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주요 이슈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 및 제언이 담긴 칼럼을 제공합니다.

홍콩 보안법 통과(국가안보처 신설)로 본 일국양제의 새로운 해석

김진호 소속/직책 :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0-07-14

홍콩 보안법 통과(국가안보처 신설)로 본 일국양제의 새로운 해석1)


서론: 홍콩민주화 운동(시위)의 원인과 ‘애향심(愛香心, 홍콩 사랑)’

2014년 홍콩 우산 혁명에 이어 ‘반송중(反送中: 중국 범죄인을 중국으로 송환하는 법제정에 반대하는 것)’2) 이슈로 2019년 홍콩 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은 연일 계속되었고,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홍콩의 방역과 검열이 강화된 상태에서도 홍콩 민주화 시위는 언론(SNS)과 실제 행동을 통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홍콩 민주화 운동의 원인은 복잡하지만 표면적으로 나타난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3)

홍콩의 시위는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과정에서 홍콩 주민들(홍콩여권 소지자와 영구비자 소유자 포함)은 덩샤오핑이 내민 ‘일국양제’에 근거한 홍콩의 민주와 자유, 그리고 ‘고도의 자치’ 속에서 자신들의 권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 했으나, 반환 후 점차 토착 홍콩주민들의 생활환경이 악화되면서 이러한 시민운동이 일어난 것이라 볼 수 있다.

홍콩은 1989년 중국 텐안먼 민주화운동(사건)’4) 당시 실시간으로 텐안먼 사태가 보도되어 홍콩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어 1997년 홍콩이 반환되기 이전에 많은 홍콩주민들이 외국으로 이민을 가는 현상이 일어났고, 반환 전후 홍콩 부동산시장과 경제는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5) 그러나 중국 정부의 홍콩 부양책과 홍콩 자체의 동력으로 홍콩경제가 다시 회복되고 외국으로 이민 갔던 홍콩 사람들도 이민 지역의 여권을 소지하고 홍콩으로 다시 돌아와 생활하는 현상이 일어났다.6) 
 
홍콩과 중국의 관계를 보면,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여러 내륙지역이 개방되고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치르면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꾸준하게 유지하면서 홍콩의 경제적 가치는 줄어들게 되었다. 이는 홍콩이 자유자본시장으로써 가치는 있지만, 과거 중국의 유일한 관문이 홍콩이었던 시기에 비하면 중국 대도시의 개혁개방은 홍콩을 천천히 중국속의 특별행정구의 하나로 여기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선전경제특구의 GDP는 2018년 홍콩을 추월했고, 중국 인민들이 홍콩을 보는 시각은 외국의 식민지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조국의 영토로 보는 시각이 많아 졌다. 이러한 홍콩과 중국의 관계에서 홍콩사람들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새로운 중국 이민자들과 관광객들을 경제적 이유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문화적으로 이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 양자 간에 충돌은 자주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홍콩 경제가 점진적으로 중국에 의존하게 되고 홍콩 사회가 중국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언론방송 등이 중국화되는 과정에서 홍콩사람 들의 불만이 더욱 가시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홍콩이 반환되어 이미 17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산 혁명이라는 홍콩 젊은이들의 요구가 나타났다는 것은 홍콩은 이미 홍콩주민의 홍콩이라기 보다는 중국의 행정구역의 하나라는 전제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반환 22년이 되어 다시 ‘반송중’을 근거로 홍콩 젊은이들의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것은 이 시기의 사회의 중심계층인 청장년층이 과거 자신들이 경험했던 홍콩에 비해 현재 홍콩 사회가 그들에게 주는 만족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라 판단할 수 있다. 또한,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이들은 대부분 홍콩 반환 전후에 태어난 세대인데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현재 홍콩의 상황이 이들의 생활에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자신들이 거주하는 홍콩의 미래가 밟지 않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간단히 정리하면 홍콩 반환 이전 홍콩사람들이 가졌던 경제와 문화적 우월감은 홍콩 반환 후 홍콩 사회에 대한 상실감과 우려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7) 그리고 이러한 원인을 중국의 홍콩에 대한 정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 반환 전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는 중국 사회주의체제를 반민주적인 체제로 보고 있는데, 중국의 홍콩에 대한 영향력이 강화될수록 이 젊은이들은 홍콩의 민주 가치가 타락되고 자신들의 처지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기존 영국 식민지시대에 형성된 홍콩의 가치라는 것이 ‘언론 자유’와 ‘민주제도’ 그리고 ‘경제활동 보장’이라는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기에 홍콩사람들은 이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중국정부의 관여는 홍콩에 새로운 제도와 환경의 도입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이들은 현상을 과거보다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국이 공산화 되던 1949년 전후와 문화대혁명시기(1966~1976년) 당시 홍콩으로 유입된 사람들은 중국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탈피하거나 혹은 자유가 보장되는 지역인 홍콩으로 피신한 것이었다. 현재 홍콩의 시위세력들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이러한 가치가 탈색되고 중국에서 새로 이민 온 중국인들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고 토종 홍콩주민들의 생활환경이 나빠지면서 홍콩의 가치관과 체제를 지켜 홍콩이 과도하게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홍콩주민들의 위주로 발전해야 한다는 사고에서 홍콩 민주화(고도의 자치 주장) 운동이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언론탄압과 비민주적 행정 그리고 홍콩주민들에게 유리하지 않은 정책이 홍콩을 사랑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애향심(愛香心, 홍콩사랑 정신)을 자극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주장하는 시위가 홍콩 민주화운동이고, 반대로 회복된 홍콩사회에 파괴를 포함한 불안요소를 증대한다고 보는 것이 홍콩 폭동이라 할 수 있다. 8) 
*중국대륙의 경제적 발전은 현재 홍콩의 경제적 가치를 과거처럼 의존도가 높게 보지 않고 있는데, 이미 선전의 경제규모가 홍콩을 뛰어넘은 상태에서 중국인들이 홍콩을 보는 높이도 과거보다 낮아졌다고 할 수 있음. 현재 광둥성의 많은 지역도 홍콩에 가지 않고도 자신의 주거지에서 홍콩에서 보고 얻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을 모두 찾을 수 있기에 굳이 홍콩을 가려 하지 않음. 반대로, 홍콩주민들은 자신들 생활의 편리와 장사나 사업을 위해 중국을 오가는 경우가 많아 졌음. 젊은이들의 취업환경도 홍콩의 취업환경이 나빠져 중국으로 취업을 하러 오거나 중국계 기업에 취업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음.

중국정부와 중국 인민들의 홍콩에 대한 사고

중국정부와 중국 인민들의 사고는 홍콩은 이미 중국의 일부분이 되었기에 홍콩주민들은 중국정부의 지도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중국 인민들은 홍콩이라는 지역이 중국의 어느 지역보다 생활환경이 좋고 자유가 보장되는 지역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러한 환경에 사는 홍콩주민의 중국정부에 대한 불만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혹자들은 홍콩주민들이 너무 행복해서 행복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즉, 중국에서 생활의 경험이 있었다면 홍콩의 상대적 편리함을 잘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중국 일부 인민들이 홍콩사회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근거로 홍콩이라는 사회를 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중국의 대부분 인민들이 홍콩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중국의 체제와 언론들이 이러한 이미지를 만들고 인민은 이에 따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정부와 대부분 인민들은 선대 지도자인 덩샤오핑이 제시한 ‘일국양제’의 중요성을 중시하며, 홍콩의 통치 방법이 바뀌더라도 ‘일국양제’의 틀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홍콩의 반환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중국과 중화민족에게 위대한 일이고, 이는 중국의 발전과 연결되는 사안이기에 홍콩주민들도 중국 공민의 입장에서 중국 정부의 입장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국 인민들의 일반적이 생각이다. 그리고 홍콩 시위 주동자들은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야 하지만, 홍콩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해 그들이 생활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도 중국인들의 생각이다. 즉, 홍콩의 안정과 번영은 중국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부 중국내 지식인들은 홍콩문제에서 ‘일국양제’가 이미 그 영향력을 다했기 때문에 홍콩에 맞는 방법을 찾아 타협적으로 홍콩주민들과 협상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공산당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 입장에서 홍콩의 소요는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중국 공산당의 입장에서 홍콩문제는 또 중국의 타이완 문제해결과 연관되기에 홍콩에 대해서는 중국 공산당의 일관된 입장을 보여야 하며 중국 정부는 더욱 진화된 방식으로 홍콩을 안정시킬 것이라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중앙정부의 홍콩에 대한 이해부족은 그 문제의 근본해결에 있어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보고 있다.

시위에 대한 진압문제에 관해 일부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홍콩시위에 대한 강압적 진압은 중국정부가 국제사회를 의식하기에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법에 의한 간접적 진압을 하면서 이번과 같이 중국 양회의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 헌법의 해석과 수정을 통해 국가공안법을 보완하고 이를 통해 홍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체제를 통해 홍콩 시위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중국정부의 입장일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중국의 너무 강압적인 문제해결은 홍콩 ‘일국양제’에 타격을 줄 것이고 홍콩사회는 새로운 혼란을 겪을 수 있기에 홍콩문제 해결은 장기전으로 순서에 맞추어 천천히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홍콩과 중국을 오가는 전문가들의 홍콩에 대한 관점

홍콩과 중국을 오가며 생활하는 홍콩주민이나 중국인민들의 입장에서 홍콩시위문제는 해결되어야 할 과제라 생각하는데, 그 해결방법에 대해서는 홍콩에 비중을 두는 사람들은 민주적인  방법으로의 해결을 주장하며 중국에 방점을 두는 사람들은 강압적인 방법이라도 빨리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여러 중국인들이 서로 다른 해결방법을 주장하고 있고 홍콩 문제를 보는 시각도 각기 다르다. 그러나 공통된 것은 홍콩이나 선전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중국 중앙정부인 공산당의 확고부동한 사고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봤다. 이는 중국정부는 타이완 문제와 중국과 국제사회라는 입장에서 국가적 개념에서 하나의 특별행정구로 홍콩을 보고 있기 때문에 이는 홍콩주민들이 홍콩을 중심으로 중국과 세계를 보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결론: 한국의 입장에서 홍콩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한국은 중국과 국교관계를 수립하고 있으며, 서구 자유주의국가나 심지어 타이완과도 다양한 교류를 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홍콩문제에 대한 언급은 상당히 신중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중국이 홍콩문제를 국가의 핵심이익과 연결된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인데, 홍콩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경우 이 또한 한국사회의 민주와 자유에 대한 가치관을 표현 못하는 것이기에 어느 한쪽 입장을 지지하기가 무척 힘든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인류보편의 가치인 민주와 자유라는 입장을 지키는 한국의 민주운동가들은 홍콩 민주화시위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은 어는 정도 위안은 될 수 있을 것이다. 홍콩 시위세력은 한국 정부의 공식적 지지를 얻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 중국 정부를 자극하는 발언은 전체적 국익을 고려하는 측면에서 극히 신중해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홍콩사태를 홍콩주민 모두가 지지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지 않다. 홍콩에는 중국에서 살다가 온 사람들과 중국에서 사업하며 중국을 이해하는 사람 그리고 중국에서 이민 와서 중국정부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중국정부의 상황도 고려하고 홍콩사회의 안정과 발전 그리고 젊은이들의 미래도 동시에 고려하기에 여러 복잡한 다른 의견들이 공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북한과 일부 국가가 중국의 홍콩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특수 정치환경에는 가능하지만 정상적인 국가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고 본다. 홍콩은 민주화운동에서도 한국의 민주화운동사례를 많이 학습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민주화운동 세력에 민간차원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기에 한국 정부와 언론 보도는 다각면의 시각을 동시에 알려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본다. 간단히 말하자면, 홍콩 사태의 문제는 민주와 자유의 가치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홍콩 사회의 특수성과 홍콩의 새로운 변화에서 나타나는 정치와 사회의 복합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중국정부에 있어 이는 중국과 국제사회의 연결부분이라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가 홍콩을 보는 것과 정부가 홍콩 문제에 대해 국제적 발언을 하는 것은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사회가 홍콩 민주화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하는 것은 민주와 자유의 가치를 존중하는 한국인이 홍콩사람들에게 주는 뜨거운 관심과 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동정과 지원을 통해 중국정부에 대항하겠다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홍콩에 대한 자유의사의 표시와 판단에도 혼돈이 올 수 있다고 본다.

정부의 입장에서 중국이라는 실체를 고려하여 홍콩과 관련된 언급을 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으로 홍콩 민주화운동을 지지하지만 국가이익을 고려한 정치적 입장에서 그 내용을 언급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편할 듯하다. 이는 한국과 중국의 국가관계 외에도 중국 대부분 지역에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고 많은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어 양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있기 때문인데, 중국의 홍콩에 대한 정책이 장기화전략인 것과 같이 한국의 중국 국내정치에 대한 판단도 일부 신중함도 있어야 할 것이라 본다.

앞으로 홍콩 문제는 중국이 금년 양회에서 국가 공안법 통과와 연이어 국가안보처 신설로 홍콩 시위를 진압하는 방법을 추진하고 있는데, 앞으로 홍콩의 시위는 무력적인 가두시위가 아닌 인터넷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이라 기타 국제연대를 통한 시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들이 안전을 위해 거주지를 타이완이나 기타 안전한 지역으로 이전하면서도 그 운동은 꾸준하게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판단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광둥성과 홍콩은 중국 혁명의 거점으로 근대 역사에 남아있고 광둥사람(홍콩사람)의 특징을 보아도 이들의 의지는 그리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홍콩의 지위도 과거보다는 더욱 축소될 수 있다고 보인다. 이는 중국이 광둥성과 홍콩, 마카오를 연결하는 세계최대 산업·금융 인프라단지인 ‘다완취(大灣區)’ 건설을 한다는 것을 보면 미래 홍콩은 다완취의 일부분으로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홍콩인들은 이 경제적 기회를 기반으로 중국과 교류하며 광둥성의 홍콩사람으로 바뀌어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중국정부는 광둥성 종합발전계획을 통해 홍콩을 광둥성과 통합하는 경제·문화·정치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
1) 본 연구는 2019년 5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중국 광둥성 선전대학 중국특구경제연구센터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지내며 홍콩, 선전, 타이완 등지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기초로 작성되었다. 

2)‘반송중’은 원래 홍콩 국적의 젊은이가 타이완에서 타이완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돌아왔으나 홍콩과 타이완 사이에 ‘범죄인 인도협정’ 체결되지 않아 타이완에서 처벌할 수 없어 홍콩과 타이완의 범죄인 인도협정에 대한 논란이 있을 당시 홍콩과 중국도 이러한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중국측에서 나와 이런 중국측의 요구에 반대하는 의견이 홍콩에서 나온 것인데, 이는 홍콩주민들이 중국으로 끌려가 법적 처벌을 받게 됨으로써 중국내 법의 처벌이 홍콩주민에게 강제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에 반대하여 진행된 시위이다. 그러나 그 시위가 내포하고 있는 것은 홍콩주민들의 중국정부에 대한 각종 불만이라고 할 수 있다.

3) 홍콩 주민의 입장에서 이 시위는 민주화운동이라 불리고 있으나, 중국정부의 입장에서는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폭동으로 보도된다. 즉, 홍콩에서 일어나는 시위는 홍콩주민들에게는 민주화운동으로 홍콩을 반환 받는 중국정부의 입장에서는 폭동이라 표현된다. 즉, 홍콩 언론에서는 이를 ‘사회운동’이라 칭하고, 타이완과 일본 등지에서는 ‘민주화운동’ 그리고 중국에서는 ‘시민폭동’으로 표현된다.(https://hk.yahoo.com/, https://tw.yahoo.com/, https://www.baidu.com/ 등 참조)

4) 텐안먼 사건은 지역 및 시각에 따라 텐안먼 사태. 텐안먼 민주화운동, 텐안먼 폭동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시각으로 그 지역이 어디에 속하고 그곳에서 중국 정부(공산당)을 어떻게 보는지에 해따라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은 달라지는 것이다.

5) 저자가 1989년 홍콩에서 거주하며 목도한 바에 의하면 홍콩섬 통로완(커즈웨이 베이) 근처 빅토리아 공원에는 연일 텐안먼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홍콩 반환 전후로 홍콩사회는 현격하게 동서문화의 융합도시에서 중국의 특구형태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홍콩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6) 1989년 북경 텐안문(천안문)사건에서 중국정부가 천안문광장에 모인 민주 시위자들을 무더기로 학살하는 것에 대한 이미지는 홍콩에 오래 남아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1989년 천안문 사태를 홍콩의 언론을 통해 목도하고 자주 중국에 들어가 그 체제를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이 교육한 현재의 젊은이들은 중국 공산당과 정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7) 타이완, 홍콩, 중국의 북경, 선전에서 1983년부터 최근까지 살아본 연구자의 경험에 의하면 타이완의 정체성, 홍콩의 정체성과 중국 북경과 선전의 정치와 경제 및 사회환경은 확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홍콩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본다면 이들은 중국문화의 개화와 개방의 전면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이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의 공민 입장으로 살아야 하는 새로운 현실 적응이 과제로 남아있다 본다.

8) 1985~1990년까지 홍콩에서 생활하고, 2010~11년 홍콩 주해대학에서 강의하고 2019~2020년 중국 선전대학에서 연구생활을 한 경험에 의하면 학생들도 홍콩학생들과 중국학생들은 서로 어울리지 못하며, 기타 언론인·교수·사업가들도 홍콩사람과 중국사람(홍콩사람들은 이들은 내륙인이라 칭함)이 서로 쉽게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는 서로 족군(足群)이 달라 지역 환경에 대한 이해와 생활습관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홍콩에는 외국의 문화와 문명이 쉽게 홍콩에 들어와 홍콩방식으로 토착화되는데, 서구의 민주적 가치관은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시절에도 홍콩사회의 자랑으로 여겨진 것을 보면 홍콩사람들의 자유와 민주적 가치관과 법치 및 상업의 보장은 이들의 정신으로 자리 잡았기에 홍콩사람들의 사고는 1949년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 이미 70여년이 지난 중국사회의 중국인들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즉, 중국 중국인들의 사고는 홍콩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며, 홍콩사람들의 주장도 중국정부나 인민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즉, 서로 소통은 되지만 서로의 가치관과 사고를 이해하기는 힘든 것이라 볼 수 있고, 쌍방의 홍콩과 중국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이 통합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것도 중국 ‘일국양제’에 대한 현실적 회의가 아닌가 한다.


<참고자료>
金珍镐,「香港的歷史背景」,『香港過渡期的轉變(從一九八二至一九八九年為主)』,香港珠海大學文史研究所碩士論文(1995).

유영하 저,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부산: 산지니, 2005).

BBC中文,“新加坡會取代香港成為亞洲金融中心嗎”(2019年9月9日), 

BBC中文, “香港問題加深英國與中國裂痕 雙邊關係何去何從”(2020年5月31日)

蘋果日報, “宋承恩:面對香港局勢 台灣可以更大膽,”(2020年5月06日)

如果反送中在台灣發生 | 明居正「透視中國」【0058】, YouTube (2019年12月11日),https://www.youtube.com/watch?v=IY0EMdsknys(검색일: 2020.5.31).

中国道路研究出版中心,“看明白香港的现状,必须先搞懂这6个问题”(2019年8月21日)

中国日报网,“美国在香港问题上装无辜骗不了人,”(2019年8月26日)

人民网, 台湾雅虎网, 香港凤凰网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