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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정세변화] 미중 경쟁과 중남미의 전략적 대응: 아르헨티나·페루·브라질 사례 비교
중남미 일반 이경은 EC21R&C 연구원 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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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의 중남미 전략과 역내 영향력 경쟁
미국의 국가안보전략과 중국의 LAC 정책 백서
2025년 1월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 National Security Strategy)은 서반구(Western Hemisphere)를 배타적 영향권으로 규정하고, 역외 경쟁국의 전략적 자산 소유·통제 및 군사력 배치를 거부한다는 목표를 명시하였다. 중국을 지정학적 위협으로 직접 규정한 이 문서는 이른바 '트럼프 코롤러리(Trump Corollary)’*로 불리며, 19세기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평가된다.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국무장관은 2026년 1월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체포 작전 직후 "이 반구에서는 미국의 경쟁국과 적대 세력의 기지 운용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미국의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중국은 이에 대응하여 2025년 12월 제3차 대(對)중남미·카리브(LAC: Latin America and Caribbean) 정책 백서를 공표하였다. 백서는 LAC 지역을 '다극화 세계와 경제적 세계화의 핵심 동력'으로 규정하고, 일대일로(BRI: Belt and Road Initiative)**를 통한 인프라 투자 확대와 900억 위안(약 19조 5,700억 원) 규모의 신규 금융 지원을 공약하였다. 헤게모니·일방적 강압·강권정치에 반대한다는 입장도 우회적으로 명시되어 있어, 미국의 반구 전략에 대한 중국의 공식적 반론으로 해석된다. 시진핑(Xi Jinping) 주석은 2026년 2월 우루과이 오르시(Yamandú Orsi)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메르코수르(Mercosur)***와의 자유무역협정 추진을 공식화하는 등 LAC 외교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중국의 LAC 지역 교역 규모는 5,180억 달러(약 771조 948억 원)를 돌파하였으며, 남미에서는 이미 미국을 제치고 최대 교역국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역내 투자와 개발 금융은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어, 미국의 영향력 회복 의지와 실제 경제적 존재감 사이의 간극이 역내 국가들의 전략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 보고서에서는 대응 전략이 상이한 세 국가, 아르헨티나·페루·브라질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중 경쟁의 현황을 검토한다.
* 트럼프 코롤러리(Trump Corollary): 1823년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과 1904년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루스벨트 코롤러리(Roosevelt Corollary)에 이은 미국의 서반구 독점적 영향력 주장.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중남미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재천명한 배타적 반구 정책을 지칭함
** 일대일로(BRI: Belt and Road Initiative): 중국이 2013년 제안한 글로벌 인프라 투자 구상. 육상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해상 실크로드를 연결하여 아시아·유럽·아프리카·중남미를 잇는 경제 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함
*** 메르코수르(Mercosur): 남미공동시장(Mercado Común del Sur). 1991년 창설된 남미 경제통합체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가 정회원국이며, 역내 GDP의 약 75%를 차지함
아르헨티나: 대미 협력 강화와 대중 경제 관계 유지
대미 관계 강화: 금융 지원과 VNT 입찰
밀레이(Javier Milei)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중국을 권위주의 체제로 규정하고 국가 간 협력을 단절하겠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표명하여 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10월 아르헨티나에 200억 달러(약 29조 7,740억 원) 규모의 긴급 금융 패키지를 제공하였고, 2026년 2월에는 농산품·핵심 광물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상호무역투자협정(Reciprocal Trade and Investment Agreement)을 체결하며 양국 관계를 제도적으로 공식화하였다. 베센트(Scott Bessent) 미국 재무장관은 2025년 10월 폭스뉴스(Fox News) 인터뷰에서 "밀레이는 아르헨티나에서 중국을 몰아내겠다는 의지가 있다(He is committed to getting China out of Argentina)"고 언급한 바 있어, 미국이 금융 지원을 대중 관계 재편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진행 중인 비아 나베가블레 트론칼(VNT: Vía Navegable Troncal) 수로 운영권 입찰은 아르헨티나의 대외 노선을 가늠하는 실질적 지표로 주목받고 있다. 아르헨티나 수출입의 약 80%가 통과하는 파라나-파라과이(Paraná-Paraguay) 수로의 25년 장기 운영·준설권을 대상으로 2025년 12월 재개된 입찰로, 낙찰자 발표는 2026년 5~6월로 예정되어 있다. 입찰은 미국계 자본이 참여한 DEME 컨소시엄과 1995년 이래 해당 수로를 운영해 온 벨기에 기업 잔 드 눌(Jan de Nul) 컨소시엄 간의 경쟁으로 압축되어 있다.
입찰의 주요 쟁점은 중국 자본의 우회 참여 가능성이다. 잔 드 눌 측 현지 파트너인 세르비마그누스(Servimagnus)는 중국 국영기업 중국교통건설공사(CCCC: China Communications Construction Company) 산하 상하이 준설 자회사와 20여 년간 10건 이상의 사업을 공동 수행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잔 드 눌 컨소시엄을 통해 VNT 수로 운영권에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미 국제개발금융공사(DFS: U.S. International Development Finance Corporation)가 DEME 컨소시엄에 관심서한을 발송한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아르헨티나 정부는 절차의 투명성을 강조하며 공식적으로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대중 경제 협력의 지속
아르헨티나의 대중 경제 의존은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운 구조적 여건이 존재한다. 중국이 보유한 아르헨티나 내 인프라 투자 잔액은 약 230억 달러(34조 2,290억 원)에 달한다. 이 중 상당 부분은 산타크루스(Santa Cruz) 댐* 건설과 벨그라노 카르가스(Belgrano Cargas)** 화물철도 재건 등 핵심 에너지·물류 사업에 집중되어 있다. 아르헨티나의 2025년 대중국 대두(大豆) 수출량은 1,150만 톤으로 전년 대비 약 3배 증가하였으며, 밀레이 대통령은 2026년 중국 방문 계획을 공식화하며 "중국은 훌륭한 교역 상대"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안보·인프라 영역의 친미 노선과 통상 영역의 대중 실용주의가 병존하는 현 구도는 대미 약속 이행 수준과 중국의 대응 방식에 따라 양측 모두와의 관계에서 긴장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 산타크루스(Santa Cruz) 댐: 파타고니아(Patagonia) 산타크루스 주 산타크루스 강(Río Santa Cruz)에 건설 중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Néstor Kirchner)·호르헤 세페르니크(Jorge Cepernic) 복합 수력발전 댐으로, 중국수전건설그룹(PowerChina)이 시공을 맡고 있으며 총 사업비는 약 80억 달러(약 11조 9,000억 원) 규모임
** 벨그라노 카르가스(Belgrano Cargas) 화물철도: 아르헨티나 북부 농업·광업 지대를 항구와 연결하는 총연장 약 7,500km의 화물철도망으로, 중국수출입은행(China Eximbank)의 차관과 중국철도국제(China Railway International)의 시공으로 현대화 사업이 진행 중임
페루: 찬카이 항만 감독권 논쟁
찬카이 항만의 전략적 위상
페루 리마(Lima) 북방 약 80km에 위치한 찬카이(Chancay) 항만은 중국 국영 해운물류기업 코스코(COSCO Shipping)가 60%의 지분을 보유하며, 총 13억 달러(약 1조 9,300억 원)가 투입된 심수항*으로 2024년 정식 개항하였다. 연간 100만 TEU** 처리 능력을 갖춘 찬카이는 남미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태평양 허브 항만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으며, 입항 물량의 약 절반이 역내 환적 화물로 추정된다. 중국은 찬카이를 일대일로의 남미 핵심 거점으로 공식화하고 있으며, 페루 경제계는 이를 지역 개발의 구심점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중 갈등의 교차점으로 부상
2026년 1월, 페루 법원이 국영 운송인프라 감독기관인 오시트란(Ositran: Organismo Supervisor de la Inversión en Infraestructura de Transporte de Uso Público)의 찬카이 항만 관할권을 배제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이 항만은 미중 각축의 쟁점으로 부상하였다.
코스코 측은 찬카이 항만이 민간 투자로 건설되었으며, 정부가 공공 인프라 운영권을 부여하는 양허(concession) 계약이 아닌 단순 행정 인가만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정부 양허 인프라를 감독하는 오시트란의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코스코의 논리였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페루 당국의 직접적 감독 권한이 제한되었다.
미국 국무부 서반구 담당국(Bureau of Western Hemisphere Affairs)은 "저렴한 중국 자금은 주권을 앗아간다(cheap Chinese money costs sovereignty)"는 성명을 통해 페루의 주권적 감독권 회복을 촉구하였으며, 주페루 미국 대사 나바로(Bernie Navarro)는 찬카이가 유사시 중국 해군의 동태평양 보급 거점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안보 우려를 공개적으로 제기하였다. 이에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허위 비방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반박하였고, 코스코는 항만이 페루 법령과 당국의 관할 하에 있다고 재차 확인하였다.
* 심수항(深水港): 수심 15m 이상의 대형 선박 접안이 가능한 항만으로, 일반 항만에 비해 대형 컨테이너선·벌크선의 입출항이 용이함
** TEU(Twenty-foot Equivalent Unit): 길이 20피트(약 6m) 표준 컨테이너 1개를 기준으로 한 컨테이너 처리량 단위. 연간 100만 TEU는 중규모 이상의 국제 허브 항만에 해당하는 처리 용량임
페루의 경제 구조와 대선 변수
페루는 10년 이상 중국을 최대 교역국으로 두고 있으며, 중국은 구리·철광석 등 핵심 수출품의 주요 수입국이다. 이러한 경제적 의존은 미국의 주권 압박에 정면으로 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페루 정부는 법원 판결에 대한 항소 방침을 밝히는 선에서 균형을 모색하고 있으며, 페루 경제계는 중국과의 교역·투자 관계가 단기간에 대체되기 어렵다는 현실적 인식을 바탕으로 대외 관계에 실용주의적 접근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26년 4월 12~13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 1라운드에서 우파 성향의 후지모리(Keiko Fujimori) 후보가 약 17%로 선두를 차지하였으며, 좌파 성향의 산체스(Roberto Sánchez)와 극우 성향의 로페스 알리아가(Rafael López Aliaga)가 2위 자리를 놓고 경합하였다. 행정 혼란과 부정선거 이의신청으로 개표가 지연되었으나, 상위 두 후보가 6월 7일 결선투표에 진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선 구도에 따라 찬카이 감독권 문제를 포함한 대외 정책 기조의 변화 여부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브라질: 전략적 자율성의 추구와 대중 관계 심화
미·브라질 관계의 구조적 긴장
트럼프 행정부의 대브라질 관세 정책은 2025년 단계적으로 강화되어, 동년 7월 브라질산 제품 전반에 대한 50% 관세 부과에 이르렀다. 미국은 공식 이유로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박해를 명시하는 한편, 브라질 연방대법원 판사 8명의 비자를 취소하고 알렉산드리 드 모라이스(Alexandre de Moraes) 대법관에 대한 마그니츠키법(Global Magnitsky Act)* 제재를 부과하는 등 사법부에 대한 제재 조치도 취하였다.
그러나 2026년 2월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 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에 근거한 관세 부과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상황이 변화하였다. 이로써 브라질의 대미 관세 부담은 13.6%포인트 감소하였으며, 실효 관세율은 약 36%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법 제122조(Section 122)를 근거로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고, 2026년 3월에는 무역법 제301조(Section 301)에 근거한 강제노동 관련 무역 조사 대상국에 브라질을 포함시키는 등 대체 법적 수단을 모색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미국의 압박이 브라질 국내 정치에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룰라(Luiz Inácio Lula da Silva) 대통령의 지지율은 2026년 들어 50%를 돌파하였으며, 보우소나루 핵심 지지층을 제외한 여야 정치세력이 주권 수호 명분 하에 결집하는 양상이 관찰되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관세 문제를 통상 현안과 별개의 사안으로 규정하는 한편, 미국과의 협상 채널은 유지하면서도 사법 주권 관련 사안에서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중 관계의 구조적 심화
미·브라질 관계의 마찰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은 브라질과의 교역·투자 관계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브라질은 원자재 수출 중심의 대중 관계를 고부가가치 분야로 확대하고 있다. 2025년 1분기 대중 제조업 수출 비중은 23%로 전년 동기 대비 6%포인트 증가하였다. 같은 해 8월 미국 관세 전면 시행 이후 브라질 수출업체들은 대미 물량을 중국 및 아시아 시장으로 전환하였으며, 8~12월 브라질 전체 수출의 37%를 중국이 차지하였다. BYD(비야디)의 바이아(Bahia) 주 카마사리(Camaçari) 전기차 공장은 2026년 말 완전 가동을 앞두고 있다.
다만 대두 수출의 76.6%가 중국으로 집중되는 현 구조는 단기적 수출 안정성을 제공하는 반면, 중국 경기 변동에 대한 취약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룰라 정부는 인도·EU 등과의 교역 다변화를 병행하고 있으나 단기적으로 중국을 대체할 시장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 마그니츠키법(Global Magnitsky Act): 인권 침해 및 부패 행위에 관여한 외국 개인·단체에 대해 미국 정부가 자산 동결 및 입국 금지 등의 제재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 미국 연방법으로, 2016년 제정됨
종합 분석 및 시사점
3개국 비교 정리
본 보고서에서 검토한 3개국의 사례는 미중 경쟁이 중남미에서 국가별로 상이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르헨티나는 안보·인프라 영역의 친미 노선과 통상 영역의 대중 실용주의를 병립시키고 있으며, 페루는 경제적 의존과 주권 압박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고 있다. 브라질은 전략적 자율성을 기조로 대중 관계를 심화하는 한편 미국과의 협상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 우루과이·멕시코 등 본 보고서의 분석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국가들 역시 유사한 독자 노선을 취하고 있어, 미중 양자 택일에 대한 역내 국가들의 소극적 저항은 개별 사례를 넘어 지역적 경향으로 관찰된다.
향후 변수
향후 주목할 변수는 세 가지이다. 첫째, 2026년 중남미 대선 사이클이다. 페루(4월), 브라질(10월)의 선거 결과에 따라 각국의 대외 정책 기조가 달라질 수 있으나, 대중 경제 의존 구조가 정치적 선택의 폭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아르헨티나 VNT 수로 입찰의 최종 낙찰 결과다. 2026년 5~6월로 예정된 발표는 밀레이 정부의 대미 약속 이행 수준을 가늠하는 첫 번째 실질적 기준점이 될 것이며, 역내 유사 인프라 입찰에 대한 선례로도 주목된다. 셋째, 미국 내 관세 법적 근거의 향방이다. IEEPA 위헌 판결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모색 중인 대체 법적 수단의 안정성 여부에 따라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압박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
구조적 함의
중남미 국가들이 직면한 공통 과제는 미중이 제공하는 협력의 내용과 조건이 상이한 데서 비롯된다. 중국은 인프라 자금과 안정적 원자재 수요를 제공하는 반면, 미국은 안보 협력과 금융 지원을 제공하되 정치·사법적 조건을 수반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역내 국가들의 정책 과제는 특정 강대국과의 편승보다는, 지정학적 경쟁이 재편하는 대외 환경 속에서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정책 자율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있다. 2026년 하반기 선거 결과와 주요 인프라 입찰 결과는 이에 대한 각국의 대응 방향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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