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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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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물 분석 시리즈> ⑪ ‘핵심’ 시진핑은 마오저뚱, 덩샤오핑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

강준영 소속/직책 :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 2016-11-09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중국 공산당 18기 6중전회(中全會, 제18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두 건의 정치문건을 통과 시키고 폐막되었다. 이 회의가 주목을 받았던 것은 2012년 집권 1기를 시작한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내년 19차 공산당 대표대회를 앞두고 1기 체제를 결산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내년 말 개최 예정인 19차 당 대회를 통해 구축될 시진핑 2기 체제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는 역대 6중전회와 달리 정치적 의제를 표면에 내세웠다. 기본적으로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폐회되는 기간 동안 공산당을 대표하는 기구로 정치적 지위가 확립된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는 개혁개방 이후 1년에 한번 이상 열리는 것으로 규범화되었고 일반적으로 5년 동안 7차례에 걸쳐 열린다. 일반적으로 1중전회는 인사배치를 확정하고, 2중전회는 전체 당 대회가 제시한 정책 기조를 재점검하고 조정해 이를 3중전회를 통해 중요 정책 결정으로 공표하는 것이 통례였다. 역대 3중전회에서 중요 정책결정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4중전회나 5중전회는 일반적으로 3중전회의 중요 정책 집행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시기적으로 전체 당대회 1년 전에 개최되는 6중전회는 보통 문화 분야 등 비교적 소프트한 주제가 제시된다. 전체 당 대회가 열리는 해에 개최되는 7중전회는 전체 당 대회 준비회의로써의 성격이 강하다. 물론 정국이 복잡하고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면 중전회도 더 여러 번 열리고 그 주제도 무거워진다. 사상 자유화 운동이라 할 수 있는 명방(鳴放)운동이나 이를 반대하는 반우파(反右派) 투쟁, 그리고 소련과 이념분쟁 끝에 자력갱생을 강보하면서 추진한 대약진(大躍進) 운동 등 당내외적 갈등이 많았던 8차 당 대회 기간에는 무려 12차례의 중전회가 개최됐고, 천안문(天安門) 사태가 발생했던 13차 당 대회 시기에는 9중전회까지 열렸다. 마오쩌뚱의 리더십이 확고했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시기에는 오히려 두 차례의 중전회가 열렸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18기 6중전회는 주제가 매우 강렬한 정치적 메시지를 띠고 있어 이전 6중전회와 구별된다. 이번 회의에서 통과된 ‘새로운 추세 속 당 내 정치생활과 관련한 몇 가지 준칙’과 ‘중국공산당 내부 감독 조례’가 심의 통과된 것은 바로 시진핑이 집권 이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반부패 운동을 제도화해 지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이는 확고한 2기 시진핑 체제 수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극히 정치적인 의제다. 기존 6중전회의 관례를 깨고 중앙정치국 회의가 이를 6중전회 의제로 채택한 것도 이미 시진핑 중심으로 정국이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 올 초부터 중국 공산당의 각종 매체들은 반부패 운동의 확고한 집행을 위해 ‘당 중앙의 권위를 수호하고 당의 일치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보다 강력한 리더십의 필요성을 주창했고, 이에 따라 이번 6중전회는 시진핑에게 ‘핵심’ 칭호를 부여했다. 이전 덩샤오핑(鄧小平)과 장쩌민(江澤民) 시기에는 집단지도체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문자로 ‘핵심’이 사용되었으나 후진타오 시기에는 단순히 ‘중심’이라는 말로 대체되었었다. 시진핑의 ‘핵심’ 지위 획득은 다시 중국 정치가 당 중심, 그것도 확고한 1인 중심 체제로 전환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진핑은 집권 이후 개혁개방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 등 제반 분야의 강력한 개혁을 주창했고, 이를 위한 방법론으로 전국적인 부정부패 일소 운동을 전개했다. 4년이 지난 이 순간에도 반부패 운동의 기치는 매우 선명하며, 일부 지도 계층의 피로 호소에도 불구하고 당 기강과 국가 기강 수립에 부심하면서 전혀 반부패 정책을 완화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해왔다. 시진핑은 이를 통해 강력한 공산당 리더십을 구축하고자 하며, 이를 바탕으로 ‘위대한 중국, 강력한 중국, 중화의 부흥’을 내용으로 하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국가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때문에 경제 개혁을 둘러싸고 국내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개혁 노선과 마찰을 빚고 있으며, 정치적 리더십 차원에서는 기존의 장쩌민 세력, 그리고 지방을 장악하고 있던 후진타오의 공청단 세력을 솎아내는 과정에서 다양한 반발에 봉착해있기도 하다. 사회적으로는 강력한 반부패 운동을 통해 민심을 수습하면서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지속되는 반부패 정국으로 인한 피로감이 여러 형태로 노출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시진핑은 작금의 중국 현실은 강력한 당 중심 정치가 아니고서는 돌파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각종 반발에도 불구하고 난국 타개에 강력한 지도체제의 구현이 시급한 석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진핑은 마오쩌둥​, 덩샤오핑에 이어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는 지도자가 되려한다. 마오쩌둥​은 근현대 중국의 굴욕을 씻어낸 ‘영원한 지도자’이며,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혁명에 천착한 마오의 관점을 부강한 중국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개혁개방을 추진한 개혁개방 정책의 조타수이자 총 설계사였다. 37년에 걸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분명히 중국을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고 이제는 G2 국가로의 위상까지 갖게 했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개혁개방의 어두운 그림자도 중국에 널리 드리워져 있다. 이제 시진핑은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그림자를 실용적 노선으로 탈피한 것처럼 개혁개방의 그림자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진핑의 현실은 덩샤오핑 때보다 더 유리하지 않다. 떵은 혁명 원로로서 문혁의 폐해를 경험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었다. 그러면서도 조타수이자 설계자로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 후야오방(胡耀邦)이나 짜오즈양(趙紫陽)을 전면에 내세워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는 조정자의 역할을 하였으며, 불가피할 때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이들을 하야시키는 정치적 수완도 보였다.

그러나 시진핑의 방법론은 좀 다르다. 시진핑은 이미 중국 공산당의 최고지도자인 총서기이며, 중앙군사위원회의 주석으로 군을 통수하고 있고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으로 당·정·군을 제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최고 지도자다. 조정자라기보다는 설계자인 동시에 집행자로써 개혁 정국을 이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시진핑은 지난 4년 간 끝없는 인사배치를 통해 지방 수장과 군부 개편도 거의 마무리 하였다. 현재까지 시진핑은 왕치산 당 기율검사위원회 주임같이 부패 척결에 관해 거의 전권을 행사하는 동반자 이외에는 떵 시대의 후야오방이나 쩌오즈양 같은 스타보다는 조용한 실무형 인재를 등용하면서 자신의 정책 행보에 보조를 맞추는 조력자들을 주변에 배치하고 있다. 때문에 시진핑은 서방 언론 등에 의해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것으로 공격을 받기도 한다. 이제 시진핑은 ‘시진핑식 강권 정치’ 수립에 골몰하는 독재자가 될 수도 있고, 진정한 중국 발전을 위한 집행자가 될 수도 있다. 19차 당 대회를 장악할 정치국원이나 정치국 상무위원 인사를 앞두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핵심’이나 ‘권위’는 남이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구축하는 것이다. 시진핑의 실험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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