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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부동(和而不同), 양안관계의 빛과 그림자
김윤태 소속/직책 :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 교수 202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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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관계를 거론할 때 우리는 종종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양안관계’를 거울삼아 비교하곤 한다. 분단이라는 유사한 역사를 경험했지만, 양안관계는 남북한 관계에 비해 훨씬 더 유연하게 작동되어왔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사고체계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화이부동의 철학은 양안관계에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으며, 걸핏하면 경색되는 남북한 관계의 돌파구를 찾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화이부동의 지혜로 남북한 관계 역시 유연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다름’을 존중하는 지혜, 화이부동(和而不同)
'화이부동'은 논어(論語)의「자로(子路)」편 중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의 한 구절로, "군자는 조화를 이루지만 같아지지는 않고, 소인은 같아지려고만 할 뿐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화(和)는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전체적으로 어우러지는 '조화'를 가리킨다. 각자의 개성과 주체가 살아있는 평화로운 공존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다. 반면 동(同)은 맹목적으로 같아지려고 하거나, 차이를 무시하고 획일성을 강요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표면적으로는 같아 보일 수 있으나 진정한 의미의 화합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화이부동'은 서로의 다름(不同)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평화로운 공존과 조화(和)를 모색하는 지혜라고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 사고체계는 중국 사회의 갈등 해결과 복잡한 관계 설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철학적 기반이 되어 왔다.
이는 세상을 흑과 백, 선과 악으로 나누는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와는 결이 다르다. 이분법은 복잡한 세상사를 양자택일의 틀에 가두어 미묘한 차이를 간과하게 하고, 경직된 판단을 내리게 한다. 반면 관계성에 기초를 둔 동양 사상은 다르다. 음과 양처럼 상반되면서도 상호보완적인 힘이 우주 만물을 이룬다는 음양사상, 군신·부자·부부 관계에서 효와 충, 사랑과 같은 상호 의무를 통해 공동체의 안녕을 중시한 유교,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무위(無爲)'를 강조하며 경직된 틀을 거부한 도교까지. 중국의 전통 사상 곳곳에서 다름을 끌어안고 역동적인 통합을 추구하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관계와 중용, 중국 사회의 작동 원리
이렇게 전통사상에 기초한 중국문화의 핵심적 요소는 개인의 행동이나 사회적 관계, 국가의 정책에서도 어김없이 구현된다. 중국인들은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의견에 절충적이고 유연한 대응을 한다. 비록 대립되지만 양측 모두에 분명한 진실이 담겨있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어느 한 편을 고집하기 보다는 둘 다 적당히 수용하는 중용을 선택한다. 극단적인 판단과 섣부른 선택보다는 신중하고도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유연한 사고는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고 타협을 이끌어 내는데 확실히 유용하다.
중국 사회의 구동 원칙 역시 개인의 가치와 독립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상호의존적 관계성에 기반을 둔다. 개인은 독립적이기 보다는 사회적 관계와 사회적 맥락에서 그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인의 자아는 인간관계에 기반을 둔 사회적 관계망에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지하듯이 꽌시(關係)는 일종의 사회적 규범으로써 중국사회를 지배한다. 신뢰와 도덕적 의무에 기초한 사회적 네트워크인 꽌시는 종종 계약이나 법률시스템보다 우선시 된다. 그래서 꽌시의 구축은 중국사회에서 비즈니스 성공이나 사회적 성공의 필수요소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중국사회가 반드시 전통적 사상기반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컨대 꽌시와 같은 전통적 가치가 여전히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긴 하지만, 현대의 서구적 접근방식도 점차 그 적용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다. 다만 전통적 가치가 현대적 세계화의 요구와 통합되어 창의적이고 균형적이며 ‘중국적인 현대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서구모델의 단순한 채택이 아니라 전통과 현대를 통합하는 발전적이고 변증법적인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전통의 지속과 현대적 변화가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역동적인 통합 속에서 중국 사회만의 독특한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만의 독특한 사회문화적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키고 있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 역시 이분법적 사고에 머무르지 않고 모순을 수용하고 중용을 추구하며 현실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다양한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발전적으로 통합시키는 이들의 전통 사상체계의 현대적 발현일 수 있다.
‘화이부동'의 실험장, 양안관계의 현주소
중국과 대만의 관계인 양안관계에서도 화이부동의 원칙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1987년 양안 사이에서 인적교류가 개방된 이후, 중국과 대만 간의 경제적 사회문화적 교류와 협력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대립하고 있더라도 경제적 사회문화적 협력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이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어 작동하는 ‘정경분리(政经分离), 선경후정(先经后政)의 원칙’을 적극 실천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양안 간의 경제협력에 대해 경제협력을 통해 통일을 촉진하겠다는 중국의 ‘이경촉통(以經促統)' 전략’의 일환이라고 보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특정 산업이나 대만기업에 특혜를 부여한다든지, ECFA의 체결로 상호 역내 교역을 강화한다든지 하는 일련의 제도구축을 통해 볼 때, 남북한 관계와는 달리 양안 간에는 정경분리의 원칙이 작동되고 있음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체결된 ECFA(Economic Cooperation Framework Agreement)는 그야말로 '양안 간 경제협력'의 대표적 상징이다. 이는 통일이라는 민감한 정치적 문제를 잠시 뒤로 하고, '경제 협력'이라는 현실적인 목표에 집중한 시도였다. ECFA 체결 후, 대만은 '조기 수확 프로그램(Early Harvest Program)'을 통해 석유화학, 기계, 농수산물 등 539개 품목에 대해 무관세 또는 관세 인하 혜택을 받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타이완이 ECFA EHP를 통해 중국에 수출한 품목은 누적평균으로 전체 대중국 수출의 24.1% 달러를 차지하며 EHP 시행으로 감면받은 누적 관세액도 66억을 넘어섰다.1) 또한 중국 역시 대만과의 경제교류 확대를 통해 국내 노동력과 거대 내수시장에 대한 대만 자본 투자를 확대 유치하였고 이는 중국 경제발전 가속화에 크게 기여했다. 중국과 대만 양측 모두에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삼통(三通)'의 전면적 실시와 인적 교류의 확대 역시 '화이부동'의 실천이다. 2008년 양안 간의 통상(通商), 통항(通航), 통우(通郵)를 의미하는 '삼통'이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로써 국공내전 이후 59년 만에 이념의 차이를 넘어선 실용적 협력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홍콩 등을 경유해야 했던 항공편이 직항으로 바뀌면서 이동 시간이 단축되고 물류비용도 대폭 절감되었다. 중국과 대만 간 통상무역 및 투자의 성장은 물론 관광산업 발전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물론 이와 같은 양안 간 경제협력에 긍정적 평가와 기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만 내에서도 경제적 이익에 대한 기대와 함께,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경계하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았다. 중국이 경제를 무기로 대만의 정치적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경제 종속에 의한 안보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출발했다. 실제로 대만의 대중국(홍콩 포함) 무역 총액 비율은 한때 전체 대외 무역 총액 중 30%를 상회하기도 했다.2)
또한 불균등한 혜택과 산업 공동화 우려도 한 몫을 했다. 협정의 혜택이 일부 대기업에 집중되고, 중국의 저가 상품과 경쟁해야 하는 중소기업 및 농민, 노동자들은 오히려 피해를 본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또한, 기업들이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면서 대만 내 산업 공동화와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갈수록 높아졌다.3)
이러한 불안감은 2014년 '해바라기 학생운동'으로 폭발했다. ECFA 후속 협정인 '양안 서비스무역협정' 비준을 앞두고, 학생들이 중국 자본의 거대 유입을 우려하며 입법원(국회)을 점거한 사건이다. 이는 경제 교류의 이면에 도사린 정치·사회적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더구나 중국이 경제 협력을 통일전선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전략적 계산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대만인들의 경계심은 더욱 커졌다. 중국은 경제적 혜택을 통해 대만 내 친중 여론을 키우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반중 성향의 민진당 정부가 들어서자 일부 교류를 제한하며 경제를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했다.
물론 대만도 중국의 의도를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가 정치에 종속되는 것을 경계하며 대응하고 있다. '남진정책(南向政策)'을 통해 아세안(ASEAN) 및 인도 등과의 경제 관계를 강화하여 시장을 다변화하고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 의존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는 경제를 통해 중국과 화합, 협력하기도 하지만, 중국의 정치적 압박에서 벗어나, 대만은 중국과는 다르다는 '부동(不同)'을 견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판단된다. 이렇듯 중국이든 대만이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화합하기도 하고(和), 한편 지나친 동일화의 압박(同)을 벗어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부동(不同)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동이불화(同而不和)의 그림자
양안 간 경제적 협력이 '화이부동'의 경지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아쉬움 또한 지울 수 없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며 대만을 자국의 일부로 규정한다. 이는 대만의 독자적인 정치 체제와 주권이라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중국의 틀 안으로 들어오라는 '동화(同化)'의 압박이다.
갈수록 막강해지는 정치력 경제력을 이용해 대만과 수교를 맺은 국가들을 압박하여 단교하도록 만들고 있다. 또한 대만 해협 주변에서 군사 훈련을 강화하며 무력 통일의 가능성으로 위협하기도 한다. 이는 양안의 '다름'을 힘으로 바꾸려는 시도이며,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화이부동'과는 정반대의 '동이불화(同而不和)', 즉 겉으로는 같아지길 강요하지만 진정한 조화는 없는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양안관계는 '화이부동'의 이상을 실현할 잠재력과 '동이불화'의 갈등으로 추락할 위험성을 동시에 안고 있다. 경제적 사회문화적 교류는 양측이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경제 협력을 바라보는 양측의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 즉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대만과 '정치적 통일'을 목표로 하는 중국의 동상이몽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근본적인 차이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양안관계의 미래는, 서로의 차이를 힘으로 억누르려 하는 '동이불화'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각자의 정체성을 존중하며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화이부동'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양안관계의 해법은 '누가 옳은가'를 따지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화이부동'의 길에서 찾을 수 있다. 통일이라는 '동(同)'의 목표가 단기적으로 실현 불가능하고, 독립 선언이 큰 갈등을 유발한다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화(和)'의 상태를 장기적인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접근일 것이다.
남북한 관계에 던지는 '화이부동'의 교훈
양안관계의 여정은 남북관계가 나아갈 길과 피해야 할 함정을 동시에 보여주는 생생한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양안의 ECFA와 삼통이 보여준 '정경분리' 원칙은,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처럼 민감한 정치 현안과 별개로 경제·사회 교류를 확대해 긴장을 완화하는 실용적 접근이 남북한 관계에서도 유효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부정적 측면도 경시할 수 없다. 대만에서 불거졌던 '경제 종속'과 '산업 공동화' 우려는 남북 경협에서도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문제다. 경제 교류가 순수한 '화(和)'를 넘어, 상대를 길들이려는 '동화(同化)'의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경고다.
'경제적 실리'의 추구와 '정치적 통일'이라는 양안의 '동상이몽'은 남북한 관계에도 그대로 투영될 수 있다. 평화 공존, 통일, 이념, 경제적 실리 추구 등을 둘러싼 남한과 북한이 지향하는 바의 목표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 이 차이를 간과하면, 교류는 특정 단계에서 한계에 부딪히거나 예기치 못한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 양안관계는 '경제결정론의 한계'를 명백히 보여준다. 막대한 경제 교류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중국'이라는 근본적인 안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군사적 긴장은 고조되었다. 이는 남북한 관계 역시 비핵화 같은 핵심 안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경제 협력만으로 지속 가능한 평화를 쌓아 올리기 어렵다는 냉정한 현실을 일깨운다. 개성공단이 결국 정치적 변수에 따라 중단되었듯, 안보 위협이 상존하는 한 경제 협력은 언제나 깨지기 쉬운 '살얼음판 위의 관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결국 진정한 '화이부동'은 상대방을 나와 같게 만들려는 '동화(同化)'의 유혹을 버리고, 서로의 체제와 정체성이라는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토대 위에서만 싹틀 수 있다. 양안의 사례를 거울삼아, 남북한이 서로의 차이를 끌어안고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 비로소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도 담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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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허재철 외, 2020, 《중국의 일국양제 20년 평가와 전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168쪽.
2) 한국무역협회,《대만, ‘무역 독립’은 진전… 대중 의존비율 10년래 최저》, https://www.kita.net/(2024.05.22.)
3) 오승렬, 2017, 〈대만 경제 ‘중국 의존’ 현상의 경제적 요인 및 함의〉,《중소연구》41(2), 225-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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