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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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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반도체 굴기, ‘범용’에서 ‘첨단’으로 — 한국 산업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가?

조원경 소속/직책 : UNIST 글로벌산학협력센터 / 센터장 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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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다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한때 미국의 제재로 주춤했던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범용(汎用) 반도체’를 발판 삼아 다시 상승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8나노 이상 중저가 반도체 시장에서 생산 능력을 폭발적으로 키우며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 이를 바탕으로 첨단 기술 영역으로의 도약을 준비하는 중이다.

중국 반도체산업협회(CSIA)에 따르면, 중국은 2027년까지 14나노 이하 반도체 생산 능력의 39%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단순한 생산량 확대를 넘어 공급망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의도다. 자동차 산업은 그 핵심 축이다. 중국 정부는 자동차용 반도체를 ‘산업안보의 핵심 부품’으로 규정하고, 내수 중심의 완결된 공급망을 구축하려 한다. 전기차 1위 기업인 BYD는 이미 전력반도체 공장을 본격 가동하며,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기술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다. 반면 글로벌 1위인 독일 인피니언은 실적 전망을 낮추고 투자를 축소했다. 중국이 범용 반도체 시장을 흡수하면서 유럽 제조업체들이 입지 약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전략은 단순히 ‘생산’에 머물지 않는다. 범용 반도체로 벌어들인 수익을 첨단 반도체로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정부 주도로 구축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2024년 5월 공식 출범한 470억 달러 규모의 ‘빅펀드 제3기(Big Fund III)’다. 미국의 수출 통제 강화 이후 중국 정부는 기술 자립을 명분으로 산업 전반에 국가 자금을 집중 투입하고 있다. 빅펀드는 과거 1, 2기에 이어 반도체 장비·소재 기업과 인재 양성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미국 의존도를 0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내세운다.

기술 봉쇄에 맞선 ‘중국식 자립 모델’

미국의 반도체 제재는 중국의 역설적 동력이 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과시켜 미국 내 생산과 연구개발을 강화했고, 동맹국을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 동맹’을 구축했다. 일본과 네덜란드는 첨단 노광장비의 대중 수출을 제한했고, 한국과 대만 역시 미국의 기술 블록 체제 안에 편입됐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제재를 ‘기술 자립의 촉매’로 삼았다. 대표적 사례가 SMIC와 화웨이다. SMIC는 미국의 장비 제재 속에서도 2024년 초 7나노 공정 양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화웨이는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통해 ‘기린(Kirin) 9000S’ 칩을 자체 설계·생산하며, 미국산 반도체 없이도 5G 스마트폰을 복원시켰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도 클라우드용 AI 반도체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중국이 ‘기술 수입국’에서 ‘기술 자립국’으로 전환 중임을 보여준다.

중국판 엔비디아로 불리는 브리콘(Cambricon)은 인공지능 반도체에서 자국산 대체품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최신 AI칩 ‘H20’ 수입이 어려워지자, 중국 정부는 자국 클라우드 기업들에 캠브리콘 제품을 우선 도입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화웨이는 AI 연산 효율에서 엔비디아 대비 80% 수준을 달성했다고 주장하며, ‘중국형 GPU 생태계’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다.

H20 칩과 미국-중국 반도체 경쟁의 핵심

Nvidia가 중국 시장용으로 설계한 H20는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하에서 등장한 제품이다. 이 칩은 본래 고성능 AI 연산을 위한 제품인 H100 시리즈 등과 비교해 일부 기능이 축소됐음에도 중국 시장에서는 대량 수요를 기록해 왔다. 예컨대, 2024년 기준 중국에 약 100만 개 수준이 유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정부가 H20 칩의 사용에 대해 보안상 ‘백도어(back-door)’ 위험을 제기하고 있으며, 중국 내 반도체 자립화 전략 차원에서 해당 제품을 경계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2025년 8월,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H20 칩을 만든 Nvidia를 소환해 해당 칩이 원격조정 가능성이 있는 ‘보안 위험 장치’가 있는지 여부를 질의했다. 이후 일부 보도에서는 H20의 생산이 중단되었다는 언급도 나왔다. 한편, 미국 정부 역시 H20의 중국 수출을 허용한 뒤 일정 조건(예컨대 수익 일부의 미국귀환 등)을 부과하는 등 규제 리스크가 상존하는 상태다. 이러한 흐름이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중국이 H20를 통한 고성능 AI 연산 인프라 확보에 나섰다는 점 — 즉 하드웨어가 AI 생태계에서의 전략적 병목이라는 인식이 강화된다. 동시에, 외부(미국) 기술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자체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겠다는 중국 정부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Nvidia 입장에서는 중국 시장이 매우 중요한 만큼 H20를 둘러싼 규제·정책 리스크가 실적과 주가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H20 관련 소식이 나오자 Nvidia 주가가 하락했다. 따라서 H20는 단순히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 수출통제, 자국생산 전략 등이 교차하는 ‘상징적 칩’으로 볼 수 있다.

 화웨이의 반도체 전략과 시장 대응

(1) 사업 체질 전환과 기술 로드맵

화웨이는 최근 공식적으로 반도체 및 컴퓨팅 파워 전략을 발표했다. 예컨대 2025년 9월 18일자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화웨이는 자사 AI칩 브랜드 ‘Ascend’와 서버용 프로세서 ‘Kunpeng’ 라인업을 통해 “매년 연산 컴퓨팅 성능을 두 배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화웨이는 자체 고대역폭 메모리(HBM)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이 역시 반도체 제조에서 주요 병목인 메모리 인터커넥트 기술을 자립하겠다는 신호이다. 이와 같은 전략은 단순히 ‘국내 대체재’ 수준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경쟁자였던 Nvidia 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구조이다. 

(2) 생산 역량 개선과 수율 향상

반도체 사업에서 중요한 변수는 바로 수율(yield)이다. 아무리 설계가 우수해도 막대한 불량이 발생하면 사업성이 떨어진다. 화웨이는 최근 수율 개선을 진행해 온 것으로 보인다.  Financial Times에 따르면, 화웨이 AI칩의 수율이 지난해 약 20 %대에서 최근 약 40 %선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이러한 수율 개선은 기술적 진전만이 아니라 ‘생산-양산 체제’로의 전환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는 신호이다. 또한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자회사인 HiSilicon은 자체 SoC 설계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내부 반도체 생태계(설계→패키징→칩)가 점차 완성돼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시장·정책 환경 활용

화웨이는 중국 정부의 “자급자족(自給自足) 반도체 정책” 덕분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보조금·정책 지원을 제공해 왔다. 화웨이는 중앙 및 지방 정부로부터 수십 조 위안(수십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받아왔다.  이러한 지원은 수출 규제·기술 차단이라는 대외 리스크를 상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중국 시장 자체가 규모가 크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 시장 재도약, 자동차(커넥티드카) 관련 사업 진출, 데이터센터 및 클라우드 인프라 확대 등에서 새로운 성장축을 확보 중이다. 주의할 점은 화웨이는 아직 상장회사가 아니어서 일반 투자자가 주식시장에 직접 투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웨이 관련 생태계 기업이나 중국 반도체 주식군이 투자자 주목을 받고 있으며, 화웨이의 반도체 역량 강화 소식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 및 공급망 재편 기대감을 자극하고 있다. 예컨대, 화웨이의 칩 생산 확대 소식에 따라 관련 장비·부품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는 흐름이 관찰되고 있다. 화웨이는 기술·생산·정책환경·시장 측면에서 반도체 및 AI칩 분야에서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해가고 있으며, 이는 H20 등 외제 칩에 대한 중국의 대체 요구와 맞물려 더욱 주목받는 구조이다. H20의 변수 확대는 화웨이에게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외제 칩이 규제·수급 리스크를 노출할 때, 중국 기업들은 화웨이의 ‘Ascend’ 계열 칩 등 자국산 대체재·내재화 솔루션을 더욱 고려하게 된다. 실제로 화웨이는 2025~2026년 생산량을 급증시키려 하고 있고, 이를 시장에서도 인식하고 있다. 

희토류와 갈륨, 새로운 무기화

중국은 단순히 반도체 생산력 강화에 머물지 않는다. ‘희토류(rare earth)’와 갈륨, 게르마늄 등 전략 광물의 수출 통제를 통해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희토류는 반도체·전기차·방위산업의 필수 소재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정제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2023년 7월, 중국은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을 제한하며 반도체 공급망을 흔들었다. 이어 2024년에는 드론·AI칩에 사용되는 핵심 금속인 그래핀과 흑연(黑鉛)에 대해서도 수출 허가제를 도입했다. 다시 2025년 희토류 수출 규제 카드를 내밀며 트럼프 행정부에 맞섰다. 이는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대한 ‘자원 카드’ 반격이었다. 중국 상무부는 “국가 안보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실상은 기술 패권 전쟁의 연장선이다.

이런 조치가 있을 때마다 글로벌 시장에도 직접적인 파급을 미쳤다. 희토류 가격은 단기 급등했고, 일본·한국·유럽의 반도체 소재 기업들은 공급선 다변화에 나섰다. 미국은 이를 ‘경제적 강압으로 규정하며, 인도·호주와 함께 희토류 협력체를 강화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국의 광물 정제 능력을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어렵다.

한국 산업의 도전과 기회

한국은 반도체 제조 강국이지만, 현재의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는 양면의 압력에 놓여 있다. 미국은 ‘우방 간 기술동맹’을 강조하며 한국 기업에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고, 중국은 한국 기업에 대한 ‘내수 시장 접근성’을 무기로 압박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 증설 승인을 얻기까지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중국은 8나노 이상 범용 반도체에서 사실상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다. 대규모 내수시장과 정부 보조금, 완화된 규제는 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반면 한국은 주 52시간제 등 노동 규제, 전략 투자 지연, 인력 부족 등으로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에 부딪혀 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글로벌 2위를 지키고 있지만, TSMC와의 기술 격차는 여전하고, SMIC의 추격은 거세다. 중국의 양쯔메모리(YMTC)와 창신메모리(CXMT)는 낸드플래시·D램 시장에서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기술력 자체보다 정책 일관성과 자금 투입의 속도에서 이미 한국을 앞질렀다는 평가도 있다.

미·중 패권 경쟁 속 한국의 생존 전략

미중 기술전쟁은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니다. 이는 ‘패권 전쟁’이며, 반도체는 그 중심에 있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에서 중국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려 하지만, 중국은 범용 반도체의 압도적 생산능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미국의 기술 블록 체제 안에 머물면 단기적 안정은 확보되지만, 중국 시장의 성장 기회를 잃는다. 반대로 중국에 협력하면 미국의 제재 위험에 노출된다. 따라서 한국의 해법은 ‘균형 외교’와 ‘기술 자립’이다.

첫째, 기술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국가 차원의 반도체 R&D 투자와 인재 양성이 병행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반도체 인력 부족은 3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둘째,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공급망 다변화가 필요하다. 셋째, 희토류·소재·장비 분야에서 일본·유럽과의 협력 확대를 통해 기술 블록화에 대응해야 한다.

‘긴장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

중국은 더 이상 기술 후진국이 아니다. ‘범용 반도체’에서 시작된 성공은 이미 산업 생태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반도체, 희토류, 인공지능, 전력망,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산업을 국가 전략의 일부로 통합하고 있다. 한국이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속도, 창의성,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이 필수다.
중국의 범용 반도체 성공은 이미 ‘상수’다. 한국이 맞서야 할 것은 단순한 시장 경쟁이 아니라,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기술과 인재, 그리고 제도의 혁신 없이는 미래의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긴장은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산업 생존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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