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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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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이슈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 및 제언이 담긴 칼럼을 제공합니다.

‘중국 변수’가 남·북, 북·미 회담에 주는 함의

이성현 소속/직책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2018-05-03

한국은 복잡한 북핵 협상에서 변수를 최대한 줄이려 하고 있다. 여기에는 북핵 문제에 있어 지금껏 국제사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던 중국도 잠시 한 발 뒤로 물러난 지점에서 무게중심을 잡고 있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는 듯하다. ‘중국 변수’를 최대한 줄이려 하는 것이다. 어렵사리 마련된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에서 협상 당사자들끼리의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높은 수준의 타결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듯하다. 이 관찰이 맞다면 이는 과거 북핵 문제를 ‘중국을 통해’ 해결하려했던 관성적 접근법에서 유의미한 궤도 변경으로 볼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지난 10여년간 북핵 문제에 있어 ‘중국책임론’이 공론화되었고 심지어 중국 언론에서도 북핵이 지역 안보뿐만 아니라 지진 발생, 방사능 유출 등 중국에게 끼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북핵 문제를 자기가 인식하는 국익 관점에서 접근해 오고 있다. 중국은 북핵 해결에 대한 ‘책임’은 일단 부인하고,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은 가지며, 자국 언론엔 재갈을 물렸다. 

 

중국 외교부는 “북핵 문제는 북미 모순이 실질적 원인으로, 미국이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朝核问题的实质是朝美矛盾,美方应承担起应有责任)고 하면서 미국측에 공을 넘겼다 (2016년 9월12일). 유사한 발언을 중국 외교부는 2017년 9월19일에도, 2018년 1월3일에도, 2018년 1월26일에도 했다. 

 

중국은 ‘북핵 문제는 중국 책임이 아니니 중국과 북핵 문제를 연계하지 말라,’고 대외적으로 매년 표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중국이 최근 한반도 정세의 빠른 변화 와중에서 ‘패싱’을 당하는 듯하자 신속하게 어휘를 바꾼 점이 눈에 띈다. 

 

중국 정부는 2018년 4월19일 “중국은 한반도문제의 당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할 용의가 있다,” (作为半岛问题当事方,中方愿为此发挥积极作用)라고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중국이 스스로를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 표정(標定)한 점이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 스스로의 위치를 규정함에서 있어 최근까지는 ‘건설적’ (建设性) 역할을 하는 국가 혹은 ‘독특’ (独特)한 역할을 하는 국가로 스스로를 표현했는데, 이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 외교부 기록을 보면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当事方)를 열거하면서 이에 북한 (朝), 미국 (美), 한국(韓)을 거론하였지만 스스로를 당사자 범주에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관련된 직접당사자들이 용감하게 자신이 져야할 책임을 지고, 해야 할 역할을 해주기를 희망한다,”(我们希望半岛问题的相关直接当事方应勇于承担起应有的责任,发挥应有的作)라고 권유하기도 했다.(중국외교부, 2017년 8월30일). 

 

중국은 또한 이제껏 국제사회가 중국을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인식하는 것을 극구 고사(固辭)해왔다. ‘당사자’가 되면 문제의 ‘책임’도 져야 하는데 중국은 자기는 당사자가 아니고 미국이 당사자이니 미국이 북핵 문제에 책임을 지어야 한다는 논리를 사용했다. 대신 중국은 북핵 문제의 중재자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을 해왔다. 북핵 6자회담의 개최국 역할이 그 대표적이다. 또한 최근 중국은 자신이 내놓은 북핵 중재안인 ‘쌍궤병행(雙軌並行)’ 및 ‘쌍중단(雙中斷)을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에 중국 스스로도 찔끔했을 ‘논리적 모순’을 감수하고서도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임을 표방했다. 이것이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전후의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그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 한국은 예측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전격적으로 진행된 3월말 북·중 정상회담은 이미 이를 시사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첫 해외 정상회담을 중국에서 가짐으로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그 누구도 중국과 상의 없이 한반도 문제를 함부로 결정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분명히 한 셈이다. 

 

중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4월말,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말(6월초)에 각각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라는 알면서도 ‘새치기’를 하듯이 전격적으로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특히 비공식 방문한 김정은을 사실상 ‘국빈 방문’으로 지극히 환대해 주면서 마치 이를 과시하듯 대외에 공개했다. 이것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을까? 다시 말해, 중국이 보여준 외교행위의 ‘타겟 오디언스(target audience) ’ 는 누구였을까? 

 

북·중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필자는 마침 워싱턴에 있었다. 미국은 시진핑-김정은 회담을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속내는 사실 그 반대였던 것 같다.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예정하고 있었던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선수를 치고 전격적으로 북·중 정상회담을 가지자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이

 

당시 워싱턴 관계자의 전언이었다. 그러나 백악관은 내부 토의를 가진 후 ‘환영’한다는 발표를 하기로 하였다. 이처럼 외교적 수사(修辭)는 사실과 정 반대일 때도 있다. 

 

중국 내부의 움직임 역시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중국 학자는 미국을 겨냥해 “쌤통이다!,”(活该!)란 표현을 썼다. 전격적으로 개최한 북·중 정상회담은 다름아닌 미국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대북 제재를 했고 그 때문에 북·중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을 감수했는데, 트럼프가 중국하고 아무런 상의 없이 덥석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발표한 ‘무례’를 되갚아준 것이라는 것이었다. 미국의 일방적인 행동은 “중국의 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 행동,”이라 했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 트럼프의 북미 정상회담 선언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 중국의 ‘패싱’ 불안감을 충분히 자극했다. 이는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이제 ‘더 이상 중국이 필요없고 북한과 직거래를 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격이다. 이럴 경우 한반도 지정학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큰 외부 변수였던 중국의 지분은 자연히 추락하게 된다. 중국 역시 김정은과 정상회담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는데 명분이 부족하던 차였다. 때마침 김정은이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 표시를 해왔고 시진핑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북·중 관계 정상화를 통해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의 주도권과 개입권을 다시 확보했다고 본다. 

 

이런 북·중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미·중 관계를 조금 더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북·중 정상회담 이전부터 최근 미·중 관계는 무역 갈등, 대만 문제, 남중국해 문제, 사이버 해킹 등으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미국이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중국은 매우 화가 나있는 상태였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여행법’에 서명 (3월 17일)한 것과 연관 있다. 이 법안은 미국과 대만의 고위 관리들의 상호 교류를 촉진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중국은 크게 반발하였다. 

 

중국은 대만문제를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못받은 (不容妥协) ‘핵심 이익’으로 여기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의 대만여행법이 ‘하나의 중국’ 정책 위반이라고 본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서서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그 어떠한 시도도 “실패하기 마련”이라며 날카로운 경고를 보냈다. 이내 중국이 유일하게 실천배치 운용중인 항공모함 랴오닝함이 대만해협으로 파견되었다. 

 

중국 학자들은 전격적 북·중 정상회담은 미국과 한국이 중국을 소외시키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중국은 ‘훼방’(打乱)을 놓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특히 시진핑이 김정은을 전격적으로 만난 것은 중국의 핵심 이익인 대만 문제를 먼저 위반한 미국에게 본 때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미국이 대만 문제를 건드리면 중국도 쓸 ‘카드’가 많다는 것이다. 

 

북·중 정상회담이 3월에 이미 거행되었음도 6월에 다시 시진핑이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시진핑 ‘특사’ 자격으로 중국 예술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한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가장 큰 임무는 시진핑-김정은 ‘제2차정상회담’ 준비 차원 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북핵 문제가 한국, 미국에 주도에 의해 현상변경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북한에 대한 ‘비핵화’와 ‘한반도 영향력’ 확보 중에서 후자쪽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중국이 소외된채, 북핵 문제가 남북한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한미가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을 중국이 방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에서 자신의 발언권과 영향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중국을 한국이 어떻게 설득하고 지지를 이끌어 낼 것인지가 중요한 숙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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