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2024년 대만 총통 선거와 대만 정치구도 변화 가능성

이동규 소속/직책 :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2024-03-08

2024년 1월 13일 대만에서 총통 선거와 입법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清德)는 ‘민주와 독재 사이의 선택’을, 중국국민당(이하 국민당)의 허우유이(侯友宜)는 ‘전쟁과 평화 사이의 선택’을 강조했기 때문에 이번 선거를 ‘미중 대리전’이나 대만 내 친미세력과 친중세력 간의 대결로 보는 시각도 많았다. 이러한 시각은 1990년대 민주화 이후 대만 내에 형성된 국민당과 민진당 정치 양극화 구도와 미중 전략경쟁 구도 속에서 확산된 대만해협 위기에 대한 우려에 기반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총통으로 당선됐지만, 집권당의 입법원 과반 의석 확보 실패, 제3세력인 대만민중당(이하 민중당)의 부상 등 과거와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본 고에서는 2024년 대만 총통 선거 및 입법의원 선거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만 정치구도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1. 2024년 대만 총통 선거 및 입법의원 선거 결과


2024년 대만 총통 선거 결과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40.05%의 득표율로 대만 총통에 당선됐다.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는 33.49%, 민중당의 커원저(柯文哲) 후보는 26.4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00년대 이후 민진당과 국민당이 8년마다 번갈아 집권해 왔지만, 선거 결과 민진당이 최초로 3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동시에 라이칭더 후보는 유권자 과반의 지지를 받지 못한 총통이 되었다. 물론 <표 1>에서처럼 2000년 총통 후보에서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이 39.30%의 득표율을 기록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2위였던 무소속 쑹추위(宋楚瑜)는 국민당 소속이었다. 당시 쑹추위는 리덩후이(李登輝), 롄잔(連戰)과의 갈등 때문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롄잔과 쑹추위가 얻은 득표율이 거의 60%에 근접하기 때문에 당내 분열이 아니었다면 국민당이 과반수를 확보했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단일 정당 후보가 총통 선거에서 과반의 지지를 얻지 못한 최초의 선거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입법위원 선거 결과도 이례적이다. <표 2>에서 볼 수 있듯이 입법의원 선거 결과 의석수 총 113석 중 국민당이 52석, 민진당이 51석, 대만민중당(이하 민중당)이 8석, 무소속이 2석을 얻었다. 그 결과 집권당이 최초로 입법원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수당인 국민당도 과반 의석인 57석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민진당과 국민당이 단독으로 의회를 주도할 수 없게 됐다. 8석을 얻은 민중당이 향후 입법 과정에서 캐스팅보트(casting vote)를 행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대만 정치에서 민진당과 국민당 양대 정당 외에 제3정당이 부상한 양상이다. 




2. 양안 문제에 대한 대만인들의 피로도


과거와 같이 이번 선거에서도 민진당과 국민당이 양안 문제에 대한 입장차를 부각하며 유권자의 표심을 확보하려 한 것을 고려할 때, 양안 문제에 대한 대만인들의 인식 변화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49년 국공내전 패배 후 대만으로 정부를 옮긴 국민당 정부는 1987년까지 계엄통치를 시행했다. 계엄령 해제 이후 대만 내 민주화운동이 활발해졌고 1992년 입법원 의원 선거, 1996년 총통 직선제를 거치면서 대만은 비로소 민주화됐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대만은 민진당과 국민당으로 대표되는 정치 양극화 구도를 형성했다. 민진당과 국민당은 다양한 이슈에서 대립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양안 정책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여왔다. 국민당은 중국인 정체성을 기반으로 중국과의 통일 혹은 중국과의 관계 발전을, 민진당은 대만인 정체성을 기반으로 대만의 독립을 강조해 온 것이다.

 

이에 따라 양안 관계가 대만 총통 선거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해 왔다. 예를 들어, 2008년에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기반한 경제성장을 주창한 마잉주(馬英九)가 압승했고, 2020년에는 2019년 홍콩사태로 대만 내에 촉발된 대중 불신과 위협 인식이 차이잉원(蔡英文)의 재선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1) 이번 선거에서도 민진당과 국민당은 각각 ‘민주와 독재 사이의 선택’, 국민당은 ‘전쟁과 평화 사이의 선택’이라는 각 정당의 양안 정책에 기반한 슬로건을 내세웠다. 양안 관계에 대한 입장차를 부각하며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양안 문제가 과거와 같이 대만 유권자들의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모양새다. 전통적으로 민진당은 전체 유권자의 30%, 국민당은 25%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2)  즉, 민진당과 국민당은 45%의 부동층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대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 에서 콘크리트 지지층을 제외한다면 민진당 라이칭더는 약 10%, 국민당 허우유이는 약 8%의 부동표를 확보했을 뿐이다. 오히려 부동층만을 본다면 제3세력인 민중당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이는 대만 유권자들이 양안 문제를 부각한 거대 양당에 피로감을 느끼고 양안 관계보다 대만 내 민생 이슈와 청년 세대의 미래 대안에 더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3. ‘92 컨센서스’에 대한 국민당 입장 변화


국민당은 역대 총통 선거에서 ‘92 컨센서스(92 Consensus; 九二共識)’3)  를 수용하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를 기반으로 대내적으로는 국민당만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과 발전을 모색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대외적으로는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려 한 것이다. 예를 들어, 2008년 총통 후보였던 마잉주는 “92 컨센서스는 양안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토대”라고 밝혔고, 4) 2016년 후보 주리룬(朱立倫)도 “우리는 92 컨센서스를 토대로 평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5) 2020년 후보였던 한궈위(韓國瑜) 역시 “92 컨센서스는 27년 동안 양안의 평화를 유지해 온 정해신침(定海神針: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사용하는 여의봉)”이라면서 92 컨센서스를 수용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6) 


이번 선거에서 국민당 허우유이(侯友宜) 후보는 ‘전쟁과 평화 사이의 선택’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중국의 군사도발과 경제 강압(economic coercion)에 직면한 대만의 불안감을 자극하려 했다. 그럼에도 그는 ‘92 컨센서스’에 대해서는 “중화민국 헌법에 부합하는 92 컨센서스를 수용한다”는 모호한 입장을 내세웠다. 7)  92 컨센서스 수용이 대륙 중국과 대만 간 대화 조건이라는 중국의 입장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국민당의 양안 정책을 고려할 때, ‘92 컨센서스’에 대한 허우유이의 입장은 대만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대만 내에서는 현재 대만의 지위를 준(準)독립 상황으로 인식하고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8)  또한 <그림 1>에서 보듯이 대만인 정체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를 고려할 때 다수의 대만인들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억지로 ‘92 컨센서스’나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수용하기보다 현 상황을 유지해 나가기를 원할 것이다. 9) 



대만의 정치 양극화 구도 속에서 민진당과 국민당은 정당 간 대립과 정책 선전을 통해서 유권자들의 당파성을 형성하고 견고한 지지층을 형성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국민당은 ‘92 컨센서스’를 기반으로 양안 관계 개선과 발전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국민당이 대만으로 옮겨간 지 이미 70여년이 지났다. 중국인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대만인 정체성이 대만 내에 확산된 상황에서 국민당은 과거와 같이 친중적 정책을 펼치기보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 여론을 의식해 ‘92 컨센서스’나 중국과의 통일에 대한 기존 입장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과의 협력이 장기적으로 하나의 중국을 전제로 하기보다 민진당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며 대만의 민생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는 향후 대만 정치 내 양안 관계에 대한 담론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4. 전망


민진당은 비록 총통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라이칭더가 과반의 지지를 받지 못한 총통이 됐고 집권당으로서 최초로 입법원 과반 의석 확보에도 실패했다. 국민당도 비록 입법원 제1정당이 되었지만, 민진당과 마찬가지로 입법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그런 점에서 민진당이나 국민당이나 이번 선거에서 승리했다거나 패배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이례적인 결과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거대 양당 외 민중당이라는 제3정당의 부상은 민진당과 국민당이 대만 유권자들의 표심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양안 문제에 대한 대만인들의 피로도, 민생문제 해결에 대한 수요, 대만인 정체성의 확산 속에서 거대 양당이 지지층 확보를 위해 활용해 왔던 양안 문제가 예전과 같은 파급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향후 국민당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할 것이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 국민당 역시 양안 정책의 전환을 모색해야 하는 입장이다. 국민당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층을 고려할 때 단기간에 국민당의 영향력이 약화되지는 않겠지만, 정책 전환 과정에서 어떻게 중국과의 관계에 접근할 것인가, 어떻게 민진당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며 기존 지지층을 안고 갈 것인가 등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만약 여기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양안 관계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줄어든 상황에서 제3정당의 약진으로 민진당과 국민당이라는 양당 정치 구도가 변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

1) 이동규, ‘미중 전략경쟁 시기 대만문제의 쟁점과 전망’, 이슈브리프, 아산정책연구원, 2021.11.25., https://www.asaninst.org/contents/미중-전략경쟁-시기-대만문제의-쟁점과-전망.

2) 강준영, ‘대만 대선 결과... 친미 vs 친중 구도에 휘말리지 말자, 아주경제 칼럼, 2024.1.14., https://www.ajunews.com/view/20240114133908099. 

3) ‘92 컨센서스’는 1992년 11월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海峽兩岸關係協會)와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海峽交流基金會)가 양안 관계의 발전을 위해 합의한 것으로 ‘일중각표(一中各表: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지만 그 표현은 각자의 편의에 따른다)’ 원칙이 핵심이다. 중국은 ‘일중’에 방점을 두고 대만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했다고 주장하지만, 대만은 ‘각표’를 강조해 왔다. 

4) “台灣國民黨總統候選人馬英九發表外交政策”, RFA, 2007.11.20.

5) “台湾总统候选人首场政见发表 两岸关系成焦点”, VOA, 2015.12.26.

6) “談兩岸關係 韓國瑜:「九二共識」下保持模糊空間 不碰觸紅線”, RTI, 2019.11.21.

7) “KMT's Hou backs '1992 consensus that conforms with ROC Constitution'”, Focus Taiwan, 2023.07.04., https://focustaiwan.tw/cross-strait/202307040017. 

8) 이에 대해서는 “《遠見》2023兩岸和平調查/近六成民眾希望兩岸維持現狀、達歷年高點”, 2023.10.12., https://www.gvm.com.tw/article/106795을 참고.

9) 독립을 지향했던 과거와 달리 선거 기간 라이칭더는 차이잉원 정부의 양안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고 국방력 강화와 현상 유지를 양안 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입장 변화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미국의 입장은 물론, 대만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게시글 이동
이전글 이전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다음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