 새로 취임하는 로우하니 대통령의 고민은 위의 언급에 잘 나타나 있듯이, ‘잘못된 경제정책’, ‘부당한 외세압력’, ‘종교지도자들과의 대화’ 세 가지로 요약되며, 현실적 의미에서는 ‘국내 경제파탄’, ‘핵문제 해결’, ‘하마네이의 지원’ 등으로 풀이된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첫 번째 과제는 하마네이의 지원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이란은 이슬람공화국(Islamic Republic)이다. 종교지도자의 역할은 그 누구,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하다. 모든 권력이 종교지도자로부터 나오는 것이 이란정치체제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임기 8년의 86명 성직자들로 구성되는 전문가회의에서 임명된 알리 하마네이는 임기가 종신인 명실공히 이란의 최고지도자이다. 종교적으로 최고지도자라는 의미로 이름 앞에 ‘아야툴라(āyatullāh)’라는 명칭이 붙으며, 최고지도자가 갖는 유일한 특권도 이로부터 나온다.

최고지도자 밑에는 12명으로 구성된 혁명수호위원회가 있고 이 위원회는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한 거부권이 있다. 그 과정에 최고지도자는 군통수권자로서 국가최고안보회의와 편익위원회 위원의 임명권과 대통령 인준 권한도 동시에 갖는다. 대통령은 서열 2위이기는 하지만, 한마디로 모든 권한과 행사는 최고지도자에게 집중돼 있다.

사실 핵협상 대표였던 사이드 잘릴리 후보가 최고지도자인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74)의 지지를 받아 무난히 당선되리라 예견되었다. 하지만 이슬람공화국 창건이후 유일한 개혁파 대통령이었던 하타미(1997~2005)의 개혁세력들의 지지에 힘입어 로우하니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극단주의에 대한 온건파의 승리”라고도 부른다.

이 점이 향후 이란의 모든 정책실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큰 변수 가운데 하나다.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서 로우하니는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지원과 협조를 받아내야 한다. 그 길만이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개혁주의자들이 바라는 800명에 달하는 정치적 감금자들의 석방문제는 그 첫 번째 시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로우하니는 1979년 이슬람혁명이후 권력의 핵심에 참여하여 정치적 기반을 다지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키워왔다. 그래서 “권력 핵심층의 실용주의자”라는 말이 그에게 따라 다닌다.

온건주의자로 분류되는 하산 로우하니는 1948년 이란의 작은 도시 소르케(Sorkheh)의 종교가문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종교도시 곰(Qom)에서 공부한 로우하니(Rouhani; 이란어로 정신적 혹은 성직자를 의미)는 1981년 젊은 나이에 의회에 진출한다. 1989년 최고국가안보위원회의 멤버가 된 그는 1991년 이후 혁명수호위원회, 1999년 이후 전문가회의의 일원으로 활약한다. 1992년 이후에는 전략연구센터 소장으로 활동하면서 법학자, 정치가 및 외교가로서의 모든 역량을 갖추게 된다. 

로우하니는 또한 외국어에도 능통한 외교적 감각을 갖춘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란어를 포함해 영어, 독어, 불어, 러시아어 및 아랍어 등 6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우대학에서 "샤리아(Shariah)의 유연성“이라는 제목으로 법학박사를 받은 능력 있는 인물로 꼽힌다. 하타미 대통령시절에는 초대 이란 핵 협상단 수석대표(2003~2005년)를 엮임 하기도 한 그는 2004년 유엔제재를 피하기 위해서는 우라늄 농축을 한시적으로 중단해야한다는 전향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서둘지 않고 안정적인 변화를 추구할 듯

이란의 개혁세력이 로우하니를 지지한 배경은 뭐니 뭐니 해도 경제문제에 있다, 미국을 위시한 EU 및 UN의 경제제재조치가 경제파탄의 주범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극단적인 보수주의는 서구와 마찰만 불러올 뿐 경제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실용주의자 로우하니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1979년 호메이니혁명이후 권력 핵심층에서의 그의 활동도 고려됐을 것이다.

이란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천연가스 매장량(원유는 세계 4위)을 보유한 에너지 강국이면서도 주변 GCC 국가들과는 다르게 경제개발은커녕 오히려 치솟는 물가와 극심한 실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 핵심적인 이유가 다름 아닌 미국을 비롯한 유럽국가와 UN의 경제제재조치에 있기 때문이다. 하타미 대통령의 개혁실패이후, 지난 8년 동안 이란 국민들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극단적 보수주의가 전 세계로부터 고립되는 상황을 잘 지켜봐왔다.

정치, 경제, 외교 분야에서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것이 로우하니의 현실적 과제다. 그 가운데 국민들이 바라는 최우선 순위는 경제문제일 것이고,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안정적인 대외 경제상황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핵(核) 문제는 이 두 가지 문제에 발목을 죄는 가장 큰 외부요인이고, 문제해결의 핵심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란의 정치체제나 로우하니의 그간 경력을 고려해볼 때, 이란에서 급격한 정책, 특히 대외정책에서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경제문제가 우선순위이긴 하지만 이란국가의 정체성은 ‘이슬람체제의 유지’에 있고, 이를 지탱하고 있는 권력의 핵심인물인 성직자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정치체제의 와해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하메네이가 실망을 하긴 했어도 그는 여전히 이란권력의 핵심이다. 2012년 구성된 제9대 의회에서 대다수 의원들은 하메네이 추종자들이다. 당선 직후 “많은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으며 종교지도자들과 정부가 즉각 대화에 들어갈 것이다.”라는 언급은 그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

그 점은 핵 문제 해법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당선이후 가진 첫 번째 연설에서, "미국이 핵 협상을 원한다면 이란의 핵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 국가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 연설은 핵 문제해결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앞서 국가체제의 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로우하니가 이성적인 현실주의자이기는 하지만, 이란의 중심에는 요지부동의 권력층이 있다. 지금 세계는 그 권력층의 핵심에서 자라난 그가 어떻게 이란을 변모시킬 것인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로우하니의 과거 행적을 뒤돌아 볼 때, 그는 ‘수단보다는 목적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자’이다. 그래서 실용주의자 로우하니의 향후 대내외 정책변화에 거는 기대는 그만큼 크다. 하지만 이란의 정치체제, 권력구조 그리고 로우하니의 행적을 고려할 때, 경제문제 때문에 핵 개발을 포기하는 급격한 정책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AIF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