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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안보 시대의 반도체 기술동맹과 한국의 대응
김용신 소속/직책 : 인하대학교 중국학과 조교수 2022-12-30
미·중 양국 사이 거세지는 전략 경쟁과 함께 탈냉전 이후 두 개의 상이한 로직에 의해 작동하는 것으로 보였던 경제 발전과 국가 안보가 다시 하나의 영역(domain)으로 모아지며 경제 안보(economic security)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정점에서 토머스 프리드먼은 경제적 효율성의 극대화를 위해 규제 완화, 민영화, 관세 인하 등과 같은 황금 구속복(golden straight jacket)을 입은 국가가 렉서스와 같은 고급 세단이 상징하는 번영하는 국가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올리브를 생산하는 농업 국가로 남을 것이라고 단언했다.(프리드먼 2009)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경제와 안보는 두 개의 상이한 영역으로 간주되었고, 냉전의 종결과 함께 자유 시장경제의 승리로 사회제도의 발전이 종결된 역사의 종언 시점에서 안보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후쿠야마 1992)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자유민주주의 승리로 인해 사회주의의 정체를 유지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미국적 경제질서에 참여했던 중국에서는 WTO 가입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질서에 적극적으로 편입되었던 2000년대 초반 경제 안보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Wang 2004, Yeung 2008). 국내적으로는 급증하는 실업률, 불평등 확대, 정치권력의 분권화, 그리고 국외적으로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등의 상황에서 경제 안보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결국 2000년대 초반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면서 중국은 대미 수출의 흑자 증가와 함께, 지속적인 GDP 성장을 경험한다. 그러나 대규모의 해외직접투자(FDI) 유입과 함께 중국 내 외자 기업의 수출 비중 역시 증가하여 2006년경 전체 수출에서 외자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육박했다. 고부가가치 품목의 수출은 90%에 이르렀다. 중국 전체 GDP 성장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증가하고 수출의 상당 부분을 외자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쌍순환, 자주 혁신 등 일련의 정책을 통해 해외 자본과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김용신 2022). 또한 2021년 19차 6중전회에서 통과된 3차 역사결의를 통해 “자주독립”을 당과 국가의 중요 원칙으로 세우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을 중국 공산당의 100년 투쟁의 역사적 결론으로 강조하고 있다.1)
중국이 2000년대 초반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면서 경제 안보를 걱정했던 것과는 상반되게, 서구 선진국들은 국내적 불평등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세계화가 가져오는 경제적 이익에 몰두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미국 주도의 글로벌 가치 사슬이 전세 계적으로 확장되었고, 신자유주의적 경제 만능주의 앞에 안보적 고려는 그저 냉전 시대의 유산으로 인식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화의 확장을 통해 촘촘하게 만들어진 경제적 상호의존이 무기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함을 알게 했다. 중국 역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미국을 일방적으로 따라야 할 모범 같은 존재에서 이제는 경합하여 따라잡을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결국 2000년대 후반부터 중국은 자국의 산업과 무역을 보호하기 위한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을 본격적으로 채택하기 시작하였고, 세계 금융위기를 경험한 미국은 중국을 잠재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자국의 취약성을 강화하기 위한 산업정책을 점점 고도화시켰는데, 2015년 “중국제조 2025”처럼 특정 시점까지 서구 선진국 및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명시적인 시간표를 제시하여 미국의 신경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양국은 기존의 세계화를 통한 경제적 상호의존이 자국에 미친 부정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수정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미·중 간 존재하는 “불공정 무역 관행”을 변화시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무역 전쟁을 시작했고, 이후 미국은 점차 중국이 구축하는 기술력과 혁신 역량, 그리고 경제 영역에서의 중국 정부의 역할과 국가 계획 등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상호의존적인 글로벌 가치사슬을 만들어낸 세계화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이제 국제사회는 다시 경제 안보에 주목하고 있다.2) 안보에 대한 고려 없이 경제적 효율만 추구하는 세계화 시대에서 상호의존이 무기화되는 시대로 변화해 전 세계가 경제 안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Farrell and Newman 2019)
화웨이에 대한 제재에서 시작된 미·중 기술 전쟁은 현재 반도체 분야로 전장이 이동해 전개되고 있다. 미·중 반도체 전쟁(Chip War)이 격화되는 가운데 최근 미국은 반도체 제조의 중심축인 한국, 일본, 대만 등의 동맹국들과 함께 Chip 4를 구축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Chip 4를 통한 기술 동맹의 목적과 중국의 대응을 살펴본 후, 한국의 정책적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Chip 4 기술 동맹의 목적과 중국의 대응
미·중 간의 전략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는 2002년에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산업의 가치 사슬에서 비교 우위를 지니고 있는 한국, 일본, 대만에 반도체 공급망 동맹인 Chip 4 결성을 제안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 및 시장 우위를 지니고 있는 한국의 경우, 중국이 최대 시장이기에 Chip 4 가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도 많다. 본 장은 반도체에 있어 미·중 양국의 전략적 주안점과 Chip 4 결성에 대한 중국 측 대응을 먼저 살펴본다.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의 전략적 주안점은 두 가지다. 첫째, 2020년 이후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안정적인 반도체 수급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둘째, 드론, 무인 잠수함 등과 같은 첨단 군사 기술 개방을 통해 중국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점하고자 제3차 상쇄전략을 추진하여 최첨단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고, 최첨단 반도체 기술에 대한 clean network를 구축하고자 한다. 반도체 생산 네트워크에서 미국 기업이 핵심 노드를 장악하고 있지만, 반도체 제조가 한국과 대만에 편중된 상황에서 미국 국내로의 반도체 reshoring과 ally-shoring을 추진하여 반도체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Chip 4 결성을 통해 공급의 안정성과 clean network 구축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중국의 전략적 주안점은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면서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2014년 6월 “반도체 산업 발전 추진 요강”을 통해 반도체 자립을 위한 산업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반도체 빅펀드를 운영하여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최근 반도체 빅펀드 운영과 관련한 대규모 부패 스캔들에 대해 사정 기관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반도체 산업 주관 부문인 공업신식화부(Ministry of Industry and Information Technology) 부장, 펀드 주관 운영 책임자, 펀드의 주요 수혜자였던 칭화유니그룹(Tsinghua Unigroup) 전 회장 등 반도체 빅펀드의 핵심 인사들이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2015년 이래 원유 수입보다 더욱 많은 외화를 반도체 수입에 쓰고 있는 중국의 상황에서 반도체 자급은 매우 시급한 과제인데, 반도체 빅펀드 부패 스캔들은 반도체 자급 노력이 애초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Chip 4 결성에 대해 중국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중국 외교부 및 상무부 대변인 등은 “미국이 국제 무역 규칙을 훼손하고, 세계 시장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며, Chip 4 관련국들에 “개별 국가의 장기적 이익과 공정한 시장 원칙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유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Chip 4의 성패에 대해 중국을 배제한 동맹은 동맹 유지에 필요한 공통의 이익을 확보하기 힘들고, 동맹국과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성공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한국의 참여에 대해서도 한국 관계자들이 “Chip 4” 대신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들며 한국에 대해 균형추 역할을 기대한다고 보도했다. 만약 한국이 Chip 4에 가입하면, 중국이 THAAD 배치에 대해 했던 경제 보복을 다시 진행할 것이라는 한국 언론의 보도와는 다르게, 중국 언론에서는 오히려 한국의 Chip 4 참여가 미국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분석하면서도 한국의 참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언급하기보다, 오히려 한국의 Chip 4 참여가 중국 국내에서 필요한 반도체의 안정적 수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지 염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8월 대한상공회의소가 한중수교 30주년을 정리하면 작성한 보고서에서 “대중국 수출 의존도를 중국이 무기화하지 못하도록 수출다변화 같은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는데, 중국의 환구시보(Global Times)는 이에 대해 “한국산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줄이겠다는 뜻 아니냐”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는 적은 외화를 소모하면서도 안정적인 반도체를 수급하는 것이 중국의 급선무임을 보여준다.
결국 반도체 빅펀드 관련 비리 조사에서 드러나듯, “반도체 굴기”를 통한 반도체 자급이 목표치를 밑돌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대해 적극적 대응을 하기보다, 국내 반도체 수요를 맞출 수 있는 안정적 공급처를 확보하는 것이 중국이 처한 현재의 상황이다.
한국의 정책적 대응
미국의 Chip 4 가입 제안에 대해 한국은 어떤 정책적 대응을 해야 할까? 미국이 반도체 생산 네트워크의 주요 노드를 장악하고, 지적재산권과 R&D 역시 미국 사법 질서 속에서 운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Chip 4 가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있었던 미일 반도체 분쟁 상황을 복기하면, 미국 주도의 반도체 생태계에서 분리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반도체 생산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Chip 4 가입을 전제로 한국은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 첫째, 중국이 반도체 최대 수요처인 것은 비단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에 한정된 얘기가 아님을 고려하여, Chip 4라는 다자적 forum 참여가 중국의 개별 참여국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나타날 경우, 다자 차원에서 위험을 관리할 위기관리 메커니즘을 마련해야 한다. EDA tools의 ARM, Cadence, Synopsis는 물론이고, 장비업체인 Applied Materials, KLA, Lam Research, 통신용 칩 업체인 Qualcomm, IDA인 Intel 등 대다수 미국 반도체 기업들에도 중국은 최대 수익처이다. Chip 4 가입으로 야기될 수익 감소 시나리오에 대해서 다자 차원에서 공동 대응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둘째, Chip 4는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특화된 영역을 보유한 4개국―미국(기술), 일본(소재), 한국(메모리), 대만(파운드리)―이 다자적 포럼을 결성한 것인 만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과 같이 회원국 간의 효율적 협업에 장애가 되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다자적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화이트리스 배제가 결과적으로 한국의 중국산 반도체 소재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만들었던 점을 감안하여, Chip 4 회원국 간의 원활한 협업과 교역을 방해하는 장치들을 제거하는 다자적 메커니즘을 수립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Chip 4 결성은 군사적 유용 가능성이 미미한 반도체 소재, 기술, 장비, 제품 등에 대한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 가치 사슬의 핵심 노드에 있는 대다수 기업들에게 중국이 최대 시장임을 감안하면 군사적 유용 가능성이 낮은 반도체 소재, 기술, 장비, 제품 등에 대한 대중국 수출 제재는 관련 기업들의 엄청난 반발을 야기할 수 있다. 현실적이지 않은 조치다. 이를 감안하여 군사적 유용 가능성이 미미한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과 중국 내 삼성과 SK hynix의 반도체 공장의 원활한 가동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상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Chip 4 가입이 향후 중국 반도체 수급에 부정적 영향이 없음을 중국에도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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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李宏伟, “把国家和民族发展放在自己力量的基点上坚持独立自主开拓前进道路(专题深思)”, 人民网-《人民日报》, 2022年02月25日, http://hb.people.com.cn/n2/2022/0225/c194063-35148981.html
2) 2022년 11월 말에 출간된 『역세계화 vs. 다른 세계화: 미-중 갈등과 세계화의 미래』 (코리아컨센서스)의 제목이 보여주듯이, 현재 세계화는 기존의 세계화의 해체를 의미하는 역세계화(de-globalization)와 새로운 대안적 형태의 세계화라는 갈림길에 서있다. 세계화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미중 갈등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러한 세계화의 기로는 새로운 경제안보적 불안 상황을 야기시키고 있다.
[참고문헌]
김용신, “미중 전략 경쟁 하의 중국의 경제-안보 딜레마: 중국의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의 결합”, 『국제정치연구』, 25권, 2호, pp. 57~81 (2022).
프랜시스 후쿠야마, 『역사의 종언』, (서울: 헌정회, 1989)
토머스 프리드먼,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파주: 북이십일 21세기북스, 2009)
한홍열, 이창수, 공민석, 이왕휘, 최필수 저, 『역세계화 vs. 다른 세계화: 미-중 갈등과 세계화의 미래』 (코리아컨센서스, 2022)
李宏伟, “把国家和民族发展放在自己力量的基点上坚持独立自主开拓前进道路(专题深思)”, 人民网-《人民日报》, 2022年02月25日, http://hb.people.com.cn/n2/2022/0225/c194063-35148981.html
Farrell, Henry, and Abraham L. Newman, “Weaponized Interdependence: How Global Economic Networks Shape State Coercion”, International Security, 44 (1): 42-79 (2019).
in an Uncertain Era”, 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 (2021)
Wang, Zhngyi, “Conceptualizing economic security and governance: China confronts globalization”, Pacific Review 17 (4): 523-545 (2004).
Yeung, Benjamin, “China in the era of globalization: The emergence of the discourse on economic security,” Pacific Review 21 (5): 635-66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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