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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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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미얀마 관계: 미얀마 3차 군부쿠데타를 보는 중국의 시각

정혜영 소속/직책 : 건국대학교 중국연구원 연구교수 2021-05-31

미얀마(The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는 공식적으로 ‘비동맹 중립외교노선’, ‘평화공존 5원칙’을 표방한다. 그러나 미얀마의 대외관계 뿐만 아니라, 대내적인 역사, 정치, 경제적 측면의 영향 모두에서, 중국은 인도, 미국, 일본, 아세안 보다 우선적인 영향력과 지위를 지녀왔다. 2012년 이후,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성공적인 발전을 이루고, 비대칭적 양국관계에서 국익 우선적인 대외정책을 취하자, 미얀마의 친중성향도 완화되기 시작한다. 

2021년 1월 미얀마 군부는3차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쿠데타의 성패 결과는 아직 확정되지 못했다. 미얀마 군부의 입지는 여전히 자신들을 지지해줄 대외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계된 중국의 역할과 대응이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아래에서는 중국이 미얀마에게 지녀온 우호적 관계와 정치경제 이해관계를 양국관계의 역사적 맥락, 경제협력, 미얀마의 지정학 측면에서 살펴본다.

중국-미얀마 관계의 역사적 맥락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후, 중국은 정치적 정당성과 국제적 지위를 지지해줄 협력국으로 미얀마와 가까워 진다. 한편, 1948년 1월 4일 영국에서 독립한 버마연방(Union of Burma)은 영연방에 가입하지 않고 “중립외교노선”을 표방한다. 1950년 미얀마는 비사회주의 국가지위로 중국과 첫 외교 관계를 맺고, 1954년 중국, 인도와 함께 ‘평화공존5원칙1)’의 외교공동노선을 채택했다. 

이에 근거해, 미얀마는 중립적 입장에서의 ‘독립·자주 외교’ 비동맹 지위로, 모든 국가와의 선린우호 관계 유지한다는 전통적 외교원칙을 채택한다. 이때, 미얀마는 인도와 중국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유로 ‘중국·인도 관계에서 균형을 지님으로써 국익을 도모한다는 중요한 원칙’을 세우게 된다. 1960년 1월, 미얀마는 중국의 양보를 얻어내고 불안했던 국경선 획정문제를 해결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미얀마는 중국인민해방군(PLA)이 미얀마 경내로 진입하여 국민당(KMT) 잔군을 제거하는 일을 허용하고 중국외교의 정통성을 부여해 준다.

①1962년 - 1990년까지의 양국관계는 균형적 발전과 친밀한 사촌관계(Paukphaw)가 형성된 시기이다. 1962년 3월, ‘30인의 동지’ 일원이었던 네 윈(Ne Win) 장군은 쿠데타로 집권, 1962년 4월 마르크스주의와 불교적 가치를 접목한 ‘버마식 사회주의’를 채택한다. 이로 인해, 냉전시기를 지나던 중국과 미얀마 관계는 돈독해 진다. 1974년 ‘버마연방사회주의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the Union of Burma)’ 으로 국명이 변경된다. 이시기, 중국은 줄 곧 미얀마 북동부 지역에 거주하는 미얀마 소수민족2) 중 일부인 버마 공산당(BCP)원들을 이념적 이유로 지원했는데, 중국공산혁명 수출을 위해 친(親)중국적 공산당세력을 지원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경지역의 미얀마 소수민족 공산당(BCP)들은 1970년대 중반까지 미얀마 정부군보다 좋은 무기로 정부군을 소탕하는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다. 심지어 무세(Muse)를 제외한 접경지역이BCP지배하에 놓이기도 하였다. 중국 혁명수출을 우려한 미얀마 정부는1967년 6월, 양곤에서 중국인들의 모택동 사상 학습모임을 탄압하였고, 이에 대해 중국인과 미얀마인들의 유혈충돌로 반중정서가 일어나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중국의 국경지역 소수민족 BCP 지원 행동이 미얀마에 영향력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미얀마 민족통합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국내문제에 간접 개입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1982년 7월 덩샤오핑(鄧小平)은 ’BCP 지원문제가 양국관계 장애요소임을 인정, 가까운 장래에 해결하겠다’는 언급을 한다. 1985년 네 윈이BSPP(Burma Socialist Programme Party) 의장자격으로 베이징을 방문한 때에 이르러, 양국관계는 비로서 국가 대 국가관계가 기존 당 대 당 관계 지위를 넘어서게 되며, 1990년에 이르러서야 중국공산당은 BCP지원을 완전히 중단하게 된다. 

미얀마 정부는 줄곧 국경지역에서 강화되는 미얀마 공산당과 중국공산당의 유대관계를 경계하였지만, 군부의 1차 쿠데타가 발발한1988년 까지, 정부차원의 양국관계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균형적인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며, 실제로도 국가 대 국가관계는 안정적 균형관계가 이루어졌다. 미얀마 군부의 최고 권력자인 네 윈(Ne Win)3)은 미얀마가 지닌 국내정치문제, 버마식 사회주의에 따른 국유화, 기업운영의 비효율성, 민간부문 활력감소, 이에 따른 경기침체와 마이너스 경제성장, 권력집중  불만 등으로, 1988년 3월 학생시위와 민중쿠데타에 직면하게 된다.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네 윈은 BSPP 의장직을 사임(1988.7)하는 위기를 맞이했지만, 1988년 8월 8일, 총선 실시를 요구하는 대규모 민중시위(‘8888 민주화 운동’)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천 명을 희생시키고 힘으로 다시 정권을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외부적으로는 서방과 국제사회의 전면적 비판과 경제고립으로, 이후 시기는, 미얀마 외교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중국과 밀착할 수 밖에 없게 된다. 

②1990년- 2011년까지의 시기는 미얀마의 적극적인 중국 접근시기로, 양국관계의 비대칭적 관계 형성 시기이다. 군부가1990년 치뤄진 선거결과를 무시하고 독재로 집권하자, 서방세계는 강력한 탄압을 가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이 시기 미얀마의 국제적 입지는 상당히 약화되었는데, 실례로, 1997년 아세안(ASEAN)에 가입한 미얀마는, 주변국과의 관계 악화 때문에 2006년 순환제로 맡은 아세안 의장국 지위도 포기하게 된다. 서방원조중단, 외국기업 전면철수, 무역과 금융투자금지, 무기금수조치, 인권탄압 UN결의안 도출로 미얀마의 대외고립은 곧, 대중의존도 강화로 이어졌다. 미얀마는 공식적으로, 중국과 동맹관계는 아니였지만, 동맹국이던 북한보다 높은 대중 의존도를 보였다.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시위를 진압한 중국공산당도 이후, 서방세계로부터 고립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양국정부의 ‘전통적 이웃사촌관계’는 더욱 가까워진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부를 쌓게 된 중국은, 2010년을 정점으로, 미얀마에 막대한 투자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미얀마 군부정권과 정치적으로 공고한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미얀마는 중국에 종속되는 관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1990년-2010년 기간, 중국은 적극적인 대외개방과 경제개혁 성공으로 급성장을 이루었지만, 미얀마는 오히려 20년 간의 고립과 약화된 국력으로 인해 비정상적인 중국의존이 심화되었다. 특히 이시기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시안강화(西安講話)에서 시작된 서부대개발과 해외진출전략(走出去)으로 해외에너지 자원개발에 박차를 가했는데, 2001년 미얀마를 방문한 장쩌민 주석은 ‘자연자원개발, 인프라건설, 농업, 인적자원개발’을 양국 핵심 협력분야로 설정하고 협력을 강화한다. 이후 2010년까지 양국 고위급 인사의 방문이 정례화 되면서 중국기업의 미얀마 진출과 경제협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2011년 양국의 ‘포괄적 전략협력 동반자관계’를 수립으로, 중국의 대미얀마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지원관계는 절정에 이른다. 미얀마가 일방적으로 중국에 의존한 비대칭적 양국관계는 2003년 8월 킨 뉸(Khin Nyunt) 총리의 ‘민주화 7 단계 로드맵’ 발표, 민선정부인 통합연대발전당(USDP, 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Party) 출범으로 완화되기 시작하는데.  군부는 “아웅산 수찌의 민족민주동맹(NLD) 의장과의 대화도 시도”, “대규모 정치범 석방”, “소수민족과의 평화협상 및 전국적 휴전협정(NCA) 서명”, “언론자유화”, “외국인투자법개정” 등 서방압력과 미얀마 내부의 변화촉구에 응했으며, 군부 스스로가 정치방향을 바꾸는 선택으로 이어져, 이후 시기에는 중국과 형성된 비대칭 관계도 개선되기 시작한다.

③ 2012년 - 2021년 까지는 미얀마-중국관계 재조정기이다. 2012년 이후, 미얀마는 새로운 정치개혁으로 대중의존도를 줄이기 시작하였는데, 2015년 11월 평화적으로 실시된 총선에서 아웅산 수찌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압승함에 따라, 2016년 2월 새로운 의회가 성립되었고, 이를 지지하는 서방세계의 투자로 미얀마는 일본, 인도, 미국, 한국, 아세안 등의 국가들과 급속히 가까워 진다. 수찌 정부의 비동맹 중립외교와 중국의존도를 줄이려는 균형외교로, 미얀마에는 서방의 새로운 투자물결이 들어온다. 서부대개발과 중국-미얀마 에너지 회랑건설 연계를 단계적으로 추진해온 중국은, 2013년 일대일로의 전개를 계기로 아웅산 수찌 정부와도 가까워지는데, 미얀마에 대한 새로운 전략 접근이 이루어 진다. 중국이 진행하는 일대일로에서 미얀마의 에너지 및 인프라 건설 축을 중국이 구상하는 인도양 지역 다자협력의 중요한 중심축 지위로 부여한다. 동남아는 물론, 남아시아 일대일로 추진의 핵심적 역할에 미얀마를 중심에 두게 된 것이다. 2017년 8월 수찌 정부의 라카인지역 로힝야족 탄압문제로 인해, 미얀마는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여론을 받게 되지만, 중국은 오히려 미얀마와 고위급 교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협력 등 정치•경제•군사 분야에서 미얀마와 전면적 협력을 추진하며 관계강화를 시도한다. 이에, 2019년 4월 수찌 국가고문은 제2차 일대일로 중국고위급포럼에 참석하고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 동참한다. 이로써, 중국은 군부정권과 민주정권 모두와 가까워지며, 미얀마가 제공하는 지정학적 전략가치를 확보하는 전면적인 노력에 성공한다.

중국의 대미얀마 경제적 지원과 협력

1990년 이전까지, 미얀마에 대한 중국의 공식적 투자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2010년 즈음에는 인프라 건설과 투자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이는 급속히 늘어난 양국의 무역량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1988년 미얀마-중국의 무역량은 2억 5,500만 달러 규모였던 것이, 2009년에는 29억 700만 달러 규모로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중국기업의 해외진출전략 (走去出) 으로 중국제조업이 미얀마로 대거 이동하면서 미얀마시장 상품의 대부분을 중국상품이 차지하였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고립된 미얀마에게 제1의 투자국 및 원조국의 지위로써 ‘에너지 자원협력, 정치적 정당성 확보, 국가안보차원의 협력, 경제이익’이라는 협력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2008년 중국의 대미얀마 누적투자액은 10억달러 이하였으나, 2012년 말이 되자, 141억 달러 투자규모로 투자국 1위 지위에 올라선다.4) 이 시기 중국회사들은 무상원조와 양허성 상업차관으로 크고 작은 교량, 댐, 도로 건설에 대거 참여하고, 미얀마의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 이권을 얻어갔다. 2010년 대표적인 중국의 투자는 렛빠따웅 (Letpadaung)구리광산, CNPC 석유 가스 파이프라인 사업, 미트소네 댐(Myitsone dam) 건설이 있었는데, 비록 석유가스 수송 사업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업들은 차후 미얀마 정부에 의해 중단되긴 하였지만, 중국에게는 지정학적 의미의 전략사업을 개시한 투자 내용이었다. ① 중국은 미얀마 석유가스 수송관 건설을 통해 중국의 에너지 확보 및 수송경로를 다변화 할 수 있었으며, ② 부족한 서남부 에너지 전력확보를 위한 수력발전 댐 건설 투자 ③ 구리확보를 위한 구리사업 투자 ④ 미얀마를 통해 인도양과 남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사업들은 이후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일본과 경쟁하며, 중국진출 교두보를 확보하고 일대일로를 추진하는데 큰 동력이 된다. 1990년- 2011년 까지 미얀마 경제발전은 중국에 의해 좌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미트소네 댐(길이 1천310m, 높이 139.6m의 세계 15위 규모)은 2009년 군부정권이 중국으로부터 36억달러를 지원받아 건설하던 사업이었다.5) 그러나 댐 생산전력 가운데 90% 이상을 중국으로 넘겨주는 조건이어서, 미얀마 국민의 거센 저항을 받아왔다. 2011년 6월에는 카친주 반군이 미트소네댐 건설 현장에서 소요사태를 일으켰으며, 이후, 아웅산 수찌 여사는 "미트소네댐이 건설될 경우, 이라와디 강의 흐름을 위협해 63개 마을 1만2000명의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는다" 며 댐 건설의 전면 백지화를 주장했다. 중국측에서도 댐 건설에 대한 투자중단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미얀마 정부에게 끊임 없는 건설재개를 설득해왔는데, 2019년에도 댐 건설 재추진에 반대하는 미얀마 국민저항이 있었다. 2013년 정상가동 된 중국-미얀마 송유관과 가스관(1100㎞)은 인도양에 속하는 미얀마 서쪽 항구 차우크퓨(Kyaukpyu)- 만달레이(Mandalay)를 거쳐 중국 윈난(雲南)성 루이리(瑞麗)현까지 이어진다. 중국 국경 내에 들어온 파이프라인은 쿤밍(昆明)시를 거쳐 중국 내륙 각 지역으로 연결되는 구조로 되어있다. 2017년 중국은 미얀마 측에 송유관 및 가스관이 지나는 길을 따라, 고속도로(90억달러 추산)와 431km의 무세(Muse)-만달레이(Mandalay)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양국 경제회랑(China Myanmar Economic Corridor: CMEC) 구축을 제의했다. CMEC는 윈난성 쿤밍에서부터 미얀마 제1도시 양곤, 제2도시 만달레이와 차욱퓨 심해항구를 연결하는 계획이다. 차욱퓨 항은 군사항 전환 및 중동, 아프리카 해상물류경제와 연계될 사업내용으로, 약 90억 달러(10조2550억 원 규모) 산업단지를 완성하는 프로젝트이다. 중국의 인도양 출로 확보와 연계된 핵심적 일대일로 사업이다. 


2013년 이후, 일본은 미얀마에 대하여 대대적인 원조를 확대했다. 일본 내 친미얀마 단체의 영향, 미얀마 내 확대되는 친중세력 영향력을 경계하기 위하여 미얀마와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한 것이다.6) 그러나 <표 1> 2012년 전후 중국과 일본의 미얀마 FDI 비교와 <그림 2> 2017년 동남아 국가들의 미-중 무역비중 비교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미얀마에 대한 중국의 경제영향력은 미국과 일본을 넘어서는 상황을 줄곧 보여주고 있다. 

2011년 미얀마 유사민주정부의 출범으로 미국·일본과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자, 2012년-2013년 중국의 대 미얀마 투자규모는 10억 달러 미만으로 급속히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으며, 2012년~2013년 사이의 대규모 중국협력 프로젝트들도 잠시 중단되지만, 중국은 곧 일대일로(2013년)의 추진으로 여러 인프라 사업들을 재개하게 된다. 일대일로 건설사업의 일환인 CMEC 경제회랑과 중국내륙물류를 연결하는 핵심구역의 위치는 샨(Shan) 주 북부 루이리(Ruili)의 무세(Muse) 및 친스 웨호(Chinshwehaw) 등이 있는데, 핵심지역은 면세 점, 호텔, 제조 및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업지역으로 개발된다. 차우크퓨 경제특구와 심수항(深水港)개발계획에는 국영기업 중신그룹(CITIC)이 주도하고 22개 미얀마 기업이 컨소시엄에 참여했으며, 최종 2025년 완공을 목표로 구간건설 중에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0년 1월, 코로나19 확산 사태에도 불구하고, 양국 수교 70주년 기념명분으로 미얀마를 방문해 수찌 정부와 CMEC 프로젝트와 관련된 33개 계약을 체결했다.7) 민아웅 훌라잉(Min Aung Hlaing) 총사령관과 그의 가족을 포함한 미얀마 군사정권은 이미 미얀마 에너지, 건설 및 금융 관련 회사에서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중국과의 협력은 군부정권에게도 중요한 경제적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미얀마 정부는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면서 미얀마 정부의 외자부채 중 30~40% 정도가 중국에 대한 빚으로 부담이 가중되자, 일부 사업은 재검토를 통해 지연시키거나 서방기업에 의한 새로운 타당성 조사를 전개하고 있다. 인도, 싱가포르 UNDP와의 새로운 협력 모색이 대표적이다.


인도와 중국의 세력경쟁과 미얀마의 지정학적 함의

미얀마를 사이에 둔 미국과 중국의 줄다리기는 오바마 대통령의 2007년 미얀마 방문 이후 부상한 민주정권 끌어당기기였다. 그러나 미얀마와 관련해 전통적 이해관계를 지닌 나라는 인도였는데, 인도는 미얀마와 긴 국경(1,643km)을 마주한 이웃으로, 중국의 대미얀마 영향력을 견제해온 국가이기도 하다. 국제전략 분석가들은 인도가 미얀마내 중국의 세력확장을 경계하면서도, 최근 군부 쿠데타에 대해 인도가 침묵을 유지하는 데에는 전략적 이해에 의한 인도정부의 섬세한 외교라고 칭한다.8) 인도 역시 1993년부터 북동부7개 주에서 일어난 분리주의자들의 반란문제(인도 정부와의 충돌은 약화됬지만 분리주의 움직임은 끝나지 않음)와 관련 미얀마군부(Tatmadaw)와 긴밀한 교섭을 해왔다. 인도정부는 미얀마 정글에 기지를 둔 인도 반군과 싸우기 위해 미얀마 군부에 협력물품을 지원했는데, 이 때문에 미얀마 민주정부를 지원하지만, 군은 비판할 수가 없는 신중한 입장이다. 미얀마 정부는 강대국들에게 둘러싸인 지정학적 경쟁 속에서 협력국 다변화를 통해 중국에 대한 의존과 마찰을 줄이려는 정책적 노력을 지속해왔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2000년 이후 인도와 미얀마 관계 개선에서 두드러진다.

인도는 미얀마와 전략적·경제적 보완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과 미얀마가 가까워지는 것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인도는 1988년 이래 미얀마 군사정권과의 관계를 단절해 왔으나, 2000년 이후부터는 중국을 의식하여 인도정부가 적극적으로 미얀마 정부와의 관계개선에 나섰다. 이 때문에 미얀마는 종종 중국과 인도가 경쟁할 때 그 사이에서 균형적 자세로 국익을 취하기도 하였다.9) 인도가 실리적인 동방정책(Act East Policy)’의 일환으로, 미얀마와의 국경지역에서 인도양으로 향하는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라카인주(로힝야족 거주) 항만 및 내륙수운 체계 보강사업10)에 미얀마 정부와 협력하고 있지만, 중국이 개입하는 미얀마와의 인프라 협력사업(BCIM)에는 신중한 입장에 있다. 인도는 미국, 중국 등이 관심 갖지 않는 낙후산업과 인적자원 개발을 중심으로 차별화된 미얀마 투자를 모색했지만, 인도의 대미얀마 협력 노력은, 중국의 대미얀마 경제 영향력과 미얀마 군부와 중국이 지닌 유대관계에 비해 협력 수준이 미력한 한계가 있다.

중국은 미얀마를 통한 인도양 진출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2009년부터 중국-미얀마 고위급 인사교류 빈도를 높이고, 2015년, 중국-미얀마 송유관과 가스관 건설을 모두 완성시켰다. 그러자 인도는 자국 주변으로 강화된 중국세력의 위협적 등장을 실감하게 된다. 나아가 중국이 인도에게 제시한 일대일로에서 미얀마와 파키스탄이 중국에 적극적인 또 하나의 협력 축으로 등장하자,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진 인도의 위기감은 절정에 달한다. 인도는 방글라데시-중국-인도-미얀마(BCIM) 경제회랑에 대해 “①중국이 파키스탄과 군사 및 경제 동맹을 확대11) 하고 있으며, ② 인도 북동부의 아루나 찰 프라데시 지역이 티베트 남부라는 중국의 주장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 ③ 중국이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미얀마와 군사적, 경제적으로 긴밀해져 인도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점 ④ 중동 석유 및 가스에 대한 중국의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인도주변의 해양에서 중국 해군이 거점을 마련하고 있는 점”을 이유로 BCIM회랑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의 끝인 과다르항과 중국-미얀마 경제회랑 (CMEC)의 끝인 차욱퓨항에서 중국의 해군력이 강화되는 상황은 인도의 해양 제해력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미얀마가 중국의 인도양 진출과 중국 내륙육상물류 흐름에 힘을 실어주고, 인도 근접 항을 해상수송터미널의 중심축 항만개발로 중국에게 제공하고 있는 상황하에서, 인도가 미얀마의 새로운 ‘지정학적 생존공간의 확대 의지’를 포기시킬 만한 요인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 인도가 ‘미얀마와 중국의 밀착’을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미얀마 3차 군부쿠데타를 보는 중국의 시각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웅산 수찌 민주정부의 행보를 포함하여, 과거에서 지금까지의 미얀마 대외정책 중심은 대체적으로 중국에게 경도되어 있다. 또한 양국은 긴밀한 경제·정치·군사관계 속에서 서로의 정치적 정당성을 지지하는 역할도 했다. 특히 미얀마는 중국에게 에너지 공급원, 인도양을 연결하는 자원수송로, 제조업 이전

기지 등의 역할을 제공하면서 일대일로의 중요한 축으로 등장하였다. 해양세력으로부터 봉쇄된 중국의 입장에서는 양국관계의 긴밀성 유지와 미얀마의 지리적 위상이 더욱 중요해 지고 있는 것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세계정세 하에, 미얀마에 대한 서구사회(인도, 미국, 일본)의 영향력 유지는 부상하는 중국세력 견제, 3차 군부쿠데타의 대응이라는 과제로써 역내 세력구도에 중요한 의미로 부상했다. 그러나 새로운 ‘중국 경제권의 부상’에 미얀마가 동승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건 데, 미얀마를 둘러싼 일본, 인도, 미국 등의 노력이 ‘미얀마-중국’의 친밀화를 얼마나 견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번 군부쿠데타는 1962년, 1988년에 이은 2021년의 세 번째 군부 쿠데타이다. 미얀마 현대사의 대부분을 장악했던 군부정권은 ‘은둔적 대외정책, 대중국 의존도 강화, 민주화 세력 흡수’라는 유연성으로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변신하여 왔다. 장기 군부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은 2011년에 이르러 미얀마 군부정권 내 민주화 바람으로 이어지는데, 8월 떼인세인 (Thein Sein) 대통령은 수찌 여사와의 만남을 통해 민주개혁의 속도를 높이고, 미국과의 관계개선도 이루었다. 2010년 군부정권은 권력의 민간이양을 위한 (NLD가 불참한) 총선 후, 문민정부를 출범시키지만, 사실상 군부의 위성정권 역할을 벗어나진 못했다.12) 2012년 12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 후, 가속화된 민주화 열풍으로 2015년에는 NLD(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가 압승한 민주정권이 실권을 잡았다. 그러나 미얀마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미국•군부•민주화 세력”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민주정권의 출범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수찌 여사가 이끄는 민주정부는, 더 이상 표면에 나설 수 없었던 군부정권의 대리정권으로도 평가한다. 군부세력은 자신들이 권력위기를 겪을 때 마다, 쿠데타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에 대항하는 민주화 세력은 군부세력을 완전히 밀어내기에 역부족한 상황이다.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미얀마 민주세력의 저항이 장기 내전으로 진화할 가능성을 전망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과거에도 그랬듯, 민간인 희생을 수단으로 삼은 군부 스스로가 대리정권을 필요로 할 것이며, 이에 따라 민주세력과 타협하는 유연성을 보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현 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미얀마를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이다. 미얀마 민주정치 발전이 군부를 안고 출발했던 근본적 모순을 지켜보면서, 미얀마 내부 집권세력의 변화보다는 “미얀마의 안정과 일관된 양국 관계 유지”가 중국몽의 실현을 위해 더욱 의미 있게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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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평화공존 5원칙은 ‘영토보전과 주권존중, 상호불가침, 내정불간섭, 호혜평등, 평화공존’의 5개항으로, 1956년 중국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정해졌다. 주된 내용은 1950년대 외부 간섭에 취약했던 중국 상황을 배경으로 하였기 때문에, 대체로 서구사회에 대해 방어적이며 수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제3세계 국가들의 생각을 대변한다는 의미에서 현재에도 중국정부가 평화공존5원칙 외교노선을 고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2)국경지방의 미얀마 소수민족은 대체로 독립을 원하며 미얀마 정부에 저항하는 성격이 강했다. 중국공산당(CCP)은 미얀마 공산당(BCP)을 1980년대까지 이념적 이유로 지원했는데, 1967년 6월 미얀마에서 일어난 반중시위를 계기로 그 지원이 약화되거나 단절되기도 하였지만, 국경지대의 민족문제를 악화시켜, 미얀마 통합에 걸림돌을 제공하게 된다.

3)네 윈은 혁명평의회(The Union Revolutionary Council) 의장으로서 버마를 통치하면서 1962년 7월 창당한 BSPP(Burma Socialist Programme Party) 의장을 겸임하고 1988년까지 BSPP의장직으로 최고 권력을 행사한다. 그에 대항하는 8888항쟁을 계기로 1988년 9월 말 아웅산 수찌 등이 중심이 된 민주주의민족동맹(NLD,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결성되어 출범하며, 차후 민주정부 구성의 중심이 된다.

4)당시 고립된 미얀마에 최대 에너지 투자를 하고 있는 국가는 태국(석유수송관)과 싱가포르였다. 미얀마투자위원회(MIC)가 밝힌 2007년 5월 말 기준 외국인투자 순위(누적 기준)에 따르면 태국(73억 8,000만 달러), 영국(18억 6,000만 달러), 싱가포르 , 말레이시아, 홍콩(5억 달러), 중국(4억 7,000만 달러), 프랑스, 미국, 한국(2억 4,000만 달러), 인도네시아 순이었다.

5)2008년 9월, 미얀마의 한 반정부NGO단체에 의해 조사된 바에 의하면, 중국회사의 미얀마 댐 건설 상황은 45개 중국회사가 63개 수력발전프로젝트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6)고노다로 외무대신(2018.1., 2018.8., 2019.7.)의 3차례 방문, 아베토시코 외무부 대신(2019.1)의 고위인사 방문 등 양국 간 고위급 교류확대 일환으로 미얀마 방문을 활발히 전개, 중국세력의 남하를 적극 견제했다. 일본은 국가화해평화특사 임명과 소수민족 거주지역에 대한 개발지원강화를 통해 미얀마의 평화프로세스 지원 명분으로 미얀마와 급속히 가까워 진다. 또한 GMS 사업 진행을 통해, 미얀마 내 동-서를 가로지르는 인프라 통로 구축에서도 중국의 북-남 인프라투자에 대항 할 만한 성과를 냈다.

7)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习近平会见缅甸国防军总司令敏昂莱, 2020-01-18 https://www.fmprc.gov.cn/web/ziliao_674904/zt_674979/dnzt_674981/xzxzt/xjpdmdjxgsfw_699053/ 시진핑 주석은 미얀마 군총사령관인 민아웅 훌라잉을 접견한 자리에서 양국관계에 대하여 ‘사촌동포胞波(Paukphaw)情谊’라는 표현으로 친밀감을 강조했으며, 미얀마를 대외적으로 지지하겠다는 성명을 재차 강조하였다. 미안마 군 총사령관도 미얀마-중국 경제 회랑의 공동건설을 적극 지원하고 추진할 것을 강조하였다.

8)Sudha Ramachandran, “India’s Dangerous Myanmar Policy”, <The Diplomat>, March 26, 2021.

9)나렌드라 모디 총리(2017.9.), 람 나트 코빈드 대통령(2018.12.)이 미얀마를 선제적으로 방문하였으며, 윈 민 대통령은 2019년 5월에 이르러 비로서 인도를 방문한다.

10)인도는 ‘칼라단 리버 프로젝트’ 추진을 통해 미얀마 국경과 접하고 있는 북동부 4주를 미얀마의 주요항만 중 하나인 시트웨(Sittwe)와 도로 및 전력 인프라를 통해 연결하고자 했으며, 상대적으로 낙후된 인도 지역 발전을 위해 미얀마의 에너지(육상 석유, 천연가스 광구)도 협력하고자 한다. 인도는 이를 위해 미얀마 서부(인도국경)- 시트웨 항구를 연결하여 서부지역의 전력망 확충, 송전선 설치, 전력케이블 공장을 건립하는데 8400만 달러를 지원하는데 합의하기도 했다.

11)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 (CPEC)은 인도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곳에서, 중국과 파키스탄이 일방적으로 인프라 건설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불만으로 인도는 찬성할 수 없는 입장이다.

12)장준영,2017. 「하프와 공작새」, 서울: 눌민출판사, p132-154, p339-34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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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영, 2017. 「하프와 공작새」, 서울: 눌민출판사

정혜영, 2017. 중국의 대동남아 내륙개도국(CLMV) 경제외교정책: 해외직접투자(OFDI) 전략을 중심으로, 「국제지역연구」 제21권 제3호

정혜영, 2020. 중국의 지정학과 동남아 네트워크 협력구상: 대륙부·해양부 동남아국가와 중국의 일대일로를 중심으로, 「국제지역연구」 제24권 제1호

천관율, “미얀마의 시민저항이 전 세계에 미칠 영향”, 「시사IN」, 2021.03.15.

딴 민우, 2020. 「친디아와 미얀마」, 경기:모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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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achandran, Sudha “India’s Dangerous Myanmar Policy”, <The Diplomat>, March 2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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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华人民共和国外交部 ,2020. “习近平会见缅甸国防军总司令敏昂莱” 2020.01.18. https://www.fmprc.gov.cn/web/ziliao_674904/zt_674979/dnzt_674981/xzxzt/xjpdmdjxgsfw_699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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