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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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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를 통해 본 중국 주변외교의 ‘정∙경분리’ 딜레마

순웨이(孫威) 소속/직책 :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거시경제연구원 과학연구관리부(國家發改委宏觀經濟研究院科研管理部) 부연구원 2016-09-05

 

2016년 7월 8일 한국 정부가 돌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일명 ‘사드(THAAD)’의 자국 내 배치를 선언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즉각 성명을 통해 강력한 불만과 반대 의지를 표명한 뒤 한·미 양국에 지역 정세를 복잡하게 만들고 중국의 전략 안보 이익을 해치는 행동을 삼가라며 사드 배치 추진 중단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한국 국방부가 7월 13일 사드 배치 부지 선정 결과를 발표하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자국 이익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월 11일 국회 청문회에서 “중국은 사드 문제에 대해 ‘정∙경분리’의 입장을 보일 것이며, 경제적 보복을 취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2014년 다보스포럼에서 당시 일본 니시무라 야스토시 내각부 부(副)대신이 중·일, 한·일 간 ‘정∙경분리’가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논조와 꼭 닮은 모양새다. 중국 주변외교는 언제부터인가 이처럼 ‘정∙경분리’라는 딜레마에 빠진 듯하다.

2016년 세계 경제는 내내 암담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불확실성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20일 금년도와 내년도 경제성장 전망을 올해 들어 네 번째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1월 전망치에 비해 각각 0.3%p와 0.2%p가 하락해 3.1%와 3.4% 저점을 기록했다. 세계 주요 경제국들에 대한 성장 전망 역시 대체로 비관적이었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성장 전망만은 유일하게 1월 대비 6.3%와 6.0%에서 6.6%와 6.2%로 상향 조정됐다. 중국의 관련 전문가들은 중국의 경제성장 전망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세계 주요 경제국들 가운데 나홀로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오는 9월 중국은 처음으로 자국에서 개최되는 세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혁신, 활력, 연계, 포용적인 세계경제 건설’과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전개되는 전세계 경제 공조 분위기 지속, 세계 경제의 미래에 대한 방향 모색을 각국에 주문할 예정이다.

그런데 때마침 중국을 둘러싼 주변 지역에서는 역내 긴장 국면을 불러오는 중대한 군사·안보· 정치적 사건들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6월 중순 중·일 군용기가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에서 ‘대치’한 사건이나 7월 8일 한·미의 사드 배치 결정, 7월 12일 남중국해 중재안 판결 등이  파장이 큰 이슈들이었다. 이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당사국들은 모두 중국 경제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나라들로서 정치적 관계의 급랭과 이들 각국이 떠들썩하게 추진하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은 상당한 엇박자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를 포장하고 있는 논리는 바로 ‘정∙경분리’이다.

 ‘정∙경분리’는 ‘정치는 정치, 경제는 경제’라는 것이다. 즉 양국 간 정치·안보 분쟁이 경제 관계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는데, 사실상 이러한 논리에는 ‘경제는 중국에, 안보는 미국에’라는 일부 주변 국가들의 전략적 선택이 반영되어 있다. 중국의 부상으로 주변 지역의 전략적 균형이 깨질까 우려해 ‘역외 균형자(off-shore balancer)’ 역할을 하는 미국의 힘을 빌리기를 바라면서도, 자국의 경제 이득을 위해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잃고 싶지 않아 하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실상은 기회주의, 모험주의, 위기의식이 뒤섞인 ‘모순’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일부 국가들이 취하고 있는 ‘정∙경분리’ 정책 논리의 전제는 중국에 대한 높은 경제의존도이다. 필리핀의 경우를 살펴보자. 2015년 중국은 필리핀의 2대 무역파트너로서 필리핀의 전체 무역액 가운데 중-필리핀 간 무역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였다. 앞서 2011년에는 30%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던 적도 있다. 일본의 경우, 중국은 최대 무역파트너이면서 2대 수출대상국이자 최대 수입대상국이며, 일본의 전체 대외무역액에서 대중 무역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1%이다. 한국에게도 중국은 최대 무역파트너이자 수출시장, 수입대상국, 대외투자대상국이다. 한국의 전체 수출입총액에서 대중 무역액 비중은 23% 가량을 차지하며 한국 수출의 4분의 1 이상이 중국으로 향한다. 한국의 전체 무역액 가운데 대중무역 흑자는 50%를 넘어서고, 한국에서 경제구조조정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까지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중요한 동력은 바로 대중 수출이었다.

중·일, 중·필리핀은 영유권 분쟁으로 인해 오랫동안 정치적 갈등을 겪어왔다손치더라도 한·중 간에는 별다른 갈등의 조짐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작년은 한·중 간 정치경제 관계 발전에 ‘최고 방점’을 찍은 화려한 한 해였다. 양국은 20년이 넘는 한·중 관계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 성과를 되새겼다. 양국 관계는 1992년 수교 이래 2003년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고 다시 2015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욱 내실화하면서 양국 차원에서는 ‘공동 발전의 동반자’, 역내 협력 차원에서는 ‘역내 평화를 위한 동반자’, 통상 차원에서는 ‘함께 아시아를 부흥시키는 동반자’, 국제적 차원에서는 ‘세계 번영을 촉진하는 동반자’가 되기 위해 힘써 왔다.

한·중 고위급 인사들의 상호 교류도 빈번하게 이뤄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9월 3일에 거행된 중국의 열병식에 참석했고 리커창 총리도 한국을 방문했다. G20과 APEC, 한·중·일 3국 정상회의 등에서도 여러 차례 고위급 회담이 성사됐고 양국은 과거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접촉했다. 한국은 중국의 호의를 받아들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했고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양국은 또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과 한국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연계에 합의했다. 한·중 FTA가 공식 발효되면서 양국 경제협력은 FTA 시대로 들어섰고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유럽, 미국, 중국 등 3대 시장과 동시에 FTA를 체결하며 세계 2위의 ‘FTA 경제 영토’를 보유한 나라로 등극했다.  모두 한·중 정치경제 관계가 나날이 활기를 띠며 발전하고 있다는 모습을 방증하는 사례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는 사드 배치 발표를 전후해 누차 강경한 언사를 쏟아냈다. 우리는 그 언사들을 통해 중국의 주변 정세가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는 시점에 한·미 양국이 돌연 사드 배치를 결정함으로써 한·중 관계에 변수가 찾아올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 국가의 대외 교류에서 정치와 경제는 언제나 상호 영향을 미친다. 현실 세계에서 외교란 사실상 국내외의 다층적 힘겨루기 과정과 이해득실을 따진 후 드러난 결과나 마찬가지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 군사적 이익집단 모두가 이런 힘겨루기의 참여자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정∙경분리’ 정책은 종종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2012년 말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일본은 ‘정∙경분리’를 대중 외교의 주요 정책수단으로 삼아 댜오위다오 등의 영토 문제에서는 중국의 정책 마지노선에 도전장을 내미는 한편, 엔화의 평가절하를 통한 대중 수출 증대를 위해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는 적극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2012년 이후 중·일 간 수출입무역 총액은 연속 4년 하락세를 보이며 결국 ‘정∙경분리’의 경제적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그 원인을 분석해 보면 글로벌 경기 침체 외에도 정치적 관계 악화와 이로 인한 경제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일본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천명하지는 않았지만 양국의 정치 관계 악화 탓에 민간에서는 자발적인 ‘무역전쟁’이 벌어지며 일본의 가전, 자동차, 전자기기 등 기존 중국 시장에서 우위를 점해 왔던 제품들의 매출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쳤다.

2012년 황옌다오(黃巖島·스카보러섬) 사건이 발생하자 중국은 정책적으로 일부 경제적 수단을 사용했다. 자국민의 필리핀 여행을 중단시키고 필리핀에 대한 수출 농산품 검역을 강화했으며 필리핀으로부터 바나나 수입을 직접적으로 금지하기까지 했다. 과거 일부 서방 국가가 정치적 문제를 두고 중국의 국가적 이익을 침해할 때는 ‘경제 냉각화’와 유사한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사드 배치 발표 이후 한국의 일부 학자들까지 비슷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아주대학교 중국정책연구소 김흥규 소장은 최근 한 보고서에서 비관세장벽 강화나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 여행객 수 감소 등 중국의 경제보복 조치를 예측하기도 했다.

이 글에서 현재 중국과 필리핀, 일본, 한국 사이에 존재하는 정치 안보상의 갈등이나 의견 불일치를 유형화해 비교할 의도는 없다. 일단 세 나라 간 사건의 성격과 영향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사건이 터진 시점은 놀랍게도 일치한다. 동시에 세 나라는 중국 경제에 대해 모두 유사한 정도의 의존도를 지니고 있고 약속이나 한 듯 ‘정∙경분리’를 정책적 수단으로 채택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적인 국가들 간에 중대하면서도 부정적인 정치적 사건이 갑작스레 발생한 것이 더 이상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의미하는 듯하다. 또한 경제적 이익을 기반으로 형성된 국가 간 의존 관계는 정치 또는 군사 관계만큼 견고하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한다고 해서 정치 안보적 상호 신뢰가 생겨나지는 않는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현재 중국 주변외교가 겪고 있는 ‘정∙경분리’의 딜레마이다.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온 시기 국가 간 긴밀한 경제 관계의 구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쉽게 깨질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 관계는 종종 한 나라의 생사가 달린 정치·안보적 이익에 의해 뒤로 밀려나기도 한다. 향후 주변 국가와의 긴밀한 경제 관계를 어떻게 하면 일정 수준의 정치· 안보적 상호 신뢰로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냐가 한동안 중국 주변외교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앞으로 중국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변 국가와 ‘이익 공동체’를 기반으로, ‘책임 공동체’의 각도에서 역내 평화와 안정이라는 책임을 공동 부담하고 ‘운명 공동체’의 시각으로 역내 공동 이익과 공동 가치를 추구해야만 일부 국가에서 들고 나오는 ‘정∙경분리’라는 대중 외교정책의 논리를 타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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