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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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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분쟁 중재재판소 결정과 중국의 실책

이기범 소속/직책 :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2016-12-02

2016년 7월 12일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이하, ‘중재재판소’)는 남중국해 분쟁 관련 필리핀과 중국 간 소송에 대하여 법적 구속력 있는 중재결정을 내렸다. 중국은 불법적인 중재재판이라는 이유로 중재결정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주장과 달리 중재재판 절차는 유엔해양법협약 관련 규정들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중국이 유엔해양법협약 당사국인 이상 중재결정의 법적 구속력은 의심받을 수 없다.

 

남중국해 분쟁 관련 필리핀과 중국 간 소송은 지난 2013년 1월 22일 필리핀의 일방적인 제소로 시작되었다. 중국의 동의 없이도 일방적으로 소송이 제기될 수 있었던 이유는 유엔해양법협약이 다른 분쟁당사국의 동의 없이도 소송이 제기될 수 있는 ‘강제적’(compulsory) 분쟁해결절차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재결정의 주요 쟁점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즉, ① 1948년 2월 열한 개의 단선(dash line)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이후 두 개의 단선이 삭제되는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주장되어 오고 있는 ‘9단선’이 유엔해양법협약과 양립할 수 있는지, ② 남중국해, 특히 남사군도에 유엔해양법협약상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질 수 있는 ‘섬’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12해리 영해만 가질 수 있는 ‘암석’만 존재하는지, ③ 중국이 여러 해양지형을 매립한 후 인공적인 시설물을 설치하면서 유엔해양법협약상 해양환경을 보호하고 보전할 의무를 위반했는지 등이다.

 

1949년부터 중국대륙을 지배하게 된 공산당 정부는 이전 국민당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승계하여 9단선 개념을 기초로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 왔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그 권리가 ‘무엇’에 대한 ‘어떤’ 권리인지를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9단선은 9단선 내 모든 해양지형에 대한 중국의 주권 주장이라는 방식으로 또는 9단선 내 모든 해양영역에 대한 중국의 관할권 주장이라는 방식으로 추론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중재결정을 통해 중재재판소는 중국이 ‘역사적 권리’(historic rights)에 기초하여 9단선 내 천연자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 왔다고 9단선의 의미를 한정한 후, 9단선 내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역사적 권리는 중국이 유엔해양법협약 당사국인 이상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 주권적 권리와 양립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제 9단선은 국제법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선언된 것이다.

 

유엔해양법협약은 국제법상 섬과 암석의 구분 기준으로 ‘인간의 거주가능성’과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제공하고 있다. 섬과 암석을 구분하는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섬은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질 수 있지만 암석은 12해리 영해만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중재결정을 통해 중재재판소는 인간의 거주가능성 기준을 엄격하게 해석하여 문제가 되고 있는 해양지형에서 안정된 규모의 집단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식수도 있어야 하고 경작도 가능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독자적인 경제활동 기준에 대해서는 문제가 되고 있는 해양지형 인근 수역에 천연자원이 풍부하다는 것만으로는 독자적인 경제활동이 아니라고 하면서 농경과 같이 그 해양지형 자체에서 경제활동이 가능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중재결정의 해석을 적용하면 남사군도에는 유엔해양법협약상 섬으로 간주될 수 있는 해양지형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는 각 암석이 가질 수 있는 12해리 영해만 제외하고 남사군도 내 상당 부분이 국제법적으로 모든 국가가 항행 및 상공비행의 자유, 어로의 자유 등을 누릴 수 있는 ‘공해’라는 의미이다.

 

중재재판소는 중국이 남사군도 내 ‘피어리 크로스 암초’(Fiery Cross Reef)와 같은 해양지형을 매립한 후 인공적인 시설물을 설치한 것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렸다. 중국은 문제가 되고 있는 해양지형 주변 산호초 환경 등에 심각하고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손해를 끼쳤고, 중재재판소는 이러한 중국의 행동이 유엔해양법협약상 해양환경 관련 의무 위반이 된다고 언급했다.

 

이와 같은 중재결정 내용 중 특히 중국은 9단선이 유엔해양법협약과 양립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하여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9단선 개념이 지금까지 중국의 남중국해에 대한 권리 주장에 있어 상징과 같은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중국이 중재결정을 무시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우려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중재결정의 주요 내용은 9단선 또는 특정 해양지형의 국제법상 지위를 확인한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이행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따라서 중국이 충격을 받은 것과 관계없이 이번 중재결정을 통해 9단선은 더 이상 국제법적으로 유효한 개념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왜 중국은 중국 입장에서 이렇게 참담한 중재결정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까? 이는 중국이 중재재판 절차에서 크게 두 가지 실책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우선 국제재판소 소송 경험이 거의 없는 중국은 중재재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불출정’(non-appearance) 카드를 너무 빨리 소진했다. 필리핀의 소송 제기 직후 중국은 2013년 2월 19일 불출정을 선언했는데, 중국은 자신의 불출정 선언이 중재재판소 구성 실패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제9조에 의하면 분쟁당사국 일방의 불출정은 소송의 진행에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의 불출정은 스포츠에 비유하면 링에 올라가지도 않은 것이 된다. 그리고 불출정 카드는 중재재판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사용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중국이 중재재판 절차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추측은 합리적이다.

 

다음으로 중국은 2014년 12월 7일 중재재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의향서’(Position Paper)를 공표했는데, 이 의향서가 중재재판소에 의해 중국 측 ‘항변’으로 간주되는 참사로 이어졌다. 중국이 불출정을 선언한 상황에서 만약 의향서를 내놓지 않았다면 중재재판소는 분쟁의 실체 또는 중국 측 주장을 구체화하기 곤란했다. 그리고 이는 중재재판소가 중재재판을 할 수 없다는 ‘관할권 부인’ 결정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불출정을 선언한 이상 분쟁이 무엇인지를 최대한 알 수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인데도 중국은 오히려 분쟁을 구체화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국제재판소 소송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중국의 국제법 능력이 표면화 된 안타까운 사건이다.

 

하지만 중국도 중재결정으로부터 전략적으로 활용할 측면을 찾아야 할 것이다. 중재결정을 통해 남사군도 내 공해가 존재함이 확인되었으므로 국제법적으로 모든 국가는 남사군도 인근 수역에서 항행 및 상공비행의 자유 등을 누릴 수 있다. 이는 중국이 가장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중국도 이번 중재결정을 근거로 일본에 대하여 강력히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무기를 가지게 되었다. 바로 오키노토리시마 문제이다. 북태평양에 위치하고 있는 오키노토리시마에 대하여 일본은 (중재결정의 논리에 근거한다면) 오키노토리시마가 12해리 영해만 가질 수 있는 암석임에도 무리하게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질 수 있는 섬이라 주장하고 있다. 중국이 전략적으로 이러한 일본의 국제법상 근거 없는 주장을 끊임없이 공격한다면 중국은 국제법적으로 태평양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국제재판소 결정을 감정이 아닌 이성에 근거하여 분석한다면 중국도 국제법상 이익을 추구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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