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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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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우크라이나 패착과 미·중 패권 경쟁, 국제정치 지형의 재편

함명식 소속/직책 : 중국 지린대학 공공외교학원/교수 2022-03-28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며 시작된 두 나라의 전쟁이 장기전으로 돌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비교해 러시아가 지닌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 발발 시 자국이 단기간에 승리하리란 환상을 지니게 했을 것이다. 이에 더해 권위주의 정권에서 더 위험하게 작동할 수 있는 상층부의 집단사고(groupthink)는 푸틴을 전쟁 개시와 동시에 승기 확보라는 확증편향에 매몰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개전 이후 전개되는 불리한 전세는 푸틴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지도력, 군대를 위시해 우크라이나 국민이 보여주는 굳건한 항전 의지, 미국과 유럽연합 국가의 첨단 무기와 정보 지원, 여기에 더해 개전 초기부터 반복되는 전술 실패로 러시아군은 사면초가에 처한 상태다. 또한 러시아를 향한 세계 각국의 비판, 지구촌 곳곳의 반전·반러시아 시위, 무엇보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 유럽, 일본 등 자유주의 국가의 광범위한 러시아 제재 동참은 푸틴의 정치적 미래와 러시아의 앞날에 짙은 어둠을 드리우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동인과 전쟁 과정이 한국에 주는 함의와 관련해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이 전쟁으로 인해 이전까지 논의됐던 국제관계 담론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국제정치 지형이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러시아의 군사 행동에 보이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대응 방식은 거세지는 중국의 공격적인 외교에 직면한 동아시아 국가에 적지 않은 고민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초래한 원인, 전쟁 과정, 국제사회가 보여준 반응의 복기를 통해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이 당면한 과제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선 국제사회의 연대가 국제정치 지형의 재편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번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 중국, 우크라이나 등 유라시아 대륙 국가를 대상으로 추진된 한국의 북방정책이 간과했던 위험성을 짚어보고 중국, 러시아의 현상 타파 의지가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향후 한국 대외정책의 주안점을 간략히 모색하고자 한다.

침략의 유혹을 현실화하는 수단: 민족주의와 실지회복주의

  국제법을 비웃으며 주권 국가의 권리를 강탈하는 러시아의 행위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국제정치 무대에서 힘이 곧 정의(Might makes right)라는 명제는 자유주의 국가 사이의 경쟁과 갈등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이럼에도 푸틴의 침공에 세계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러시아를 진앙으로 한 유럽발 지정학의 충격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또 다른 지정학적 단층선을 자극할 우려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전쟁 명분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째, 나토(NATO)의 동진에 따른 러시아의 안보 위협이다. 둘째, 자국 중심의 민족주의와 역사적 해석에 근간한 실지회복주의(Irredentism)의 발호다. 전자는 냉전 붕괴 이후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등 동유럽의 구공산권 국가와 발트 3국처럼 구소련 연방에서 독립한 국가의 나토 가입이 러시아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한다는 주장의 연장선에 있다.1)  후자는 러시아에 가해지는 외부의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분쟁과 위협의 요소가 상시 존재하는 지역의 영토를 강제적으로 병합하거나 이 지역에 분할통치 구도를 조성해 자국에 가해지는 위협을 최소화하는 전략과 직결돼 있다.2) 시간적, 공간적 차이를 막론하고 실지회복운동은 상실된 영토의 회복을 갈망하는 국민의 감정과 이를 이념적으로 뒷받침하는 민족주의를 군사력 동원의 원천으로 활용하는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실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를 침략의 빌미로, 돈바스 지역에서 자치를 선언한 친러 성향의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보호를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3)  하지만 위의 두 주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합리화시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첫째, 비록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시도했지만, 정식으로 이 조직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토도 이로 인해 발생할 유럽 안보 우려와 회원국 간의 의견 불일치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회원국 승인 절차를 추진하지 않고 있다. 둘째, 돈바스 지역에서 자치를 선언한 두 신생 공화국은 오랜 기간 친러시아계 세력의 조직적 반발과 저항으로 우크라이나 내정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던 지역에 속한다. 이미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강탈당한 우크라이나가 이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해서, 우크라이나 경내에서 발생한 사건에 러시아가 직접 개입하는 것이 정당화될 근거는 없다.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의 분리 세력을 지원해왔던 러시아가 자치 선언을 핑계 삼아 약소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행위는 명백한 주권 유린이자 내정 간섭에 속한다.

우크라이나의 항전과 서구 세계의 반격

  러시아 침공 이후 4주가 지나면서 전황은 교착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도시가 파괴되고 민간인 희생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러시아를 향한 공분이 서구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분출되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군대의 피해 상황이 상세하게 보도되지 않는 상황에서 러시아군의 피해는 속보 형식으로 신속하게 전해지는 양상이 굳어지고 있다. 이는 전쟁 특성상 우크라이나에 동정적인 국제 여론이 우크라이나의 피해는 민간인 사망, 폐허가 된 도시 중심으로 보도하고, 러시아군의 손실은 상세하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보도된 러시아군의 피해는 애초 예상을 크게 상회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우크라이나와 서구 정부, 정보기관 발표를 인용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군 내 장성급 사망자 5명, 군인급 사망자 1만 명, 부상자 2만여 명이 발생했다. 또한 육군의 핵심 전투 역량인 탱크와 장갑차 수백 여대가 파괴됐으며 전투기와 헬기의 피해도 커 공군 전력의 누수가 상당히 심한 것으로 보인다.

  자국 군대의 막대한 전력 소실과 함께 러시아를 궁지로 모는 또 다른 동력은 침략국을 응징하기 위한 서구 세계의 광범위한 협력이다.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해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억제하는 상황에서도,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 군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첨단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꾸준히 제공하고 있다. 특히 미국산 대전차미사일 재블린, 대공미사일 스팅어, 무인 무기 드론은 러시아의 군사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중차대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군사 물자 지원 외에도 서구 국가는 자유주의 국제 경제질서의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해 러시아 경제의 기반을 흔들면서 푸틴의 국내 정치 장악력을 약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과 유럽 국가가 러시아 항공의 자국 영공 통과를 불허해 러시아 인력과 물자 이동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한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 은행을 퇴출하는 결정을 내렸다. 금융권의 핵무기로 불리는 SWIFT에서의 퇴출로 인해 러시아는 무역, 외국인 투자, 송금 등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신용등급과 루블화의 가치가 급락하는 난관에 봉착했다.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목표는 궁극적으로 러시아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켜 푸틴이 국내적인 저항에 직면하게 만들거나, 전쟁을 조기에 종료하라는 외부적 압박을 증대하기 위한 데 있다.

러시아 팽창주의와 미·중 패권 경쟁의 함수 관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 중국의 위협에 노출된 동아시아 국가의 안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함의를 제공한다. 첫째, 푸틴의 도발은 중국 위협론의 ‘타자 예언적’ 성격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미 위협으로 부상한 중국이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주변국과 실제로 물리적 충돌을 일으킬 것인가 여부는 미·중 패권 경쟁과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핵심 논란 사항이다. 하지만 중국과 유사한 권위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면서 스트롱맨 푸틴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는 지도자의 집권 하에 있는 중국이 실제로 침략을 단행할 수 있다는 우려를 대폭 증가시키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활용된 민족주의와 실지회복주의를 대만, 인도, 남중국해, 동중국해에서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중국이 일관되게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타자 예언의 현실화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한층 높아졌다.

  둘째, 러시아의 침략을 가능하게 만든 집단사고의 오류가 중국 정치 시스템에서 유사하게 작동하는 것에 따른 위험성이다. 푸틴을 정점으로 한 러시아 군부, 정보 수뇌부는 푸틴이 듣고 싶은 것만을 보고하면서 모두가 러시아의 승리를 과신하는 피아스코4)에 빠져들었다. 이는 현재 개혁 개방 이후 3선 연임이라는 초유의 강력한 권력 장악을 목전에 둔 시진핑 주석 또한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작위적인 정보에 경도되는 위험성이 증가할 수 있음을 내포하는 것이다.

  셋째, 왜곡된 형태의 민족주의 발호가 가져올 위험성이다. 중국은 시진핑 집권 이후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활을 통한 중국몽 실현을 강조해왔다. 냉전 체제 붕괴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도입 이후 중국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애국적 민족주의로 대체했다. 이 과정에서 굴욕적인 근대사를 강조하여 중국 굴기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서구의 접근법을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제국주의적 음모로 규정해왔다. 과도한 민족주의의 발흥은 결국 시진핑과 공산당의 청중 비용을 증가시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악화시키는 굴레로 작용할 것이다.

  넷째, 미국이 동맹국에 보내는 신뢰의 책무와 중국에 보내는 위협의 중요성에 대한 상반된 평가로 인해 동아시아 동맹국이 안보딜레마에 빠지는 상황이 목격되고 있다. 주지됐다시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중국 위협론의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 동아시아 주변국의 우려가 커졌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재정, 무기, 정보를 지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강대국 러시아에 맞서 홀로 고전하고 있는 약소국 우크라이나의 현실에는 변화가 없다. 거칠게 말하면, 거들 수는 있지만 참전하기는 싫은, 러시아와 대리전을 치르는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자국의 정치적, 군사적, 전략적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서구 세계의 모습 앞에 동아시아 동맹국은 과연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 시 미국이 동맹국을 도와 참전할 것인지에 의구심을 품게 됐다. 더불어 미국과 나토의 위협이 러시아의 서진 공략에 제동을 거는데 별 효과가 없었음이 드러나면서 과연 중국이 미국의 봉쇄 의지를 엄포 이상으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늘어날 것이다.

서구의 단결과 신냉전 구조의 촉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이은 서구 세계의 협력과 연대는 국제정치 지형 또한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그동안 국제정치 학계에서는 중국의 급속한 부상에서 비롯된 패권 전쟁의 불가피성, 신냉전 도래와 같은 추측성 논의가 지속됐으나, 기실 대부분이 국제관계사에 기반한 추론이나 예측성 논쟁이었지, 아직 이를 입증할만한 구체적인 결과가 존재하지는 않았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경제적 탈동조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미국 기업이 중국과 높은 수준의 상호의존을 유지하는 현실과 다수의 유럽 국가가 중국과의 협력에서 발생하는 이익 때문에 중국을 견제하는 포괄적 협력에 동참하지 않는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상상과 가설에 존재하던 국제정치 영역이 실제화하고 있음이 감지된다.

  첫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구와 러시아 사이에 드넓은 전선이 구축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러시아 지지 의사를 계속 표명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이후, 불신의 골이 깊어졌던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 격퇴 전선에서 적과 동지의 관계, 공동의 위협에 맞선 동맹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있다. 이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향후 국제관계가 미국·유럽·일본을 축으로 한 북반구,  중국·러시아·불량국가를 중심으로 한 비서구 국가 간의 양대 전선으로 구축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둘째, 지역 강대국인 일본·독일의 자체 무장과 유럽연합군 창설 등으로 인해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군비 경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일본은 미국과 핵 공유의 절실함을, 독일은 자체 군비 강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에 대한 목소리를 키우기 있다. 미국 또한 유럽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두 개의 팽창주의 세력을 억지하기 위해서 지역 협력국의 군사력을 키워야 하는 시점이다. 이에 더불어 유럽연합 또한 지지부진했던 유럽연합군 창설을 공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탈로 탈냉전 시기 등장했던 군축 노력이 무한 군비 경쟁에 자리를 내주게 됐다.

  셋째, 강대국의 군사력 강화는 양날의 칼로 작용할 것이다. 일본, 독일의 재무장은 단기적으로는 미국 주도의 질서를 회복하면서 중국 봉쇄에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힘이 약화하면서 다극화로 변모할 가능성을 높인다. 패권국이 쇠퇴하여 힘의 공백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지역 강대국의 군사력 강화는 결국 더욱 불안정한 세계의 도래를 예고하는 전주곡이 될 것이다.

  넷째, 팽창주의 위협의 현재화는 동아시아 국가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정학적 충돌 지점, 단층선에 자리 잡은 동아시아 국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보다 둘 사이의 관계에서 위험을 회피하는 외교 전략을 구사해왔다. 하지만 이번 전쟁을 기점으로 중국을 봉쇄고자 하는 미국은 동맹국의 의지를 확인하려 할 것이고 이를 막으려는 중국의 압박도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북방정책의 딜레마와 외교정책 전환의 필요성

  한국은 박근혜, 문재인 두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를 교두보로 삼아 유라시아로 진출하는 북방정책을 추진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지닌 시장성, 지정학·지경학적 중요성, 동북아시아 국제정치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고려한다면 두 나라를 지렛대로 활용하는 전략의 의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지닌 정치 체제의 속성, 팽창주의적 경향, 높아지던 미·중 경쟁의 파고, 특히 러시아에 가해지는 서구의 제재는 두 정부의 북방정책이 기대했던 성과를 이루는 데 있어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했다. 더욱이 중국과 러시아를 철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북한의 체제 경직성과 핵무기 고수 정책은 미래 한국에 들어서는 정부의 성격과 관계없이 생산적인 북방정책 추진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에 더해 이전 두 정부가 공을 들였던 한국의 일대일로 참여 사업은 출범 10년에 다가서는 현재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한국 정부는 기존의 희망 섞인 사고,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서 벗어나 현실에 기반한 외교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유라시아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중국, 러시아와의 연루 가능성을 축소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서구 진영과 중·소 진영 간 대결 구도가 명시화된다면, 중국과 러시아에 투자한 한국 자본, 기술, 공장, 설비는 막대한 손해가 불가피하다. 또한 미·중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서 한국의 가치를 높이는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그동안 한국에는 안보는 미국, 중국은 경제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팽배했고, 미·중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한국의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주장도 난무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무르익기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수정주의 국가 팽창의 위험성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이런 가정이 성립될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두 권위주의 강대국이 수정주의적 경향을 노골화하는 시점에서 이런 주장의 유통기한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이번 전쟁에서는 무인 무기의 활약이 유난히 돋보이고 있다. 테러리스트 조직을 응징하는 과정에서 드론의 효율성이 여러 차례 입증된 적이 있지만, 최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과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다양한 형태의 드론이 사용되면서 변화될 미래전의 양상을 소개하고 있다. 현재 인구 감소로 한국의 국방정책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게다가 한국은 북한과 중국으로부터의 위협이 계속 증가하는 이중의 안보 압력에 직면해 있다. 드론을 비롯한 무인 무기 체계 발전에 과감하고 적극적인 투자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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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표적으로 존 미어샤이머의 주장을 들 수 있다. 극단적 현실주의자인 그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가 러시아 침략의 근본 원인이 됐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세계는 러시아보다 더 큰 위협으로 부상한 중국을 효율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에 유화책을 제공해 우호적인 관계를 설정할 것을 주장한다. Why John Mearsheimer Blames the U.S. for the Crisis in Ukraine. https://www.newyorker.com/news/q-and-a/why-john-mearsheimer-blames-the-us-for-the-crisis-in-ukraine (검색일: 2022년 3월 6일).
2)Denny Roy (2019). “Assertive China: Irredentism or Expansionism?”. Survival. Vol. 61, No. 1. pp. 51-74.
3)Björn Alexander Düben (2022). The Long Shadow of the Soviet Union: Demystifying Putin’s Rhetoric towards Ukraine. London: LSE IDEAS.
4)Irving L. Janis (1972). Victims of Groupthink: A Psychological Study of Foreign Policy Decisions and Fiascoes. Boston: Houghton Miff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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