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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정보

[정치] 카이로선언의 지도원리와 한국의 영유권 고찰

이집트 국내연구자료 학술논문 이동원 외법논집 발간일 : 2015-02-28 등록일 : 2018-06-15 원문링크

카이로선언은 1943년 11월 27일 카이로에서 서명되고(signed at Cairo, November 27, 1943), 1943년 12월 1일 라디오를 통해 발표되었다.1) 처음명칭은 “카이로 코뮈니케(Cairo Communique)” 였으나 후에 「일본에 관한 미⋅영⋅중」 3국의 선언(Declaration of the Three Powers-Great Britain, theUnited States and China regarding Japan), 일명 카이로 선언(Cairo Declaration)으로 불리게 되었다.2)1943년 카이로선언과 1952년 대일평화조약3)(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등의 명칭으로 사용되기도한다. 이하 “대일평화조약” 이라 함)은 한국의 영유권을 각각 규정하고 있다.4) 이 경우 카이로선언(The Cairo Declaration, 1943.12.1, 발표)의 규정5)은 법해석이나 문맥상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가 불법임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대일평화조약 제2조(a)6)의 규정은 법해석상 일본의한국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임을 전제로 규정하고 있다.7)따라서 양자의 틀에서 일본의 식민지배를 보는 시각은 법상 명확하게 구별된다. 즉, 일본의 식민지배가 합법일 경우 한국의 영유권은일본으로부터 법상이나 사실상 분리독립한 것이되고 반대로 일본의 식민지배가 불법일 경우 한국의 영유권은 불법행위가 해소됨으로써 사실상회복된 것에 불과하게 된다. 일본은 식민지 합법을 전제로 한국의 분리독립을 규정한 「대일평화조약 제2조(a)」에 의해 한국이 독립하였다고 주장한다.8)그러나 카이로선언에는 「전후 국제질서의틀」을 정하기 위한 지도원리가 존재하고 이 지도원리는 대일평화조약을 구속한다고 본다. 이와같이 해석할 경우 대일평화조약은 징벌적 강화조약으로서 식민지배에 대해 불법을 전제로 규정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중국의 공산화에 따라위협을 느낀 연합국이 국제질서를 안정화시키고자 하는 필요에 의해 카이로선언의 지도원리(leading principle)는 그대로 대일평화조약에 반영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징벌적 조약이 아닌 평화조약은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의 국익에 완전히일치되는 조약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은 한국의 영유권 문제와 한일기본관계조약 제2조, 독도영유권 문제를 해석함에 있어서 카이로선언의 지도원리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이하에서는 한국의 영유권과 관련하여 카이로선언을 중심으로, (i)“카이로선언의 적용”, (ii)“카이로선언의특성과 지도원리”, (iii)“카이로선언과 한국의 영유권”순으로 검토하여 끝맺고자 한다. 이 연구는 법실증주의 관점에서 “있는 법”(lexlata)을 통한 “법해석”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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