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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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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를 둘러싼 미·중의 엇갈린 입장과 향후 전망

이은영 소속/직책 : 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 연구위원 2017-03-29

중국의 보호무역주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3월 1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 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는 2017년 무역정책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였다. 이례적으로 별도의 장을 할애하여 새로운 행정부의 무역정책 우선순위를 명시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미국은 자국 ‘무역주권’ 수호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불공정 무역 행위에 대해서는 가용한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그러한 법적 수단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과 절차에 배치된다 하더라도 자국의 이익 보호를 우선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힌 점이다. 

 

동 보고서는 미국의 무역적자, 특히 對中 무역적자의 지속적 확대가 WTO 체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규모는 중국의 WTO 가입 직전인 2000년 819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2016년 3,340달러로 3배 이상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전체 무역적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9.2%에서 47.3%로 크게 늘었다. 대중 수입 확대로 제조업 일자리가 현저히 줄어드는 등 미국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는 데 대해서는 트럼프 경제팀뿐만 아니라 MIT의 데이비드 아우터 교수, 취리히 대학의 데이비드 돈 교수 등의 저명 이코노미스트들도 연구 분석을 통해 수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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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의회가 ‘Buy American Act’를 통과시키는 등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우려는 수차례 제기되었으나, 대부분 반덤핑, 상계관세 부과 등 WTO 체제가 허용하는 선에서 이뤄져 왔다는 점에서 볼 때 최근 형성되는 보호무역주의적 경향은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무역집행효율성법에 근거하여 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폭넓게 적용하는 것은 물론 WTO 설립 이전인 1970~80년대에 주로 활용했던 무역법 201조, ‘슈퍼 301조’, 관세법 337조 등의 국내법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WTO의 설립에 있어 가장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고 줄곧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이 스스로 WTO 체제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아이러니로 보인다.

 

반면 중국은 어느 때보다 자유무역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 1월 시진핑 국가 주석은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다보스 포럼에 참석해 “누구도 무역 전쟁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며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해 세계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미국이 포기하다시피 한 ‘세계 자유무역주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외견상 중국이 이어받는 모양새인 것이다.

 

사실 중국 경제는 WTO 체제와 세계화 흐름 속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으므로 최대 수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발도상국으로서 여타 회원국에 비해 높은 양허관세율을 적용받았던 중국은 각 산업 분야를 단계별로 개방하면서 WTO 가입에 따른 충격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무역 흑자를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외국인투자를 유치하면서 자국 산업 경쟁력도 제고해나갔다. 또한 중국은 WTO 피제소국 위치에 머물지 않고 관련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무역 상대국에 역으로 반덤핑 관세 등을 부과하고 있으며, 그 주요 타깃은 한국 기업들이다. 이에 따라 對韓 수입규제에서 중국, 인도 등의 신흥국 비중이 확대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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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국이 실제 자유무역주의에 입각하여 다른 국가들과 공정 경쟁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다수이다. 이는 최근 시장경제지위(MES·Market Economy Status) 부여 문제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 EU, 일본 등과의 분쟁, 한국의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적 보복조치 등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은 그간 非시장경제에 속해 있어 수출 상품의 덤핑 여부를 판정할 때 국내가격이 아닌 제3국 가격을 비교 기준으로 삼아야 했으나, 15조 d항에 따라 WTO 가입 이후 15년이 경과한 2016년 12월 11일부터 자동으로 시장경제지위를 인정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미국과 EU 등은 중국이 시장경제지위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15조 d항이 제3국 가격 적용을 15년 후 중단한다고 규정했을 뿐 시장경제지위의 자동 취득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에 중국은 미국과 EU를 가입의정서 의무 위반으로 WTO에 공식 제소하였다. 미국이 WTO 체제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중국은 대조적으로 자유무역의 기치를 내세우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도 일부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종합해보면 다자주의 체제인 WTO를 통한 세계 자유무역과 시장개방의 추진 동력은 약화될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TPP 협정 폐기, 反이민 정책 등에 대한 반작용으로 개별 국가간 무역 및 투자협정 논의가 한층 가속화되는 동시에 각종 불공정 무역 행위를 WTO에 제소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건수는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WTO 체제는 미국의 일방적 보호무역 조치를 견제하기 위한 여타 국가들의 주요 수단으로 여전히 유효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아베 총리가 참석한 EU 정상회의에서는 ‘자유롭고 공정하고 규칙에 기반한 교역’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일본과 EU가 4년 가까이 끌어왔던 FTA 협상의 연내 타결에 대한 합의도 이루어졌다. 중국은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자 TPP 참여국이었던 호주와 뉴질랜드를 순방하여 이들 국가와의 상호 협력 증진을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독일은 미국의 국경세 부과에 대해 WTO 제소를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은 철강 등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 규제가 자의적으로 적용되는 점에 대해 WTO 제소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수출 의존도가 높아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의 보호무역 확산에 따른 충격이 상당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 차원에서 미국의 수입규제 확대 적용과 슈퍼 301조 등에 대한 법률 대응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또한 중국의 사드 보복 등에 대해서는 외교적 채널을 통한 양국 관계 정상화 노력을 확대하는 한편, 이러한 행위가 2005년 한국이 중국에게 부여했던 시장경제지위에 反하는 것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중국 이외 여타 신흥국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FTA 협정을 체결하거나 이를 업그레이드함으로써 對中 수출 의존도는 완화시키고 중국 내수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고부가가치 중간재 수출 분야에서의 경쟁력 제고이다. World Bank에 따르면, 독일의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중은 2007년 6.8%에서 2015년 8.5%로 증가한 반면 중국은 동기간 9.9%에서 3%로 크게 줄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불균형과 관련하여 독일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으나, 독일의 주력 수출품이 고부가가치 부품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중국과 달리 이를 견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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