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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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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이슈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 및 제언이 담긴 칼럼을 제공합니다.

‘코로나19’ 의 대확산과 안보 개념의 재정립

함명식 소속/직책 : 길림대학 공공외교학원 교수 2020-05-26

오늘날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례가 없는 공동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 위기의 직접적인 근원은 모든 것을 절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의 위협이나 불특정 민간인을 타깃으로 삼는 포악한 테러리스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감지할 수 있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은 다양한 노력을 통해 사전에 차단하거나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현재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바이러스에서 기인하고 있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딱히 피할 공간도 방지할 방법도 마땅하지 않다. 그저 조심하고 내게 운이 따라 주기를 바라면서 바 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신약이나 백신의 개발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작년 말 중국 우한에서 창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이야기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걷잡을 수없이 확산되고 있다. 5월 14일 기준으로 전 세계 218개 지역 및 국가에서 약 430만 명에 육박하는 누적 확진자와 30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집계됐다. 코로나19가 처음 출현한 중국에서는 83,000여 명에 근접한 확진자와 4,600여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방역 모범국가로 주목받는 한국에서도 누적 확진자 수가 11,000여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260여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중국과 아시아 이웃 국가들의 피해도 막대하지만 그동안 선진국으로 인식되어온 서구 국가들의 피해 규모는 기존에 우리가 지니고 있던 선진국에 대한 인식을 뒤집을 만큼 파괴적이다. 전후 최강대국으로 국제정치 경제질서를 주도해 온 미국은 같은 날 기준 누적 확진자 수가 140만 명에 근접하고 있으며 84,000여 명이 넘는 사망자를 배출했다. 유럽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영국, 스페인, 이태리 세 나라는 도합 70만 명에 가까운 누적 확진자와 91,000여 명 이상의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1) 미국과 유럽 국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비극은 그동안 좋은 거버넌스의 모델로 간주되어온 서구 국가들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적, 코로나19 의 위험성

인류는 지진, 화산 폭발, 태풍, 홍수, 해일, 가뭄 등 수많은 천재지변으로부터 끊임없이 위협받아왔고 이로 인해 막대한 인명의 손실과 재산상의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자연재해는 특정한 지역이나 국가에 한정된 재앙에 국한됐고 일정한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상처를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겨울 초입에 불어닥친 코로나19의 기세는 여름을 목전에 둔 현재까지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으며 그 파장의 끝이 어디일지 예측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에도 사스, 에볼라, 스페인 독감, H1N1 등의 동물성 바이러스가 인간의 생명을 위협했지만 이때마다 인류는 발달한 의학 기술과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방역체계를 구축하며 차후에 침투해올 새로운 바이러스와의 전투를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대확산이 가져온 비극적인 결과는 이전까지 인류가 각종 바이러스와 벌여온 투쟁과 세 가지 점에서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첫째, 지금까지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비록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데 한계를 보였다 해도, 상당 부분 국지적으로 제한된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과 달리 코로나19는 세계의 많은 지역과 국가를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둘째, 기존에는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이를 퇴치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를 중심으로 한 국가 간 협력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하지만 현 상황은 국제 협력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전염병 발생의 책임론을 둘러싼 갈등이 증가하며 국가와 인종 사이의 분열과 증오가 확산되고 있다. 셋째, 코로나19의 참극이 지속되면서 바이러스라는 의학 분야의 돌발 변인이 국내 정치와 국제정치 지형을 재편하는 변수로 전이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새로운 경향이 기존의 천재지변이나 전염병과 달리 인류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하는 이유는 코로나19의 최초 발현국인 중국과 최대 피해국인 미국의 이익과 향후 외교 전략이 복잡한 국제정치 사슬에 함께 얽혀있기 때문이다.

국경 없는 전염병의 국제정치

바이러스가 처음 대량으로 출현한 중국은 개혁 개방 이후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통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이후 정치, 경제, 군사와 같은 하드파워 영역뿐만 아니라 문화, 규범과 같은 소프트파워 부문에서 현 패권국인 미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미국 경제와 보건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고위 관리들이 ‘중국 때리기’에 집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2) 이에 더해 미국과 중국의 경쟁에서 실리적인 외교를 전개하던 일부 유럽 국가들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중국과 각을 세우는 모습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인의 경쟁이 서구와 중국의 대립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3)

이와 같은 우려가 현실화될 징조는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미국을 위시해 영국, 독일, 프랑스, 호주, 캐나다에서 제기되는 중국 책임론은 전염병 발생의 기원에서 시작된 논쟁이 이데올로기와 체제 논쟁으로 이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세계보건기구의 대처 방식에 대한 미국의 노골적인 비판은 국제기구에서 영향력을 향상시키며 국제적인 리더십을 강화하려는 중국의 야심을 제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을 통해 중재된 1차 무역 분쟁의 성과를 부정하며 2차 무역 분쟁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은4) 코로나발 경제 침체 여파로 보호무역 주의와 민족주의로 회귀하려는 각국의 대외정책에 당근을 물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5)

코로나19 발발의 부작용으로 파생된 미중 간의 신경전에는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사안에 대한 고려보다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강대국 정치와 권력 유지와 공고화에 집중하는 정치지도자들의 이기적인 태도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로 인해 위기 상황에 직면한 개발도상국에 제공되어야 할 국제적 공조와 도움의 필요성은 뒤편으로 밀려나 있다. 이처럼 코로나19가 야기한 질병의 국제정치는 국제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구성원인 인류에게 안보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며 인간의 행복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안보 개념의 확장: 국가 안보와 인간 안보의 동시 병행

현 시점에서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코로나19의 습격으로부터 어떻게 인류를 보호하고 향후 유사한 전염병의 재발을 방지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을 비롯해 서구에서 나오는 중국에 대한 거친 비판은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 방책을 제공하지 못한 채 해당 국가 간 갈등과 불신만 증폭시키고 있다. 협력과 대화가 절실한 시점에서 갈등과 긴장만 고조시키는 설전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된 원인은 안보의 의미가 협소하게 해석되는데 있다.

국제정치 영역에서 전통적인 안보의 개념은 국가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하는 것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의 모든 정책은 외부의 침략에서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목표에 집중돼야 하고 이를 위해 대외적으로는 믿을 수 있는 국가와 동맹을 형성하고 대내적으로는 부국강병에 치중하는 것이 지상 과제로 믿어졌다. 국가의 안전을 국민 개개인의 안전과 등치시키는 이러한 접근법은 고대 이래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핵심 원천으로 기능해왔다. 특히 정치, 경제, 군사 분야에서 갈등이 심화되고 영토적, 역사적 쟁점에서 서로의 이해가 상충하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강력한 국방력의 유지는 국가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군사적 의미에만 몰입된 안보 개념의 확장을 요구하고 있다. 즉, 평상시 전쟁을 억제하고 유사시 승리할 수 있는 압도적인 군사력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일상적인 생활에서 인간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창출하는 작업 또한 간과할 수 없다는 인식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국제정치 영역에서 인간 안보는 1994년 국제연합개발계획
(UNDP)이 공식 안건으로 제안한 이후 다양한 주제와 형태로 논의돼 왔다. 인간 안보와 관련된 주요 쟁점으로는 군비축소, 인권, 환경보호, 민주주의, 빈곤 극복, 질병 제어, 부패 방지 등을 들 수 있지만 강대국 정치와 국가의 실질적인 이익 추구에 밀려 주변부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 왔다.

한국형 방역의 성공이 주는 교훈

코로나19 발병이 초래한 막대한 폐해는 신종 바이러스의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고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했을 때 이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세계보건기구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세계 대전에서 핵심 컨트롤 타워로서의 효용성을 입증하는데 실패했다.  향후 미중 간 대결 구도가 더욱 치열해질 것임을 상정할 때 유사한 일이 재발할 경우 과연 세계보건기구가 부여된 과제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점에서 더 큰 위기의 도래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공감 하에 동아시아 내지는 아시아 지역에 기반을 둔 가칭 ‘전염병 예방을 위한 (동)아시아 협력 기구’의 창설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아시아가 과밀 인구와 국가 간 불균등 발전으로 인해 전염병이나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라는 점과 태풍, 홍수, 해일, 지진 등 각종 천재지변과 이에 따른 전염병 발생의 2차 피해가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은 이를 전담하는 새로운 국제기구 설립의 당위성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정치체제, 불균형적인 경제발전,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 역사적 해석의 중첩성 등으로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는 (동)아시아의 지역적 특성에 최적화되고, 국가 간 역내 협력을 촉진할 수 있으며, 강대국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새로운 전염병 관련 기구의 설립은 지역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도 순기능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코로나19 와의 전투에서 모범적인 전사를 기록하며 ‘한국형 방역’이라는 모델을 창출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비록 발생지라는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할지라도 중국을 포함해 대만, 베트남, 몽고, 싱가포르 등 적지 않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각기 다른 형태의 방역 정책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성공했다. 코로나19 전선에서 한국이 이룩한 두드러진 성취는 주변국의 경험과 기억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인간 안보를 매개로 한 새로운 협력 기구의 결성은 정치, 경제, 군사, 역사, 영토 분쟁으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동아시아 및 세계의 협력을 고취시키고 궁극적인 평화에 도달하는 주춧돌로 기능할 것이다. 또한 중견 국가인 대한민국이 (동)아시아 지역공동체 결성이라는 역내 공동의 목표를 추진하는데 있어 교량국가로 기능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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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909015&cid=43667&categoryId=43667#TABLE_OF_CONTENT1.


2) https://www.reuters.com/article/us-health-coronavirus-usa-graham-idUSKBN22O2XM; 
https://www.yna.co.kr/view/AKR20200512003500071?input=1195m; 
https://www.news1.kr/articles/?3934395. 

3) https://www.fpri.org/article/2020/04/chinas-covid-19-diplomacy-is-backfiring-in-europe/;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4171567322590?did=NA&dtype=&dtypecode=&prnewsid=;
https://www.yna.co.kr/view/AKR20200419051800082?input=1195m.

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5120933001&code=970100

5) https://www.yna.co.kr/view/AKR20200513057800003?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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