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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가나 여성교역인 ‘피쉬 마마’의 역할과 사회적 중요성

가나 장용규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소장 2019/10/08

아프리카에서 외부 경제활동, 특히 중장거리 교역활동은 남성들의 배타적 경제활동영역으로 이해되어 왔다. 위험부담이 큰 장거리 교역을 위해서는 건장한 남성들이 상단(商團)을 꾸려야 했다.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를 잇는 ‘카라반’(caravan)이 대표적이다. 사하라 교역을 주도해 왔던 아마지기(Amazigh, 베르베르 Berber라고 알려져 있다)는 남성으로 구성된 상단을 꾸려 사하라 횡단 교역을 해 왔다. 인도양을 가로지르며 아라비아 반도, 인도와 교역을 했던 동부아프리카 스와힐리(Swahili) 상인도 마찬가지였다. 이밖에도 다른 아프리카 지역에서 중장거리 교역은 주로 남성의 배타적 경제활동이었고, 여성은 가내 또는 인접한 시장에서의 활동에 제한되어 있었다.

 

이는 아프리카의 독특한 사회관습에서 기인한 것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사회경제 활동영역은 관습적으로 규정되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 남자아이는 마을 밖을 벗어나서 활동을 하기 위한 교육을 받는 반면, 여자아이의 활동영역은 집안 또는 마을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관습은 경제활동으로도 이어져 남성의 경제활동공간은 여성보다 훨씬 광범위했다. 이는 유럽열강이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지배하면서 더욱 더 고착되었다. 식민경제를 지탱하는데 필연적이었던 값싼 노동력은 거의 대부분 남성이주노동자로 채워졌다. 남성노동자는 도회지나 광산, 플랜테이션 등에 장기 이주노동을 했다. 반면 여성은 고향에 남아 제한된 공간에서 농사를 짓는 등의 경제활동을 하는데 익숙해졌다. 이렇게 구조화된 남성과 여성의 경제활동공간은 여전히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에서 발견된다.

 

그런 의미에서 ‘피쉬 마더(fish mother)’ 또는 ‘튜나 마더(tuna mother)’라고 불리는 가나의 여성교역인의 경제활동은 주목받을 만하다. 가나 해안 어촌에는 여성상인이 어시장 생산유통망을 장악하고 지역 경제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선주와 선장의 재정적 후견인 역할을 하고, 생선을 훈제해 전국에 유통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여성상인이 수산업 벨류 체인을 장악하는 현상으로 까지 발전했다. 본 글에서는 가나의 수산업을 좌지우지하는 가나 여성상인들의 벨류 체인을 통해 여성의 경제활동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가나의 수산업
USDA 해외농업서비스(USDA Foreign Agricultural Service 2019)의 보고에 따르면, 2017년도 기준 가나 수산업 생산량은 47만 6,000여 톤이다. 수산업이 가나 GDP에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산업은 가나(특히 해안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매우 중요한 경제활동이며, 해안 거주민 대부분이 수산업에 의존해 생계를 이어 간다. 가내 수산업 생산량은 지난 5년(2012~2017) 동안 연평균 45만 톤이지만, 소비는 77만 5,000 톤으로 약 30만 톤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가나 수산업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가나의 수산업은 크게 세 섹터로 구분된다. 첫번째는 영세어업섹터이다. 영세어업은 모터로 작동하는 길이 3~5미터 가량의 소형 통나무배를 이용해 조업을 하는 방식이다. 레게레게(Legelege) 또는 카누(Canoe)라고 부르는 소형 통나무배는 크기가 작기 때문에 원양항해는 불가능하고 저녁 무렵에 나가 해안에서 밤샘 조업을 하고 이른 아침에 귀항하는 방식을 취한다. 영세어업은 주로 작은 정어리, 고등어와 멸치를 낚아 올린다. 7월 참치철에는 비싸게 거래되는 작은 참치를 낚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 급격한 수확량 감소로 ‘전통’적으로 영세어업을 해 왔던 선주와 선장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어획량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기후변화와 함께 최근에 진출한 중국선박회사의 무분별한 싹쓸이 조업을 꼽고 있다. 다음으로 중규모섹터이다. 이 섹터는 카누보다는 큰 배를 이용해 어류를 따라 인근바다를 오가며 조업을 하는 방식이다. 중규모섹터는 철에 따라 움직이는 생선 떼를 따라 인근 지역 또는 이웃 국가를 넘나들며 조업을 한다. 마지막으로 원양어업섹터가 있다. 1950년대부터 시작한 원양어업은 산업형 조업을 하며 거의 한국계 선박회사가 장악하고 있다. 가나

어업법(200년 625항)에 따르면 외국 선박회사는 반드시 가나국적회사가 지분의 50% 이상을 갖는 합작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원양어업을 통해 확보한 참치는 주로 통조림으로 가공돼 전량 유럽으로 수출된다. 참치를 포획하는 원양어업은 규모면에서 영세어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이다.

 

가나의 수산업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는 것은 영세어업섹터이다. 영세어업은 가나 해안을 따라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어촌을 중심으로 이뤄지며 가나 해안에는 약 2만 여 척의 카누가 조업을 하고 있다. 알로테이(Allotey 2017)에 따르면 가나 수산업에는 13만이 넘는 인구가 직접 고용되어 있으며, 간접적으로 수산업의 영향을 받는 인구는 260만 명 가량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중 여성의 참여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 흥미롭다. 수산업 종사자의 50% 가량이 여성이며, 특히 영세어업 영역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여성은 카누가 잡아 온 생선을 하역하는 순간부터 최종 소비까지의 벨류 체인을 관리한다. 특히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수산업을 움직이는 피쉬 마더 또는 튜나 마더는 영세어업 뿐 아니라 원양어업의 재정후원자로 활동하면서 가나 수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테마어촌의 ‘피쉬 마마’
테마라는 이름은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40km 가량 떨어진 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토르만’(Torman)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지역민에 따르면 토르만은 ‘호리병박 타운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한때 테마 일대에 호리병박이 많이 자라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자로 잰 듯 구획된 상업단지와 산업단지, 주거지역으로 구분된 계획도시로 거듭났지만 과거에는 해안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어촌이 테마의 대표적인 풍경이었다. 다만 해안을 따라 분산된 어촌 위에 건설된 계획도시이기 때문에 도심을 살짝 벗어나면 예전의 테마 경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테마는 가나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두 지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자생적으로 형성된 테마어촌이며, 다른 하나는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가나 정부가 1961년부터 야심차게 추진한 신항만 건설의 결과로 만들어진 테마산업항구이다. 테마산업항구에는 정유시설 등의 기간산업시설과 외국계 수산업에 사용되는 대형 선박이 정박하는 항구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테마어촌은 주민들이 대를 물려 조업을 하면서 만들어 온 어촌이다. 테마산업항구가 들어서면서 일부 테마어촌 거주민은 항만시설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거주민 대부분은 여전히 영세어업에 의존한다. 테마어촌에는 토고와 베냉, 코트디부아르 등 인접 국가는 물론 멀리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에서 어류를 따라 카누를 몰고 온 선원으로 가득하다. 이들 사이에 입출항을 규제하는 이민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어촌에 체류하기 위해 카누 등록은 필수 이지만 어촌계에서 규정한 관습법만 지키면 누구나 와서 정박이 가능하다. 따라서 서부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카누 사이에는 국경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테마어촌과 수산업 벨류 체인
테마어촌에서 피쉬 마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육숙희에 따르면, 테마어촌의 수산업은 철저하게 분업체제로 이뤄진다. 카누를 제작하고 조업을 하는 것은 남성들의 배타적 영역이다. 하지만 남성들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배에서 내린 생선의 구매와 가공공정은 여성의 경제활동영역이다. 특히 재력이 있는 피쉬 마더는 특정 카누와의 독점관계를 만들어 생선의 매입과 가공(주로 훈제), 유통을 독점한다.

테마어촌이 근대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일정한 자금력이 없으면 영세조업도 운영하기가 힘들어 졌다. 모든 카누가 모터를 사용하면서 기름값이 필요했고, 모터와 카누, 그물 수리, 선원들의 인건비 문제 등 선주와 선장 입장에서는 목돈이 필요하기 시작했다. 은행 등 금융권은 영세 조업자의 불안정한 수입 때문에 대출을 꺼려한다. 따라서 영세 조업자는 대안적으로 자금력이 풍부한 피쉬 마더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피쉬 마더는 선주 또는 선장과 오랜 후견인 관계를 맺어 왔다. 따라서 일부 피쉬 마더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테마어촌의 수산업 유통망을 장악한 기업인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테마어촌의 벨류 체인은 느슨하지만 나름대로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벨류 체인 행위자는 크게 선주와 선장, 피쉬 마더와 생선 장수와 훈제업자, 중개인과 소비자로 구분되며 3~4단계를 거쳐 유통된다. 선주는 카누를 실질적 소유주이다. 선주는 자신의 카누를 선장에게 대여할 수도 있고 직접 선장이 되어 선박운행을 하기도 한다. 선주 또는 선장이 잡아 온 생선은 하역을 하는 과정에서 피쉬 마더에게 건네진다. 대부분의 피쉬 마더는 대규모 자금력을 배경으로 특정 카누가 잡아 온 생선을 독점 구매한다. 구매한 생선은 피쉬 몽거(fish monger)라고 부르는 영세판매업자에게 넘기거나 생선훈제업자에게 건네진다. 생선훈제는 생선유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테마어촌에서 거래되는 생선은 멀리 가나 북부와 인근 국가에 까지 유통된다. 따라서 유통과정에서 생선의 부패를 막기 위해 거래된 생선은 즉시 훈제된다. 테마어촌 외곽에는 각종 생선을 훈제하는 대규모 훈제장소가 있다. 여기에서 훈제된 생선은 포장되어 인근 지역 소비자에게 판매되거나 먼 지역에서 온 중개인에게 넘겨진다. 이 중개인들은 훈제생선을 구매해 자기 지역으로 가지고 가 판매한다. 이 과정은 모두 여성의 활동 영역이다.

 

 

 

피쉬 마더와 피쉬 몽거는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경험과 재력의 차이가 있다. 피쉬 마더는 선주/선장의 후견인 역할을 할 정도로 큰 자금을 운영하기도 한다. 반면 피쉬 몽거는 경험과 자금력이 일천하다. 이들은 주로 피쉬 마더가 거래하고 남은 생선을 구매한 뒤 선어를 직접 판매하거나 훈제해 판매하기도 한다. 따라서 피쉬 몽거가 훈제업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피쉬 몽거는 생선거래를 전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어기에만 하기도 한다. 이 벨류 체인에서 흥미로운 점은 선주/선장과 피쉬 마더의 관계이다. 일반적으로 그날의 생선가격은 어업량에 따라 선주/선장이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피쉬 마더가 그날의 생선가격에 미치는 영향력은 적지 않다. 피쉬 마더는 선주/선장과 치열한 협상을 통해 생선가격을 결정한다. 피쉬 마더가 이렇게 협상과정에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자금력에 있다.

 

조업의 성공여부는 선주/선장의 능력에 달려 있지만 하루의 조업이 항상 만선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조업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투입된다. 피쉬 마더는 선주/선장에게 이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선금을 지불하는 대신 양질의 생선을 선점하는 동시에 가격을 결정하는 데에도 깊이 관여하게 된다.

 

테마 어촌 수산업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벨류 체인이 친족에 의해 운영된다는 점이다. 즉, 수산업은 가족 비즈니스의 형태를 띤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남편이 조업을 하면 아내 또는 여동생이 이를 사서 훈제하고 판매까지 하는 시스템이다. 남편이 선주/선장을, 아내 또는 여동생이 피쉬 마더 또는 피쉬 몽거, 훈제업자가 될 수 있는 구조이다. 이는 테마 어촌의 독특한 친족 구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테마 어촌에 살고 있는 가(Ga) 민족은 독특한 친족 구조를 갖고 있다. 가 사회는 사회적 신분은 부계율(patrilineal)을 따르지만 부동산은 모계율(matrilineal)을 따른다. 따라서 가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독립권은 생각보다 강하다. 따라서 여성은 독자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거기에서 벌어들인 돈을 독자적으로 운영한다. 여성이 능력에 따라 피쉬 마더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 가족 안에서 부부 또는 오누이는 비즈니스 관계로 얽혀 있다. 물론 이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얼마든지 다른 사업 파트너를 찾을 수 있다. 테마 어촌의 추장(Nii Mator)에 따르면 “선주/선장과 피쉬 마더는 부부사이일 수도 있지만 선주/선장은 다른 피쉬 마더와 거래를 할 수도 있다. 이는 전적으로 피쉬 마더가 선주/선장이 필요로 하는 선금을 제공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라고 설명한다.

 

피쉬 마더의 역량강화와 사업가로의 성장
어촌에서 역량을 강화한 피쉬 마더는 수산업 3섹터인 원양어업에 까지 손을 뻗친다. 자금력이 있는 피쉬 마더는 원양어업을 운영하는 수산업회사 냉동창고에 사무실을 채려 놓고 원양어선이 귀항해 하역하기 무섭게 참치를 선매한다. 예를 들어, 한국계 수산업회사인 GGL(Green Global Logistics) 냉동창고에는 30명의 튜나 마더가 사무실을 차려 놓고 회사와 참치 거래를 한다. 튜나 마더라고 불리는 이들 여성상인은 어촌의 피쉬 마더와는 경제력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며,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참치만을 거래한다. 테마어촌의 피쉬 마더는 재정을 확보해 튜나 마더로 진입하는 것이 꿈이지만 이들 사이에 벽은 상당히 견고한 편이다.

 

가나에서 여성상인의 활동은 해안지역의 피쉬 마더와 튜나 마더에 그치지도 않는다. 가그리고 나에서 여성상인의 대외교역은 그 역사가 긴 편이다. 가나에서 농산물이 유통되는 중부 지역에는 특정 농산물을 전담하는 ‘마더’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벨류 체인을 구축해 가나 전국 뿐 아니라 인근 국가를 넘나들며 상업활동을 벌이는 현대판 ‘카라반’인 것이다.

 

* 본 글은 2017년 7월에 진행한 가나 테마어촌(Tema fishing village) 여성상인에 대한 현지조사 내용 중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현지조사에는 기고자와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박사 과정생 육숙희와 김원녕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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