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변혁중인 미중관계와 브렉시트

김흥규 소속/직책 :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겸 아주대학교 중국정책연구소 소장 2016-07-06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전후 안보·경제 질서가 심각한 변혁의 압력을 받고 있다. 미중 간 경제력의 역전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시점의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의 분석으로는 경제력 역전은 2020년대 말에 이뤄지고, 군사비의 역전현상은 2040년대 중반이후로 예상된다. 따라서 미국은 향후 적어도 10여년은 대중 절대 우위의 상황에서 이를 최대한 활용하여 중국을 압박하고 자국에 유리한 국제질서와 제도의 조정 유도하려 할 것이다. 이는 곧 차기 10년 동안 미중 간의 갈등이 보다 첨예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미중은 향후 국제 제도, 규범, 원칙의 설정을 놓고 중-장기간 갈등하고 경쟁하는 시기의 초입(初入)에 들어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중국은 시진핑 시기 들어 강대국으로 자아 정체성이 변화하면서 후진타오 시기의 도광양회 전략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분발유위적인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중국은 외교안보 부문에서 향후 보다 적극적으로 전략적 공간들을 확보하고 자국의 이익에 맞는 국제질서의 조정을 추동하려 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경제 분야에서 New Development Bank(NDB), Contingent Reserve Arrangement(CRA), AIIB 등을 잇달아 설립하면서, 기존 World Bank, IMF, ADB 등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국제사회에 제기되고 있다. 외교안보 영역에서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으로 대변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제 역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2015년 9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과 서방권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북경에서 개최된 제2차 세계대전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그 한 예이다.

미국은 차기 행정부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던 중국을 압박할 절호의 시기로 판단하고, 향후 아태 재균형 전략을 더욱 강화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과 신아세아 안보구상으로 이에 대응하려 할 것이다. 단, 상호 간에 직접적인 무력 충돌은 회피하려 할 것이다. 이는 21세기 미중관계는 정보화와 세계화의 영향으로 상호의존성 및 취약성이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또 군사적으로도 미중은 어느 한 나라가 일방적이고 독점적인 우위를 추구하기에는 점차 어려운 구조적 상황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국은 이미 실재하는 초강대국(Superpower)으로 정면 대결은 양패구상(兩敗俱傷)이다.

다만, 보다 분명해지는 것은 미국이 점차 기존의 제도와 방식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의 대선국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클린턴과 트럼프의 논쟁을 이해하면 보다 분명해진다. 두 후보자 사이에 다양한 차이점들이 보이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두 후보 모두 환태평양동반자 협정(TPP) 체결에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미국 중심의 역내 외교안보협력의 경제적 기반이 시작도 되기 전에 크게 약화될 전망이다. 보호무역주의적인 색채가 강화되고 있는 국내 정치적인 고려 때문이다. TPP는 그간 오바마 대통령이 그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태 재균형 전략과 더불어 추진한 핵심적인 정책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 아태 재균형 정책의 핵심적인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고 있고, 이는 중기적으로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 추진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개연성이 커진다는 의미이다.

최근 미중 관계에 또 다른 중대 변수가 발생하였다. 최근 영국 투표자의 다수는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애서 지지표를 던진 것이다. 아마도 브렉시트를 추진한 영국의 정치인들도, 이에 찬성한 지지자들도 자신들의 태도와 노력이 기존 국제정치 질서와 자신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지 그 결과를 충분히 상상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이는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라 할 수 있는 미중관계는 물론 한반도 및 한국의 명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브렉시트로 인해 현 국제질서를 유지했던 미국과 서구 유럽의 동맹구조가 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그간 미국의 헤게모니는 서구 유럽 국가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유지되어 왔고, 그 핵심에는 영미동맹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국이 중국의 도전에 응전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전제도 이러한 미국과 서구 유럽의 동맹구조가 있기에 가능했다. EU에서 미국의 입장을 대변해주던 영국의 탈퇴는 미국의 EU내 영향력을 급속히 약화시킬 수 있다. 영국이 부재한 EU에서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지도국들은 미국에 그리 고분고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프랑스의 대외정책은 전통적으로 대미 독립적이고 독일은 발 빠르게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면서, 러시아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유럽의 군사조직인 나토의 약화가능성도 점쳐진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야기된 대러시아 연합 제재전선도 예전만 같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번 달 들어 이미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 이러한 예기치 않았던 변화는 미국의 세계적 지도력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미국은 이제 아태로의 재균형 전략보다 당장 큰 불이 난 서유럽으로의 회귀가 더 시급해졌다. 아태지역은 이제 새로운 권력공백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국은 아마도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하여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형성에 박차를 가하려 할 것이다. 북한은 핵을 개발할 더욱 자유로운 공간과 시간을 벌게 될 것이다. 그 결과로 동아시아에서의 안보와 경제 전망은 더욱 불확실해졌다. 상황이 긴박할수록 상호 간 대응의 예측 가능성은 더 떨어지고, 합당한 정책의 배열보다는 보다 극단적인 정책 추진의 유혹을 더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은 더 이상 추진할 수 없을 것이다. 안보와 경제문제는 이미 밀접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강화되고 미국이 애틀랜타로 회귀하는 상황에서 사드를 도입하면서 중국이 주도하는 AIIB 투자 사업에서 한국의 지분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 중심의 현 대북 제재 체제를 강화하는 것도 어렵게 되고 있다. 이를 추진하고자 하는 한국의 외교비용은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한중 관계는 내상을 입고 있고,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할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미중 전략경쟁의 구도를 넘어서서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상황을 주도할 역량을 갖추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래저래 진퇴양난이다.

역사적 결과는 항상 일반적인 전망과는 반대의 경우를 초래하는 경향이 존재하여, 지나친 낙관론은 항상 금물이다. 역사를 겸허하고 신중하게 조망하면서 미중 관계에서 합리적 전망과 비관적 예측 사이에서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번 브렉시트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역사는 참으로 의도하지 않게 우연적인 사건들에 의해 너무나 중요한 상황들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역사가 반드시 진보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 보면 한국, 남북관계, 한반도의 운명도 그리 낙관할 일은 아니라는 점을 이 시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중장기적으로 그리고 통일을 고려할 때, 주변 특정 강대국과 대립하는 일변도 전략보다는 모든 강대국과 적어도 적대시하지 않은 전략을 택해야 한다. 또한 중견국가로서 우리 외교의 돌파구는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를 강화하는 것일 것이다. 남북한 간 상호 존재 인정과 평화공존의 원칙에 기반한 과감한 대북 접근과 주변국 설득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한국의 대북 유화정책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도 금물이다. 북한은 현재 정세에서 시간과 기회는 자신의 편이라 생각할 개연성이 크고, 동시에 내부적인 권력문제로 인해 한국과 급속한 관계 개선도 꺼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개선은 미중 전략 경쟁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점차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가 되고 있다. 북핵에 대비한 보다 자주적인 대응 및 국방역량의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내부적인 체질개선과 경제발전을 지속할 역량을 확충하면서 남북한 간의 장기적인 경쟁 상황에도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게시글 이동
이전글 이전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다음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