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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 과학기술외교 환경변화와 삼각협력 모델
김선엽 소속/직책 :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 부연구위원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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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과학기술외교는 ‘외교를 통한 자국의 과학기술 발전’과 ‘양자 및 다자 외교확장을 위한 과학기술의 활용’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한국과 중국 간 과학기술외교는 동북아 지역 내 세력균형 유지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특히, 트럼프 2.0기 행정부 출범 이후 주한미군의 재조정을 둘러싼 한미 간 조율 필요성은 한중 과학기술 협력관계에 대한 국내 인식 변환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의 정치적 요구에 전략적으로 동조하면서도, 한중 과학기술 협력관계 구축을 위한 노력도 전개해야 한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저자는 한중 과학기술외교의 주요 과제를 제시하고, 과학기술을 둘러싼 외교환경 변화를 살펴본 후 한중 간 전략적 협력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중국 포용의 전략적 실용외교를 추진할 때
2025년 3월 2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글로벌혁신센터(KIC중국), 한국연구재단, 중국 베이징과학기술위원회와 중관춘관리위원회 공동주관으로 열린 ‘2025년 한중과학기술혁신협력포럼’에서 양국 과학기술 협력의 핵심 분야로 인공지능(AI)과 로봇 산업이 논의되었다. 한국과 중국의 과학기술 협력은 1992년 ‘한중 과학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한 이후 양국의 대표적인 협력 채널인 ‘한중 과학기술공동위원회(이하 과기공동위)’를 통해 발전해왔다. 제15차 과기공동위가 2024년 6월, 코로나19 이후 4년 5개월여만에 개최되면서 양국 간 과학기술 정책 조율, 인력 교류, 산학연 실용화 공동연구 재개 등 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를 계기, 한중 과학기술 협력 강화에 대한 양국의 기대감은 커졌지만, 핵심 신흥기술을 둘러싼 안보외교에 대한 글로벌 인식 강화는 양국 협력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는 한국의 기술 우위와 중국의 시장 잠재력을 바탕으로, 양국 간 상호보완적 협력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 심화와 중국의 ‘과학기술 자립자강(科技自立自强)’ 국가전략은 기존의 한중 협력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도전을 가져왔다. 한국과 중국의 전통적 협력 분야는 제조업 기술로, 한국의 기술력과 중국의 제조역량이 결합된 기술이전 중심의 협력 모델이 주축이었다. 이외 IT∙통신 기술 분야에서는, 중국에 진출한 삼성, LG 등 한국 기업이 화웨이, 샤오미 등 중국 기업과 경쟁하면서 성장하는 상생의 협력형태를 보였다.
첨단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현재는 AI, 로봇, 바이오 기술이 양국의 신흥 협력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술이 양국의 국가 전략적 산업으로 지정되면서 기술육성에 있어 경쟁적 요소가 함께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안보 측면에서도 기술유출 및 인재유출을 예방하기 위해 민감기술 보호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정부의 우선과제가 되었다. 더 나아가, 외교안보 관점에서는 미국의 대중국 기술견제와 한국과의 기술동맹 유지가 한중 과학기술 협력관계 구축에 있어 매우 중요한 도전과제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을 지속하면서도 한중 과학기술 협력을 중심으로 실용외교를 전개하는 것이 한국 과학기술계의 핵심 외교전략이자 당면 과제가 되었다.
신흥 과학기술 협력의 구조적 제약
한중 과학기술 경쟁의 심화
중국의 기술 자립도가 향상하면서, 한중 과학기술 협력은 몇 가지 구조적 한계에 맞닥뜨렸다. 첫째, 2024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조사 결과, 2022년 한국이 거의 모든 반도체 기술 분야에서 우위를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반도체는 물론 디스플레이,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 기업에 추월당하고 있다. 특히, 배터리 분야에서 CATL, BYD 등 중국 기업이 급성장하면서 2024년 중국이 세계 배터리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표 1. 한국-중국 반도체 기술수준 비교 (연도: 2024년)
자료 : KISTEP
둘째, 한중 과학기술 협력 패러다임이 상호보완적 성격의 협력에서 안보적 성격의 경쟁으로 전환하면서, 거의 모든 기술분야에서 양국은 정면 경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 시장 진입에 대한 장벽이 높아졌다. 중국의 기술이전 요구 조건이 강화되면서 한국의 중국 시장 접근성이 낮아진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 시장은 상대적 개방성을 유지하고 있어, 중국 기업이 기술표준의 서방진출을 위해 한국 시장을 교두보로 삼으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한국의 기술 비교우위 축소에 대한 우려가,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기술제도가 중국 주도의 기술표준화로 인해 중국에 종속될 위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 속 상이한 지정학적 입지
국제협력 측면에서도 한국과 중국은 서로 다른 환경에 처해 있다. 한국은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선도국과 협력에 유리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한-미 양자기술협력센터 설립, 유럽과의 공동연구(Horizon Europe) 등을 통해 선도국의 기술과 경험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한편, 이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의 기술공급망 재편 요구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 않다.
반면, 중국은 기술패권 경쟁의 중심에 있어, 서구국가와의 협력에 제약이 있다. 미국의 대중국 기술수출 제한, 투자규제 등으로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국제협력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대일로 이니셔티브(BRI)를 통해 개발도상국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디지털 실크로드(DSR) 구축을 통해 독자적인 국제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러한 차이는 양국의 기술발전 전략에도 상이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국제협력을 통한 기술학습과 공동개발에 중점을 두는 반면, 중국은 자체 기술개발, 독립적인 생태계 구축 및 기술표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북아를 벗어난 한중 과기외교 전략
양국 공동이익 중심의 협력방안 모색
한국이 미국 주도의 기술 다자협력체계에 참여하면서도, 단기적으로는 중국과 민감하지 않은 기술 분야에서 기업 중심의 제한적, 선택적, 실용적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 디지털 전환, 고령화 등 양국이 공동으로 마주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다. 반면, 반도체 핵심기술, AI 군사응용 기술, 양자 컴퓨팅 기술 등 민감기술 분야 협력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제3국이 참여하는 협력 모델을 확대하는 등 기존의 협력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신흥시장에 공동 진출하여 상호보완 가능한 협력분야를 발굴하는 것이다.
‘한중 + 아프리카’ 삼각협력 모델 발굴
2025년 6월 12일, 과학기술혁신 공동체 구축을 위해 중국 청두에서 「제2회 일대일로 과학기술교류대회」가 개최되었다.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는 2024년 이후 과학기술 협력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 2024년 개최된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쉬젠핑(徐建平) 외교부 대변인은 디지털 인프라 건설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디지털 경제 및 AI 분야에서 협력을 심화하고, ‘일대일로 과학기술혁신 행동계획’의 이행을 강조했다.
2013년 일대일로 출범 이후 이니셔티브의 핵심 축으로 아프리카가 부상했다. 이에, 중국의 아프리카 사업들은 거의 일대일로와 연계되어 있다. 특히, 케냐(몸바사-나이로비 철도), 지부티(아디스아바바-지부티 철도), 이집트(신행정수도 건설) 등 3개국에 일대일로 사업이 집중되어 있다. 중국은 국제적 입지를 확대하기 위해 아프리카연합(AU)의 ‘어젠다 2063’ 및 유엔(UN)의 ‘어젠다 2030 지속가능발전’과 연계한 해상 일대일로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2024년 제9회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중국과 아프리카가 공동으로 글로벌 사우스의 현대화를 주도해 나가길 원한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은 2005년 AU 옵서버 국가 자격 획득 이후 2006년 AU와 한-아프리카 포럼을 공동 출범하는 등 아프리카와의 협력기반을 다져왔다.1) 같은 해, ‘아프리카 개발을 위한 이니셔티브’ 발표 이후 아프리카 국제개발원조(ODA) 규모는 꾸준히 증가했다. 한국은 주로 공공외교 차원에서 아프리카와의 디지털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특히, 전자통관시스템(UNIPASS)과 같은 디지털 정부 방면에서 많은 전문성을 공유하고자 한다.
아프리카는 한국과 중국의 주요 경합지지만, 미국의 동맹체계에 포함되지 않은 ‘중간지대’로서 한중 간 협력이 미국과 직접적으로 대립하지 않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를 거점 삼아 중국의 하드파워와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결합한 삼각협력 모델을 구상할 수 있다. 중국이 건설한 해상 일대일로 인프라에 한국형 운영 및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속가능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아프리카에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는 경우 중국이 인프라 및 태양광 패널 제조기술을, 한국이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및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을 분담하여 공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 개발협력 분야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대함은 물론, 미∙중 기술경쟁 구도 하에서 아프리카를 한국의 외교적 자율성 및 균형외교를 실현할 수 있는 무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1. ‘한중 + 아프리카’ 과학기술 삼각협력 구상도
자료 : The Economist를 바탕으로 저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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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김성배, 김태주, 최용환 (2024)
[참고문헌]
김성배∙김태주∙최용환(2024), “2024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의 전략적 의미 및 고려사항”, 『INSS 이슈브리프』, 제558호.
정의진∙신동평(2025), “3대 게임체인저 분야 기술수준 심층분석 ① - 반도체 강국으로 재도약을 위한 미래 이슈 –”, 『KISTEP 브리프』, 제170호.
중앙일보, “시진핑 "아프리카 모든 수교국과 '전략관계' 격상…67조원 지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5864, 2025. 7. 19.
The Economist, “Our bulldozers, our rules”, https://www.economist.com/china/2016/07/02/our-bulldozers-our-rules, 2025. 7. 20.
中央纪委国家监委网站, “《中国—非洲国家共建“一带一路”发展报告》2024版蓝皮书发布”, https://www.ccdi.gov.cn/yaowenn/202408/t20240829_371680.html, 2025.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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