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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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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의 전제 조건과 전망

함명식 소속/직책 : 길림대학 공공외교학원 교수 2020-12-22

2017년 9월 3일 북한은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후 남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긴박하게 돌아갔고 한반도는 급속한 안보 위기 상황에 빠져들었다. 같은 해 1월 미국에서 새로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시그널을 보내며 북한에 대한 위협을 증가시켰다. 동년 5월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에 드리워진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중재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18년 2월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에 김여정을 비롯한 북한 수뇌부의 일부가 평창을 방문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조성된 남북 간의 대화 동력은 이후 한반도 분쟁의 주요 당사국인 한국, 북한, 미국, 중국 지도자 사이의 연이은 정상회담 개최로 이어졌다.

일촉즉발의 대결 분위기에서 정상 간의 지속적인 회담으로 급속히 변모한 동아시아 국제정치가 남긴 결과와 교훈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3년이 다 되가는 오늘 날 한반도는 진정으로 평화로워졌고 남북 간 화해와 통일을 위한 극적인 진전은 이루어졌는가? 또한 열 차례가 넘는 남북, 북미, 북중 정상회담은 남북 관계 변화를 위한 근본적인 돌파구를 가져왔고 북한은 실질적인 비핵화에 한 발짝이라도 다가섰나? 유감스럽게도 숱한 정상회담과 외교적인 수사학에도 불구하고 2018년 이후 지금까지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에 어떤 진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북한은 지난 3년 간 핵무기와 발사체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시간을 보장받으며 핵무력을 더 증강시킨 것으로 확인됐다.1)

그렇다면 북한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을 제외하고도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 3번의 북미정상회담, 5회의 북중정상회담을 합쳐 약 1년여라는 짧은 기간 동안 총 11번이나 개최된 정상회담의 결과는 무엇인가? 이제 11차례의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핵화는 고사하고 오히려 북한이 핵능력을 고도화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과 냉정한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 글은 북한 비핵화를 위해 개최된 적지 않은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한 원인과 북한비핵화가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 조건들을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협상 동참

북한비핵화 실패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싱가포르, 하노이, 판문점에서 개최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참가 시 진정으로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생각이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과 이에 대한 답을 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즉, 무엇이 김정은으로 하여금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를 타고 하노이로 향하도록 만들었을까?

필자는 회담 결정의 핵심 배경을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동시에 받은 국가 안보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에서 찾고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결전을 벌인 이후 자국의 안보를 위협해온 최대 적성국이다. 반면 중국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보호하기 위해 한반도에 진입해 미국과 직접 전쟁을 치룬 북한의 혈맹이다. 북한은 중국의 유일한 동맹국으로 냉전 및 탈냉전 시기에 순망치한의 관계를 유지하며 각자의 안보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존재로 기능해왔다. 

특히 1990년대 초반 북한이 초래한 핵위기가 본격화된 이후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뒷배를 책임져주는 형제국가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다양한 제재가 가해지던 와중에 실행된 6차 핵실험과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속화되는 미국의 대중 압박은 중국으로 하여금 역대 최고수준의 경제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적성국 미국’의 군사 위협과 ‘동맹국 중국’의 경제 위협에 동시에 노출돼 그 어느 때보다 안보의 위협을 느낀 북한은 미국과의 회담을 통해 위기를 풀어나갈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즉,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 위협을 제거함과 동시에 중국에 경제 제재를 약화시킬 명분을 제공해야 할 필요성이 북한이 정상회담 전략을 결심하게 만든 배경이다.

역사의 가정?

역사는 가정을 좋아하지 않지만,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이 북한 핵전력의 ‘점진적인’ 감축에 동의하고, 경제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하면서, 북한 정권의 체제 보장을 확고히 약속하고, 이 결과를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로부터 공인받은 후, 국제적인 보상을 지불했다면 지금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 있다. 하지만 점진적인 비핵화→부분적인 경제 제재 해제→ 체제 안전보장→국제사회 보상은 원래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요구했던 비핵화의 원칙과 근본적으로 상반되는 것이다. 북한 비핵화에 관한 한국과 미국의 원칙은 '완전하고(Complete) 검증가능하고(Verifiable)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비핵화(Denuclearization)'였다. 즉, 전면적인 비핵화→경제 제재 철회→체제 안전보장→국제사회 보상이 원래 구상됐던 로드맵이라고 할 수 있다.2)

그리고 이런 형태의 비핵화(CVID)만이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CVID를 원칙으로 한 비핵화가 반드시 관철돼야 하는 이유는 북한이 1차 핵위기 이후 체결된 1994년 제네바협정, 고김대중, 고노무현 대통령 시절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에 반영된 신뢰와 협력에 관한 합의를 위반하면서 지속적으로 핵전력을 증강시켜왔기 때문이다. 지나온 역사는 북한 지원을 둘러싼 한국 내부의 갈등 극복, 남북한 간의 전면적인 협력 추진, 점진적인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임을 말해주고 있다.

성공적인 비핵화 사례

국제정치에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그 반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전혀 낯설지 않은 현상이다. 2차 대전 전범국인 일본, 독일은 전후 아시아와 유럽에서 미국의 가장 든든한 동맹국으로 변모했고, 베트남 전쟁에서 서로에게 총칼을 겨눈 미국과 베트남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현재 남중국해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전쟁에서 맞서 싸운 미국과 중국도 후자가 전자의 패권에 도전하기 전까지는 경쟁보다 협력을 강조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이외에도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무수한 사례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미국과 북한도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과거 역사와 결별하고 극적인 관계 전환을 이룰 수 있음을 시사한다.

양자관계의 역동적인 변화 사례뿐만 아니라 핵능력을 포기한 국가의 전례는 북한의 비핵화가 결코 실현 불가능한 몽상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 브라질은 핵무기를 갖췄거나 핵개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핵시설을 영구히 폐쇄한 경우에 속한다. 냉전 시기 구소련에 속했던 카자크스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는 냉전의 해체와 함께 냉전 시기 보유했던 핵무기, 핵개발시설, 핵실험장을 포기하거나 해체했다. 국가별로 그 과정은 다르지만 군사력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절대적인 핵능력을 포기한 사례들은 국제 환경의 변화와 국내정치 상황의 변동에 따라 비핵화가 현실화 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된 평화적인 비핵화 과정이 북한에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의 비핵화가 난망한 이유는 북한 체제가 지닌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위에서 언급된 선례 중 구소련에 속한 국가들의 비핵화가 냉전 이후 독립 국가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협상의 결과였다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 브라질의 경우는 국내정치가 독립 변수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세 국가에서는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집권 세력이 국내 정치 세력의 도전과 핵개발에 따른 외부의 경제 제재로 초래된 위기 국면에서 탈피하기 위해 비핵화를 협상 카드로 활용했다. 그 결과 비핵화의 대가로 정치적 안전보장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약속받아 임박한 정치적 위기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북한 비핵화가 난망한 이유

하지만 북한은 위에서 언급된 국가들과 근본적으로 상이한 대내외적 환경에 처해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가로막는 첫째 요인은 북한 정치체제의 속성에서 기인한다. 앞에서 언급된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 브라질은 국내적으로 정권의 안위를 위협하는 도전에 직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치적으로는 집권세력이 정권을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야당 및 시민사회의 저항이 격렬했고 연이은 실정과 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도 팽배했다. 그 결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제사회와의 비핵화협상을 선택했다. 즉, 정치지도자의 퇴진을 압박하는 정치세력과 강력한 시민사회의 존재가 집권세력을 비핵화협상에 나서게 한 것이다.

위의 경우와 달리 현재 북한에는 집권세력을 대체할만한 정치세력이나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북한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베트남과 달리 정치지도자 개인의 안전이 국가의 안전과 일치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어떠한 형태의 체제 변동도 허용될 가능성이 희박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시민사회의 부재는 북한 체제 내부에서 비핵화를 추동할만한 정치적 여건이 마련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 위에서 언급된 국가들이 비핵화를 결정할 당시와 현재 국제정치 환경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과거 비핵화가 이루어진 시기는 냉전 직후 미국이 세계의 유일한 슈퍼파워로 존재하던 기간이다. 구소련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세계에 자국의 질서를 강요할 힘을 지니고 있었으며 실질적으로 미국의 독주를 견제할만한 국가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비핵화협상에서 미국의 채찍과 유인책을 거부할 경우 치러야 할 비용과 희생이 막대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1차 핵위기 발생 이후 미국이 북한에 가하는 제재로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오늘 날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과거와 같지 않다. 이는 약해진 미국의 협상력에 비례해 북한이 운용할 수 있는 전략적 대응 방안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셋째, 시간이 흐를수록 심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다. 2018년 북한이 정상회담 전략을 통해 국가의 안전 보장을 확보하려 했던 이유는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동시에 가해지는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은 무역 분쟁을 시작으로 미국과의 갈등이 본격화되는 상황이었기에 북한에 대한 제재에 동참해 미국에 협조하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또한 중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감행하고 중국이 중시하는 국제행사를 전후해 반복적으로 미사일을 실험하는 북한 행동에 제재를 가할 요구가 존재했다. 하지만 일련의 정상회담 외교를 거치는 과정에서 미중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발생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매번 베이징을 방문했고 이는 중국에게 북한에 대한 경제적 위협을 완화시킬 충분한 명분을 제공했다. 또한 미국의 대중국 봉쇄정책이 한층 강화되면서 중국 외교에서 북한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내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자원을 확보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넷째, 비핵화 협상이 발생시키는 딜레마이다. 과거 구소련에 속한 국가들이나 다른 나라의 경우 핵개발에 소모된 비용이 북한에 비해 월등히 적었다. 핵능력 보유를 위한 비용이 높았다는 것은 비핵화에 대한 보상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비핵화에 대한 국제적 보상의 증가는 북한에 동전의 양면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우선 북한 경제가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공헌하면서 체제의 정당성을 높일 수 있다. 동시에 북한에 지급되는 보상은 북한이 경제 개혁을 수반하는 조건과 연동될 것인데 이는 일인 집권 체제를 유지해온 북한에 위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북한은 중국, 베트남처럼 자본과 인력 이동의 상대적 자유를 허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비핵화를 추진할 경우 핵무장을 위해 그동안 지불해온 높은 비용에 대한 당위성이 사라지며 내부적으로 그동안 소요된 비용에 관한 의구심을 촉발시킬 수 있다. 이는 체제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북한의 입장에서 비핵화로 지불해야 할 비용이 혜택을 훨씬 상회할 것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국 비핵화 전략에 대한 함의

지금까지 북한이 비핵화의 길을 걷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전제조건을 설명했다. 우선 북한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만한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중국의 경제적 위협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 체제가 내부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도전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수많은 국내 문제, 점점 치열해지는 미중 갈등, 북한 내부의 철저한 통제 상황을 고려할 때 두 가지 조건이 함께 작동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한 가지 변수는 북한 내부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여부이다. 현재 북한은 바이러스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과의 교역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이 바이러스 퇴치 여부를 체제의 안정과 직결된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한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를 성공적으로 관리하고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한다면 북한 비핵화에 전념하는 한국 정부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외면하고 주관적인 판단을 객관적인 정세로 확신하고 밀어붙이는 정책을 톺아볼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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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는 2020년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30-4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2019년 보고서에서 북한이 20-30개의 핵탄두를 지닌 것으로 발표했던 것과 비교할 때 일련의 정상회담이 개최된 1년 사이에 약 10-20여개의 핵탄두가 추가로 제작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SIPRI Year Book Summary 2019, p. 11; 2020, p. 15 각각 참조.

2) 당초 북미비핵화협상의 최대 관심은 북한의 부분적인 비핵화와 순차적인 경제 제재 완화를 미국이 수용할지 아니면 전면적인 비핵화를 북한이 받아들일지에 집중됐었다. 하지만 핵개발을 시행하다 중도에 포기한 국가들은 비핵화의 대가로 제재 완화, 정권 안전보장, 국제적인 보상을 얻어냈다.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보상은 다양한 형태의 경제적인 지원과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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