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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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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이슈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 및 제언이 담긴 칼럼을 제공합니다.

‘구동화이(求同化異)’의 공간 활용 지혜

양갑용 소속/직책 :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2017-05-22

지도자의 말은 사실상 통치의 중요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통치행위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도자의 말은 지도자의 능력, 인격, 품격을 밖으로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고 그 대상과 장소에 따라 중요한 신호로 읽히기도 한다. 특히 중국과 같은 당국가체제에서는 지도자 개인의 정치 개입력이 매우 높기 때문에 주요 정책의 방향, 계획 등에 관련된 지도자의 말 한 마디는 사실상 법과 제도의 권위를 갖게 된다. 또한 국면의 전환이나 정세 변화의 방향을 사전에 포착해낼 수 있는 관건적인 신호로 평가되기도 한다. 따라서 중국에서 각급 지도자들의 발언은 그 자체로 중요 사안의 신호일 수 있다. 중국 내부에서 나오는 신호 가운데 단연 최고 수위의 신호는 바로 시진핑의 발언이다.

 

지난 5월 11일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40여 분에 걸쳐 전화 통화를 했다. 시진핑 주석은 전화해서 “중국과 한국 양국은 이웃이고 이 지역의 중요한 국가이다. 수교 25년 동안 중한관계 발전은 매우 큰 성취를 이뤘고 소중히 여길만한 가치가 있다. 쌍방은 반드시 중한 양국 수교의 첫 마음(初心)을 깊이 새기고 피차 중대한 우려와 정당한 이익을 상호 존중해야 한다. ‘구동화이(求同化異)’를 위해 노력하고, 차이를 적절히 처리한다. 한국의 새로운 정부가 중국의 관련 중대한 우려를 중시하고, 실제 행동을 취하고, 양국 관계의 건강하고 평온한 발전을 추동할 것으로 희망한다. 중한관계의 더 좋은 발전 실현은 우리 양국 인민의 공동 이익에 부합하고 지역의 평화 안정 발전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 통화에서 시진핑 주석은 직접 ‘구동화이’를 언급했다. ‘구동화이’는 사실 2016년 9월 항저우에서 개최된 한중 정상회담 당시 시진핑 주석이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언급한데 대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답 차원에서 언급한 말이다. 당시 시진핑 주석은 ‘구동존이’를 언급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구동화이’를 언급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시진핑 주석이 바로 한국에서 언급한 이 말을 그대로 언급한 것이다. 사실 ‘구동존이’는 중국이 즐겨 쓰는 표현인 반면 ‘구동화이’라는 표현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구동화이’ 대신 ‘취동화이(聚同化異)’란 표현을 자주 쓴다.

 

‘구동존이’와 ‘취동화이’의 가장 큰 차이는 ‘존이(存異)’와 ‘화이(化異)’의 차이에 있다. 즉 문제의 처리 방식, 그리고 그 차이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구동존이’는 사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같은 점은 취하고 화합의 기초 위에서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 차이가 같을 수는 없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취동화이’는 사실 ‘중용의 도(中庸之道)’와 그 맥을 같이 한다. 같음을 취하고 그 가운데서 서로의 차이를 부단히 취합하고 확대하여 결국 점진적으로 그 차이를 제거해 나가는 발전적 사고가 깊게 내재되어 있다. 결국 ‘구동존이’를 통해서 먼저 같음을 공유하고 차이를 인정해 나가면서 장기적으로 ‘취동화이’를 통해서 같음을 취하는 동시에 그 차이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도모한다는 점이다. 즉 ‘구동존이’가 매우 정적이고 현상유지적인 개념이라면 ‘취동화이’는 매우 동태적이고 역동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구동존이’와 ‘취동화이’는 ‘92공식(九二共識)’을 둘러싼 양안관계의 논리를 설명할 때 주로 언급된다.

 

예컨대, 2012년 11월 26일 중국대만판공실(中台辦), 국무원 대만판공실(國台辦), 해협회(海協會) 등이 베이징에서 ‘92공식’ 20주년 좌담회를 개최했다. 당시 회의에서 양안관계를 ‘구동존이’에서 ‘취동화이’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취동화이’가 중요하게 언급되었다. ‘92공식’ 20주년을 맞이하여 중국 당국은 20여 년 동안 견지해 온 양안 간의 차이를 그대로 두고 새로운 협력 공간을 만들어내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당시에 현상 변경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취동화이’를 언급했다. 이러한 말의 변화는 양안관계 전체 국면을 전화(轉化)하기 위해서는 차이를 덮어두기 보다는 본격적으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차이를 좁혀 나가는 노력이 되어야 할 시기라는 점을 중국 당국이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015년 5월 4일에는 타이완의 중국국민당 주리룬(朱立倫) 주석을 대표로 하는 중국국민당 방문단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당시 시진핑은 주리룬 주석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양안관계 관련 다섯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다섯 가지 가운데, “국공(國共) 양당과 양안 쌍방은 대국(大局)을 고려하고, 상호 존중의 정신에 근거하여, ‘구동존이’ 뿐만 아니라 ‘취동화이’에도 노력해서 정치 상호 신뢰를 부단히 증진시켜야 한다”고 언급한 적도 있다.

 

5월 11일 전화 통화에서 시진핑 주석이 직접 우리의 말 표현을 빌려 ‘구동화이’를 언급한 것은 사실상 ‘취동화이’를 언급한 것과 그 맥락은 같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정상회담에서 ‘구동화이’를 언급한 것은 사드 문제로 촉발된 한중간 인식 차이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다고 보고 적극적인 변화 의지를 표현한 것이었다. 이번에 시진핑 주석이 전화통화에서 ‘구동화이’를 언급했다는 점은 한중관계의 차이를 인정하는 선에서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 차이를 변화시켜 나가자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을 평가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시진핑 주석은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중국식 표현인 ‘취동화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워딩(wording)인 ‘구동화이’를 직접 언급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차이를 극복해 나가자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는 정치적 신뢰를 회복하자는 우회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시진핑 주석이 현 한중관계 교착 상태를 상호 정치적 신뢰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중간 정치적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존이’에서 ‘화이’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응대할 필요가 있다.

 

사실 지난 25년 동안 한중관계는 모순과 갈등을 의도적으로 외면해 온 측면이 없지 않다. 문제가 불거지면 그때그때 상황 논리에 따라 임시적으로 봉합하는 조치를 통해 현재에 이르렀다. 그리고 한중관계의 전부가 마치 경제관계인 것처럼 사고해 왔다. 그러나 사드 문제로 인해서 한중관계가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근 들어 한중 경제관계에서 협력 관계의 부조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특히 중국경제의 추격으로 인해서 한중 경제적 상호 의존관계가 점차 경쟁 관계로 변화하고 있으며 한중 경제 분업구조도 곳곳에서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사드 문제로 촉발된 한중관계의 갈등이 경제관계와 교류협력에 직접적이고 현저한 영향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한중관계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전환의 모멘텀이 필요하고 사드 문제는 이런 측면에서 사유 공간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건설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언급한 대로 상호 정치적 신뢰를 증진하는 노력을 한층 더 중시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즉 한중 상호간에 갈등의 문제를 늘 봉합하던 행태에서 벗어나 갈등의 소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 차이와 차이가 파생하는 여러 문제를 면밀히 검토하고 변화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중 양국이 차이를 변화시켜 나가려는 의지가 있다면 봉합이라는 수세적 자세를 고집하거나 관망해서는 안 된다. 양국이 생각하는 중대한 우려와 정당한 이익에 대해서 상호간의 인식 차이를 드러내 놓고 솔직하고 담백하게 대화를 주고받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동화이’로 열려진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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