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주요 이슈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 및 제언이 담긴 칼럼을 제공합니다.

너무 많은 ‘중국 특색’ 논의의 출현

함명식 소속/직책 : 길림대학 공공외교학원 교수 2021-01-31

중국의 부상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은 이제 한국인의 삶에서 거의 일상화됐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비단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국가가 동일한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오늘 날 중국인들 앞에서 40여 년 전 중국의 모습을 언급하는 외국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글로벌한 현대를 살아가는 세계의 젊은이들은 개혁 개방 이전 중국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고 알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더 정확한 표현은 이들이 공산 혁명 이후 가난하고 음침했던 중국의 역사를 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를 여행하는 외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과거 중국의 빈곤하고 암울했던 시대에 대한 설명은 “interesting, so what?”이라는 질문만 야기할 뿐이다.

중국 특색 논의의 출현

뻗어가는 중국의 위상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는 주체는 중국의 정치지도자와 지식인 집단이다. 이들은 현재의 중국을 가장 돋보이게 하기 위해 어떤 화장품을 사용하고 어떤 의상과 신발을 착용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단지 오늘의 중국을 선전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이들은 과거 불행했던 역사의 굴레를 벗어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현재의 중국과 과거의 중국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현재를 치장하는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임을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다양한 중국 특색 논의의 출현이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행사되는 중국의 영향력이 크게 증가하면서 중국은 자국의 부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정치 논리를 공격적으로 창출해왔다. 대표적으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중국 특색의 경제 발전’,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 ‘중국 특색의 소프트파워’, ‘중국 특색의 국제정치이론’을 들 수 있다.

‘중국 모델’의 주창: 중국 특색 사회주의에서 중국 특색 경제 발전으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노선을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 원리를 받아들여 경제 발전을 추구한다는 중국 공산당의 공식 이데올로기로 덩샤오핑이 추진하는 경제 개혁과 개방 정책의 당위성을 높여주기 위해 개발됐다. 이는 내부적으로는 경제 개혁을 추진하는 것에 반발하는 공산당 내의 강경 보수주의 세력의 비판을 억제하고 대외적으로는 냉전 체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자본주의 시장 논리 도입이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구공산주의 진영의 공격으로부터 새로 도입된 경제 노선을 방어하고 이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정책 결정의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흔히 흑묘백묘, 실사구시로 대변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노선은 10년 동안 전개된 문화혁명으로 초래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빈곤을 탈피하고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는 초석이 됐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제시됐을 때만 해도 중국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비효율성과 전체주의의 폐해를 입증하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했다. 그리고 서구의 학자들은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입증할 경제 개혁이 궁극적으로 중국 정치 체제의 변화를 가져오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장기간 이어진 고도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는 권위주의 정치 체제는 약화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런 중국 현상은 강대국화라는 국가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 권위주의가 지니고 있는 효율성에 주목한 일부 학자들에 의해 중국 모델이라는 포장지를 뒤집어 쓴 신상품으로 분장해 학계에 재출시됐다.

중국 모델은 한 마디로 중국 특색의 경제 발전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다른 개발 도상 국가의 경제 발전 모델로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중국 경제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설명하기 위한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중국 특색의 경제 발전 모델은 미국 주도의 시장경제 발전 모델을 받아들이기 힘들거나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국제경제 시스템에서 소외된 국가들이 중국 모델을 발전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와 중국 특색의 경제 발전에 사이에 존재하는 결정적인 차이점은 전자가 경제 정책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과 달리 후자는 정치적 특성을 더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중국 모델은 권위주의 정치 체제의 변동을 수반하지 않고도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중국 정치 체제의 속성과 경제 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정책 분석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권위주의 정치 체제의 안정성과 효율성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중국 모델이 적용될 수 있는 국가의 범주는 결국 민주화가 지연되고 있는 개발도상국으로 제한될 것이다. 실제로 권위주의 정치 체제가 장기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짐바브웨, 에티오피아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Look at East’를 국내 정책과 외교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레토릭으로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정치 체제가 강력한 중국 공산당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일당 지배 체제를 공고히 유지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이 정치 안정과 사회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모델의 적용을 통해 유사한 발전 경로를 추진할 수 있다는 주장은 결국 비민주주의 국가들이 권위주의 정치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 모델을 활용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정치적 영역으로 확장된 중국 특색

위에서 언급한 중국 특색 사회주의와 경제 발전은 정치적 요소가 가미됐다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중국의 급속한 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배경과 동력을 설명하는 것에 집중돼 있다. 경제 개혁의 초창기에 적지 않은 서구의 학자들은 중국의 경제 성장이 중산층을 확산시키고 시민사회의 태동을 가져와 정치시스템과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민주화의 물결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1989년 자오즈양 총서기의 죽음 뒤에 발생한 천안문 사건은 중국에서 시민사회의 등장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서곡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대만의 경우처럼 경제 발전에 뒤따르는 정치 개혁이 중국에서도 곧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중국에서는 국가에 대응하는 사회 영역의 자율성이 여전히 답보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동시에 중국학자들은 중국 정치 체제의 우월성을 강변하는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논리를 내세우며 권위주의 통치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 주장의 핵심은 중국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서구식의 급진적인 정치 개혁을 거부하며 점진적이고 창의적인 형태의 개혁을 통해 서구의 길이 아닌 중국식 정치 발전을 모색한다는 것에 있다.

중국학자들이 주장하는 중국식 민주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를 거쳐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평화적이고 수평적으로 이루어진 중앙 핵심 권력의 교체,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중앙-지방 관계의 틀을 벗어나 지방 정부의 자율성을 향상시킨 부분적인 분권제 추진, 상호 경쟁하는 권력 집단이 과거처럼 폭력적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 타협을 통해 자리를 분배하는 권력 분점, 다양한 정치 기구의 활성화를 통해 표면적으로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절차적 인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정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이전 권력 개편이나 극심한 갈등 과정에서 표출된 불안정한 정치 상황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 집단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할 수 있는 정치 개혁과 다원화를 허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산당 일당 지배와 권위주의 정치 체제에 대한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 발전의 본질적인 의미와는 커다란 괴리가 있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과 달리 정치 안정, 경제 발전, 사회 통합을 유지하는데 성공해 온 중국은 자국이 주장하는 다양한 특색을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향상시키는 요소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 정치학자 조셉 나이에 의해 처음 고안된 소프트파워 이론은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가치, 문화, 외교원칙을 소프트파워의 핵심 인자로 제시하고 있는데 중국은 미국이 강조하는 소프트파워가 서구식 가치와 규범만을 강조한다며 비서구 국가가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다양한 중국 가치와 규범, 고유한 중국 문화와 역사가 소프트파워의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 제공하는 조건 없는 원조, 다양한 형태의 공공외교, 운명공동체를 강조하는 일대일로 등을 통해 중국식 소프트파워를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배가하고 있다.

중국 특색의 국제정치이론

중국이 주장하는 특색 있는 중국 정치 개혁과 경제 발전은 궁극적으로 중국 중심의 새로운 국제정치이론의 창출로 수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중국 체제의 우월성을 강변하는 각각의 특색이 결국 중국의 부상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대안적 담론 창출의 수단으로 귀결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재 이와 관련된 중국 국제정치학계의 작업이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 특색의 국제정치이론은 중국 전통의 사상과 철학, 중국이 전근대시기 주변국과 공유했던 문화와 역사를 핵심적인 구성 요소로 하고 있다. 중국 특색의 국제정치이론을 입증하는 사례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것이 근대의 도래 이전 중국이 주변국과 형성했던 조공제도인데 이 중에서도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특별히 주목받고 있다.

중국이 전통 동아시아 질서의 축으로 작동했던 조공제도에 대한 이론화 작업을 가속화하는 것은 과거 중국이 조공제도를 수용한 주변 약소국과 존중과 자율성의 교환을 통해 안보를 보장해 준 것처럼 현대 국제정치에서도 주변으로 밀려난 개발도상국 같은 약소국의 주권과 권리를 최우선적으로 보장해줄 것임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조공제도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국가들이 중국과 공유하고 있던 문화적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 국제질서에서 서구의 식민지배 영향으로 소외되고 있는 개발도상국과 서구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하다시피한 중국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공통점을 찾아내 둘 사이의 연대의식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특색의 국제정치이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전근대 시기 한국의 경우가 언급된다는 것은 오늘 날 한중관계를 설명하는데 있어 중국의 숨은 의도와 장기적인 전략에 관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중국 특색이 강조되는 배경

그렇다면 중국이 수많은 중국 특색을 강조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첫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격동기에 자주적인 근대화에 실패한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중국은 공산 혁명이 성공하기 전까지 1차 아편전쟁 패배 이후 근 백년의 기간 동안 서구의 침탈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역사적 수모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 붕괴된 봉건제와 유교 질서를 대체할 대안으로 탐색되어진 다양한 서구 사조는 위기에 빠진 중국을 구원할 대안으로 작동하지 못했다. 결국 노동자계급을 주력으로 한 정통 공산주의 혁명 노선과 결별한 후 농민 주도의 전략으로 공산화에 성공한 중국은 서구 사상과 담론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중국 특성에 적합한 이론과 담론 개발에 주력해왔다. 이는 서구식 근대화와 발전 경로에 의존하기보다 중국에 내재하는 속성에 근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지식체계의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

둘째, 중국 특색의 강조는 중국의 국익을 방어하는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아직도 사회주의 정치 노선을 고수하는 공산당에 지배 받는 권위적인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서구 사회가 지향하는 개개인의 자유, 평등, 민주, 인권의 가치가 실현될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 결국 서구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 국민을 통제하고 체제를 수호하는 최선의 방법은 중국 속성의 강조를 통해 자국 시스템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선전하고 대외적으로 이의 우월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도 중국이 서구의 길과 상이한 중국적 경로의 모색과 홍보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임을 의미한다.

셋째, 중국의 부상에 따른 서구와 주변국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담론을 확산시키는 목표와 관련 있다. 중국의 부상으로 기존 국제정치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고 이는 자연스레 중국위협론이 팽창하는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존 질서에 대한 중국의 도전은 중국의 이미지를 위협, 공포, 무질서, 파괴, 전쟁과 등치시키며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균형, 억제, 봉쇄의 필요성을 각인시키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자국에 덧 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서구의 집중적인 견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국의 강대국화를 평화, 조화, 상생과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치환시킬 필요가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의 길, 중국 방안이 국제사회의 공동이익에 부합할 것이라는 가설은 중국 특색 국제정치이론 창안의 주안점이 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 특색의 미래

중국적 담론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성취와 도전에 대한 관심이 외국 학자들에게 충분한 학문적 동기를 부여하고 있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 중국 학계의 전략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중국 모델의 원안을 제공한 베이징 컨센서스에 대한 논의를 해외에 처음 소개한 이는 조슈아 라모라는 미국 저널리스트였다. 또한 중국 특색의 국제정치이론이 국제적으로 확산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는 학자군은 영국 국제정치학계에 기반을 둔 영국학파(English School)다. 이와 함께 서구에서 공부한 중국학자들이 해외 학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다양한 중국 특색과 관련된 논의들이 확장될 수 있는 화수분으로 기능하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이 증가할수록 중국 특색 논의를 배양할 수 있는 학문적 저수지의 함유량은 더 커지고 기능 또한 세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더불어 현재 국제사회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취약성과 비효율성을 여실히 목격하고 있다. 서구의 위기 대응 능력 부재, 백신 확보 과정에서 드러나는 서구의 이기주의는 비서구 국가들이 중국 모델과 중국 방안에 더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정 중앙에 위치한 한국 학자들이 중국이 박차를 가하고 있는 수많은 중국 특색의 이론화 작업에 수동적으로 머물 수만은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