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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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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정치·외교,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주요 이슈에 대한 동향을 정리하여 제공합니다.

다자간 FTA 시대의 도래와 우리의 대응

정상은 소속/직책 : 한남대학교 중국경제통상전공 교수 2018-04-04

FTA는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었던 2015년말 박근혜 정부는 우리나라의 ‘경제영토’가 세계에서 2번째 규모로 확장되었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경제학 용어 사전에도 없는 출처불명의 ‘경제영토’라는 용어는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FTA를 체결한 상대국들의 GDP가 차지하는 비중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부가 FTA에 부정적인 여론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FTA를 맺으면 마치 우리의 영토가 늘어나는 것처럼 나라가 부강해진다고 FTA를 미화한 것이리라. 정부가 얘기한 경제영토 기준 나머지 5대 국가는 칠레, 페루, 멕시코, 코스타리카이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경제영토가 넓을수록 부강하고 국민들도 잘 살아야 하는데 이들 국가는 과연 그런 국가들인가? 

 

FTA는 양국 간의 쌍무적인 협정이다. 상대국 시장의 장벽이 낮아지는 만큼 우리 시장 문턱도 낮아진다. 상대국이 우리 경제영토가 되는 만큼 우리도 상대국의 경제영토가 된다. 이때 중요한 건 결국 양국의 산업 경쟁력을 고려한 적절한 내용의 협정이 맺어지는가이다. 만일 어떠한 이유에서건 자국에 불리한 협정이 체결되면 ‘경제영토’는 순식간에 ‘경제식민지’로 바뀔 수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하고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나라일수록 치명적이다. 강대국은 협정 내용이 맘에 안 들면 언제든 바꿀 수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에서 보듯이 미국은 상대국에 재협상을 윽박지르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FTA를 체결함에 있어서 보다 더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가 무엇엔가 쫓기듯이 ‘연내 타결’을 닦달하며 졸속 체결했던 한중FTA는 우리 경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있는가?  

 

다자간FTA의 시대 도래

 

전 세계 FTA 흐름은 '투 트랙'이다. 처음엔 한미, 한중처럼 두 나라간 관세장벽을 철폐하는 양자간 FTA가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처럼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다자간 FTA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TPP 외에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진행하고 있는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EEU) 등 '다자간 FTA' 시도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다자간 FTA가 부상하는 이유는 양자간 FTA에 비해 무역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다. 양자간 FTA는 하나 맺는데도 오래 걸리는데다가 글로벌경제시대에 양자간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무역 문제들이 많아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다른 국가와 협상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 역시 지난하다. 반면 제품 원료 구입부터 생산, 가공, 판매에 이르는 과정에 얽혀 있거나, 또는 지역적으로 인접한 다수의 역내 국가끼리 한 번에 협정을 맺으면 대단히 효율적이다. 이처럼 이론적으로는 효율적이나 현실은 녹녹치 않다. 이해관계국들이 많다 보니 협상이 대단히 비효율적이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강대국들간의 헤게모니 다툼이라도 끼어들면 배가 산으로 가기 십상이다. 주요 다자간 FTA 중 현재 성사된 경우가 하나도 없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2013년 7월부터 협상을 시작한 미국과 EU간의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은 세계 1, 2위 경제권을 하나로 묶는 'FTA 중의 FTA'로 평가 받는다. 경제규모뿐만 아니라 선진 무역대국들 간의 FTA라 그 자체가 국제무역규범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의 EU탈퇴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협상은 진전이 거의 없다. 

 

중국이 빠진 다자간 FTA, TP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는 다자간 FTA 중 가장 주목받는 FTA이다. TPP는 2005년 뉴질랜드, 싱가폴, 칠레, 브루나이 등 환태평양 연안의 4개국으로 조촐히 시작했지만, 2008년 미국이 참여를 선언한 이후 경제규모 1, 3위인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캐나다, 멕시코,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간 FTA로 변모했다. 2016년말 기준 TPP에 참여한 12개국의 인구수를 합하면 전 세계 인구의 11.2%이며, 세계 GDP의 38.3%와 세계 교역의 27.8%를 차지한다. 미국이 TPP에 관심을 가진 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회귀와 재균형(Rebalance, Pivot to Asia)”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면서 TPP를 경제 분야의 핵심 전략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미국이 중동과 유럽에 집중하는 사이 아시아에서 중국경제의 영향력이 확대되자 TPP를 통해 다시금 아시아를 미국 중심으로 끌어오고자 했다. 실제 2015년 10월 의회 연설에서 “TPP가 없으면 중국이 세계 경제의 규칙을 만들 것”이라며 TPP의 조속한 비준을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12개국이 2016년 2월 공식 서명까지 마치고 국내 비준을 추진하던 TPP는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며 당선된 트럼프가 2017년 1월 탈퇴를 선언하면서 추진 동력을 상실하며 좌초 위기에 빠졌다. 

 

다자간 FTA의 주도권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트럼프의 TPP 탈퇴 선언과 보호무역주의 행태는 중국에 있어서는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가 되었고, 중국은 아시아 국가들간의 다자간 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적극 뛰어들었다. 애초 RCEP는 중국 중심의 아시아 지역블록 형성을 우려한 일본의 주도로 2012년 시작되었으나, TPP에 주력한 일본이 RCEP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2014년 이후에는 중국이 사실상 주도국의 역할을 해왔다. RCEP는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롯해서, 아세안 10개국과 일본, 인도, 호주 등 총 16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데, 2016년말 기준 참가국 인구가 무려 35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48.4%를 차지한다. 세계 GDP와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38.3%와 27.8%에 달할 정도로 TPP에 못지않은 거대 규모이다. 

 

중국이 RCEP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중국의 외교정책 기조를 ‘신형 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에서 ‘신형 국제관계(新型國際關係)’로 전환한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형 대국관계’가 기존 패권국가인 미국과 신흥강국인 중국이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자는 소극적인 내용이었던 반면, ‘신형 국제관계’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현안에 직접 개입하고 중재함으로써 상황을 주도하겠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국제무역에 있어서도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TPP를 탈퇴하는 사이 중국은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하고 RCEP를 적극 추진하여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한 것이다. 

 

사실 시진핑은 2013년 취임 후부터 중국 주도의 다양한 국제질서를 모색해왔다. 브릭스(BRICS) 정상회의를 활성화하고 여기에 개발도상국을 참여시켜 미국 주도의 G20 정상회의와 다른 한 축을 만들었으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위안화의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 편입 등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질서에도 도전해왔다. 특히, 막대한 차이나 머니를 앞세워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프로젝트에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뿌리부터 흔들어 놓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최근에는 북극 항로를 통해 중국과 유럽·대서양을 연결하는 ‘북극 실크로드’ 구상도 제시했다. 2018년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조 케저 지멘스 최고경영자(CEO)가 “일대일로는 새로운 세계무역기구(WTO)가 되고 있다”고 평가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TPP의 부활과 미국의 선택

 

미국의 TPP 불참 선언으로 중국이 RCEP를 내세워 영향력을 강화하자 일본은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TPP를 살려내기 위해 부심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 쌀시장 개방 등의 초강수를 두면서 기존 회원국들의 이탈을 막았고, 결국 2018년 3월 교역물품 95%에 대한 관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TPP의 핵심 조항을 유지한 채 명칭만 바뀐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11개국의 서명을 받아냈다. 미국은 빠졌지만 CPTPP도 참여국 11개국의 GDP가 세계 경제의 13.5%를 차지하고, 인구는 EU보다 많은 5억명에 달할 정도로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이다. 물론, 일본이 미국을 대신하여 TPP를 살려낸 것은 일본이 미국을 대신하여 중국을 견제하고 아시아태평양 경제를 주도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본의 속내는 CPTPP를 일단 출범시켜놓고 나중에 트럼프 행정부 또는 후임 정부가 CPTPP에 가입하도록 유도한다는 전략이었다. CPTPP를 재추진하는 데 가장 큰 동력도 미국이 TPP로 복귀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실제로 폐기될 것이라고 예상되던 TPP가 CPTPP로 다시 살아나자 미국의 입장이 묘하게 바뀌고 있다. 트럼프는 “더 좋은 조건이 가능하다면 TPP에 다시 가입할 수 있다”고 언급하는 등 재가입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TPP 가입 관련 고위급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 대만, 태국, 콜롬비아, 영국 등이 CPTPP에 참여의사를 밝히는 등 가입국가가 늘 가능성도 크다. 신규 참여국가가 늘면 늘수록 미국의 재가입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다자간 FTA 속에서 우리나라의 전략

 

우리나라는 일본 주도로 CPTPP가 부활하고 미국의 복귀 가능성까지 언급되면서 입장이 매우 복잡해졌다. 미국의 탈퇴 이후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TPP는 일본 주도로 부활한 반면, 비교적 적극적이었던 RCEP는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RCEP는 회원국간 이해관계가 복잡하여 협상이 지지부진한데다가 특히, 중국과 관계가 껄끄러운 인도가 시장개방에 난색을 표시함에 따라 당초 목표인 연내 타결이 거의 물 건너갔다. 이런 상황에서 CPTPP에서 소외되면 자칫 경제적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모두에서 밝혔듯이 FTA 협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조급증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하게 실리를 따진 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CPTPP 회원국 중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9개국과 이미 FTA를 체결한 상태이기 때문에 CPTPP 가입은 사실상 일본과의 FTA 체결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하지만, 일본에 시장을 전면 개방하면 자동차, 소재, 부품 등 취약한 국내기업을 중심으로 국내시장이 큰 타격을 입을 위험이 크다. 지금은 CPTPP 가입보다는 미국과의 FTA 재협상이 시급하다. 미국과의 FTA 재협상이 제대로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CPTPP에 가입하면 뒤에 미국이 CPTPP에 가입할 경우 또다시 미국과 협상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따른다. 경제적으로 보면 아세안 10개국이 참여하는 RCEP이 4개국이 참여하는 CPTPP보다 동남아 시장 확대효과가 크다. 

 

물론 그렇다고 RCEP에만 올인하고 CPTPP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중국 견제 차원에서 CPTPP는 그 유용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중FTA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국이 사드 설치 문제 등을 내세워 시행한 무차별 경제보복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무조건적인 신뢰보다는 견제장치가 필요함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CPTPP와 RCEP는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CPTPP와 RCEP에 동시에 참가하고 있는 국가가 7개 국가나 된다. 여기에는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이 있고 나머지도 호주,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중량감 있는 나라들도 있다. 이들과의 전략적 제휴가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궁극적으로는 CPTPP건 RCEP건 주요 다자간 FTA에 모두 참여해야 한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게 이 부분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건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실익을 면밀히 검토하고 협상에서 충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를 둘러싼 다자간 FTA 국가들 면면을 보면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미중일간 경쟁 국면이 심화될수록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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