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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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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이슈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 및 제언이 담긴 칼럼을 제공합니다.

중북(中北) 핵공모(核共謨)와 동맹정책의 재조정

김태우 소속/직책 : 건양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2018-02-13

칠면초가(七面楚歌)의 안보위기와 4대 핵악몽

 

지금 한국의 안보는 일곱 가지의 악재 (惡材) 들에 포위되어 있다. 첫 번째 악재는 머리 위를 짓누르는 북한의 핵무기와 비대칭 위협이고, 두 번째는 미국과의 신냉전적 패권경쟁과 함께 주변국 길들이기에 나선 시진핑의 팽창주의적 중국이며, 세 번째는 군사적 초강대국 복귀를 꿈꾸면서 중국의 신냉전 게임에 편승하는 푸틴의 러시아다. 네 번째 악재는 ‘전후(戰後)청산과 재무장’이라는 속내를 품고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에 동참하는, 그래서 협력도 견제도 쉽지 않은 아베의 일본이며, 다섯 번째는 경제민족주의와 선별적 개입주의를 들고 나온 트럼프의 미국과 이로 인한 동맹의 이완‧변질 가능성이다. 나머지 두 악재는 국내에 있다. 여섯 번째는 함께 보듬어가야 할 안보사안마저 진흙탕 진영싸움 속에서 표류하게 만드는 분열상이며, 마지막 악재는 추락하고 있는 한국의 경제위상이다. 안보가 없으면 경제도 없는 법이지만 경제가 없으면 안보도 외교도 꾸리지 못하며, 경제의 추락은 한국의 왜소화(trivialization)와 주변부화(marginalization)를 예고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핵은 한국 국민에게 핵절멸 (nuclear annihilation), 핵그림자(nuclear shadow), 한국 때리기 (Korea bashing), 그리고 한국 배제하기 또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등 적어도 네 가지의 핵악몽 (核惡夢)을 강요한다. 핵절멸이라 함은 가능성의 높고 낮음을 떠나 북한의 군사적‧전면적 핵공격으로 결단이 날 수 있다는 공포를 의미하며, 핵그림자란 북한이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한국 정부와 국민 그리고 군을 위축시키는 심리적 수단으로 사용하여 재래도발을 일삼고 남북관계를 지배하여 적화통일의 여건을 조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때리기란 북한이 핵무력을 고도화할수록 한중(韓中) 갈등이 심화되고 중국이 사드 보복과 같은 수단으로 한국을 압박함을 의미하며, 코리아 패싱이란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이 입장에서 결정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빅딜을 통해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거나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으며, 반대로 확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대북 군사행동을 취할 수 있다. 미국의 북핵 피로증이 누적될수록 그리고 한미 간의 엇박자로 동맹 피로증이 축적될수록 이런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렇듯 북핵은 이미 오랫동안 한국에게 악몽들을 강요하고 있지만, 아직도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함께 2018년 초부터 남북 간 대화국면이 전개되었으나 이를 ‘터널의 끝’으로 믿는 전문가는 없으며, 오히려 평창 이후 도래할 수 있는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북한이 2017년 10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를 통해 ‘핵무력 고도화 지속’과 ‘경제자립성 향상을 통한 국제제재 극복’을 ‘현 정세에 대응하는 당의 2대 당면활동 방향’으로 채택하고 이를 위해 한국을 이용하려는 의도로 평창 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라는 평화공세를 펴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대북제제로 인해 북한경제의 피폐화가 심해지고 있음에도 북한이 북핵 고도화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해준 최대 요인이 중국의 이중플레이라는 사실이다. 2006년 이래 유엔안보리가 11개의 대북 결의를 통해 제재를 강화해오는 중에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제재에 동참하지만 뒤로는 평양정권의 생존을 돕는 이중 플레이를 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안보리가 북한정권에게 치명적인 제재(crippling sanction)를 의결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거나 채택된 안보리 결의들을 우회‧위배하면서 북한과의 거래를 지속해왔다. 북핵 해결이 최대 안보과제인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북핵 정책을 냉정하게 판단‧예견하고 장단기 전략을 수립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동맹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마땅하다.

 

신냉전과 중북 핵공모(核共謨)

 

북핵에 대한 중국의 정책은 미중관계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아왔는데, 미중관계가 협력적인 시기에는 중국의 북핵 정책은 강경하지만 미중관계가 대립적‧경쟁적인 시기에는 관용적인 추세를 보여 왔다.  미중관계가 악화되면 북한 문제를 대미 지렛대로 활용하고자 하는 중국의 동기가 강화되기 때문에 이러한 추세는 국제정치의 역학상 당연한 것이다. 현재는 시진핑  정부의 팽창주의적 대외기조가 미국과 상충하는 시기이므로 중국이 북핵에 대해 관용적‧방조적 자세를 취함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현재 북핵은 그 누구도 쉽사리 제어할 수 없는‘괴물’로서 세계 핵질서와 동북아 및 한반도에 엄청난 파장을 미치는 게임체인저 (game changer)로 부상 중인데, 신냉전은 빈소국 (貧小國) 북한의 이런 핵게임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 등소평 시대의 중국은‘흑묘백묘론 (黑猫白猫論)’을 앞세우고 경제적 빈곤을 퇴치하는데 치중했었지만, 시진핑 시대에 이르러 중국은 고도성장과 함께 화평굴기 (和平崛起 )와 도광양회 (韜光養晦) 를 넘어 대국굴기 (大國崛起) 와 중화패권 (中華覇權) 을 향해 치달으면서 남중국해의 내해화 (內海 化)와 동중국해 지배를 시도하여 미‧일과 상충하고 있다. 이런 중국에게 있어 최대의 과제는 미국이 지배하는 동아시아 안보질서를 중국 중심적 질서로 재편하고 한국을 위시한 주변국들과의 수직적 서열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주변국들과의 영토분쟁,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등으로 이미 가시화되고 있으며, 군사강대국 부활을 꿈꾸며 유럽에서 나토 (NATO)와 신냉전 상태에 돌입한 러시아가 ‘미국 견제’라는 공동목표를 가지고 중국에 동조하고 있다. 미국은 해양세력과의 동맹 및 중국 주변국들과의 쌍무관계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 (Indo-Pacific Strategy)을 구사 중이다. 현상유지 세력인 미국과 현상타파 세력인 중국 간의 세력충돌은 역사의 필연이며, 아시아에는 북‧중‧러 라는 사회주의 블록과 미‧일‧호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 해양세력 간 신냉전적 세력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런 중국에게 있어 유일한 군사동맹국인 북한의 핵무력은 경제적‧외교적 부담이기보다는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의 피로를 유발하는 ‘전략적 자산’이며, 여기에 비하면 중국이 고분고분하지 않은 김정은 정권에 대해 불쾌감을 가지는 것은 대세 (大勢)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지엽적 변수일 뿐이다. 이런 구도에서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2016년 이후 안보리가 채택한 여섯 개의 대북결의는 매우 강력하고 포괄적인 경제제재를 담고 있어 중국도 대북제재를 강화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의 대중 (對中) 권유와 압박에 의한 것이지 북한 비핵화를 위한 베이징 정부의 결의가 담긴 것은 아니다. 북한은 이런 경쟁구도에 편승하여 중‧러 의 비호아래 핵무력 고도화를 지속해왔으며, 현재 북핵은 신냉전이라는 숙주 속에 똬리를 튼 상태다. 이를 두고 ‘중‧북 핵공모 (Sino-DPRK Nuclear Collusion)'라 부른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동아시아의 이러한 안보환경은 한국에게 다양한 딜레마들을 강요하고 있다. 우선, 향후 신냉정 구도가 완화되고 미중관계가 협력적인 것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북한의 ‘버티기’ 도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북한 비핵화를 위해 본심으로 대북 압박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무리이다. 당장 독자 핵무장을 할 처지가 아닌데다 핵무장 잠재력도 가지지 않은 상대적 약소국인 한국에게는 중국을 움직이거나 북한의 핵포기를 강압할 지렛대가 없다.  한국이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남북대화, 한중 정상회담에서 나눈 외교적 덕담 등을 통해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앞세우고 중화패권 시대의 개막을 서두르는 중국을 변화시키거나 강력한 공세적‧수세적 동기로 핵개발을 강행해온 북한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국제정치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의 소산일 것이다. 중국과 북한에 대해 여전히 강력한 지렛대를 가진 것은 미국뿐이며, 한국에게는 북핵 위협뿐 아니라 점차 거대 위협으로 다가오는 중국의 팽창주의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독자능력 함양과 동맹의 활용이 필수적이다. 

 

장단기 안보위기 대처를 위한 한반도 핵균형 정책

 

지금은 한국이 “당장 북핵의 해결을 가져올 묘안은 없다”와 “20년 후 최대 안보위협은 중국일 가능성이 높다”라는 장단기 가설을 중심에 놓고 안보대책을 수립해나가야 할 때이다. 단기 가설과 관련해서는 평창 이후에 도래할 수 있는 시나리오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론적으로 말해, 북한의 핵해결 표방과 함께 국제사회의 대북관이 개선되고 남북관계가 급진전하는 시나리오, 핵대화의 유무와 무관하게 북한이 핵불포기 정책을 고수하여 현상고착 상태에서 북핵 문제가 지속될 가능성, 북한의 새로운 도발로 미국의 군사행동이 가시화되어 전쟁위기가 도래할 시나리오 등이 있을 수 있으나, 첫 번째 시나리오는 희망사항 일뿐 가능성은 희박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두 번째이며, 세 번째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높고 낮음을 넘어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시나리오를 염두에 둘 때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핵균형 정책이다. 북핵을 방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전쟁위기를 초래해서도 안 되는 것이 한국의 처지라면, 이제는 북핵 문제를 관리해나가는 제3의 방안을 모색해야 마땅하다. 즉, 남북 간 핵균형을 통해 북한의 비대칭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때 케네디 대통령이 소련의 핵미사일이 쿠바에 배치되는 것을 방치하지 않으면서도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쿠바침공이라는 군사행동도 아닌 제3의 선택으로 해상봉쇄를 택했던 것과 유사하다. 핵균형을 위해서는 미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결행하는 방법이 있지만, 당장은 독자 핵무장이 비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대상은 전술핵의 재반입이다. 전술핵 재배치는 장단점이

혼재하는 문제이고 한국 정부가 요구한다고 해서 미국이 수용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이것이 북핵을 방치하지 않으면서 전쟁위험을 무릅쓴 군사행동도 회피하는 제3의 길이라면, 한국 정부는 이를 검토하고 미국에게 협의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20년 후를 내다보는 동맹의 재조정

 

북핵의 해결은 현재 한국이 직면한 최대 안보과제이지만, 20년 후 한국이 직면할 최대의 과제는 안하무인 (眼下無人)의 자세로 주변국들에게 수직적 관계를 요구하는 중국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고 독립성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미국에게 있어서도 미래의 최대 과제는 미국 주도의 안보질서를 중화 (中華)적 질서로 재편하기 위해 사회주의 블록을 형성하여 해양세력에 대항하는 지전략 (地戰略)을 펼치고 있는 중국을 적절하게 견제하는 것이다. 이제는 한미 양국이 이런 미래를 내다보면서 기존의 동맹정책을 재조정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할 때가 되었다. 한국에게 있어 대중(對中) 저자세 외교나 친화정책을 통해 중국의 완력정치를 멈추게 하고 자중자애(自重自愛)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안정적인 한중관계를 위해서는 ‘필요 시 감내하기 어려운 피해를 끼칠 수 있는 능력’을 기반으로 하는 ‘고슴도치’ 전략을 준비해야 하며, 그를 위한 수단은 독자 핵능력 일 수밖에 없다. 

미국도 그렇다. 미국은 동맹국들의 핵개발을 만류하면서 대신 핵우산을 제공해주는 ‘반확산에 기반한 (nonproliferation-based) 동맹정책’을 수십 년간 고수해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동맹정책으로는 중국의 지전략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이 작게는 중‧북 핵공모 그리고 크게는 중‧러 북 핵공모를 통해 핵보유 사회주의 불럭을 형성하여 미국에 대항하는 영리한 지전략을 펼치는 상황에서 미국이 핵확산만을 우려하여 동맹국들의 핵능력을 속박하는 것은 스스로의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주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즉, 반확산에 기반한 동맹정책은 미국의 장기적 전략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을 보다 효율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의 한국, 일본 등과 같은 동맹국들이 핵무장 능력을 함양하게 하고 중국의 주변국들이 집단적으로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도록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제할 줄 모르는 중국의 팽창주의와 완력정치를 감안할 때, 아시아 안보질서의 미래는 이 방향일 수밖에 없다.

물론, ‘진보’ 정부를 자처하면서 대북 (對北) 및 대중 (對中) 외교에 정성을 쏟고 있는 문재인 정권에게 있어 전술핵 재배치나 독자 핵능력 함양이 검토대상이 되지 않음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진보든 보수든 안보를 국가가 제공해야 하는 최대의 공공재 (公共財)로 보는 것에는 이견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존중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이 방향으로의 전략적 사고를 키워나가면서 한반도 핵균형, 전술핵 재배치, 독자 핵무장 능력의 함양, 동맹정책의 재조정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중요한 이웃 대국인 중국과의 비적대‧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한국의 직접적인 안보위협인 북한의 군사동맹국이자 패권 도전국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중국은 한국의 안보를 담보해줄 위치에 있지 않다. 한국이 동맹을 중심에 둔 상태에서 유지 가능한(sustainable) 안정적 한중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얼라이언스 앤드 헤징 (alliance & hedging)' 기조를 필요로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동맹정책의 재조정과 한반도 핵균형은 당면한 북핵 대응뿐 아니라 20년 후의 국가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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