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주요 이슈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 및 제언이 담긴 칼럼을 제공합니다.

북핵문제 대응: ‘중국역할’의 재검토, ‘한국역할’의 모색

이동률 소속/직책 :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2016-11-08

한국 정부는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그 어느 때보다도 신속하게 미국, 일본 정상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한미일 3각 공조 의지를 분명하게 과시했다. 4차 핵실험직후에 중국과의 협력에 방점을 두었던 대응방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정부가 5차 핵실험이후에 중국역할에 대한 기대를 적극적으로 표출하지 않는 배경에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 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문제로 경색된 한중관계의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오히려 막연하게 기대해 왔던 북핵문제에 대한 소위 ‘중국역할론’을 냉철하게 재검토하고 논의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중수교 이후 지난 24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한국은 지속적으로 중국역할에 대한 기대를 배경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과의 협력을 시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비핵화라는 목표에 근접하기 보다는 오히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고도화된 결과를 초래했다. 결과적으로 한중간의 북핵 대응 공조는 성공적이지 못했고, ‘중국역할’에 대한 기대 역시 실현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어 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대두되기에 충분해 보이는 상황이다. 북핵문제의 중국역할에 대해 이제는 냉정하게 재검토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역할에 대한 재검토는 그 현실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재검토 논의가 중국역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과는 구별될 필요가 있다. 즉 중국이 우리가 기대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 것과 실제 역할 능력의 존재 여부는 구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국을 경유하는 북핵 대응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뚜렷한 방법이 사실상 제시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결국 중국역할 부정론은 한미일 3국간 대북 압박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한미일 3국간 공조만으로는 북핵 해결은 물론이도 북한 제재의 효과도 충분히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해왔다.

실제로 중국역할에 대한 재검토 논의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에서의 ‘중국역할’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다.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북한에 대한 채널과 수단을 많이 보유한 국가가 중국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예컨대 중국이 북한에 제공하는 원유 공급을 차단한다면 그 어떤 유엔 제재안보다도 효과가 클 것이라는 희망적 기대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오히려 ‘중국역할’에 대한 한국의 기대와 요구가 충분히 전략적이고 적합한 것이었는지를 성찰하는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한국은 지난 20여 년 동안 결국 실현되지 못한 중국역할에 대한 기대와 요구를 지속해왔던 것이다. 한국이 ‘기대한 중국역할’을 이끌어 내지 못한 것은 한국이 기대하는 것, 중국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중국이 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구분해내지 못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 충분치 않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중국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읽어 내고 그 범위에서 우리의 기대와 요구를 재설정하고 그에 적합한 최대치의 중국역할을 견인해내고자 하는 지혜와 전략이 필요하다.

5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공식 반응은 4차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은 북핵에 반대하고 비핵화에 대한 입장도 확고하며 유엔 안보리 결의 준수를 강조하여 제재에 대한 의지도 강도 높게 표명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6자회담을 해법으로 제시하여 제재보다는 대화가 해결책이라는 기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거듭된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중국측의 공식 해법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북핵문제에 대한 기본 인식이 한국 정부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중국에게 한반도는 현상유지를 통한 안정 유지의 대상인 동시에 부상 실현과정에서 중요한 지정학적 영향력 확보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의 북핵문제에 대한 대응도 이러한 기본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중국은 5차 북핵 실험에도 여전히 ‘한반도의 안정’ 확보에 방점을 두고 있다. 중국은 북핵에 반대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복잡하게 만드는 행위’를 자제 할 것을 관련 당사국에게 요구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현재 2기 시진핑체제 준비, 경제문제 등 내부적으로 산적한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남중국해에서의 갈등도 고조되고 있어 동북아 지역에서는 저비용의 안정적인 주변 환경 유지가 매우 중요한 우선 외교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장기적 과제로 판단하고 있는 북핵문제 해결보다는 우선적으로 ‘북한발’ 안보 불안을 조속히 진정시키고 최소화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사실 한국과의 수교이후에도 남북한 사이에서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려는 정책기조를 지속해왔다. 이를 통해 중국은 한반도에서 남북한과 동시에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강국으로서의 유리한 입지를 유지, 확대하고자 했다. 시진핑 정부는 이례적으로 한국에 경사된 외교를 통해 한반도 정책 목표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탄도탄 발사로 인해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또한 사드 배치 등 미일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어 중국이 추구하는 한반도의 안정유지와 영향력 확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놓칠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역내에서 미국과의 ‘편가르기식 영향력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중국은 대북제재에 참여는 하겠지만 그로 인해 김정은 체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북한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것은 여전히 경계하고 있다. 중국이 제재의 목적은 대화 재개에 있다는 점을 역설하는 이면에는 한국과 미국의 제재 목적이 자국과는 상이할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한국과 미국은 북핵 폐기를 위한 제재과정을 통해 북한 김정은 정권의 교체도 불사할 수 있다고 중국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이러한 의구심을 갖고 있는 한 원유 차단과 같은 실효성 있는 전격적인 대북제재 이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결연히 반대 한다’고 하지만 북한 정권의 중국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공개적 맞대응은 여전히 자제하고 있다. 중국은 북핵과 북중관계를 분리하여, 북한에 대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중관계가 전면적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고자 한다. 즉 중국은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교체)로 인해 야기되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도 북핵 못지않은 도전과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에 북한은 한미일과 중국 사이의 이러한 간극을 이용하여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핵개발을 위한 연이은 도발이 간극을 확대시킬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한미일과 중국사이의 간극은 미래 한반도 전략 지형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관계 불일치에서 기인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조율이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따라서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고 그 범주에서 중국역할을 견인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동안 북핵 해결을 위한 중국역할에 과도하게 기대한 것도 분명 문제이다. 그렇지만 현재 한중관계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한미일 협력만에 집중할 경우, 결국 중국역할을 견인할 수 있는 공간은 더욱 좁아지게 되고 나아가 원치 않는 동아시아의 신 냉전이 초래될 수 있다. 그 결과 북한이 오히려 최대 수혜자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될 우려가 있다.

우리에게는 북핵문제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한 현실적 위협임을 감안할 때, 한미일 협력과 함께 중국과의 공조 역시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핵문제가 다른 이슈와 연계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 예컨대 동아시아의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한중 양국에게는 초미의 현실적 도전임을 재인식하고 미중의 동아시아에서의 복잡한 경쟁 구도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북핵문제를 최우선 협력 의제로 설정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은 일단 북핵문제를 통일 문제와 분리시켜 최우선 과제로 상정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한중 양국이 온전히 북핵문제를 독립적인 위협 요인으로 인식하고 공동대응의 기반을 조성해갈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북핵문제는 여전히 미중의 지정학 경쟁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점차 더욱 중요해져야 한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보다 주도적으로 북핵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 하고 이러한 한국의 시도에 대해 중국이 지지하고 전향적으로 협조해주는 방식으로 중국역할을 재설정해갈 필요가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