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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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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이슈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 및 제언이 담긴 칼럼을 제공합니다.

한국 체류 중국동포: 국가의 경계를 초월한 삶의 주인공

김윤태 소속/직책 :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2022-03-3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세계인이 공분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불똥이 애꿎은 고려인에게 튀어 더욱 걱정스럽고 가슴 아프다. 일부이긴 하나 누리꾼이 국내 체류 고려인과 러시아인에게 전쟁의 책임을 물으며 한국을 떠나라는 등 원색적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온라인 공간이기 때문에, 또한 검증이 쉽지 않은 공간이기 때문에 부정적 파장의 확산이 더욱 우려된다. 

고려인은 재미동포, 재일동포와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의 피를 나눈 동포이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생존을 위해 연해주 등지로 이주했다가, 1937년 구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아픈 역사를 지닌 우리의 동포이다. 이들 중 8만에 가까운 고려인 동포가 국내에 체류 중이다. 국가가 가난하여,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 못하여 빚어진 해외이주 동포이다. 지금처럼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해외이주와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른 이주였던 것이다. 

흔히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 동포 역시 고려인과 다르지 않은 설움의 이주역사를 가지고 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생존을 위해, 독립운동을 위해, 또는 일제의 강압에 의한 강제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주역사를 갖고 있는 중국 동포 중 상당수가 지금은 다시 한국으로 재이주해 고국 땅에서 장·단기 체류하고 있다. 2019년 12월 기준, 국내에 체류 중인 중국 동포는 총 701,098명으로, 전체 국내 체류 외국인 총계(2,524,656명)의 27.8%를 차지했다. 중국 동포가 한국의 가장 큰 이주민 집단이 된 것이다.

중국 동포가 고국 땅을 다시 밟았을 때, 한국인은 감히 상상도 못 할 감회와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동포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시선은 기대만큼 우호적이지 못했다. 중국 동포의 한국 유입과 정착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질적인 모습이 지나치게 부각된 탓이기도 했다. 동질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었고, 우리와는 다른 이질적인 모습에 생경해 했고 실망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중국 동포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 온 우리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한 탓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는 재미동포나 재일동포에 비해 중국 동포에 대해 훨씬 부정적 시선을 보낸다. 

한국사회가 중국 동포에게서 이질감을 느끼는 배경 중 하나는 이들이 갖고 있는 ‘다중 정체성’에 있다. 중국 동포는 중국 인민으로서의 국가정체성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와 더불어 혈통과 문화에 의한 한민족 정체성 또한 분명하게 유지하고 있다. 물론 중국 소수민족에게 강요된 중화민족 정체성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러한 다중 정체성을 선뜻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

중국 동포에게서 표출되어지는 ‘다중 정체성’은 결코 그들이 능동적으로 선택한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이주민이 겪어야 하는 시대와 환경의 결과물로 인정해야 줘야 할 것이다. 국경을 마주한 과경(跨境) 소수민족이 직면한 시대적 환경적 조건이 이들의 정체성을 결정했다. 중국 동북 3성에 위치한 중국 동포는 일제강점기 만주국 체제 하에서 생존해야 했고,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생존해야 했다. 만주국 체제 하에서는 일제의 압제와 일본식 교육을 감내해야 했고,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는 사회주의 이념의 수용과 중화민족으로의 동화 강요를 감내해야 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한민족 정체성을 잊지 않았다는 점에 오히려 찬사를 보내야 한다. 한민족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환경에 적극적으로 적응하여 자신들이 가진 정체성의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있다는 열린 시각의 판단이 필요하다.


중국 정부의 포섭전략과 재한 중국 동포의 중국 정체성 유지 및 강화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부는 예전과는 달리 화교를 적극적으로 포섭하는 화교정책으로 선회했다. 성공한 화교를 우선적으로 끌어들여 우호적 세력을 통한 시장경제의 도입과 확산을 도모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외국자본 보다는 화교자본의 유치가 외국자본에 의한 잠식우려를 떨치고 비교적 안전하게 개방의 효과를 취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조선족을 포함한 소수민족 공민의 해외 이주와 관련해서도 적극적 허용과 포섭정책으로 전환되었다. 물론 조선족과 같이 국경 너머에 같은 민족의 국가가 존재하는 과경(過境) 소수민족이 고국으로 재이주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불편한 시각을 보이기도 했지만, 2010년을 기점으로 소수민족 화교를 정책 시스템에 편입시켰다.1) 이에 해외거주 조선족 역시 화교화인의 범주에 편입되고 관리와 보호 대상이 되었다. 동시에 기존 한족 중심의 화교화인이 그랬던 것처럼 소수민족 화교 역시 중화 문화의 보급자로서의 역할과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화교화인백서의 한국화교화인 범주에 재한 조선족을 포함시켰으며, 지린성(吉林省) 귀국화교연합회(侨联)의 조직구성에서도 재한 조선족, 즉 재한 중국 동포가 깊숙이 편입되었다. 귀국화교연합회 청년위원회에 명시된 문구는 해외화교의 중국 정체성 유지 및 확장 임무가 매우 중요한 임무 중 하나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내외 교포청년과 광범위하게 연계하고, ...(중략)...중화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고양하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공헌하는 것이다.2) 

중국 동북지역의 정치협상회의에서도 해외 거주 모든 조선족을 신화교화인으로 규정하고 특히 재한 조선족을 중점 정책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3) 

‘재한 중국 동포’가 이러한 제도적 관리시스템 안에 포함됨으로써 자의든 타의든 소위 ‘중국 국가 정체성’은 지속적으로 유지 혹은 강화될 것이다. 실제로 ‘재한 중국 동포’의 ‘중국 정체성’의 유지와 강화에 관련된 증거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재한 중국 동포’들로 구성된 ‘귀한동포총연합회’의 중국어 명칭은 ‘한적화인총연합회(韓籍華人總聯合會)’이다. 이 연합회의 회장은 귀국화교연합회, 중화해외연의회(中華海外聯誼會), 중국해외교류협회(中國海外交流協會) 등 중국 여러 지역조직의 고문 및 이사직을 맡고 있다.4) 

‘재한 중국 동포’들이 조직한 사회단체들이 중국과의 연계를 배제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재한 중국 동포’를 화교화인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중국과 적극적으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중국 정부의 정책이 그 전략적 효과를 충분히 거두고 있는 셈이다. 

중국 정부의 제도적 유인과 포섭전략의 효과는 ‘재한 중국 동포’의 한국 국적 취득추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1~2017년의 17년간 92,318명의 중국 동포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중국 동포 귀화자 수는 2001년 513명에서 매년 증가하여 2009년에는 16,437명으로 최고 수준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는 귀화자 수가 오히려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10년 9,216명, 2013년 3,905명, 2017년 1,521명으로 그 수가 해마다 줄었다. 이는 중국의 급격한 경제 발전으로 인해 귀화보다는 중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한⋅중 양국에서 ‘삶의 기회’를 찾으려는 사람이 증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5) 

중국 정부의 제도적 차원의 포섭전략은 한국 체류 조선족들의 중국 국가 정체성의 유지와 강화를 담보했으며, 나아가 한중 양국 간 경계를 넘나들며 이들만의 초국가적 활동 공간을 구축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받침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정책적 배려와 한민족 정체성의 강화

‘재한 중국 동포’가 중국 국가 정체성에만 경도되지 않고 ‘한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확대 재생산시킬 수 있는 데에는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있었다. 지난 30년간 재한 중국 동포 중 단기체류자의 비중은 급감했다. 1992년 국내 체류 중국 동포 중 98.7%가 단기체류자였으나 해가 갈수록 감소하여 2019년에는 급기야 4.4% 정도에 그쳤다. 단기체류자의 급감은 ‘외국인 고용허가제’ (2003년), ‘외국 국적 동포 방문취업제’(2006년)의 실시, 2005년~2006년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의 체류자격 합법화 조치 등 중국 동포의 국내 취업과 체류 문호의 확대 정책에 기인한다. 또한 2010년에서 2019년 기간에는 중국 동포에게 ‘재외동포’ 체류자격 발급이 확대되었다. 설동훈⋅문형진(2020)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 정부의 중국 동포에 대한 이주관리 정책의 기조는 강화와 완화를 반복하고는 있으나 시종 ‘동포’라는 점을 고려하여 입국과 체류에 대하여 여러 가지 불평등 요소를 제거하는 등 국내 정착 문호를 대폭 넓히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재외동포법의 시행은 재외동포의 한민족 정체성 유지와 확대에 긍정적 도움을 주었다. 정부는 외국 국적 동포가 국내에 체류할 경우 국민에 준하는 처우를 보장하는 내용의 ‘재외동포법’을 제정했다. 비록 중국 동포에 대한 차별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으나, 출입국 및 체류에 대한 제한, 부동산 취득⋅금융⋅외국환거래 등에 있어서 각종 제약의 완화 등 장차 중국  동포의 한국 내 투자와 경제생활을 촉진하고, 한민족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제도적 기반이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선거법의 개정으로 ‘국내 체류 외국 국적 동포’가 참정권을 갖게 되었다. 영주자격을 취득한 외국 국적 동포도 국내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통계청의 국적 및 체류자격별 체류 외국인 현황자료에 의하면, 2019년 기준 한국계 중국인(‘재한 중국 동포’)의 영주자격(F5) 취득자 수는 88,888명으로 영주자격 취득 전체 외국인 153,291명의 58%를 차지했다. 이제 9만 명에 가까운 ‘재한 중국 동포’는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더불어 최근에는 재외동포(F4) 자격 부여 확대와 함께 외국 국적 동포의 장기적 한국 체류가 훨씬 용이하게 되었다. 따라서 ‘재한 중국 동포’의 국내 정치활동 참여의 공간이 훨씬 확대될 것으로 기대되며, 이들의 정치 참여 의식 또한 갈수록 향상될 것이다. ‘재한 중국 동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정책적 제도적 배려는 이들의 한민족 정체성의 유지 및 강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며, 이들의 초국가적 사회 공간을 확장시켜줄 것이다.


자발적 다중 정체성 강화 활동

영구적 정착을 목표로 하지 않는 초국가적 이주자들은 거주국에서 시민권을 획득하고자 노력하기 보다는 이(易)출국과 거주국 양 국가에 중첩되는 권리를 확보하고자 노력한다. 거주국에 동화되지도 않고 이출국 정치에 경도되지도 않는 모호한 정치적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재한 중국 동포’는 한국에서의 영구적 정착을 원하지 않는다. 물론 귀화자의 경우는 이와 다르지만, 귀화자는 전체 한국 체류 중국 동포의 13% 남짓에 불과하며, 최근에는 이 또한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재한 중국 동포’들이 거주국인 한국의 국적을 취득하는 것보다 오히려 이출국인 중국과 이입국인 한국에서 동시에 일정한 정도의 법적지위를 보장 받고자 하는 경향에서 비롯됨이다. 즉 거주국인 한국 정체성에 편향되지도 않고 이출국인 중국 정체성에 지나치게 경도되는 것도 아닌 다중 정체성을 견지하고자 함에서 비롯되었다 할 것이다.

이주자 개인의 선거 참여와 같은 직접적인 정치적 실천 외에도, 이주자들은 통상 단체를 조직하여 이주자들의 권익보호 활동을 전개한다. ‘재한 중국 동포’ 역시 이주 초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단체를 결성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최초로 결성된 ‘중국노동자협회’를 필두로 ‘재한 조선족 연합회’, ‘귀한 동포 연합 총회’, 그리고 유학생 단체인 ‘재한 조선족 유학생 네트워크’ 등 단순 직능단체는 물론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 종합 성격의 단체, 언론단체와 정치활동 단체까지도 활발하게 결성되며 활동을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이들의 권익보호 활동은 거주국인 한국 국내 NGO들과의 연대를 통해 더욱 영향력을 강화시키기도 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동포지원 NGO인 ‘동북아평화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단법인 이주민센터 친구’ 등 국내 NGO들과 연대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활동하며, 그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재한 중국 동포’ 사회단체들의 활동영역은 거주국인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출국인 중국과도 깊은 연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양국 간을 오가는 사회단체 활동을 통해 이들만의 공간인 ‘초국가적 사회 공간’을 구축하면서 초국가주의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지나치게 경도된 ‘중국 정체성’을 표출하거나 혹은 이와는 반대로 중국 정부에 지극히 비판적인 특정 사회단체의 활동이 우려스럽기는 하나, 편향된 정치적 입장을 가진 단체는 사실 크게 많지 않다는 것이 대다수 ‘재한 중국 동포’의 판단이다. 대부분의 사회단체는 그 본연의 목적인 한국 사회와 동포사회의 가교역할과 개인과 집단의 권익보호, 한국 사회에서의 이미지 홍보 등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재한 중국 동포’가 중국에 경도되지도 한국에 치우치지도 않는 다중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또 다른 배경은 해외 네트워크의 구축과 활용에 있다. 해외 네트워크는 이들의 ‘초국가적 사회 공간’을 무한공간으로 확장시켜주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온라인 커뮤니티로는 ‘모이자’, ‘123넷’, ‘코리아86’, ‘중국 조선족 네트워크’, ‘중국 조선족 대모임’, ‘쉼터’, ‘나가자’ 등을 들 수 있는데, 2000년 개설한 ‘모이자’가 회원수 30만 명의 중국 동포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현재 ‘재한 중국 동포’를 위한 정보제공뿐만 아니라 중국 내 중국 동포에게도 중요한 정보제공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전 세계 한민족 네트워크와도 긴밀한 유대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 한민족 네트워크인 세계한상대회와 세계한인무역협회(World-OKTA)에 직접 소속되기도 하여 온·오프라인의 글로벌 한민족 네트워크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국가적 사회 공간을 구축하고 그에 걸맞은 정체성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초국가적 사회 공간 구축과 다중 정체성의 형성

인류학자 Glick-Schiller 등(1992)은 초국가주의(transnationalism) 개념을 제시하면서 국제이민의 새로운 생활방식을 해석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이민이 어떻게 가족이나 사회, 경제, 종교, 정치적, 문화적 연대를 활용하면서 동시에 두 개 혹은 다수 국가에 걸친 ‘초국가적 사회 공간(transnational social fields)’을 구축하고 활동하는지, 그들의 사회적 관계 및 네트워크가 어떻게 여러 국가 내에서 구축되어지고 유지, 재구조화 되는지를 분석했다.6) 

기존 민족주의 이론에 기반을 둔 이민 연구 동향에서는 이민은 반드시 이출 모국과 이입 거주국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이민의 거주국 동화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초국가주의는 이출지 모국과 이입지 거주국 간의 쌍방향적 이동이며, 거주국에서 정착하면서도 이출 모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주목하였다. 또한 초국가적 연계를 동시에 진행하는 특성에 주목하였다. 인구 유동과 정보전달이 용이하고 빠른 세계화 시대의 특징은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동시에 두 개 혹은 다수의 국가에서 생활할 수 있게 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특정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영역을 포괄하는 모든 영역에서 그들 특유의 ‘초국가적 사회 공간(transnational social fields)’을 구축하고 적극적 활동을 전개한다. 따라서 이러한 초국가적 사회 공간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가리켜 ‘초국가적 집단’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초국가주의(transnationalism)’ 및 ’초국가 이민(transnational migration)’ 등 개념은 초국가적 사회 공간의 동시성, 유동성, 개방성, 지역과 국가의 초월성 등의 특징을 강조한다.

남북한 총인구의 10%에 해당하는 750만 재외동포의 역량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화교에 비견할 만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183만 중국 동포는 혈통과 문화를 공유하는 민족 구성원으로서 우리와 경제적 문화적 연대 및 협력이 가능하며, 화교화인 네트워크를 뛰어넘는 동북아 한민족 네트워크의 실질적 조력자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통일시대에서도 중국 동포의 역할은 더없이 중요하다. 중국 동포는 분명 북한의 개방과 남북한 통일과정에서 중요한 매개체적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동포가 중국에서 직접 체험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로의 전환 경험을 북한에 구체적으로 전수할 수 있고 매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중국 동포 집단은 계층분화의 속도를 빨리하고 있고, 국경을 넘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산하고 있어 그 역량의 강화와 실천이 더욱 기대된다. 중국 동포 3세 유학생들이 대학교수,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변호사, 언론인 등 한국 내에서 엘리트 집단으로 급부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 동포 기업가’들은 중국의 각 도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학자나 기업가 외에도 과학기술인, 문화예술인 등 우수한 인재들이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그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재한 중국 동포’의 정체성에 대한 일부 연구는 이들의 초국가적 선택과 활동에 주목하지 못하고 그들의 중국 지향적 정체성만을 강조하면서 그 원인을 한국 사회의 배타성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21세기 중국 동포의 한국 이주와 정착은 결코 중국과의 결별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 완전한 정착을 의미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수시로 한중 양국을 오가며 선택적 삶을 구축하고 있다. 즉 한중 양국의 정책 및 양국 사회의 삶의 조건은 동시적으로 ‘재한 중국 동포’의 정체성 형성 및 편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재한 중국 동포’가 그들만의 고유한 초국가적 사회 공간을 구축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다중 정체성을 긍정적 시선으로 열린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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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丁宏,李如東,郝時遠, 2015, 「國家社科基金重大項目‘少數民族海外華人硏究’ 開題實錄」, 『廣西民族大學學報』 第6期; 최승현, 2020, 「당대 중국의 '소수민족화교화인' 연구 및 정책 흐름 분석」, 『중국지식네트워크』, 16: 5-36
2) 吉林省侨联青年委员会简介(http://www.jlsql.org/group_info.asp?cid=13&lid=38&id=86)
3) 최승현, 2020, 「당대 중국의 '소수민족화교화인' 연구 및 정책 흐름 분석」, 『중국지식네트워크』, 16: 5-36
4) 최승현, 2020,「재한조선족 정체성에 대한 중국요인 분석」, 『한국동북아논총』, 25(4):27-45
5) 설동훈⋅문형진, 2020, 『재한 조선족, 1987-2020년』, 서울: 한국학술정보, 60-61쪽
6) Schiller Nina Glick, Linda Basch and Cristina Blanc-Szanton, “Transnationalism: A     New Analytic Framework for Understanding Migration”, in Nina Glick Schiller, Linda Basch and Cristina Blanc-Szanton(Eds), Towards a Transnational Perspective on Migration: Race, Class, Ethnicity, and Nationalism Reconsidered, New York: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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