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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베네수엘라 대선, 민중을 위해 태어난 차비스모(Chavismo) 정권의 모순된 승리

베네수엘라 최명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강사 2024/10/04

서론
삼국지연의 제갈량(諸葛亮)의 남만 평정에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남만을 다스리던 맹획(孟獲)이 제갈량에게 일곱 번 항복하고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는 내용으로, 보통 제갈량의 어진 성품을 강조하는 일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어쩌면 제갈량이 아니라 맹획일 것이다. 끝까지 굴복하지 않음으로 남만은 정복되지 않았고 촉의 속국이 아니라 동맹으로 남을 수 있었다. 아무리 약소국이라도 스스로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한다면 완전히 멸절(滅絶)당한다고 해도 피지배자의 삶을 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냉전으로 인한 양 진영 간 갈등이 깊어지던 1970년대는 공산 진영이 승리한 시대였다는 평가가 있다. 전후 성립한 브레턴우즈 체제(BWS, Bretton Woods system)1)는 하루아침에 모래성처럼 무너졌고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은 크게 상승했으며 전례를 찾기 힘든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이 몰려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약 30년간 이어진 미국과 서방의 영광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후 등장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과 마거릿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의 신자유주의는 권위주의 정권과 네오콘(Neoconservatives, 신보수주의)이 결합된 특이한 형태로, 초유의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고 이후 미국 경제 호황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저유가 시대가 이어지면서 에너지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구소련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였고 1991년 결국 해체하게 되었다. 냉전이 종식되며 완벽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 패권주의의 시대가 펼쳐졌고,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국 일극 체제는 적어도 2024년 9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냉전에서 팍스 아메리카나까지 라틴아메리카는 미국에 필요한 원자재를 공급하는 공급지의 역할과 더불어 미국의 다양한 상품을 구매하는 구매자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각 국가를 직간접적 제재, 공식 비공식적 압박을 통해 통제했다. 미국과의 갈등 이후 붕괴한 정권의 자리에는 군부가 들어서곤 했는데,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신자유주의는 특이하게 군부 혹은 권위주의 정권과 시장의 자유, 더 정확히는 외국 자본과 대기업 이윤추구의 자유를 보장하는 쪽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림 1> 칠레의 물가상승률: 
높은 산처럼 솟은 곳이 바로 피노체트(Augusto José Ramón Pinochet Ugarte)가 쿠테타를 일으킨 시점이다. 



<그림 2> 페루의 물가상승률: 
1990년 알란 가르시아(Alan Gabriel Ludwig García Pérez)에서 후지모리(Alberto Kenya Fujimori Fujimori)로 정권이 옮겨가던 때이다. 



<그림 3> 볼리비아의 물가상승률: 
1985년  국민혁명운동당(Movimiento Nacionalista Revolucionario) 출신의 대통령 
빅토르 파스 에스텐소로(Víctor Paz Estenssoro) 신자유주의적 정책 노선을 선택하게 된다. 



<그림 4>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 
2010년대 후반 경제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자료:  https://tradingeconomics.com/ 


<그림 1>부터 <그림 4>까지 4개의 그래프가 시기만 다를 뿐 거의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나라마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결과는 모두 비슷하다. 정권이 바뀌거나 정권이 정책 노선을 변경했다는 점이다. 바뀐 정권과 새로운 정책 노선은 소위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것으로, 친미적 노선이라고 분류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예외가 있는데 바로 베네수엘라이다. 베네수엘라에 서는 차비스모(Chavismo), 즉 차베스주의가 득세하고 있는데, 함께 핑크타이드를 추구했고, 권위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좌파적 노선 혹은 반미적 노선을 취하던 에콰도르나 볼리비아의 경우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선거라는 제도를 유지하면서 외부적 요인을 최소화하며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2)

마치 복사한 것처럼 서로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위의 그래프가 말하는 것은 어떤 음모론이 아니라, 반미/자주적 성향의 정부가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들어선 경우 미국이 상당한 경제적 압박을 가함으로써 해당 국가에 경제적 위기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의 경제적 압박으 로 인해 정권의 성향을 바꾸거나 혹은 아예 정권이 교체되기도 했는데, 현재 상황이 진행 중인 볼리비아와 미국과의 관계가 거의 단절된 쿠바를 제외하면 베네수엘라가 유일하게 미국에 실패를 안겨준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민중들은 이중 모순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가한 경제 봉쇄 제재에는 기본적 생필품까지 해당되어, 베네수엘라 국민이 이에 대한 반감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현 기득권층의 무능과 부정부패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다.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마두로 현 정권을 비판하면서도 자주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 친미적 태도를 보이면서도 애국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현재 상황에는 ‘적의 적은 친구’라는 격언이 더 적합하다. 예를 들어 2024년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야권 단일 후보였고 현재는 스페인에 망명한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Edmundo González Urrutia)는 원래 차베스와 마두로 정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비교적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 왔으나, 나중에 중도 야권 대선 후보로 떠오르며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주장하던 인물이었다. 선거 과정에서도 과격한 메시지를 삼갔으며 엘파이스(El Pais) 등을 비롯한 세계 유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통합된 베네수엘라의 재건을 주장했다. 하지만 대선에서 패자가 되고 대규모 선거 불복 시위가 계속되면서 결국 선거 후 음모 및 법률 불복종 선동 등의 혐의로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고, 네덜란드 대사관과 스페인 대사관에 피신한 후 스페인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곤살레스의 망명과 더불어 베네수엘라 내부의 반발도 다소 잦아드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페루, 코스타리카 등 여러 국가가 곤살레스를 대통령으로 인정했으나, 이것은 후안 과이도(Juan Gerardo Guaidó Márquez) 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 혹은 임시 대통령 시기에 이미 있었던 일로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여론조사 결과와 부정선거
베네수엘라와 관련하여 최근 가장 뜨거운 화두는 아마도 부정선거 프레임일 것이다. 2024년 베네수엘라 대선은 일 련의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부정선거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선거 전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 후보는 니콜라스 마두로 후보를 20~30%p 차이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으며, 일부 조사에서는 곤살레스 후보가 65%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마두로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31%에 그치기도 했다. 그러나 투표 결과 마두로 후보의 승리가 선언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선거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현 정부의 선거 개입 의혹까지 확대되었다. 

부정선거의 근거로 제시된 여론조사의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 델포스(Delphos)가 7월 5일부터 11일까지 1,200명의 표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는 오차범위가 ±1.8%이었으며, 메가날리시스(Meganalisis)가 7월 2일부터 7일까지 1,107명의 표본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의 오차 범위는 ±2.99%였다. 또 다른 기관인 오알씨 콘술토레스(ORC Consultores)는 7월 5일부터 13일까지 1,205명의 표본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고 오차 범위는 ±2.5%였다. 이것이 여론조사기관이 밝힌 정보의 모든 것으로, 여론조사 방식이나 기법에 대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여론조사 대상자들의 정치적 성향 등에 대한 정보도 공개되지 않았기에 조사 결과가 국민 전체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주권 국가에서 대선 관련 원 데이터(raw data)를 해외 기관이나 타국 정부에 정당성을 검증받기 위한 목적으로 공개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 베네수엘라 사례도 미국 대선 등 다른 국제적 이슈에 묻히면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며, 더 주목할 부분은 현재 대선 기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미국이 베네수엘라 선거 결과와 관련하여 부정선거를 통해 성립된 불법 정권이라는 여론전 이외에 별다른 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난민 수백만 명: 잃어버린 표
사실 신뢰할 수 없는 여론조사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베네수엘라 난민은 현재 아메리카 전체에서 유동(流動)하 고 있으며, 2024년 기준, UN 난민기구(UNHCR)가 밝히 데이터에 의하면 그 수가 약 770만 명에 이른다.3) 하지만 이 수는 공식적으로 난민으로 접수되어 난민캠프에 수용된 경우를 중심으로 한 데이터이다. 남미의 대부분 국가의 국경선은 지형적 구분에 의한 경우가 많고 아마존 밀림 지역의 경우 특정 국가의 영토로 지도상에 표시된다고 해도 실제 공권력이 영향을 미치는 지역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휴전선처럼 철책이 있다거나, 해자(垓字)가 설치되는 등 물리적으로 분리가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국경을 넘을 수 있고, 이렇게 국경을 넘은 사람들까지 합치면 베네수엘라 난민의 수는 보수적으로 보아도 8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난민들이 모두 야당 지지자라거나 반(反)차베스주의자나 마두로를 반대한다고 간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존의 문제로 고국을 떠날 결심을 한 이들이 현 정권에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2024년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총유권자 수는 약 1,200만 명이었고 총투표수는 약 700만 명이었다. 마두로 당선인은 기록상으로 51%, 약 360만 표로 당선되었다. 다시 말하면, 베네수엘라 난민이 거의 모두 돌아오게 되고, 현재 청소년이 만 19세가 넘어 투표권을 가지게 된다면 마두로와 차베스주의자들, 베네수엘라 통합사회주의당(PSUV, Partido Socialista Unido de Venezuela)이 다시 집권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상황이 안정화되면 오히려 여당의 시간이 끝난다는 모순적 상황이다. 베네수엘라의 주 자원인 석유의 관리를 군부가 담당하고 이권을 공유하면서 현 정권과 군부 등 공권력이 완벽히 밀착되어 있고, 현재 국제적 상황으로 보면 외부 세력이 무력으로 개입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다시 말하면, PSUV와 군부는 어느 정도 내부적 혼란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면서 정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고, 상황이 안정되어 난민이 모두 돌아오고 대외적 관계가 모두 정상화되면, 적어도 정치공학적으로는 그 미래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대외적 변수도 정권 유지에 큰 영향
여기에 대외적 변수를 꼽는다면 중동사태, 즉 이스라엘과 이란을 비롯한 무슬림 국가들 간의 갈등 상황이다. 중동사태가 격화되면서 세계 석유 수송의 약 2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의 정상적인 이용이 어려워지면 원유와 천연가스의 글로벌 공급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가 치명적 위기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세계 최대 원유 매장국인 베네수엘라에게는 기사회생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미 바이든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의 원유 공급을 조건으로 일부 경제 제재를 완화한 적이 있는데, 2022~2023년 민주적 선거 보장을 전제로 베네수엘라에서 석유 회사들의 활동 재개를 일시적으로 허용했고, 이를 통해 미국의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면서 인플레이션이 다소나마 완화되는 효과를 보았다.

결론
마두로 정권은 어쩌면 국내외적 혼란을 통해 세력을 유지하려는 이스라엘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와 비슷한 운명일지도 모른다. 국내외에 평화가 온다면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될 수 있지만, 현재 전 세계적인 상황이 안정이나 평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 마두로 정권에는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 평화와 안정이 찾아오고, 역설적이게도 1999년에 민중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탄생했던 차베스주의 정권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될 것인지, 역사의 흐름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 각주
1) (편집자주) 브레턴우즈 체제: 2차대전 직후인 1944년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서 합의한 국제 통화체제로 기존에 사용하던 금 대신 미국 달러화를 국제거래의 통용화폐로 사용한다는 합의를 골자로 한다.
2) 에콰도르의 경우는 좌파 후보였던 레닌 모레노 전 대통령이 우파로 전향하면서 2024년 현재까지 우파 정권이 유지되고 있고, 볼리비아의 경우 부정선거 의혹 등으로 군부의 쿠데타가 발생했고 2020년 대선에서 에보 모랄레스가 속한 정당인 MAS의 후보 루이스 아르세가 승리했으나 팬데믹에 이은 경제위기로 인하여 전 현직 대통령 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고 현 정권의 우파적 혹은 신자유주의적 정책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3) https://www.unhcr.org/get-involved/between-lives/we-left-everything-venezuela?gad_source=1&gclid=CjwKCAjwufq2BhAmEiwAnZqw8rFzW5780EtkRCneB-mGaaLj5ZhSxxFtInfP2TDDaj8dUGvCxyzoXxoCdS4QAvD_B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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