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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전략, 이대로 좋은가?

구기보 소속/직책 :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2022-08-29

문제 제기

중국 시장에서 스마트폰 판매 독보적 1위, 자동차 판매 2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즉 모두 한국계 기업이 이루어낸 성과이다. 중국 시장에서 크게 선전하면서 중국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어서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식품에서는 오리온과 농심, 의류에서는 이랜드, 화장품에서는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각 업종의 기업들은 기업의 위상을 바꿀 정도로 중국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어떤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1% 내외의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 역시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되었다. 화장품 기업도 주가가 고점 대비 절반 이하로 하락하였으며, 앞으로도 장담하기 어렵게 되었다. 승승장구하던 한국계 기업이 최근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물론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국 정부가 2016년 사드를 배치하면서 한중관계가 급랭하고 소위 ‘한한령(限令)’의 여파로 한국 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한령에 모든 책임을 돌리기에는 너무 안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나 타이완 역시 중국과 관계가 안 좋은 시기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여전히 중국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계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밀려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잘나가던 한국 기업의 추락

삼성전자는 2013년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19.7%로 단연 1위를 기록하였으나 2014~2015년 파격적인 가격에 차별화된 서비스로 무장한 샤오미에 추월을 허용하였고, 그 후 화웨이, 오포, 비보 등 중국 로컬 스마트폰 기업에 밀려났다. 물론 삼성전자 이전에 노키아, 소니 등 유럽계, 일본계 스마트폰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먼저 밀려났다. 중국 로컬 기업의 가성비 전략으로 외국계 스마트폰 기업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플은 여전히 5위권 안에 건재하고 있으며, 미국 제재로 화웨이가 밀려난 자리마저 일부 차지하면서 위상이 더 강화되고 있다.


베이징현대자동차는 글로벌 완성차 기업 중 중국 시장에 가장 늦게 진출한 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가격에 중국 로컬 자동차와 비교할 수 없는 성능을 갖춰 일본계 회사를 앞지르면 서 선두권에 진입하였으며, 베이징 1·2·3공장, 창저우 공장, 충칭 공장 등 5개 공장으로 생산시설을 확장하였다. 그러나 2020년 베이징현대자동차는 15위로 추락하였으며, 베이징 1공장을 매각하였고 2공장마저 매각 협상 중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시장에서 한류 붐에 힘입어 크게 성장하였다.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고점이던 2015년 45만 원대에서 2022년 8월 12만 원대로 하락하였다. 아모레퍼시픽 주가의 추세적 하락은 2016년 한국 정부가 사드를 배치한 후 부정적인 영향을 입은 것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2021년 아모레퍼시픽 주가가 30만 원대로 반등한 후 다시 하락한 것을 사드 배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결국, 한국 화장품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여전히 경쟁력이 있는가의 문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이 출시한 여타 글로벌 화장품 기업과 차별화된 제품인 한방(韩方) 화장품(설화수, Hu)은 점차 중방(中方) 화장품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범용 화장품도 중국 로컬 기업의 제품으로 대체되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계 기업의 경쟁력 하락은 단순히 기업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의 대중국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한·중 자동차(부품 포함) 교역을 보면 2014년 한국의 대중국 자동차 무역수지는 85억 달러 흑자로 정점에 달한 후 지속해서 하락하여 2020년에는 3억 달러 적자로 전환되었다. 완성차는 2017년 적자로 전환되었으며, 자동차 부품은 2020년 적자로 전환되었다.


중국 시장 혹은 글로벌 시장?

중국 시장에서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은 중국 시장을 벗어나 미주나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는 중국에서 어려움을 겪은 반면, 여타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기도 하였다. 특히 중국 정부가 한류에 대한 규제를 가하면서 한류 관련 기업은 미국, 유럽, 동남아 등 여타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을 포기하고 여타 국가 및 지역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 타당할까? 이 전략은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열세를 인정하는 격이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중국 시장을 장악한 중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만 머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면서 한국 기업과 경쟁이 심화하고 있거나 일부 시장에서는 한국 기업이 점유한 시장을 점차 장악해가고 있다. 예를 들면,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샤오미에 밀려 1위 자리를 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중국 스마트폰 기업에게도 시장을 내주었다.

결국, 중국 시장을 벗어나 제3의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구상은 매우 소극적인 발상이며, 제3시장에서도 중국 기업과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한편, 중국 시장만 잃어버리고 새로운 대체시장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반도체 업종은 중국이 세계 반도체 수요의 60%를 점하고 있어, 중국 시장을 포기할 경우 대체시장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성비 전략 혹은 프리미엄 전략?

한국 기업은 글로벌 시장뿐만 아니라 중국 시장에서도 가성비 전략을 추진하였다. 소위 ‘가성비’ 전략은 가격과 품질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조화를 이룰 때 통하는 전략이다. 중국 기업과 비교하면 가격경쟁력에서 뒤지고 서구 선진국 기업과 비교하면 품질에서 밀리는 한국 기업으로서는 불가피한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기업의 가성비 전략은 조화가 깨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격경쟁력에서는 중국 기업과 여전히 상당한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데, 특히 중국 정부가 ‘홍색 공급망’을 앞세워 자체 소재·부품 공급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중국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제고되고 있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수합병과 외국 인재 유치를 통한 자체적인 기술력 제고 등에 힘입어 중국 기업은 한국 기업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거나 일부 추월하기까지 하였다. 이제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가성비 전략을 앞세워 중국 로컬 기업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중국 시장에서 외국계 기업이 중국 로컬 기업에 밀려나는 현상은 한국계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 정부가 로컬 기업과 외국계 기업에 차별적인 산업정책을 시행하면서 외국계 기업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기도 한다. 예를 들면, 게임 판호 발급이나 배터리 보조금 지급에서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실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 국가의 기업에 비해 한국계 기업이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중국 기업이 가성비를 크게 향상시키면서 중가, 내지 중고가 시장까지 장악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고가 프리미엄 시장은 외국계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결국, 한국 기업의 나아갈 방향은 이제 가성비 전략을 버리고 프리미엄 전략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 기저귀 시장에서 하기스 기저귀는 구미 기업이나 일본 기업을 넘어 독보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다.


빠른 추격자 혹은 선도자?

그동안 한국 기업은 글로벌 선도기업을 빠르게 추격하면서 격차를 줄이고 가성비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은 시장에서 1위는 아니더라도 2위를 유지하도록 해주었으며, 제품수명주기에 따라 1위에 오르게 하기도 하였다. 한국 기업이 빠른 추격자로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왔으나 이제는 중국 기업이 제2의 빠른 추격자로 부상하면서 한국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기업이 가성비 측면에서 중국 기업에 밀리는 상황에서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는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시장 선도자(first mover)를 추월하거나 새로운 시장에서 선도자의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로컬 기업과 경쟁하기보다 애플을 넘어서는 전략을 추진하면서 폴더블폰 등 차별화된 스마트폰을 출시하기도 하였다. 중국 기업이 폴더블폰에서 빠르게 삼성전자를 추격한 상황에서 새로운 혁신 제품의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과거 중국 시장의 40% 이상을 장악했다 사라진 노키아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미주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전기차 시장에서 상당히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독일계나 일본계를 넘어 현대, 기아 전기차가 테슬라와 함께 미주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전략에 상당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최고의 제품은 서구 선진시장에 먼저 출시하고 유행이 지난 모델을 중국 시장에 출시하던 구태의연한 전략을 버리고 과감하게 최고의 제품으로 중국 시장에서 승부함으로써 기존 가성비 기업 이미지를 벗어나 프리미엄 기업으로 이미지를 재구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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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1. 구기보, 중국경제론, 제2판, 2017년
2. 네이버 증권 통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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