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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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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이슈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 및 제언이 담긴 칼럼을 제공합니다.

두만강 유역 초국경 협력을 위한 사회연대경제 네트워크

조성찬 소속/직책 :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 박사 2021-10-29

변방, 대결의 공간에서 연대의 공간으로

“변방은 변화의 공간이고 창조의 공간이며 생명의 공간이다.”(신영복, 2012). 두만강 유역은 동북아의 변방에 해당한다. 이곳은 근대화 시기 이후 줄곧 대결의 공간이었다. 두만강 유역이 대결의 공간에서 연대의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은 동북아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경제번영에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방향에서 1990년대 초부터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두만강유역개발계획(TRADP, 1991)과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2005)이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계획들이 그 타당성이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국제변수와 맞물려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그나마 최근에는 중국이 주도권을 쥐고 ‘북중러 두만강 삼각주 국제관광합작구’를 설립하고 공동 발전구역을 지정하여 생태자원을 관광자원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상은 중국 중심이라는 한계를 보인다. 반면 북한과 러시아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은 아예 참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 역시 2021년 10월 현재 중단된 상태다.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체제를 요구한다. 제1차 및 2차 세계대전 이후, 대결의 장이었던 유럽은 힘겹게 연대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같은 프랑크 왕국에서 나왔지만 양차 세계대전에서 적대국 관계가 되어 버린 프랑스와 독일이 있다. 연대와 협력의 노력 결과 오늘날 유럽연합이 출범했으며, 프랑스와 독일의 대결 공간이었던 알자스-로렌이 평화와 경제협력 공간으로 변하고 EU본부가 들어선 사례도 있다. 
  
동북아에도 유럽통합 사상에 버금가는 중요한 흐름이 있었다. 바로 안중근은 자신의 동양평화론(1910)에서 만주를 대상으로 평화경제 모델을 제시했다. 다만 아쉽게도 유럽이 보인 수준으로 동북아 통합의 흐름이 전개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만주와 연해주라는 동북아 대결의 장에서 초국경 협력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성과가 한반도의 평화로운 경제 통합과 더 나아가 통일의 중요한 선결과제인지도 모른다. 
  
초국경 협력은 크게 1차적 의미와 2차적 의미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1차적 의미는 국경을 마주한 인접 지역 간, 도시 간 사회, 문화 및 경제 협력을 의미한다. 2차적 의미는 1차적 의미에 더해 국제협력이 결합되는 방식을 포괄한다. 2차적 의미에 있어서 UN이나 국제 NGO 같은 국제기구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동안 진행되어온 TRADP나 GTI 같은 초국경 협력 프로그램은 국제기구가 중심이 되어 국가 중심의 다자간 협의체 방식이었다. 그나마 중국 주도의 ‘북중러 두만강 삼각주 국제관광합작구’ 설립은 물론 각국의 중앙정부가 합의해서 진행하지만, 구체적인 사업 추진은 인접한 지방정부가 주도한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 하나가 제기된다. 시민사회는 초국경 협력의 주체로 나설 수 없는가? 이하에서 스위스, 프랑스, 독일 접경도시인 바젤(Basel) 사례를 통해 초국경 협력을 위한 사회연대경제 네트워크 필요성과, 그 중심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초국경 협력에서 사회연대경제(SSE) 개념 

사회연대경제(Social & Solidarity Economy) 개념의 출발은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 개념에서 나왔으며, 큰 틀에서 두 개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배경과 강조점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사회적 경제라는 개념은 19세기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배경에서 나왔다. 이 개념은 프랑스에서 약 200년의 깊은 역사를 형성했다. 반면 사회연대경제(Social & Solidarity Economy) 개념은 사회적 경제에서 발전된 개념이지만 이 개념이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지속가능발전’, ‘환경’, ‘인권’ 등 특히 저개발 국가와의 협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 개념 역시 프랑스에서 최근 강조되기 시작했다(조성찬, 2020). UN은 2016년부터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사회연대경제의 개념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사회연대경제 글로벌시범 그룹은 아예 공동선언문(2016)에서 “사회연대경제는 SDGs의 실현을 위한 전략적인 실행 방안”이라고 명시했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에서 사회연대경제 개념이 초국경 협력 분야에서도 새로운 확장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밑으로부터 시민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주체가 되어 초국경 지역간 연대를 강화하는 개념으로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회연대경제를 통한 초국경 협력 사례 : 스위스 바젤  

유럽통합의 역사는 긴 탐색기간을 거쳐 실질적인 출발점은 프랑스-독일 사이의 석탄철강공동체 형성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유럽연합(EU)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EU는 정부 간 협약이 아니고 초국가조약에 해당한다. EU 안에 집행부, 대통령, 의회가 있다. 유럽은 작은 영토를 가진 국가들이 서로 맛대어 있어서 접경지역이 매우 많다. 그런데 이러한 국경의 벽이 허물어지려면 접경국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유럽연합이 형성 및 발전해 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초국경 협력의 대표 사례는 바로 스위스 바젤이다. 바젤이 인접도시인 프랑스의 셍루이(Saint-Louis)와 독일의 뢰어라흐(Lörrach Hbf)와 일체형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아래 좌측 지도). 이처럼 3개국 도시가 연담되어 형성된 하나의 Metropolitan Basel은 기술과 제약산업, 문화예술의 중심도시로, 인구 규모는 지역관리 거버넌스(TEB) 기준으로 83만명의 거대한 경제권역이다. 이 중 스위스인이 60%, 독일인이 30%, 나머지 10%는 프랑스인이다. 바젤은 스위스 3위 도시에 해당하는 큰 규모다. 중립국인 스위스는 EU 회원국이 아님에도 슁겐조약에 가입되어 있으며, 3국이 라인강(1,239km)1)에서 만나는 바젤이 중심도시로 성장했다. 스위스 접경도시 바젤은 하루 6만 명의 독일, 프랑스인들이 출근하는 곳이다. 이처럼 바젤이 인접 국가의 시민들에게 일상 생활공간으로 열려있게 된 비결은 3국간 협력이 잘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출퇴근과 쇼핑, 만남은 일상이며, 역외인력은 스위스 경제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유럽연합 초국경 협력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Interreg를 포함한 유럽통합 정책들이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철도, 바젤국제공항2), 도로망, 전차노선 등 도시 인프라가 3국 도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복지제도도 잘 갖추어진 편이다. 여기에 더해 3국 지방정부가 연합하여 추진하고 있는 지역관리 거버넌스(TEB)와 사회연대경제 네트워크(SEB)가 형성되어 있다(이하에서 다룸). 유럽 전문가인 김영찬(2015)은 바젤이 북한 라선-중국 훈춘-러시아 크라스키노 접경지역과 매우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코로나 사태로 EU 내 쉥겐조약 가입국끼리 닫혀 있던 국경이 현재 다시 개방되었다. 전과 마찬가지로 건강검진 진단서, 자가격리, 여권심사(신분확인) 없이 여느 때와 같이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다. 


2007년에 설립된 TEB는 Trinational Eurodistrict Basel의 약자로, 프랑스 알자크(Alsace)에 근거지를 둔 비영리 조직이다. TEB는 바젤의 초국경 도시협력 거버넌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TEB가 감당하는 역할은 비영리 조직이지만 3개국이 모여 형성된 바젤의 작은 도시정부 기관 성격으로, 초국경 프로젝트를 코디네이팅하는 역할을 하며, 다른 도시간 사람들의 문화와 언어 교류를 촉진하는 역할도 한다. 게다가 TEB는 공간계획, 대중교통 및 도시개발에 있어서 초국경 프로젝트를 조정하고 수행한다. TEB는 전신인 TAB(Trinational Agglomeration Basel, 2001년 설립)의 확장된 형태이다(John Driscoll 외, 2010).
  
2001년 TAB로 출범하여 2007년에 TEB로 관할 공간 및 역할 등이 확장된 TEB는 2009년에 ‘TEB Basel 2020’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핵심 비전은 초국경 협력을 촉진하는 국제적인 기관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바젤의 사회연대경제 네트워크 Social Economy Basel (SEB)

Isidor Wallimann(2014)는 신자유주의 경제 확산 속에서 지역 주민들이 사회연대경제(SSE)의 특성들을 활용하여 특정 목적에 도달하고 특정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지, 그래서 익명 시장, 글로벌 행위자 및 지역과 국제 엘리트에 대항하여 그들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공간을 만들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이를 위해 그는 스위스 바젤에 설립된 Social Economy Basel (SEB)를 살펴보았다.
  
SEB는 1996년에 설립된 Social Economy Association(SEA)와 같이 시작되었다. SEB는 1인 1표 원칙으로 작동한다. 지역(local and regional)에서 사회적, 지역적, 생태적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한 미션이다. SEB는 스위스에서 최초이며, 곧바로 독일, 프랑스, 룩셈부르크와 협력하여 Institute for Social Economy를 시작했다. SEB의 목적은 아래와 같다. 

● 현재 및 미래의 개발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회적 경제의 가능성을 대중에게 알림
● SSE를 담은 대중 교육과정과 컨퍼런스를 제공함
● SSE 관련 개인의 전문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기술 배양 
● SSE 네트워크 및 재정 수단 설립에 리서치와 컨설팅 제공 
● 대중매체 인터뷰 및 성명서 제공으로 SSE 및 발전과 관련된 연구 출판 
● 지역, 국가 및 국가간 수준에서 주변 경제 및 사회적 이벤트와 연계된 SSE 발전과정을 문서화 

SEB,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 협동조합(Social Economy Network Co-operative) 설립

SEB는 다음 단계로, 1998년에 Social Economy Network Co-operative(SENC), 즉 우리말로 번역하면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 협동조합은 Basel과 그 네트워크가 외부 자본에 의존하지 않도록 유기적인 성장 패턴을 유지했다. 이 협동조합은 협동조합 멤버만 참여가 가능하며, 조직 크기에 상관없이 1사 1표를 행사하게 된다. 고용 관행 및 잉여금 사용에 대해 동의하면 다른 법적 형태의 조직도 참여가 가능하다. 그래서 이익추구 기업 및 NPO도 참여가 가능하다. 즉, 이 네트워크에서 사회적 경제 기업과 시민사회가 결합할 수 있게 된다.
  
SENC가 추진하고 있는 또 다른 특징으로 대안화폐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스위스 프랑과 태환하는 대안화폐(BNB) 실험을 시작했다. 처음엔 네트워크 구성원 사이에서 실험을 진행하다가 2005년에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현재 120여개 회사와 NPO가 대안화폐를 받아들였으며, 유효기간은 3년이다. 새로운 대안화폐와 1:1로 교환되며. 교환 과정에서 패널티는 없다. BNB는 프랑스 SOL과 상호 교환이 가능하다.

두만강 유역에서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사회연대경제 네트워크 상상하기

유럽은 2차 대전 이후 유럽통합 과정에서 베네룩스같은 작은 범주의 통합이 시작점으로서 중요했다. 특히 시민사회의 다양한 교류와 협력이 중요했다. 마찬가지로 동북아에서도 통합 이전 단계로서 동북아의 평화와 협력을 위해 두만강 유역 북중러 접경지역 협력이 매우 중요하며, 더 나아가 시민사회 및 사회적 경제 같은 주체들의 참여가 중요하다. 유럽연합의 초국경 협력 및 시민사회의 중요성, 3개국 접경지역 공동 발전이라는 시사점을 주는 스위스 바젤 사례는 이러한 점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본고는 ‘초국경 협력을 위한 사회연대경제 네트워크’에 초점을 두고 스위스 바젤 사례를 살펴보았다. 하나의 도시로 관리 및 발전하고 있는 바젤 사례에서 인상적인 지점은, 초국경 지역관리 거버넌스인 TEB와, 사회연대경제 네트워크(SEB), 사회연대경제 조직의 협력체인 SENC, 심지어 BNB라는 지역화폐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SENC는 특정한 사회적 경제 조직만이 아닌 협동조합의 일반 원칙을 준수하는 여타 기업 조직과 NGO도 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고 있어 시민사회 교류협력의 중요한 플랫폼이 되고 있다. 
  
초국경은 국가의 경계선을 초월하지만 그 행위의 주체는 반드시 국가일 필요는 없으며 때로는 중앙정부를 배후로 한 지역정부 내지 시민사회가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두만강 유역은 시민사회가 주도적으로 초국경 협력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북중러 두만강 삼각주 국제관광합작구’ 프로젝트에서 인접한 지역정부가 중요한 주체로 나선다는 구상은 중요한 출발이 된다. 여기에 더해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바리의 꿈’ 같은 소수의 사회적 경제 기업들과 ‘하나누리’ 같은 NGO 및 국제기구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네트워크로 형성된다면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초국경 협력의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다. 
  
이처럼 두만강 유역에서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사회연대경제 네트워크 같은 새로운 협력 거버넌스가 창출된다면 현재 개별적으로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는 훈춘변경경제합작구(1992), 라선경제무역지대(2010), 연해주의 사회경제선도개발구역(2017)과 자유항(2016) 등 자유무역지대에 준하는 경제특구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낼 가능성도 더 커져, 두만강 유역이 하나의 연담화된 도시로 발전할 수 있다. 두만강 유역이 이런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더 넓은 차원의 동북아 평화와 협력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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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인강의 길이는 두만강(547.8km)과 압록강(803km)을 합한 거리인 1350.8km와 대체로 유사하다.  
2) ‘바젤국제공항’은, 3개국 접경지로의 출입국이 자유로운 관문 공항 역할 수행과 함께 지역경제 통합의 중심 역할 수행한다. 프랑스가 부지를 제공하고, 스위스가 건설비를 부담한 초국경 협력사업이었다. 

<참고문헌> 
김영찬, “유럽사례에서 보는 북·중·러 초국경 지역 협력방안”, 남북물류포럼 제112회 조찬포럼, 2015.11.19.
신영복, 『변방을 찾아서』, 돌베개, 2012.
안중근,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서울셀렉션, 2018. 
조성찬, “북한 개발협력을 위해 ‘사회연대경제’를 선택한 이유”, 동북아 리포트, 제6호, 2020.8.11.

Driscoll, John, Francois Vigier, Kendra Leith, “The Basel Metropolitan Area: Three Borders - One Metropolitan Area”, ICLRD(International Centre for Local and Regional Development), 2010.
Wallimanna, Isidor,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for sustainable development: its premises and the Social Economy Basel example of practice”, International Review of Sociology: Revue Internationale de Sociologie, 09 Ap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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