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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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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문제와 중국역할론

이희옥 소속/직책 :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겸 성균중국연구소 소장 2016-02-17

북한이 연초에 제4차 핵실험을 하고 뒤이어 2월 7일 장거리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로켓을 발사했다. 북한의 이러한 도발행위는 동북아 안보지형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국제사회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중심으로 강력한 대북제재를 추진했고 한·미양국은 북한의 안보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응의 일환으로 사드(THAAD) 배치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으며, 한국은 독자제재의 일환으로 개성공단 운영을 전면적으로 중단하는 강수를 두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역할론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왜냐하면 제3자 제재(secondary boycotts)를 포함한 모든 제재의 성패는 북한의 후원(後苑)인 중국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도 고민에 빠졌다. 무엇보다 북한을 보는 중국국민들의 냉랭한 시선이 있고 중국정부도 책임대국의 일환으로 국제사회의 규범을 마냥 피할 수 없으며, 한반도 안정을 통해 자국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중국은 북한의 제4차 핵실험을 강력히 규탄하는 한편 유엔안보리의 보다 강화된 제재결의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북한의 로켓발사에는 공식성명을 내지 않는 등 중국식 해법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와는 달리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6자회담의 복귀와 제재의 근본적 목표를 대화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한·미의 사드배치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북핵문제의 뿌리가 북한과 미국에 있다는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것은 도발과 협상을 반복하면서 핵능력을 고도화하는 북한의 패턴을 끊기 위해 끝장결의(terminating resolution)가 필요하고 이것만이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한·미·일의 인식과 결을 달리하는 부분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에서는 중국역할론을 회의하는 시각이 나타났다. 실제로 북핵 실험 이후 약 한 달 만에 한중 정상이 전화통화를 했지만, 해결방식에 대한 컨센서스를 찾지 못했고 국방부 사이의 핫라인은 불통이었다. 그 결과 한국은 점차 한·미 군사동맹의 틀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기 시작했고 서방과 함께 독자제재를 추진하면서 중국·러시아와 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 결과 북한을 둘러싸고 한·미·일 대 중·러가 대립하는 새로운 냉전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한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중국역할론이 한계를 보인 것은 중국의 한반도정책에 대한 인식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부상한 중국은 점차 미중관계와 동북아 세력균형의 차원에서 한반도 문제를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미 자국의 핵심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과의 중첩(intersection)도 불사하는 등 규범경쟁과 제도경쟁이 강화되고 있다. 중국이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창설한 것이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확장하겠다는 구상은 이러한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일환이다. 이것은 향후 중국외교가 미국의 질서에 그대로 순응하지 않을 것이며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지금과 같은 인식틀을 유지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는 박근혜 정부와 유사한 시기에 출범한 시진핑 정부의 개인적 신뢰를 고려할 때 의외의 상황이다. 사실 한·중 양국은 기존의 양자관계를 가장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2015년 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했고 미국 등의 묵시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에 가입했으며 중국의 전승기념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성루에 오르는 외교적 신호를 발신하면서 정책적 신뢰를 쌓기도 했다. 그 결과 한중양국은 국제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책임공동체,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이익공동체, 상위정치(high politics)의 토대를 튼튼히 하는 인문공동체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제4차 북핵 실험을 대하는 중국의 건조한 태도나 제재국면을 사드배치 국면으로 프레임을 이전시키는 중국의 행동에 대한 실망감은 한국으로서는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중관계의 실체적 위상과 중국의 한반도를 보는 눈을 다시 점검하면서 한국적 대응방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한·중간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양자 갈등의 요소는 많지 않다. 오히려 한중관계를 어렵게 하는 요소는 외부요인이 개입하면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한미동맹에 대한 중국의 인식 변화가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태도는 남북관계가 개선되거나 한중관계가 안정적일 경우에는 수면위로 등장하지 않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한다. 중국은 지난해 말 한·일간 위안부문제 타결에 대해서도 한·미·일 안보협력의 틀을 구축하는 계기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제4차 북핵 실험 이후 한국이 사드배치를 공식화하자 주중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한 것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즉 중국은 한미동맹의 진화가 미국의 대중국 견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예민하게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상황전개가 중국의 이해와 합치되지 않을 경우에는 다른 형태의 압력으로 나타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또 하나는 북핵문제와 북한문제이다. 물론 중국내에서 북핵문제에 대한 동정적 여론은 크게 약화되었다. 이것은 동북지역을 중심으로 핵안전(safety)에 대한 우려가 있고, 궤도를 이탈해 온 김정은 체제에 대한 피로도가 높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원칙을 견지하고 있고 북핵을 현실적으로 인정할 가능성도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북핵문제 해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에서 북핵과 북한문제를 분리해 왔고 전략물자를 제외한 정상적 교류와 인도적 지원도 지속해 왔다. 유엔 안보리 제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북·중교역이 안정적으로 발전했던 저간의 사정은 이러한 중국의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즉 중국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신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를 다시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차이이다. 중국의 그동안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해 원론적이고 공식적으로 지지(stated supporting)해 왔다. 그러나 중국은 한반도 통일의 방식이 자주적,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대화, 신뢰, 협상에 근거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런 점에서 중국이 한국정부의 통일정책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소극적이거나 반응적이었다. 사실 중국이 생각하는 한반도 통일의 이상형은 북·중간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북한경제가 발전하여 붕괴의 위험이 줄어들고, 남북이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이 비핵·개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한편 북한체제의 안정을 해치는 서방의 과도한 제재를 반대하면서 통일을 장기플랜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점차 균형이 약화(eroding balance)되는 동북아에서 이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은 향후 10년이다. 미·중 양국은 이 유동적인 상황에서 세계적, 지역적 수준에서 경쟁과 협력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의미 있는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미중관계의 종속변수로 전락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제4차 북핵 국면도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에 참여하는 행위자들의 이해공모(collusion of interests)에 따라 굴절될 것이다. 현상과 본질을 구분해 내고,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분리해 내며, 의도적 오독(misreading)이라는 프레임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혜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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