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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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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마라톤」속 미국과 중국

박한진 소속/직책 : KOTRA 중국사업단장 2015-04-16

중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은 언제나 이분법적이다. 한 쪽은 늘 중국이 비민주적 국가인 일당통치 국가로 여전히 인권 탄압국이며 비 시장 경제적 요소가 많은 국가로 세계적 국가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중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이라는 우려가 깃들여 있다. 또 다른 한 편은 중국은 나름대로 독특한 발전모델을 가지고 놀라운 성과를 이뤘으며 이제는 중국의 부상을 기정사실화하고 협력 파트너로서 중국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정신은 여전히 중국이 가장 역동적인 주체세력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초 미국에서「백년의 마라톤」(The Hundred-Year Marathon)이라는 책이 소개됐다. 부제는 ‘미국을 대체해 글로벌 슈퍼파워가 되기 위한 중국의 비밀전략’(China’s Secret Strategy to Replace America as the Global Superpower). 중국을 바라보는 미국 시각의 변화를 의미심장하게 제시하는 이 책의 요지는 이렇다. “중국은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 미국을 앞서 초강대국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미국이 모르고 있었지만 중국은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고 한다. 백 년 동안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백년의 마라톤」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다. 

 

저자 마이클 필스베리(Michael Pillsbury)는 보수성향의 싱크탱크인 허드슨 연구소 산하 중국전략센터(Center for Chinese Strategy, Hudson Institute)의 소장이다. 그는 여러 행정부를 거치며 백악관에서 대중국 정책과 안보분야를 담당해왔다. 미국 내 권위 있는 전략 분석가로 통한다. 미국에서 이 정도의 경력을 가진 사람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전 국무장관 등 소수이다. 필스베리 소장은 「백년의 마라톤」에서 미국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에 대해 품어온 다섯 가지 착각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첫 번째 착각. “미국은 대중국 포용정책을 펴면 미국과 중국이 완전한 협력관계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국제문제를 다루며 양국이 무역·기술 분야에서 합의점을 찾을 것으로 기대했다. 북한과 이란에 대한 핵사찰을 주도할 때는 중국의 지지를 기대했다. 하지만 모두 빗나갔다고 한다.
 

두 번째 착각은 “중국이 (서구식) 민주주의로 향할 것이라고 미국의 중국통들이 믿었다”는 것.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30여 년 간 많이 바뀌었지만 미국이 바라는 정치 시스템으로 가지 않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미국인들이 중국을 ‘연약한 꽃 한 송이’(fragile flower)로 보았다”는 것이 세 번째 착각이다. 중국 내 심각한 환경문제와 공무원 자질문제 등에 대해 미국은 물론 중국인 스스로도 취약성을 얘기할 정도로 취약해보였지만 중국은 여전히 건재하다. 필스베리는 또 가장 최근까지도 많은 미국인들이 중국계 미국인 변호사인 고든 창(Gordon G. Chang)이 「중국의 몰락」(The Coming Collapse of China, 2001)에서 주장한 것처럼 중국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착각에 오랫동안 빠져 있었다고 꼬집었다. 미국이 착각에 빠진 사이 중국은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경제규모를 두 배, 세 배 키워서 미국을 놀라게 했다.
 

네 번째 착각은 “중국이 미국처럼 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것. 미국은 세계 모든 국가가 미국처럼 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단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문제 처리 과정에서 그랬고 중국에 대해서도 그런 경향이 있다. 중국은 손자(孫子) 이후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계획을 직접 드러내지 않아 상대가 잘못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썼다고 필스베리는 지적했다.  이는 1980년대 이래 중국 대외정책의 핵심인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말한 것이다. 자신의 재능과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다. 중국이 급속히 팽창한 2010년대 이후에는 더 이상 도광양회의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주장도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중국은 여전히 도광양회의 시기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아직은 미국을 대체할 정도의 파워도, 그럴 의향도 갖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착각을 말하며 저자는 “중국인들이 절대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않겠다(China will never become a hegemon)고 한 말은 약속이 아니며, 잠행(stealth)” 이라고 주장했다.

 

필스베리의 주장들은 미국의 중국관이 오랫동안 잘못 되어 왔음을 지적한 자기반성적 발언이다.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많이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이며 이를 바탕으로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가 강한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백년의 마라톤」에서 나온 주장들은 그동안 미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중국관련 서적 혹은 전문가들의 주장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그럼에도 저자의 주장들은 곳곳에 문제점이 보인다. 필스베리는 “중국이 마오쩌둥 시대 이래로 미국을 속여 왔다(dupe)”고 했다. 이는 중국이 미국을 속였다 라기보다는 미국이 중국의 의도를 미리 감지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저자는 미국이 기대했던 민주주의가 중국 내에서 이행되지 않았다고 말해 미국의 착각을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서구식 민주주의의 중국 전파를 가치로 삼는 듯한 모습이다. 미국이 착각하는 부분에 대한 지적은 있지만 이를 어떻게 바로 잡을지에 대한 고민이 약해 보인다. 근본적으로는 현재의 권력 미국과 미래의 권력 중국이 경쟁이 아닌 협력 속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한 제안 제시가 부족해 아쉬움이 남는다.

 

필스베리의 시각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생각을 전환하고 있다는 암시로 보인다. 이제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우리의 전략방향을 잘 세우려면 미국이 중국을 어떻게 보는지, 중국이 미국을 어떻게 보는지 치밀하게 관찰하는 것도 빼 놓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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