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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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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정치·외교,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주요 이슈에 대한 동향을 정리하여 제공합니다.

<중국 인물 분석 시리즈> ②-1 習近平의 幕僚들

강준영 소속/직책 :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학대학원 교수 2015-07-27

■  시진핑의 策士 그룹

 

중국의 어떤 자료에서도 최고지도자 시진핑을 보좌하는 막료 그룹이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설사 막료 그룹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들과 시진핑과의 관계 그리고 이 그룹 내부의 상호 관계 추적은 더욱 쉽지 않다. 
본고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적어도 2012년 18차 당 대회 이후 지도자로 등극한 시진핑이 초기 6개월간의 적응기를 거쳐 막후 정책 보좌 그룹을 형성하고 있음에 주목해 이들과 시진핑과의 관계, 정책 성향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향후 중국의 정책 흐름을 전망해보고자 한다. 
 

현재 시진핑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핵심 막료는 모두 8명으로 파악된다. 기존 후진타오(胡錦濤)지도부에서도 강력한 막후 책사 역할을 했던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왕후닝(王滬寧) 외에 7명의 새로운 책사들이 시진핑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책사 그룹 중 지위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중앙판공청 주임 리잔수(栗戰書), 당 총서기 판공실 주임 띵쉐샹(丁薛祥), 복건성 선전부부장 리수레이(李書磊), 반부패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중앙당교 상무부교장 허이팅(何毅亭), ‘신창타이(新常態)’라는 용어의 창시자인 국가발전위원회 당조 부서기 리우허(劉鶴), 중앙군사위원회판공실 주임 중자오쥔(鐘紹軍), ‘시진핑 주석의 비서’로 소개되는 외교 책사 주궈펑(朱國鋒)이 그들이다.


■  시진핑과 8인의 막료들

 

- 중앙판공청 주임 리잔수(栗戰書)

ㅇ 시진핑과의 인연 : 1950년 허베이 핑산(河北平山) 출신. 1983년 시진핑이 하북성 정딩(正定) 현 서기를 지내던 시절, 리잔수는 인접 현인 우지(無極)현의 서기로서 친분을 쌓아왔다. 둘 모두 혁명가 집안 출신으로 문혁 때 하방 당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공식적 직위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시진핑의 막료 그룹 중 지위가 가장 높다. 특히 국가주석의 비서실장 격인 중앙판공청 주임으로는 최초로 헤이룽장(黑龍江)성 성장과 산시(山西)성 부서기를 거쳐 구이저우(貴州)성 서기를 역임한 지방 관료 출신이다. 1986년 허베이(河北)성 공청단 서기를 거쳐 2012년 7월에 이미 당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차세대 지도자로 거의 결정된 시진핑에 의해 중앙판공청 부주임으로 등용되어 당시 주임이었던 링지화(令計劃)의 업무를 인수하기 시작했고 12월에 중앙판공청 주임에 취임한다. 나중에 링지화가 부패관료로 척결될 때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30여년의 공직 생활을 당, 정, 공청단을 두루 거치고 중앙으로 진출한 인물로 중앙관리의 경력의 모범으로 인정받고 있다.

 

ㅇ 정책 성향과 장점:  한국의 대통령실에 해당하는 중앙판공청은 당 중앙의 문건 작성 관리, 중앙 중요 공작부서의 업무 검사, 전국 당정 조직의 비밀 통신과 비밀 관리, 중앙 주요 기관에 대한 정보 수집, 영도자 경호 등으로 국가 경영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장악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중국 권력의 중추로 통한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직무는 ‘중국공산당의 기밀을 총괄’하는 지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지방 관료 출신으로 중앙 권력 투쟁의 온상인 지방 분파주의적 색채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각 세력 간의 균형과 조화를 꾀하는 역할을 주문받고 있다. 현 중국 정치 세력 간의 복잡한 국면을 가장 잘 조절할 수 인물로 시진핑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다. 특히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조용하게 실무를 처리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시진핑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할 것으로 보인다.  

 

- 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왕후닝(王滬寧)

ㅇ 시진핑과의 인연 : 1955년 상하이 출신.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의 국제관계학과 교수 출신의 학자다. 본래 장쩌민 집권시절 당시 상해그룹의 대부로 불리던 쩡칭홍(曾庆红)에 의해 발탁되어 1995년 당 직속기구인 중앙정책연구실 정치조장으로 중앙에 데뷔한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98년 부주임을 거쳐 2002년부터 13년간 주임을 맡고 있다. 시진핑 집권 이후 당의 일상업무를 관장하는 당 중앙서기처 서기를 맡으면서 정치국원으로 중국 정치무대의 핵심에 진입해 있다. 장쩌민, 후진타오를 거쳐 시진핑 시대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학자 관료로 중국의 주요 정책을 디자인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리잔수와 더불어 시진핑의 해외방문을 빠짐없이 수행할 정도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ㅇ 정책 성향과 장점 : 중국 신보수주의의 대부, 중국 공산당의 ‘제갈공명’으로도 불리는 그는 중국의 부상에 걸맞은 국제지위 확보를 위한 그랜드 디자인에 주력하면서 외교전략 수립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즉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을 정책적 입안을 통해 구현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일찍이 장쩌민 시대에는 무산계급 정당 중국공산당의 체질 변화를 선도하는 ‘3개 대표론’을 제시하고, 후진타오시기에는 균형발전을 위한  ‘과학적 발전관’과 ‘조화사회론’을 제기했다. 시진핑 지도부에서는 ‘中國夢(중국의 꿈)’ 이라는 청사진과 함께 새로운 발전전략인 신실크로드 경제벨트와 해상 실크로드를 추진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입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치적 야심이 없는 정책 전문 학자 관료로 시진핑 지도부에서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 중앙판공실 부주임 겸 당 총서기 판공실 주임 띵쉐샹(丁薛祥)

ㅇ 시진핑과의 인연 : 1962년 장쑤(江蘇)성 난퉁(南通) 출생. 1982년 상하이시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후 30년간 상하이를 떠나지 않았던 띵쉐샹은 시 주석이 2007년 상하이 당서기 시절 판공청 주임(비서실장)을 지냈다. 본래 띵 주임은 2006년 부패 혐의로 실각한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 서기의 인맥으로 당시 당 조직부 부부장을 맡고 있었다. 천이 후진타오와의 권력 투쟁에 밀려 낙마하자 당시 상하이 서기로 부임한 시진핑을 도와 1년 만에 상하이 여론 수습과 행정 정상화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천량위 사태 수습에 정치적 명운을 걸었던 시진핑의 입장에서 띵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8년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한 시진핑은 띵을 ‘국가의 탁월한 인재’라며 중용을 예고했으며 시진핑 이후 상해시 당서기간 된 위정성(兪正聲)에게도 능력을 인정받게 되자 시는 그를 중앙판공청 부주임 겸 당 총서기 판공실 주임에 중용됐으며 향후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ㅇ 정책 성향과 장점 : 기본적으로 시진핑이 좋아하는 자신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과 성실하고 강력한 업무처리 능력을 보유한 대표적 인물의 하나로 꼽힌다. 특히 천량위· 시진핑· 위정성(兪正聲)· 한정(韓正) 등 네 명의 서기를 측근에서 보좌하면서 주변과 불협화음을 조장하지 않은 장점이 시진핑으로부터 크게 인정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원래 띵은 현재의 예산대학(燕山大学)의 전신인 동북중형기계대학(东北重型机械学院) 출신으로 기계공업 엔지니어답게 상하이재료연구소 소장에서 상해과학기술위원회부주임으로 정계에 입문한 테크노크라트로 볼 수 있다. 

 

- 푸젠(福建)성 상무위원 겸 선전부장, 북경대 神童 리수레이(李書磊)

 ㅇ 시진핑과의 인연: 1964년 출생. 14세 때 북경대에 입학해 25세에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 베이따(北大) 신동으로 불린다. 과거 20여 년 간 중앙당교에서 문학을 연구했으며 시안(西安)시 부서기를 맡기도 했다. 이때 시진핑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시진핑은 중앙당교 교장이 되자 리수레이를 부교장으로 발탁했다. 시진핑의 ‘펜’으로 불리며 실제로 시진핑이 중앙당교 교장시절 대외 강연 원고나 정책 원고를 도맡아 집필해 시진핑의 문예정책과 문화정책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1980-90년대 중국문학계에서 고전문학과 당대문학 그리고 문예 비평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 대표적 이론가형 학자로 꼽힌다. 향후 시진핑 지도부에서 왕후닝과 같은 학자형 관료로 문화 및 문예 정책 분야에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ㅇ 정책 성향과 장점 : 대표적 이론가형 학자 관료인 리수레이는 행정 경험이 일천하다. 2014년 2월, 시 주석은 리수레이를 푸젠성으로 내려 보내 성 공산당 위원회 상무위원과 성의 선전부장을 겸직하도록 했다. 이미 리수레이는 각종 신문과 잡지에 자신의 칼럼을 게재하면서 일정한 현실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나 시주석은 자신이 오랫동안 행정 경험을 쌓고 정치적 입지를 다졌던 푸지엔(福建)성에 그를 파견해 이론가형 학자에서 중국의 현실을 경험하는 정치적 경력을 쌓아주려는 일종의 배려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50세에 불과하므로 19차 당대표대회에서의 커다란 약진이 기대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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