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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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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이슈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 및 제언이 담긴 칼럼을 제공합니다.

사드와 중국에 대한 이해

김승환 소속/직책 : 북경레몬잎컨설팅 대표 2017-04-13

필자가 처음으로 중국에 발을 디딘 것이 1994년 2월 중국 남쪽의 심천시였다. 우리와 중국이 수교를 맺은 때가 1992년이니, 비교적 초기 시절에 중국에 들어온 셈이다. 그때 심천 및 자유경제특구의 도시들은 1992년 초 등소평의 ‘남순강화(南巡讲话)’에 힘입어 경제 발전을 위해 더욱더 개혁 개방의 속도를 높이고 있을 때였으며, 그 결과 지금의 중국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다. 필자는 운이 좋게도 23년간 지속적인 중국 사업 참여와 생활로 그 발전 과정을 지켜보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앞으로도 중국에서의 생활과 비즈니스의 목표와 기대를 갖고 있었으나 작년 7월 사드 배치 발표이후 개인적으로 상당한 도전을 받는 처지가 되었고, 비단 필자와 같은 개인뿐 아니라 기업을 포함하여 한중 관계에 있어서도 수교 이래 최대의 위기가 되었으며, 탄핵이후에도 한중간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게다가 매스컴을 통해 나오는 기사들 대부분은 국민감정의 골을 깊게 하는 단편의 기사 내용이 주를 이루고, 이러한 내용들은 중국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있어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필자는 이곳 중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작금의 상황과 관련하여 우리가 과연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봤고, 그들의 중심 사상과 외교 정책의 변화에 대해 이해한다면 우리 나름의 대응 안을 준비함에 있어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국은 현대사에 있어 문화혁명의 실패를 인정하는 시점을 계기로 실용주의 노선 선택을 통해 등소평의 경제 건설 정책이 펼쳐지며, 1987년 중국공산당 13차 전국대표 대회에서 ‘一個中心 兩個基本点(하나의 중심, 두 개의 기본점)’을 발표하게 됐다. 이는 1978년 개혁개방을 표방한 이후 향후 중국이 갖고 가야할 당의 기본 노선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一個中心(하나의 중심)’은 경제 건설이며, ‘兩個基本点(2개의 기본점)’은 첫째 네 개의 기본 원칙을 견지하며, 둘째 개혁개방을 견지하는 것이다.  네 개의 기본 원칙은 1.반드시 사회주의 길을 견지하며, 2.반드시 인민민주독재를 견지하며, 3.반드시 중국 공산당의 정확한 지도를 견지하며, 4.반드시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모택동 사상을 견지한다. 즉, 네 개의 기본 원칙은 중국이 견지해온 정치의 중심 사상인 것이다.

 

‘一個中心 兩個基本点’은 곧 중국 모든 정책의 중심이며, 이 중심 사상은 시진핑 집권 초기까지 그 맥을 이어왔으며 불변의 원칙으로 중국을 이끈 핵심 사상인 것이다. ‘一個中心 兩個基本点’ 목표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이며, 이를 위해 중국 공산당이 주도하며, 모든 국민 역량은 이를 지지하고, 경제 건설을 중점 임무로 하며, 정치는 반드시 네 개의 기본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고, 내부적으로 개혁을 외부적으로는 개방을 통해 부유하고 조화로운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문화혁명이 끝난 직후 중국의 경제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기초가 무너진 상태였고, 그 혼란의 시기를 거치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해야 되는 것이고, 그때의 시대정신은 ‘温饱(원바오)’였던 것이다. 즉, 따뜻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는 것이 그때의 시대정신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1994년도 심천에 있을 때 많은 중국 공장들을 가 보았다. 그곳에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의 60년 70년대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어보였다. 모든 공장은 24시간 가동을 하고, 공원들의 여가 시간이라 하면 밥 먹고 자는 시간외에는 없었다. 이 처럼 중국 전역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밤낮 없이 일을 했던 것이다.

 

이런 국내 미숙한 여건과 국제적으로 초강대국 미국의 영향 속에서 중국의 외교력은 힘을 발휘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내실을 다지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던 그 시기에 등소평은 개혁 개방 정책을 통해 국제 경쟁력과 국력이 생길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된다고 강설하면서 ‘도광양회(韜光養晦, 몸을 낮추어 자기의 재능을 보이지 않고 힘을 기른다)’를 언급하였고, 이것이 중국 외교 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이후 개혁 개방 정책을 통한 고도성장은 중국의 경제력과 국력을 신장 시켰고, 주변국들은 중국의 성장과 팽창으로 인한 패권에 대해 견제와 우려에 나타내자 2003년 후진타오는 ‘화평굴기(和平崛起, 평화롭게 우뚝 일어선다)’를 언급하며, 중국은 대국으로서 국제 사회에 책임감을 갖고 평화적 공존을 지지한다며 ‘삼린(三隣, 세 가지 이웃, 즉, 화목한 이웃, 안정된 이웃, 부유한 이웃)’ 정책을 발표함으로서 주변국의 우려를 해소하고자 했다.

하지만 2004년 중국의 외교 정책의 근간은 좀 더 적극적인 태도로 바뀌기 시작한다. 바로 ‘유소작위(有所作爲,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기의 뜻을 관철 시킨다)’인 것이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군사력을 증강해온 중국은 국제 사회에 있어 중국의 위상과 개입을 더 강조하고 있으며, 국익을 위해 더 많은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한다는 것이다. 대북 문제에 있어서의 6자회담이 그 한 예인 것이다.

 

중국은 지난 30여년의 개혁 개방 정책의 성과를 토대로 2013년 중국 공산당 18기 3중 전회에서 시진핑에 의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발표된다. 바로 ‘中國夢(중국의 꿈)’이며, 그 꿈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시진핑은 새로운 개념의 ‘一個中心 兩個基本点(하나의 중심, 두 개의 기본점)’을 강설하며, ‘一個中心(하나의 중심)’은 ‘中國夢(중국의 꿈)’으로 바뀌고, ‘兩個基本点(두개의 기본점)’은 1.전면적으로 개혁을 심층화하고, 2. 민중 노선을 견지 한다는 것이다. 개혁의 심층화는 곧 개혁의 주체인 당의 개혁을 강조한 것이고, 민중 노선의 견지라 함은 당은 국민을 위해 국민의 뜻을 헤아려야 된다는 것이다. 중국의 꿈은 두 개의 100년이라는 핵심 목표를 갖는다. 그 첫 번째가 2021년 중국 공산당 창립 100주년까지 ‘小康社會(시아오캉 사회)’를 완성하고, 두 번째로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00주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완성’인 것이다. ‘小康社會(시오캉 사회)’라 함은 2020년에는 2010년 대비 국가 GDP와 개인 수입이 배가 되어 중산층의 삶은 살 수 있는 것이고,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완성’이라는 것은 중진국 수준의 국가를 완성시키겠다는 것이다. 즉, 부강한 국가, 민족의 진흥, 국민의 행복을 실현하자라는 것이다. 등소평 시대에는 이에 대한 건설이 주 맥락이었다면, 시진핑 시대에는 이를 완성하자라는 것이다.

 

중국은 앞서 언급한 국가의 새로운 장기적 전략과 목표의 발표에 이어서 새로운 외교 근간을 올해 양회를 통해 발표했다. 그것이 곧 ‘인류운명공동체’이다. 이는 ‘인류는 하나의 지구를 갖고 있고, 각국은 모두 하나의 세계에 함께 있다’라는 운명 공동체 의식을 발의한 것이다.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분규와 환경, 자원, 기후 등 세계의 문제를 모든 국가가 연대하여 함께 풀어나가기 위한 하나의 세계에 대한 가치관으로서 국제권략, 공동이익, 지속가능한 발전과 전 세계의 통치로 구분하여 이를 실현하기 위해 중국이 중심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진핑의 시대정신과 외교관에 대해 중국 국민은 열광하고 있다. 반부패 정책으로 수많은 고위층들을 구속하고, 일대일로 정책의 적극적 지원과 실현을 통해 동부와 서부의 경제적 균형을 이룰 뿐 아니라 당나라 번영기의 실크로드를 재현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G2로써의 위상을 갖고 중화사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 더불어 중국의 언론은 이러한 대륙 굴기를 이용해 애국을 외치고 있으며, 이에 호응하듯 중국 국민은 애국을 환호하고 있다. 이렇듯 시진핑은 역대 어느 지도자보다도 존경을 받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있고, 위엄이 있으며, 왕이 외교부 장관은 외교력 또한 중국인의 자존심을 회복해 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 국가들은 이와는 다른 반응들이다. 중국의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이 중국 패권주의로 가는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들이 나왔고, 중국은 일본, 프랑스, 노르웨이 ,싱가포르, 베트남 등 양국 간에 생긴 분쟁에 대해 경제적 재제 조치로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으니, 주변의 우려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특히나 일본은 잠재적 적국으로서 러시아와 북한이었던 것을 중국과 북한으로 수정하고 미국과 밀착하여 중국을 경계하고 있다.

 

이러한 역학 관계 속에서 박근혜 정부 초기 중국은 왜 그렇게도 우리를 가까운 동반자임을 강조했을까? 앞서 설명했듯이 중국은 중장기적 전략 수립과 실천을 통해 경제를 키워왔고, 그 시대에 맞는 외교관을 펼쳐왔으며, 시진핑이 야심차게 발표한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이웃으로써의 동반자는 바로 우리인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우리가 미일 관계 속에 편입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렇다 해도 중국으로 완전히 기울기를 원치도 않는다. 중국의 뼈 속까지 있는 중화사상과 전통적 외교 정책인 ‘기미(羈縻,굴레를 씌워 얽어맨다는 뜻이지만 이는 천자를 인정하면 그 상대국에게는 그 이상의 경제적 정치적 보상을 베풀어주는 외교 정책을 의미함)’를 우리는 이해해야 하며, 중국의 지금의 현 모습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면 중국에 대한 이해와 통찰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지 않은가 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중국 의존도와 관련하여 중국 경제 제재 영향이 커지자 이를 낮추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일본은 센카쿠 문제로 인해 희토류로 경제 보복 조치를 당한 후 중국의 비중을 줄여 왔고, 수출에 있어서도 다변화를 통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어 왔다. 우리도 일본처럼 5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일본은 인구 1억 이상의 내수 시장이 있다. 또한 전체 수출액 중 대중 수출 비율은 작년에 17.5%였으며, 일본 GDP대비 대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3%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내수 시장이 작고, 전체 수출에서 대중 수출 비율은 31.7%이고 GDP 대비 대중 수출 비율은 12%에 달한다. 여기에 비정규 무역과 문화, 관광을 더한다면 중국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단순하게 경제적인 한 부분만을 언급했지만 다양한 분야에 있어 우선 스스로를 파악해야 상대방에 대한 올바른 전략이 나올 수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사드로 인한 중국의 경제 제재 조치는 시진핑이 강설한 ‘인류운명공동체’의 이념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 규모가 우리보다는 크지만 그 성장 과정에 있어 우리가 기여한 부분도 적지 않을뿐더러 향후에도 양국 간의 경제 협력은 중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정 부분 필요한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AIIB 등 중국의 정책적 방향에 있어 우리의 지지가 필요함을 내세우고 지속적인 동반자임을 설명하고 제재 조치에 대한 변화를 협의해야 한다.

 

또한 국민적 합의와 투명성 없이 진행된 사드 배치를 보류하고 균형 있는 외교 정책을 재가동해야 한다. 중국이 반대하는 것은 사드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미국과 일본과 하나의 라인을 이루어 중국과 대치되는 모습인 것이다. 한반도를 한미일과 북중러의 양극 세력으로 나누어 신 냉전 체제를 만들 이유가 우리에겐 없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혼란스럽지만 빠른 시간 내에 중국과의 대화 채널을 회복하고 우리의 국익을 위해 강동6주를 싸우지 않고 얻은 서희의 외교적 지혜가 필요한 시기이다.

 

더불어 중국을 좀 더 이해했었다면, 그런 전문가가 있었다면 사드보다 더한 것이 오더라도 문제를 키우지 않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고, 많은 중국인들은 아직도 우리를 가까운 이웃이라 표현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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